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왜 ‘글’로 기록되었을까? (기록의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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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의 편견을 깨는 질문
여러분, 중요한 계약을 할 때 우리는 “문서로 남겨야 확실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글’로 기록된 것을 당연하게 여기죠. 하지만 고대인들의 생각은 정반대였습니다. 그들에게 진리는 ‘종이’ 위가 아니라 ‘살아있는 목소리’ 속에 있었습니다.
혹시 우리는 “글이 없어서 말로 전했으니 미개했을 거야”라고 오해하고 있진 않나요? 오늘은 그 편견을 깨고, 성경이 왜 굳이 ‘글’이라는 옷을 입어야 했는지, 그 기막힌 반전을 찾아가 봅니다.
구술 문화, 가장 정교한 소통의 기술
고대인들이 글을 몰라서 안 쓴 게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글자가 담아내지 못하는 진리의 ‘온도’를 지키기 위해 끝까지 목소리를 붙들었습니다.
그들은 뇌의 기억 근육을 극한으로 발달시킨 ‘기억의 장인’들이었습니다. 공동체가 함께 듣고 틀린 부분을 즉각 수정하는 그들의 구술 전승은 오늘날의 문자 기록보다 훨씬 더 정교하고 철저했습니다. 그들에게 ‘말’은 글보다 더 정확하고, 하나님의 마음을 현장의 맥락과 함께 보존하는 최첨단 소통 방식이었습니다.
요단강의 돌과 아카이브
그렇다면 왜 굳이 글로 남겼을까요? 고대인들에게 문서는 읽기 위한 매뉴얼이 아니라 보존을 위한 ‘아카이브(Archive)’였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 4장에 나오는 ‘요단강 중앙의 열두 돌’을 보십시오. 그 돌들에 깨알 같은 설명이 적혀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돌들은 그 자리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하나님의 기적을 증언하는 우주적인 영수증이었습니다. 초기 성경 문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평소엔 보존되어 우리를 지켜주는 든든한 ‘공증 서류(Notarization)’이자, 이방의 혼란으로부터 우리를 지키는 ‘영적인 방어벽(Apotropaic)’이었습니다.
서기관, 자신을 지운 전문가들
이 거룩한 기록을 담당한 이들을 존 월튼은 ‘Menial Experts(전문적인 하수인)’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놀라운 문자 기술을 갖춘 전문가였지만, 자기 생각을 단 한 줄도 섞지 않았습니다.
마치 사장님의 의도를 100% 반영하는 신실한 비서처럼, 오직 하나님의 ‘발화내적 의도’만을 보관하기 위해 자신을 철저히 지웠습니다. 성경에 저자의 이름이 잘 드러나지 않는 이유, 그것은 그들이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오직 하나님의 목소리만을 담아내려 했던 거룩한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기록은 대화의 기초다
학자 도미닉 라카프라는 말합니다. 기록(증거)은 결국 우리를 ‘대화’로 초대하기 위한 것이라고요.
고대 도서관의 문서 45% 이상이 신과의 소통에 관한 것이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큰 울림을 줍니다. 결국 성경이 기록된 이유는 박제된 서류를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단단한 기록이라는 뿌리 위에서,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과 ‘생생한 대화(Dialogue)’를 나누게 하기 위함입니다.
다음 예고
성경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매뉴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거룩한 기념비’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다는 건, 아카이브에 보관된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꺼내어 오늘 나의 삶 속에서 그분의 음성을 다시 울려 퍼지게 하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보관된 문서는 실제 삶에서 어떻게 사용되었을까요? 다음 시간에는 이 문서들이 어떻게 학교의 교재가 되고, 공중 낭독을 통해 공동체의 삶을 빚어갔는지 살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