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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강좌 제1강-1
- 교육원 불교전문강당. 2009. 08. 25 -
사회자 : 강의에 앞서 오늘 2학기 법화경강의를 맡아주실(도솔사??) ???무비 큰스님을 간략하게 먼저소개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8월 25일부터 9월 23일까지 총 10회에 걸쳐 강의해주실 무비 스님께서는 탄허
스님으로부터 전법을 이으신 이후 통도사 범어사 강주 이외에도 종립 은해
사 僧講(승강) 대학원 원장. ?????
2001년 ~ 2003년까지 조계종 교육원 원장을 역임하시면서
2003년 지금 본 서울 불교전문강당을 설립하셨습니다.
그 이후에는 굳이 설명 드리지 않아도 삼척동자라도 알 수 있을 만큼 ??? 생략하고, 바쁜 와중에도 이렇게 오셔서 강의 해주시는데 대해서 고마움으로 박수를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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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스님 : 간단히 말씀 있었습니다만, 제가 교육원장 할 때에 서울 경기에 인구도 2천만, 우리나라 반이 살고 또 따라서 스님들 숫자도 한 반 정도는 서울 경기일원에 사시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 공부를 강원에서나 대학에서도 다 하셨지만 그래도 평생교육이라는 것도 세상에 있듯이, 또 수행하는 스님이야 더 말할 것 없이 제충전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또 주지를 사시고 포교일선에 계시는 분들일 수록 한쪽으로 자신의 공부에 더욱 열심히 하면서, 또 한쪽으로 포교하고 행정을 하시는 것이 “승려로써 당연한 본분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이렇게 설립을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는 그야말로 참 우연 득병해서 7년 가까운 세월을 앓다가 아직도 많이 불편한 몸이지만, 이번에 이렇게 오게 됐습니다.
법화경이 본래 교과목에 들어있지 않은데, “저는 화엄경을 가지고 그렇게 오랫동안 못한다. 법화경 같으면 인사차라도 가서 잠깐 할 수 있다.” 이렇게 이야기를 했더니, “그럼 교과목에 법화경을 넣어서라도 스님을 한 번 모셨으면 좋겠다.” 이런 이야기가 있어서, 그래서 이번에야 오게 되었는데요. 저는 저 나름대로 이 법화경에 대한 상당한 소신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오늘 이 시간을 위해서 책을 새로 편찬 했습니다.
앞으로 법화경에 대한 말씀을 계속 드리겠지만...
그래서 이 책이 7월 15일에 출판이 되어서 이렇게 함께 공부 할 수 있는 것은 이것이 처음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의 법화경 교재 출판 점안식이기도 합니다, 사실은...
앞으로 이 책이, 많은 분들이 법화경을 공부하고 법화경을 강의 하는 데에 상당히 좋은 교재가 됐으면 싶어서, 그 동안 수 백 종류의 법화경이 나왔지만 제 마음에 썩 드는 것이 없어서 이번에는 정말 제 마음에 들게 교정 하는데도 사람이 10여명 이상이 동원이 되었고, 또 시간도 많이 걸렸지만, 상당한 공을 들여서 만들어진 법화경입니다. 오자가 간혹 한 두 개는 있을지 모르지만 거의 없다고 볼 정도로 철저히 교정을 한다고 했습니다. 혹 다른 본과 차이가 있으면 지적해 주시면 다음 출판에 참고 하겠습니다.
그래서 사실은 저는 정말 마음먹고 만든 이 법화경 교재가 오늘 처음으로 이렇게 여러분과 함께 공부를 시작하게 됐습니다.
경전은 많지만 사실은 불교를 대표할 수 있는 그런 경전이 과연 무엇일까? 저 나름대로... 제가 어려서 출가해서 50여년을 절 집안에서 세월을 보내면서 선방에 한 10여년 다닌 것 외에는 거의 경전과 씨름을 하다시피 했는데요.
그래서 근래에 와서 제가 가장 선호하는 경전이 법화경입니다.
그래서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불교 T V에서도 요즘 번역한 법화경을 가지고 강의를 늘 하고 있고, 또 다른 곳에서도 법화경 강의를 하고 있는... 상당히 법화경에 대한 애착이... 조계종에서는 아마 가장 남달리 법화경을 애착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할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책 처음 펼치면서, 경전도 점안이 있습니다.
