3. 괄호 안의 ㉠에 해당하는 인명을 쓰고, 밑줄 친 ㉡ 주장의 의미에 대해 쓰시오.[2점]
私僮( ㉠ )等六人 櫵北山招集公私奴隸謀曰 國家自庚癸以來 朱紫多起於賤隸 將相寧有種子乎 ㉡時來則可爲也 吾輩安能勞筋 骨困於棰楚之下 諸奴皆然之 - 高麗史 - |
해설 : ㉠만적, ㉡신분해방(상승)
[세상의 모든 역사 한국사 김종권 p.172, 256 사료]
한자 : 私僮( ㉠ )等六人 櫵北山招集公私奴隸謀曰 國家自庚癸以來 朱紫多起於賤隸 將相寧有種子乎 ㉡時來則可爲也 吾輩安能勞筋 骨困於棰楚之下 諸奴皆然之
독해 : 사동( ㉠ )등육인 초북산초집공사노례모왈 국가자경계이래 주자다기어천례 장상녕유종자호 ㉡시래즉가위야 오배안능노근 골곤어추초지하 제노개연지
해석 : (신종) 원년(1198)에 사노 ㉠만적 등 여섯 명이 북산에 나무하러 갔다가 공사 노비들을 모아 놓고 말하기를, “우리나라에서는 경인년과 계사년 이래 고위 관리들이 천민과 노비에서 많이 나왔다. 장군과 재상이 어찌 타고난 씨가 따로 있겠는가? ㉡때만 만나면 누구나 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라고 어찌 뼈 빠지게 일만 하고 채찍 아래에서 고통만 당하겠는가?”라고 하였다. 여러 노비가 그렇다고 모두 하였다.
[세상의 모든 역사 한국사 p.171]
⑤ 만적의 난(1198): 최충헌의 사노(私奴)였던 만적이 개경에서 봉기를 일으키려 했었다. 당시 개경 북산에서 노비들을 모아 놓고 누구나 공경대부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실행하려 했으나 한 노비의 밀고로 난을 일으키지 못하고 실패하였다. 비록 난을 일으키지는 못했으나 신분 해방을 주장하였다는 것에 그 의의가 있다.
[한국사통론 p.219]
무신정권기에는 농민의 봉기뿐 아니라 천민 · 노비들의 반란도 함께 일어나고 있었다. 명학소의 망이 · 망소이의 난은 이러한 농민과 천민의 난이 연합된 형태였다. 천민과 노비 등 천민계층은 지방통제력의 약화를 틈타 신분의 해방을 피하여 봉기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천민 반란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1198년(신종1) 개경에서 발생한 만적(萬積)의 난이었다. 사노(私奴) 만적은 개경 북산에 공사노비들을 모아 놓고 “무신란 후 공경대부(公卿大夫)가 천인에서 많이 나왔으므로 우리들도 최충헌과 주인들을 죽이고 천인에서 해방되면 공경 · 장상이 될 수 있다.”고 외치면서 대규모의 반란을 도모하였지만, 이는 중도에 발각되어 실패하고 말았다. 노비 · 천민은 농민과 같은 피지배층으로서 함께 시달림을 받았으므로 서로 결합하여 민란을 일으켰는데, 특히 이들은 천민 신분에서의 해방을 목표로 하였다는 점에서 농민봉기와 차이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