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요약
선교 현장을 C.S. 루이스의 스크루테이프의 편지와 같이 묘사하면 어떻게 될까? 아마 하나님의 대적자들이 모인 전략회의와도 같을 것이다. 그들은 실패하고 좌절하는 선교사들의 모습에 기뻐하지만 종국에는 복음이 선교지에 전파되는 모습을 보며 두려움에 떨게 된다. “교회의 최대 과제는 세계를 복음화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아직은 온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지 않았을지라도, 교회는 결국 온 세계에 기쁜 소식을 전하게 될 것이다.
“교회의 최대 과제가 세계를 복음화하는 것”이라는 이라는 말은, 이 과업이 결코 특정 지역에 국한된 지엽적인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또한, 이 과업이 교회의 필수적이고 가장 중요한 일이며, 교회의 특정 부서만의 일이 온 교회가 나서야 하는 일이라는 말이다. 이 말은 물론 선교에 대한 개개인의 책임을 배제하지 않는다. 교회의 구성원인 우리도 이 일에 책임이 있다. 우리 각자 역시 성경에서 이야기하는 경작할 “밭”이 온 세계임을 알고 우리의 삶을 다하여 복음을 들고 나서야 한다.
마가복음 13장 10절은 이 일의 우선성에 대해 분명히 증언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 곧, 하나님의 계획의 완전한 실현과 세상의 끝이 도래하기 전에 “먼저” 모든 민족과 모든 언어 가운데 하나님의 기쁜 소식이 전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우선적으로 해야할 것은 “보내는” 일이다. 다시 말해, 이미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파되지 않는 또는 않은 곳으로 복음을 전할 이를 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와 중국과 같은 나라를 생각해 보면, 세계 인구의 절반 이상이 복음을 충분히 접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오신 지 2천 년이나 지났는데도 여전히 복음이 세계 곳곳에 증거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가 주목해야 할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복음의 대적이 있기 때문이고, 두 번째는 우리의 강조점이 개인의 교육에 있기 때문이며, 세 번째는 닫힌 문에 집중한 나머지 열린 문으로조차 들어가지 않기 때문이고, 네 번째는 우리가 충분히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 다섯 번째는 우리가 사도 바울의 선교 방식을 따르고 있지 않기 때문이고, 마지막으로는 복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이 멸망할 것이라는 확신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이다.
“보내는 선교”의 핵심은 우리가 가진 것을 선교에 사용하는 것이다. 이것은 후원이 아니라 우리가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전심으로 우리가 가진 것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전심으로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선교를 위해 우리의 물질을 써야 할까. 먼저, 가장 강력한 무기는 출판물이다. 복음의 내용은 누구나 읽을 수 있는 형태로 출판되어야 한다. 그리고 방법론적으로는 현지인들을 세우는 일이다. 선교사는 특정 지역의 목회자가 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지역의 사람들을 세우는 사람이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먼저, “보고”, “기도하고”, “가야” 한다. 본다는 것은 복음을 가지지 못한 이들의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기도한다는 것은 우리의 능력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을 의지하라는 것이다. 가라는 것은 온 민족과 각 사람에게 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3중 명령이다.
그렇다면 실제 선교는 어떠한가? 선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분명한 소명 의식, 준비, 선교의 어려움을 극복하고자 하는 의지가 필요하다. 우리의 의무는 “평범한” 것 즉, 세상을 복음화해야 한다는 것이며, 이것은 곧, 이미 개척된 선교지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미개척된 선교지를 향해 가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한 선교는 마땅히 복음주의적이어야 하며, 복음 전도 중심적이어야 하고, 현지인 장로들을 세우고 우리가 현지의 목사가 되는 데에 안주해서는 안 된다. 선교지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현지인 그리스도인들을 훈련하는 것이다. 또한, 현지인 목사와 교회를 외부적 도움에 의존하게 해서는 안 된다. 외국 선교부에 지원으로만 세워진 교회는 약해지고 도태되기 마련이다. 또한 선교는 사람이 많은 곳에서 시작하여 그곳에서 복음이 퍼져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재정 문제를 위해서는 정보와 기도, 신앙을 갖되 빚을 져서는 안 된다. 금액이 마련되기까지 섣부른 사역은 금물이다. 선교사의 급여는 필요를 충당할 정도면 족하고, 선교를 위한 간접비는 결코 많아서는 안 된다.
마지막으로, 복음 전도를 ‘종교’의 입장에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미개척지에도 종교가 있는 경우가 물론 있다. 그러나 그 종교는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한다. 특히 주로 여성과 아이들을 옭아매는 악습을 갖고 있다. 인류를 올바른 길로 인도할 참된 믿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이라는 것을 기억하자.
2. 서평
우리나라로 온 초기 선교사 중 하나였던 언더우드는 본래 인도 선교에 마음을 품었던 인물이었다. 사실 조선으로 오고자 했던 선교사는 많지 않았는데, 조선이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무지의 장막을 뚫고 복음을 듣지 못한 영혼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선 이들의 발걸음을 통해 우리는 복음을 듣게 되었고, 복음의 힘은 이 민족과 나라를 계몽시켰다. 그들이 세운 많은 교육기관과 의료기관이 여전히 선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으며, 이 나라 곳곳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
저자는 선교를 특정 지역에 기독교의 세를 불리는 것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저자의 이해에 의하면 선교는 지역적이지 않고, 세계적이다. 왜냐하면 선교사는 항상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을 향해 나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통계에 의하면, 아직도 세계에는 복음을 듣지 못한 종족들이 수천 그룹에 달한다고 한다.
저자는 “당신이 직접 갈 수 없다면, 다른 사람을 보내야 한다”라고 말한다. 복음에 빚진 자로서 이 외침이 감명적으로 다가왔다. 생각해 보면, 주위에 미개척지의 문을 두드리는 이들이 많지 않다. 대개는 잘 알려진 나라, 심지어는 복음화율이 상당히 높은 나라에 파송되는 선교사들도 있다. 물론 그들이 감당해야 할 소중한 사역이 있겠으나, 정작 복음을 듣지 못한 이들에게로 나아가는 선교에 대한 관심이 적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늘 내가, 우리가 미개척지로 향하는 선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