불상이나 보살상만 점안 하는 것이 아니고, 경전도 출판을 하면 이렇게 같이, 저는 점안을 그렇게 해요. 이렇게 같이 한 번 책장도 넘기면서 공부를 시작하는 것. 이것이 점안이다. 이렇게 생각을 해서 편찬서를 일단 같이 봐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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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법연화경 편찬서
불교의 역사는 오래다. 따라서 경전(經典)과 어록(語錄)들도 대단히 많다. 수많은 경전과 어록들에 따라서 수많은 종파불교(宗派佛敎)가 등장하였습니다. 또한, 시대의 변천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불교도 적지 않습니다.
지금 2009년은 50년 전만을 비교해 보더라도 세상은 놀라울 만치 변화했습니다. 불교도 또한 그 변화에 알맞은 대안(代案)불교가 나와야 하리라 생각합니다. 근본(根本)불교는 근본불교대로, 부파(部派)불교는 부파불교대로, 대승(大乘)불교는 대승불교대로, 선(禪)불교는 역시 선불교대로 그때그때에 따라서 당시의 세상을 계도(啓導)하는 역할을 잘하였다고 봅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의 불교로서는 이와 같이 변화하고 달라진 세상에서는 더 이상 가장 으뜸이 되는 종교며, 또 모든 사람이 돌아가 의지할만한 종교가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을 합니다. 설사 모든 불교인들이 다 같이 초연하고 탈속하고 간소하고 청빈한 수행자의 모습을 지녔다 하더라도 그것은 한 폭의 그림으로서는 매우 아름답고 개인의 삶은 편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불교 밖에서 “그와 같은 모습과 고준(高峻)한 교리들이 세상을 위해서, 또는 지역사회를 위해서, 이웃을 위해서 무엇을 하였는가?” 라는 물음에는 그들을 흡족하게 해 줄 마땅한 대답이 못됩니다. 즉 세상에 이익을 주지 못하는 종교는 이미 종교로써 가치를 상실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불교의 근본정신은 지혜와 자비의 실천입니다.
지혜로서 사람들의 지극히 고귀한 가치에 눈을 뜨고, 자비로서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기며, 그들의 고통과 문제들을 잘 보살펴 드리는 일입니다. 그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여 인간불교(人間佛敎)라고 합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불교는 인간본래의 진정한 가치를 꿰뚫어 보고 그 가치를 높이 존중하고 받드는 일입니다. 이러한 인간불교만이 이 시대의 사람들을 선도(先導)하고 나아가서 세상 사람들이 돌아가 의지할 곳으로서의 당당한 불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은 인불사상(人佛思想)으로써 인간불교를 실현하는 데 가장 알맞은 경전이 곧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입니다.
묘법연화경은 불교의 이상인 문수보살의 지혜와 관음보살의 자비를 가장 잘 표현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묘법연화경은 인간불교의 최고의 원전(原典)입니다. 따라서 묘법연화경을 바르게 전하고 널리 전하여 모든 인류에게 불교의 진정한 가치와 의미를 알려야 하고, 세상의 진정한 귀의처가 되게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묘법연화경을 모르면 불교를 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묘법연화경을 일체경 가운데서 왕(王)이라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묘법연화경은 부처님의 교설의 완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불자들은 묘법연화경을 깊이 공부하여야 합니다.
이에 묘법연화경을 공부하는 데 마땅한 교과서가 없기에 한글세대를 위해서 모든 한자(漢字)에 음(音)을 달고, 토(吐)를 달고, 또한 매 단락마다 뜻을 요약한 과목(科目)을 달아서 경전의 깊은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새롭게 편찬하였습니다. 바라는 바는 이 인연으로 불교를 바르게 알고 바르게 실천하는데 작은 샘물과 같은 역할이라도 하였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한량없는 부처님의 공덕으로 평소에 여러 면으로 힘이 되어주신 많은 법우님들의 정성을 작지만 이렇게 회향하여 드립니다.
2009년 7월 15일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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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5일로 이 책이 출판이 되었고, 오늘 여러분과 함께 이와 같이 점안을 하게 된 것입니다. 불교에는 8만 대장경이 있습니다.
