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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상권 울산 남부소방서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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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오후 관내 플라스틱 야적장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소방서에서 불과 5분 거리임에도 야적장을 둘러싼 4동의 원룸으로 순식간에 불이 번져 소중한 생활공간이 소실되었다. 협소한 진입도로 사정에도 불구하고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좀 더 빨리 현장에 도착코자 하는 바램은 이제 ‘소방관들의 기도’가 되어버렸다.
지난 2014년은 우리 재난역사상 잊지 못할 한해였다. 2월 마우나리조트 붕괴사고를 시작으로, 4월 세월호 침몰사고는 전 국민을 정신적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이어 5월 고양 종합터미널과 장성 요양병원 화재, 10월 판교 환기구 추락사고, 11월 담양 팬션 화재 등 대형 안전사고가 끊이지 않았다. 작년의 그 아픔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새해부터 의정부 화재로 130여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2009년 이후 전국 30만가구 이상이 공급된 ‘도시형 생활주택’의 완화된 안전규제가 화재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건물 외벽은 ‘드라이비트’라는 스티로폼 재질로써 값이 싸고 시공이 간편해 많이 사용되지만 화재에 취약하다. 또한 불이 난 세 건물의 간격은 0.5~1.5m에 불과해 건물과 건물 사이의 좁은 틈이 연통역할을 하면서 화재가 급속히 확산된 것이다.
언론에 의하면 울산에도 도시형 생활주택이 175개동 5429가구, 남구에만 98개동 3658가구에 달하고, 이중 80~90% 가량이 드라이비트 공법으로 지어졌다고 한다. 따라서 의정부 아파트 화재와 같은 사고는 우리 주변에서도 언제든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상시 화재예방에 주의해야 한다.
주택 화재는 개인의 가정을 파괴할 뿐만 아니라 대형 인명피해로 연결된다. 통계자료에 따르면 작년 전국에서 발생한 4만932건의 화재 중 주거시설에서의 발생건수가 25.9%임에도 사망자 비율은 전체 307명 중 65.8%에 이르고 있다. 인명피해가 큰 이유는 거주자가 수면 등 화재발생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 채 유독가스에 의해 사망하기 때문이다.
결국 사망자를 줄이기 위해서는 화재의 초기 발견과 초동 조치가 최우선 과제임은 두말 할 나위 없다. 화재초기 소화기 1대의 위력은 화재확산 후 소방차 100대와 맞먹는다. 또한 연면적 1000㎡ 미만의 아파트 등에 설치되는 ‘단독경보형감지기‘는 연기를 감지해 경보음을 울림으로써 거주자가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부여한다.
화재발생시 행동요령을 살펴보면 먼저 주변에 화재발생을 알리고 119에 신고하는 것이다. 신속하게 계단을 통해서 밖으로 대피하되, 아래층으로 대피가 곤란하다면 옥상으로 대피해야 한다. 이미 불이 번진 경우라면 젖은 수건 등으로 코와 입을 가리고 낮은 자세로 이동하고, 화재가 나면 정전이 되고 승강기 내부로 유독가스가 유입되므로 승강기 이동은 피해야 한다.
한편 거리의 불법 주차된 차량들은 소방차 진입을 지연시켜 결국 초기에 진압할 수 있는 화재도 대형 참사로 연결된다. 이른바 골든타임인 5분이란 시간을 놓치게 되면 화재는 걷잡을 수 없이 확대돼 인명구조를 위한 옥내진입이 불가능해 진다. 소방차량 출동로 확보는 내 가정을 지키기 위한 최후의 수단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난 세월호와 같은 사고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국민안전처가 발족했다. 그러나 현대의 모든 위험요소를 국가가 완벽히 규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이 갭을 극복하는 것은 결국 시민의 안전의식이다. 건물 외벽을 불연재료로 하라는 법적규정이 없더라도 나와 내 가정의 안전을 위해 기꺼이 투자하는 것이 현명한 일이다. 건축주뿐만 아니라 건축 관계자들도 철저한 직업윤리와 장인정신으로 거듭나야 한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율리히 백(Ulrich Beck)은 “한국은 특별히 위험한 사회”라고 칭했듯이 우리는 지금 압축성장의 대가를 물심양면에서 톡톡히 치르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경제적 이익 추구를 위해 안전이란 주제는 타협의 대상이자 후순위 선택카드쯤으로 여겼지만, 언제까지 현대의 위험사회가 남의 일이 될 것인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불길 속에 뛰어든 것은 세월호 선장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의정부 화재시 주민 170여명을 대피시킨 아파트 관리소장이 언론에 한 말이다. 소방차에 길을 터주는 이른바 ‘모세의 기적’이 단순히 도로 위에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서 일어나길 소방인의 한사람으로서 기대해 본다.
김상권 울산 남부소방서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