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근 시간
누구에게도
생채기를 주지도 않았습니다
쓸려오고 쓸려가는 파도에
온전히 나를 맡기기만 했습니다
부딪히는 파도를
비파 연주로 들으며
꿈 몽 부딪힐 돌이 되었습니다
모나지 않는 둥근 모오리돌
나도 한땐
암초와 같은 바위였습니다
세상 어떤 게 다가와
부딪혀도 이겨냈습니다
먹거릴 팔아 부러운 것 없는
생계의 가장되었지만
아이를 하늘로 먼저 보내고 나니
이젠 맞서 싸우기보단 제 살 깎이는 편이 낫습니다
원망한 시간 둥글게 둥글게 가슴에 그려
몽돌 같은 시를 씁니다
온몸 그대로 깎인 둥근 시간
세상을 그대로 받아 안습니다
슬도*가 된 가슴에서 비파소리가 들립니다
*울산 동구 소재
모과 빛 얼굴
어느 해 노란 태양이 영글었습니다
내 농원에 수십 년 들어앉아
푹 익은 내리사랑 알게 해 준
모과 한 알
알토랑 같은 아이
뭍 사람에게도 참사랑 향을
은은히 나누고 떠났습니다
허공에서 산산이 부서진 날
몸으로 울지 못한 속울음에
무저갱을 걷는 맹인으로 살아갑니다
수시로 갱도 더듬을 때마다
모과 빛 얼굴이 백열등처럼 빛났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울퉁불퉁한 몸에 덧입혀진
풀빛 군복은 사그라들었습니다
한 번 열은 열매는
다음 해에도 다시 맺히건만
한 줌 재가 된 숨은 다시 불꽃으로 피어나지 않네요
꽃은 이쁘고 못생겼지만 향은 좋고
맛은 없지만 목질은 좋아 한약재로 쓰여
네 번 놀라는 내 아들 같은 모과
올해도 마당 한 편에 그윽이 열린 추억
함께한 이들은 한 아름씩
안고 갑니다
김밥천국
하늘에도 있고 김밥에도 있습니다
꼬순내 나는 아내 애교 한 주걱
아이들 참기름 웃음 두 방울
거섶 같은 내 부지런 한 꼬집으로
난 검은 세상을 맛있게 말았습니다
김밥을 잘 말면 천국에 갈 수 있을까요
난 가 본 적 없는데
누군가는 다녀왔을까요
난 수년간
연구해 천국에 근무하는
손재주꾼 주방장이 되었습니다
김밥이 검은 것만 있는 게 아니라
흰밥이 겉장인 김밥도 있듯
세상도 검지만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잿빛 하늘 가시 같은 생 흔들리는 고민이
뒤섞여 절망일 때 함께 말아버리면
하얀 세상이 되는
세상 사는 맛을 바꾸는 천국으로 오세요
2025년 문학고을 하반기 신인상
카페 게시글
회원 당선 작품 소개
둥근 시간 외 2편/한결 시인
나타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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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7 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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