또 세상에는 8만 대장경의 8만 배나 더 되는 그야말로 세상에 수 억만 권의 책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 단 한 권의 책을 선택하라면, 저는 서슴없이 묘법연화경을 선택합니다. 그래서 사실은 법화경 이전에 법화경보다 우수한 경전이 없습니다. 또 법화경이 나온 이후로 법화경보다 더 우수한 경은 없습니다. 그래서 “법화경 이전에 법화경 없고, 법화경 이후에도 법화경 없다.” 이렇게 제가 감히 표현을 합니다. 저 사람이 무슨 법화종인가? 천태종인가? 무슨 일연종인가? 남묘호련종인가? 이렇게 보셔도 좋습니다.
그러한 오해도 앞으로 공부하면서 모든 것이 다 풀어질 것이고,
근래에 다행히 무슨 법화종 계통의 종파에서는요? 법화종 계통의 종파에서는 사실은 법화경공부 아니합니다. 공부한다는 것이 오로지 보문품 하나를 공부 합니다. 오로지 보문품 하나, 법화경 28품 중에 들어있는 보문품 하나 그저 겨우 의지하고, 그것도 사실은 많다고 생각을 해서 관세음보살 이라고 하는 글자 다섯 자만 의지합니다.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에 법화경을 所依經典(소의경전)으로 하고 있는 종단이 7ㆍ8개 있습니다.
제가 알고 있는 것만 쭉~ 거론하면 제일 큰 종파가 천태종.
대한불교 법화종. 한국불교 법화종. 일승종. 불승종. 관음종. 일본에서 들어온 일연종이니 그런 것은 그만 두더라도 한 7ㆍ8개가 넘게 법화경을 所依經典으로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분들의 수행이라든지 또 세상에 이렇게 나타난 바에 의하면 사실은 그렇게 법화경의 진정한 그 뜻에 근거를 두고 한다기 보다는, 관세음보살 한 분에게 의지하는 것으로써 그냥 종파 이름을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듭니다.
요즘 신도 그저 몇이 있고, 절 그럴듯한 것 하나 있으면 일개 종파 종이 되니까요. 그래서 종정도 하고 총무원장도 하고, 뭐 종정이 100 몇10명이라나? 이런 이야기가 될 정도로 그렇게 많은데, 그래서 법화경을 所依經典으로 하지만, 정작 법화경 공부는 거의 하지 않고 있다. 이렇게 저 나름대로는 파악을 했습니다.
물론 깊이 있게 공부하는 분들도 있어요. 법화종 계통에서 아주 깊이 있게, 정말 아주 조계종 스님으로선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법화경을 깊이 연구한 분들도 제가 알기로 몇 분 있습니다. 또 책을 통해서, 인터넷을 통해서 알고 있습니다. 그런 분들도 물론 있어요. 그러나 다수를 가지고 이야기할 때는 사실은 거의 100명중에 90명은 그저 관세음보살 한 분을 의지하는 것으로써 끝내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자~ 그러면 다음 페이지 목차를 보십시다.
제가 왜 이리 말이 빠른가 하면 지금 10회 강의, 30시간입니다.
중간에 쉬는 시간 빼버리면 그저 20시간 ~ 25시간 정도에 불과한데, 사실은 공부해야 할 법화경은 量(양)이 상당하고, 그 속에 들어있는 아주 오묘한 뜻은 일일이 다 이야기하려면 하루에 2시간씩 해서 한 2년 정도 하면, 매일 2시간씩 한 2년 정도 하면 어지간히 법화경에 대해서 이야기할 만한 것은 다 할 수 있지 않을까? 저는 시간 계산을 그렇게 했습니다.
하루에 2시간씩 한 2년. 하루도 안 빠지고 2년을 꼬박 한다면, 그런대로 법화경을 어지간히 공부 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제가 해보니까 그래요.
그래서 공부할 것은 많고, 시간은 없어서 말이 좀 빠르게 됐습니다.
제가 법화경을 공개적으로 강의를 한 것이 1993년 가을인가요? 수덕사에서... 거기는 정말 근세에 禪(선)만을 주장하고, 경을 보거나 강원에 간다하면 버린 놈으로 취급할 정도로 그런 분위기 이었는데요.
