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박 이틀을 비행기에 몸을 싣고 달려온
고대 잉카 제국 수도 쿠스코
쿠스코는 여러모로 여행자의 숨을 빼앗는 곳이다.
해발고도 3400m 쿠스코 공항에 내려서 공기 중 희박한 산소에 처음 숨을 빼앗긴 여행자들은 붉은 테라코타 지붕의 건물들이 빽빽이 들어선 쿠스코 시내의 이국적인 정취에 다시금 숨을 빼앗기고 만다.
고대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이곳에 스페인 침입자들은 화려한 성당과 수도원 등 스페인풍의 건물을 지었고 이 건물들은 여전히 남아 쿠스코 인근의 잉카 유적들과 함께 여행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다음 시간에 쿠스코 이야기는 계속 된다.
잠시 숨고르기를 한다.
찬란했던 잉카문명의 심장 '쿠스코'
쿠스코, 찬란한 잉카문명을 꽃 피웠던 후손들이 살고 있는 땅. 안데스 산맥 해발 3399m 지점의 분지에 있는 잉카제국의 수도로 한때 100만 명이 거주했던 쿠스코는 하늘은 독수리, 땅은 퓨마, 땅속은 뱀이 지배한다고 믿은 잉카인들의 세계관에 따라 도시 전체가 퓨마 모양을 하고 있다.
잉카제국의 정확한 표현은 타완틴수요(Twantinsuyo)로 4방으로 뻗은 나라라는 뜻이다. 타완틴수요는 동쪽은 안티수유(Antisuyu) 서쪽의 쿤티수유(Kuntksuyu), 남쪽의 쿠야수유(Qullasuyu)와 북쪽의 친차이수유(Chinchaysuyu)로 분리돼 있었던 광대한 나라였다.
1553년 스페인인들의 침략으로 시작해 40여 년에 걸친 잉카인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400년 간 찬란하게 꽃피웠던 잉카문명은 종말을 고하고 만다. 그리고 또다시 460여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 쿠스코는 침략자들이 남긴 흔적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고 있다.
스페인인들은 침략 후 잉카제국의 궁전과 신전을 파괴하고 그 터의 초석위에 바로크풍의 궁전과 교회를 건설했다. 태양 신전 코리칸차에는 산토 도밍고 교회를 지었고 와이나 카파쿠 궁전 터에는 라 콤파냐 헤수스 교회를, 태양 처녀의 집 터에는 산타 카타리나 수도원을 지었다.
잉카유적지의 초석 위에 지어진 침략자들의 상징물들은 아픈 역사의 현장이지만 400여년이라는 시간은 이 특이한 조합마저 쿠스코의 색다른 매력으로 만들어 버렸다. 잉카 시대의 돌로 만든 길, 다리, 터널 등은 지금도 그대로 사용될 만큼 잉카인들은 돌을 다루는 기술이 뛰어났다고 한다.
쿠스코에서는 매년 남미의 3대 축제 중 하나인 잉카시대의 의식을 재연한 ‘인티라이미- 태양의 축제’ 가 열려 사라진 잉카문명을 추억한다.
◇ 아르마스 광장(Plaza de Armis)
피사로가 쿠스코를 함락시킨 뒤 도시를 재정비 한다는 목적으로 신성 광장이라는 뜻의 아우카이파타를 허물고 그 자리에 아르마스 광장을 만들었다. 광장 주변에는 대성당과 교회, 식당이 들어서 있다. 특히 아르마스 광장의 야경은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 대성당(Catedral)
키스와르칸차(Kiswarkancha)라는 비라코차의 신전이 있던 곳에 세워진 대성당은 1559년부터 약 100여 년에 걸쳐 지어진 건물로 예술적 가치를 지닌 곳이다. 300톤의 은을 이용해 만들어진 주 제단과 아름다운 돌 세공품과 금속 세공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마르코스 사파타’가 그린 「최후의 만찬」으로 유명하다.
◇ 라 꼼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Iglesia la compania de Jesus)
라 꼼파니아 데 헤수스 교회는 바로크 양식으로 잉카제국 11대 황제 와이나 카팍의 궁전이었던 아마루칸차(Amarucancha)위에 세워졌다. 교회 내부에는 마르코스 사바타, 디에고 데 라 푸엔테, 크리스토 부르고스 등의 벽화와 조각품 등이 있다.
◇ 산토 도밍고 교회(Iglesia y Convento de Santo Domingo)
태양의 신전이었던 코리칸차(Qorikancha)를 허물고 세운 교회로 스페인의 침략 당시, 신전을 둘러 싼 석벽 뿐만 아니라 주변에 폭 20㎝ 이상의 황금 띠가 둘러져 있었다. 신전 내 광장은 달, 태양, 번개, 무지개, 별의 방이 둘러싸고 있고 방은 아름다운 석벽에 둘러 싸여있었다. 두 차례의 대지진에 교회 건물은 피해가 컸지만 코리칸차의 초석은 건재해 잉카 건축의 위대함을 증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