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통로를 횡단하다
-2023년 월천문학기행을 다녀와서-
임선희
월천 문우님들과 문학기행을 여러 번 다녔지만 2023년 문학기행은 유독 설렘으로 다가왔다. 문학기행의 일정보다 오랜만에 함께하는 기쁨이 더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주일 전부터 날씨를 검색하고 예정지인 부여의 아침 기온과 강경의 바람 속도를 검색했다. 그리고 갑자기 낮아진 기온으로 돌아오는 길이 행여 미끄럽지는 않을까 걱정하다가 신동엽 시인과 박범신 소설가, 가람 이병기 시조 시인에 대한 예비지식은 채우지 못하고 11월 14일 9시 30분에 출발하는 문학기행 버스에 올랐다.
자리에 앉은 문우님들은 만발한 꽃과 같았다. 한 명씩 돌아가면서 자기소개를 할 때는 이름마저 시적 구절의 울림처럼 윙윙거렸다.
1시간쯤을 달려 도착한 부여, 도로 한쪽에 버스를 주차하고 횡단보도를 건너 신동엽문학관으로 향했다. 골목 주택가 벽에 시인의 시들이 적혀있었는데 헨델과그레텔의 빵조각을 주워 먹듯 눈으로 시를 읽었다. 시인의 생가에 들어서자 시골집 마루에 팔자로 눕고 싶은 생각이 꿀떡 같았다.
문학관 해설사의 안내를 받으며 시인의 발자취를 느끼고 있을 때 유독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시인의 등산복이었다. 생전 시인이 입었던 옷이라고 했는데 이제 막 입은 새옷처럼 MZ세대들도 좋아할 만한 디자인이었다. 어느 산악회 회원이었다는 시인은 암벽등반을 즐겼다고 한다. 선별된 유물과 기념품이 전시된 문학관을 돌고 나오니 야외마당에 시인의 시로 만든 조형물이 눈에 들어왔다. ‘시의 깃발’이라는 작품이었는데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듯 시구가 살아 숨 쉬는 듯했다. 짧은 시간이나마 시인의 삶을 엿보고 버스로 향하며 나오는 골목길에서 바라본 하늘은 우리가 아는 그 파란 하늘이었다. 일생을 먹구름으로 알고 살았다는 시인에게 꼭 보여주고 싶은 하늘이었다.
점심 때가 되어 우리는 ‘연꽃이야기’로 향했다. 궁남지를 지나 찾아간 식당은 연꽃으로 유명한 부여답게 연잎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었다. 연잎 향이 가득한 식사를 하고 나오는 문우님들 얼굴을 사진에 담고 보니 고려 시인 이규보의 ‘연잎이 빗방울을 구슬로 만들어 다시 내려놓는다’ 는 시가 생각났다. 연잎이 우리 문우님들의 시력이 아니겠는가.
이어지는 자기소개와 함께 버스는 소금문학관을 향해 달렸다. 전주에서 멀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강경산 소금문학관 존재를 몰랐다. 젓갈로 유명한 고장이라서 그냥 전남 신안의 소금 박물관 같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었다. 아마 문학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은 검색을 해보지 않은 이상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까?
강경산 소금문학관은 옥녀봉 아래 자리한 박범신 작가 소설 『소금』을 제재로 조성한 복합문화공간이었다. 해설사로부터 박범신 작가의 작품과 작가의 생애가 담긴 소개를 들으며 계단식 휴게공간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우리는 문학관에서 나와 옥녀봉을 향했다. 노을이 아름다워 맛집이라는데 아직 해가 지려면 한참인 시간이라서 포토 존에서 사진만 찍고 아쉬움을 달래던 중 포토 존 뒷배경이 되어준 아름드리 느티나무에 눈길이 갔다. 나무 한 그루가 세월에 몸을 키운 줄 알았는데 연리지였다. 매일 노을을 바라보는 나무를 생각하니 몇 해 전 눈물을 한 바가지 흘리며 봤던 노부부의 애틋한 사랑이야기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꽃 자주 한복 바지와 치마를 입고 꽃길을 걷던 할아버지 할머니의 잔상이 꽤 오래 남았던 영화였는데 이 연리지가 꼭 그 노부부 같아서 다음에 혼자라도 다시 와서 보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 다음 코스는 강경 젓갈 시장이었다.