그때 명심회라고 하는 어떤 단체에서 법화경 강좌를 수덕사 법당을 빌려서 개설을 했습니다. 지금은 뜯겨지고 없는데, 그때 마침 큰 누각을 지어가지고, 그때 처음으로 그렇게 사용을 하면서 법화경 강의를 열었어요.
스님들이 한 200여명 모였었어요. 그때 상당히 성황을 이루고 저도 아주 환희심이 나고 그랬었습니다. 그 후로 법화경 공부도 더욱 제가 많이 하고, 강의도 기회 따라서 했습니다. 했지만, 사실은 법화경 안에 스며있는 정말 깊고 오묘한 그 뜻은 공부하면 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이 보여요.
15년 전에 제가 그렇게 열심히 공부해서 한 6개월 아주 머리를 싸매고 공부를 해서 일주일간, 하루에 한 7ㆍ8시간씩 그렇게 집중 강의를 했었습니다.
그때 상당히 공부를 했노라고 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는 천지도 모르고 했다 싶을 정도로 그렇게 법화경에는 아주 오묘한 뜻이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그때는 좀 안다고 했는데, 지금은 사실은 잘 모르고합니다. 모르는 것이 너무 많이 있는데도, 그래도 법화경이 워낙 좋아서 제 공부 삼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10회에 걸쳐서 말씀을 드리지만, 한 100분의 1이나 이야기 될까 말까? 제가 아는 것에서도 한 100분의 1이나 이야기 될까 말까이고, 그 나머지 또 제가 밝혀내지 못한 오묘한 뜻은 전부 여러분의 몫이고, 또 앞으로 이것을 인연으로 해서 공부를 하면서 여러분도 법화경에 저같이 좀 이렇게 심취하고, 심한 표현으로 법화경에 좀 미처 줬으면 할 정도로 그렇게 기대를 합니다.
그렇게 아시고 우선 법화경을 역사적으로 제일 깊이 공부 하신 분은 천태지자 선사라고 해서 불교 전체를 五時敎(오시교)로 분류하는 것도 법화경 신해품에 비유가 있는데 궁자비유를 들어서 8만 대장경 전부를 敎判(교판)을 치지요. 소위 그 들어 보셨겠지만, 窮子驚愕華嚴時(궁자경악화엄시).
除糞定價阿含時(제분정가아함시). 出入自在方等時(출입자재방등시).
二十一載談般若(21재담반야). 終談法華又八年(종담법화우8년). 이렇게 법화경 신해품에 근거를 해서 8만대장경 전체를 敎判을 합니다.
그런 정도로 천태지자 선사는 법화경을 역사적으로 정말 제일 깊이 공부를
하셨고, 그래서 책이 法華文句(법화문구)ㆍ法華玄義(법화현의)ㆍ摩訶止觀(마하지관)해서 어마어마한 저술이, 법화경을 근거로 한 저술이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그것과 연관시켜서 오늘 날 제가 밝혀낸 법화경의 이치하고 견주어보면 거기는 차이점이 또 있습니다.
공부를 많이 했다고 그 궁극의 뜻이 다 드러나는 것도 아니고, 오래한다고 해서 그것이 다 밝혀지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느꼈어요.
그러나 아주 선배로써, 대 선두 주자이기 때문에 또 그분의 해석이 상당히 참고할만한 내용도 있어서 가끔씩은 거론을 하게 될 것입니다.
목차를 보면요? 전체가 28품이지요? 또 二處三會(2처3회). 이런 표현도 합니다. 두 곳에서, 사실은 세 곳인데 장소가 한 곳을 두 번 사용했다고 해서 二處. 또는 三會. 그렇게 합니다. 지상에서 두 번하고, 천상에서 한 번 했어요. 그런데 지상에서 두 번을 한 번으로, 한 곳으로 치니까 그냥 二處. 이렇게 합니다. 두 곳. 천상한 번ㆍ지상. 이렇게 3회에 걸쳐서 했다. 여기서 한 번 설하고, 천상에 가서 한 번 설하고, 다시 내려와서 또 설하고, 이렇게 해서 三會라고 하는데, 그것 뭐 크게, 큰 의미는 없습니다. 우리가 시간이 많으면 그런 것도 다 밝히겠지만...
