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는 망했지만 / 鷄圖旣訖
김씨는 세대 이어져 / 金世則延
방경이 중간에 분발하였고 / 方慶中奮
구용이 명성을 이었으며 / 九容嗣聞
윤종은 무관으로서 / 胤宗用武
이군을 지휘했지 / 節度二軍
휘 진기와 / 有諱震紀
대섭은 / 爰曁大涉
공의 조부와 아버지이니 / 惟祖惟禰
관직에 나갔으나 공업 이루지 못했네 / 宦未成業
공이 선대에 쌓은 음덕 이었으니 / 公承其積
이름은 확이고 자는 정경이라 / 矱字正卿
의젓한 얼굴에 큰 도량으로 / 魁顔偉度
자랑하지도 않고 교만하지도 않았으며 / 不矜不盈
비로소 나이 열여덟에 / 始齡十八
진사 되어 명성 드날렸지 / 進士揚名
대과에는 / 迨其釋褐
사십대 후반의 늦은 나이에 합격하여 / 四紀以晩
국학에서 창조를 겸했으니 / 國學倉曹
관직은 낮고 몸은 괴로웠지 / 官卑身蹇
원수의 막부에서 종사하고 / 乃贊帥幕
병조를 보좌하였으며 / 乃佐騎省
유사로서 문예를 강론하고 / 儒師講藝
태관에서는 정이었지 / 太官是正
또한 군자감 정이 되어 / 亦長軍資
부엌 조공 물리치니 / 屛斥廚供
상의원이 감화되어 / 尙方之化
서로 사모하고 따랐었지 / 胥以慕從
원주에서 정사를 폈으니 / 敷政于原
잠시 나갔지만 크게 치적 이루어 / 小出大治
모든 관사와 / 凡厥廨宇
무너지고 훼손된 향교에 / 庠序缺隳
지붕과 벽을 다시 수리하여 / 更脩茨墍
모두 말끔하게 정리하였고 / 莫不完好
들에서 농사 장려하여 / 農興于野
노랫소리 길에 가득했지 / 歌詠載道
빼어난 선비들 향교에서 공부하니 / 伶紳游校
변술에 과정 있었네 / 辯術有程
온 고을 안이 / 環封四疆
매우 혜택을 받고 매우 편안하여 / 孔惠孔寧
백성들이 사욕을 부리다가 / 民營其私
공이 어떻게 생각할지 염려했네 / 謂公謂何
아전 중에 기만한 이가 나오자 / 吏有欺冒
아비가 집에서 볼기 치니 / 父笞于家
자자한 명성 임금께 보고되어 / 騰聲上徹
영광스럽게 비단 하사받았고 / 有光賜帛
남겨 준 그 사랑 / 有遺其愛
송덕비에 기록되었지 / 有揭頌石
남쪽으로 순창 동쪽으로 철원 / 南淳東鐵
연이어 두 고을을 맡았을 때도 / 踵典二邑
원주에서 한 것처럼 하였으니 / 循其故蹟
좋은 평판 두루 퍼졌지 / 淑問愈洽
지방 수령 삼 년 세월 / 經三外庸
날짜로 계산하면 얼마 안 되지만 / 日計則少
백세토록 그리워하나니 / 百世之思
두시 같고 소신신 같구나 / 其杜其召
공이 세상 떠나자 / 逮公傾逝
멀리서 부의를 했고 / 自遠將賻
서울에 일이 있어 왔다가 / 有事于京
그곳 사람들이 길에서 통곡했지 / 其人哭路
그 해는 계유년 / 其歲癸酉
공의 나이 예순 둘이었고 / 年六十二
동음에 묻혔으니 / 塴于洞陰
선영이 있는 곳이라네 / 先兆之次
부인 정씨를 합장했으니 / 配鄭以祔
재상 언신의 딸이요 / 考相彥信
아들 정지는 / 一子鼎之
생원으로 일찍 죽었지 / 生員夙殞
정지가 또 외아들로 전하여 / 是又單傳
실로 묘소를 정비하고 / 奧實脩墓
비석에 새겼으니 / 貞珉載勒
어찌 영원히 전해지지 않으랴 / 曷不千古
내가 위양을 바라보니 / 我瞻渭陽
높은 언덕 울창한 곳에 있네 / 崇丘盤鬱
하나는 자세히 진술하고 하나는 대략을 들었으니 / 陳詳擧槩
묘지와 묘갈이 짝을 이루는구나 / 有雙誌碣
길 가는 사람 중에 / 維行有人
현명하든 현명하지 않든 / 或哲或否
어찌 이 글을 보고 / 盍睹斯刻
경박한 자가 부끄러워하지 않으랴 / 薄夫顔厚
[주-D001] 외숙(外叔) …… 묘갈명(墓碣銘) : 금사(金沙) 김공(金公)은 김확(金矱, 1572~1653)으로,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정경(正卿), 호는 금사이다. 이 글은 《동주집(東州集)》 문집(文集) 권8의 〈구씨상의원정김공배숙인정씨묘지명 병서(舅氏尙衣院正金公配淑人鄭氏墓誌銘 幷序)〉와 밀접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내용에 따라 일일이 주석을 첨가하지 않으므로, 앞의 글을 참고하여 보기 바란다.[주-D002] 김방경(金方慶) : 1212~1300. 신라 경순왕의 15세손으로, 본관은 안동, 자는 본연(本然), 봉호는 상락(上洛),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탐라에서 삼별초를 토벌하고 동쪽의 왜국을 문죄(問罪)한 공으로 상락공에 봉해졌다. 