요즘은 직접 담그지 않고 구입해서 먹는 세대도 많지만 뭐니 뭐니해도 김치는 엄마의 손맛으로 버무린 김치가 최고의 김치인 관계로 김장철을 맞아 여성 문우님들의 젓갈 구매 욕구를 반영한 코스였다. 소주 한 병을 들고 젓갈 집을 방문한 문우님들은 소주 한 잔에 젓갈 시식을 하는 동안 나는 조용히 버스로 돌아왔다. 남은 간식들을 정리하는데 자꾸 눈물이 났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4년 전까지 이맘때면 늘 찾았던 젓갈 시장이다. 젓갈을 좋아했던 어머니는 육젓은 기본이었고 황석어젓, 조기젓, 조개젓, 갈치젓등등 종류별로 구매를 했다. 입맛이 없을 때 남원 어머니 집에 가면 황석어젓무침에 쌀밥 두 그릇은 거뜬히 비우고 오던 생각에 사실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코스였다.
어머니의 김치가 엄청 먹고 싶은 11월 김장철,
어머니의 얼굴보다 김치가 더 그리운 것은 내가 너무 이기적인 딸인가? 하는 생각이 다음 코스인 가람문학관에 도착할 때까지 맴맴 맴돌았다
다행히 슬픈 생각은 가람선생의 생가를 돌면서 사라졌다.
아직도 군불을 때고 있을 듯한 ‘수우재’ 초가집의 냄새가 꼭 할머니 냄새 같았다. 현대시조를 정립해 놓으신 시조의 선각자, 난 복, 술 복, 제자 복을 타고나신 분, 한글학회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생활을 하신 분 등 해설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이동하던 중 지붕보다 높은 탱자나무를 봤다. 전라북도 기념물 제 112호로 지정된 나무라고 했다. 내가 그동안 봐왔던 탱자나무는 건지산에 있는 복숭아 과수원에 울타리로 둘러진 키보다 작은 나무였다. 수령이 200년 정도로 추정된다고 씌여 있는 안내판을 읽으면서 그 시간 동안 냉철한 증인으로 서 있었을 나무에 경외감이 들었다. 나무와 시인의 공통점을 찾으라면 시간이 흐름에 따라 발견되는 아름다움의 중요성을 일깨워 준다는 것이라 말하고 싶다. 각각 자신만의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삶의 경험을 풍부하게 담아내려 노력하는 것도 공통점이라 생각한다. 19세인 1909년 4월부터 1966년 6월까지 58년간 써 내려간 가람 일기처럼.
문학관을 둘러보고 우리는 주차장으로 나왔다. 표지판 아래 모여 표지판에 세겨진 시조 ‘별’을 보며 합창을 했다. 별들이 별을 노래하고 있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담으면서 가슴이 뭉클했다.
이번 문학기행은 설레였던 만큼 꽉 찬 여행이었다.
부끄럼을 많이 타는 내성적인 사람이 처음 월천문학에 문을 열고 들어와 흥이 많은 교수님과 더 더 흥이 많은 문우님들을 보면서 그리고 함께하면서 때로는 그 흥겨운 자리가 부담으로 다가와 도망가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 여행은 그 흥이 참 기쁘다 못해 감동이였다. 여전히 내성적인 나는 흥의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였으나 교수님과 문우님들의 흥이 아니었으면 가람문학관 광장에서 ‘별’을 합창하는 문인들만의 특별한 이 영상을 남기지 못했을 것이다. 오래도록 기억에 박제되어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