일단 여기서 前14품, 後14품을 이렇게 나눕니다. 선을 쓱 그어 놓으면 좋지요. 그런데 앞의 14품은 迹門法華(적문법화). 그래요.
後 품에서 14품을 本門法華(본문법화). 그렇게 합니다.
迹門과 本門이라고 하는 것을, 다른 표현으로 앞으로 많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법화경을 이해하는데 제일 중요한 것이 이 두 낱말입니다.
迹門ㆍ本門. 이것은 또 迹佛ㆍ本佛. 그래요.
迹이라고 하는 말은 자취ㆍ흔적. 이런 뜻이잖아요. 그런 역사적인 차원. 자취니ㆍ흔적이니 하는 것은 역사적인 차원을 말하는 것이고, 또 현상적인 차원. 지금 우리 눈앞에 드러난 이런 현상적인 차원. 역사적인 차원도 역시 현상적인 차원입니다. 이런 것을 이야기 할 때는 항상 迹이라고합니다. 자취 적자요. 그 다음
本이라고 하는 것은, 本門이라고 하든지 本佛이라고 하든지요.
또 저는 迹人이라고합니다. 부처님이야기만 할 것이 뭐 있습니까?
우리이야기도 좀 해야지요. 우리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에다가 이끌어다가 말씀을 드리면 迹人이됩니다. 역사적인 사람ㆍ현상적인 사람ㆍ또 현실적인 사람. 지금 저는 이렇게 병든 노 비구고요. 여러분은 젊은 비구ㆍ비구니고요. 또 청신사ㆍ청신녀고요. 이렇게 눈앞에 보이는 차별된 것을 迹人그래요. 차별된 그 사람을요. 흔적으로써ㆍ자취로써ㆍ역사적인 차원으로써의 우리는 그런 입장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것입니다.
아주 단세포적으로 인간을 이해하기로 하면 그저 그 것입니다.
그저 눈에 보이고, 그저 귀에 들리는 아, 저사람 음성은 저렇고, 이사람 음성은 이렇다. 그 정도로 우리가 이해하는 것이, 불교라고 하는 상식을 접어두고 이야기할 때 세상은 그 겁니다. 부처님이라고 하더라도 2600년 전에 인도에서 이렇게, 이렇게 인생을 살았던 그 역사적인 부처님이거나, 아니면 또 곳곳에, 법당에 모셔져 있는 등상불. 소위 불상으로써의 부처님이거나 그 정도지요. 그것이 迹佛. 또는 迹門. 사람으로 치면 迹人. 그렇게 합니다. 그런데 그런 자취ㆍ현상ㆍ역사. 이것을 있게 하는 근본 뿌리가 있어요.
근본이 있습니다. 그것을 本佛. 또는 本門. 그 세계를, 그런 세계를 本門. 그래요. 저는 이것을 本來人(본래인). 그렇게 말합니다.
사실 이 두 가지만 우리가 제대로 이해가 되어버리면 법화경 이해하는데 아주 큰 역할을 합니다. 상당한 열쇠가 돼요. 이것이 이해가 안 되면 법화경은 끝내 풀어지지가 않습니다. 법화경의 어떤 비밀을 풀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법화경의 비밀을 푸는 아주 중요한 열쇠입니다.
그래서 조금 진부 하더라도 길게 설명을 드릴 수밖에 없어요.
자취라고 하는 것은 이해됐지요?
그런데 그 자취를 있게 한 근본차원이 있어요. 그것을 궁극적 차원. 이런 표현도 합니다. 그것이 本佛ㆍ本門ㆍ本人. 우리를 이끌어다가 이야기하면 우리에게는 본래의 사람이 있어요. 본래의 사람이...
그것은 남자도 여자도 아닙니다. 그것은 비구도 아니고 비구도 아닙니다. 청신사 청신녀도 아닙니다. 이것은 승도 속도 아닙니다.
근본적인 입장에 있어서의 사람입니다. 부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것입니다. 석가모니부처님에게 있어서나 우리에게 있어서나 그 본래인으로서의 차원. 다시 말해서 궁극적인 차에 있어서는 아주 영원합니다. 그것은 生死가 없습니다.