《陽村集 卷35 東賢事略 金中贊諱方慶》[주-D003] 김구용(金九容) : 1338~1384. 본관은 안동, 초명은 제민(齊閔), 자는 경지(敬之), 호는 척약재(惕若齋)ㆍ육우당(六友堂)이다. 김방경의 고손이다. 《惕若齋學吟集 先君惕若齋世係行事要略》 김구용은 이민구의 외조부 김대섭(金大涉)의 7대조이다. 《象村稿 卷23 義禁府都事金公宜人沈氏合葬誌銘》 정몽주(鄭夢周), 이숭인(李崇仁) 등과 더불어 성리학을 일으키고 간관으로 활동하였으며 시에 능하였다.[주-D004] 김윤종(金胤宗) : 본관은 안동, 자는 건지(建之)이며, 경상도 절도사(慶尙道節度使)를 지냈다. 이민구의 외조부 김대섭의 조부이다.[주-D005] 김진기(金震紀) : 본관은 안동, 자는 숙부(肅夫)로, 활인서 별좌(活人署別坐)를 지냈다.[주-D006] 김대섭(金大涉) : 1549~1594. 본관은 안동, 자는 사형(士亨)이다. 의금부 도사(義禁府都事)를 지냈다. 《象村稿 卷23 義禁府都事金公宜人沈氏合葬誌銘 幷序》[주-D007] 비로소 …… 합격하여 : 김확은 1589년(선조22)에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47세인 1618년(광해군10) 증광시(增廣試)에 을과로 급제하였다.[주-D008] 국학에서 창조(倉曹)를 겸했으니 : 김확은 과거에 급제하고 나서 성균관(成均館)에 배속되어 광흥창 봉사(廣興倉奉事)를 겸임하였다.[주-D009] 원수의 막부에서 종사하고 : 1622년(광해군14)과 1627년(인조5)에 김확은 한준겸(韓浚謙)의 종사관(從事官)으로 근무하였다.[주-D010] 태관(太官) : 한나라 때 황제의 끼니와 연회의 음식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벼슬로, 조선 시대 내자시(內資寺)의 별칭이다. 내자시는 대궐 안에서 소비하는 술, 간장, 기름, 꿀, 나물, 과일과 대궐에서 베푸는 연회에 관한 일을 주관하였다.[주-D011] 원주(原州)에서 …… 정리하였고 : 김확이 1625년(인조3) 원주 목사(原州牧使)로 나갔을 때의 치적을 말한 것이다.[주-D012] 남쪽으로 …… 철원(鐵原) : 김확은 1628년(인조6)에 순창 군수(淳昌郡守)로 부임하였고, 1629년에 철원 부사(鐵原府使)로 나갔다.[주-D013] 두시(杜詩) …… 같구나 : 김확이 선정(善政)을 베푼 훌륭한 지방관이었다는 말이다. 두소(杜召)는 수령으로서 선정을 베풀었던 전한(前漢)의 소신신(召信臣)과 후한(後漢)의 두시를 가리킨다. 두 사람 모두 남양 태수(南陽太守)가 되어 덕정(德政)을 베풀었으므로, 남양 사람들이 “앞서는 소부(召父)가 있었고, 뒤에는 두모(杜母)가 있었다.”라고 하였다. 《後漢書 卷31 杜詩列傳》[주-D014] 정언신(鄭彥信) : 1527~1591. 본관은 동래(東萊), 자는 입부(立夫), 호는 나암(懶庵)이다. 《龍洲遺稿 卷21 右議政懶庵鄭公神道碑銘 幷序》[주-D015] 김정지(金鼎之) : 1600~? 본관은 안동, 자는 공실(公實)이다.[주-D016] 외아들로 전하여 : 김확의 외아들 김정지가 일찍 죽고, 김정지의 외아들 김환(金奐, 1637~?)으로 이어진 것을 말한다.[주-D017] 위양(渭陽) : 위양은 외숙과 생질의 관계 혹은 외숙을 가리키는 말인데, 여기서는 외숙의 무덤을 뜻하는 말로 쓰였다. 춘추 시대 진 강공(秦康公)이 자기 외삼촌인 진 문공(晉文公)을 전송할 때, 이미 돌아간 자기 모친을 몹시 그리워하는 마음에서 위양에 이르러 “내 외삼촌을 전송하여, 위양에 이르렀노라. 무엇을 선물로 드릴까, 노거와 노란 말 네 필이로다.[我送舅氏, 曰至渭陽. 何以贈之, 路車乘黃.]”라고 말한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詩經 渭陽》[주-D018] 하나는 …… 이루는구나 : 이민구가 외숙모 정씨의 묘지명은 자세하게 기록하고, 지금 외숙 김확의 묘갈명은 대략만을 들어 기술했다는 말이다. 《東州集 文集 卷8 舅氏尙衣院正金公配淑人鄭氏墓誌銘 幷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