소위 생사를 초월한다. 생사를 해탈한다. 라고 하는 것은, 바로 거기에
접촉이 된 것입니다. 本來人ㆍ궁극적 차원. 거기에 접촉이 된 겁니다.
‘아~ 스님, 그것은 마음을 가지고 하는 소리구나.’ 그렇습니다.
마음자리라고 해도 좋아요. 그렇지만 여기서 本門ㆍ本佛ㆍ本人ㆍ本來人이라고 하는 것보다는, 마음이라고 하는 것은 왠지 좀 부족한 표현입니다. 사람 人자가 좋아요. 本來人. 그래서 그 本來人은 지금 우리가 말하고 듣고 하는 그것인데요. 지금 여러분 저의 말을 듣는데, 그 말을 듣는 것은 무엇입니까?
비구라고 하는 조건으로 듣나요? 아니면 비구니라고 하는 조건으로 듣나요? 청신녀라고 하는 조건으로 듣습니까? 청신사라고 하는 조건으로 듣습니까? 지금 듣는 그 사실은 아무런 조건이 없습니다.
현상적인 차원하고는 전혀 관계없는 그 무엇이 있어서 지금 듣고 있는 겁니다. 그것은 아주 평등합니다. 누구나 평등합니다. 뭐 이 말 안 듣고 지금 다른 것. 음악 들을 수도 있어요. 혼자 다른 것, 생각 할 수도 있습니다.
도망 갈 수도 있어요. 얼마든지 천리만리를, 지금 몸은 이 자리에 두고 천리만리를 도망 다니면서 마음대로 놀릴 수가 있습니다.
이 존재는요? 정말 아무리, 아무리 미사여구를 동원해서 설명한다 하더라도, 이것은 다 설명할 수가 없고, 또 다 파악이 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이 존재. 이 사실에 대해서 정말 면밀히 검토하고 면밀히 연구하고, 사유하고 그래서 끝내는 손에다 연필을 잡듯이 딱 잡을 수 있는 그런 차원에 까지 이르러야 되겠지요. 그것이 왔다갔다 늘 넘나듭니다.
사실은 그것을 분리 할 수가 없어요. 현상적인 차원과 궁극적인 본래인의 차원을 늘 넘나듭니다.
그래서 前14품은 천태지자 선사가 科判(과판)하기는 前14품을 迹門.
부처님의 세계에 대해서 자취ㆍ흔적. 역사로써의 어떤 면을 그린 것이고, 그 다음에 後14품은 本門. 본래부처의 자리ㆍ본래사람자리. 차별이 전혀 없는 그런 평등한 자리를 그린 것이다. 이렇게 표현을 했지만, 사실은 적문 속에도 본불의 세계ㆍ본래인의 세계가 너무 많이 녹아있고, 또 본문에도 자취로써의 어떤 내용이 너무나도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이 혼용이 되어있어요. 그러나 이 두 가지 낱말은 정확하게 알면, 법화경을 푸는 아주 중요한 열쇠입니다.
여기에 보면 수기라고 하는 것이라든지, 경전에 대한 공덕이라든지, 그 다음에 관세음보살 보문품. 아주 얼마나 반갑습니까? 이런 분들에 대한 이야기. 이런 것이 전부 관음신앙. 중국ㆍ일본ㆍ한국. 이 세 나라는 관음신앙이 아주 대단하잖아요. 대단한데 그 관음신앙의 원 뿌리가 바로 법화경 제 25품 관세음보살 보문품. 바로 이 것입니다.
여기에 근거를 해서 오늘날 그렇게 관음신앙이 널리 퍼져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법화경은 여러 가지로 중요하고, 또 서품이라든지ㆍ방편 품 이라든지ㆍ비유 품 이라든지ㆍ신해 품 이라든지ㆍ이런 것들이 아주 우리 일반적인 불교에서 많이 거론되는 내용들이 법화경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법화경은 불교 총론입니다. 법화경 이것 한 권만 제대로 낱낱이 낱말이라든지ㆍ법수라든지ㆍ어떤 교리 문제라든지ㆍ이런 것을 조금도 부족함이 없도록 다 풀어헤치면 8만 대장경이 이 속에 다 있습니다.
그래서 불교 총론입니다. 가장 중요한 그런 迹門과 本門. 이것이 인간으로 치면 뭡니까? 겉으로 드러난 나와, 이렇게 드러나게 하는 주인공으로써의 나와, 이 두 가지지 다른 것 없잖아요. 사실은 그 두 가지 뿐입니다. 부처님도 그 두 가지고요. 우리도 그 두 가지고요.
나무도 그것의 두 가지고요. 물도 그것의 두 가지고요.
물은 뭡니까? 물결이라든지ㆍ흐리다든지ㆍ얼음이 됐다든지ㆍ흐른다든지 하는 그것은 뭐겠습니까? 迹門의 내용인 迹水(적수)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 다음에 그것이 어떤 현상으로 파도가 치든지, 고여있든지 무엇이든 간에 젖는다고 하는 그 물의 본래의 성질. 그것은 어떤 상황이든지 늘 그 자리에 그 모습입니다. 그것이 본래의 물이다. 本水라. 이렇게 할 수가 있습니다.
나무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존재는 전부 그 양면을 띠고 있다 하는 것입니다. 양면을... 그러니까 이것은 사람을 이해하고 부처님을 이해하는데 그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존재를 이해하는 열쇠가 됩니다.
그 중에서도 흔적으로써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니까 크게 문제될 것이 없고, 사실은 本門의 세계를 잘 이해하면 인생 공부 끝이고, 또 불교 공부 끝입니다. 그래서 특히 강조하고 싶은 것이 本門의 세계. 이것을 두고두고 말씀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그쯤 서론에서 말씀 드리고...
第一 서품(序品)
편집이 아주 잘 되었지요? 서품을 전체적으로 이렇게 다 계발할 수 있도록 해놨습니다. 이것은 공부를 거의 80%를 제가 해준 겁니다.
세상에 어느 한문 본 경전에 이렇게까지 분석을 해가지고 일목요연하게... 목차만 보아도 다 이야기 할 수가 있습니다.
一 법회의 청중
그렇지요. 어떤 경전이든지, 또 어떤 법회든지, 우리가 지금 하고 있는 법회도 청중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청중이잖아요. 그 다음에
二 상서(祥瑞)가 나타나다
三 문수보살이 상서에 대한 답변
큰 과목에 이렇게 세 가지로 딱 되어있습니다.
법회의 청중이라면 보살대중ㆍ성문대중ㆍ천자대중ㆍ용왕대중ㆍ긴나라대중ㆍ건달바ㆍ아수라ㆍ가루라ㆍ인왕대중. 공부 끝났잖아요. 이런 사람들이 법회의 청중으로 모였다. 이렇게 됐어요. 매 품마다 전부 이것을 하느라고, 저의 머리는 다 빠져버렸어요. 성질 급한 사람은 얼른얼른 넘겨보세요. 전부 다 그렇게 했어요. 머리 안 빠지게 됐어요?
화엄경도. 우리 교과서로 쓰는 그 방대한 80권 화엄경도 제가 전부 이렇게 했습니다. 법화경도 이렇게 했고요. 어떤 경이든지 어록이든지 제 손에만 왔다하면 이렇게 난도질을 해가지고, 과목을 착 이렇게 추려내는 겁니다. 머리가 빠지든지 말든지 그것은 내 알바 아니고요...
공부를 이렇게 해놓으면 그 다음에 그 속에 세세한 것은, 각자 하기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대강 서품을 파악하셨으니까 다음에는,
왜 이렇게 어느 경보다도 법화경에 다양한 대중이 있는가?
금강경은 여러분 이해하듯이 뭐라고요?
大比丘衆 1250인으로 함께 하였다. 금강경 설할 때는 큰스님들 1250명뿐이었어요. 경전으로써 아주 부족한 경전입니다.
그러면 금강경은 “출가한 성문대중 1250명에게만 해당되는 교설이다.”이렇게 말 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안 그러겠습니까?
청중이 출가 비구 비구니해서 1250명뿐이니까요. 거기에 비구니 있다는 소리는 안 나와 있잖아요. 무조건 큰스님들 1250명 이렇게 했고,
수보리가 있고 그렇지요. 비교해 보십시오.
그 청중만 가지고도 경전의 그 권위와 그 경전의 무게를 우리가 충분히 알 수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