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력(履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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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원일람<祠院一覽> 辛鍾友 著
이숙량(李叔樑)
#경상도(慶尙道) 대구(大邱)
*연경서원(硏經書院)
명종갑자건 현종경자액(明宗甲子建 顯宗庚子額).
제향. 이 황(호퇴계 좌찬성 문형 증영의정 시문순 선조묘 문묘배향). 정 구(호한강 대사헌 증영의정 시문목). 정경세(호우복 이판겸대제학 증찬성 시문장). 전경창(호계동 정언 본경산). 이숙량(호매암 사부 본영천).
祭享. 李 滉(號退溪 左贊成 文衡 贈領議政 諡文純 宣祖廟 文廟配享). 鄭 逑(號寒岡 大司憲 贈領議政 諡文穆). 鄭經世(號愚伏 吏判兼大提學 贈贊成 諡文莊). 全慶昌(號溪東 正言 本慶山). 李叔樑(號梅巖 師傅 本永川).
2. 퇴계문인
이숙량(李叔樑, 梅巖, 禮安 汾川, 1519~1592) 본관(本貫) 영천(永川)
3. ■연려실기술 별집 제4권 사전전고(祀典典故) 서원(書院)
○대구(大丘) 연경서원(硏經書院) : 가정(嘉靖) 갑자년에 세우고 현종 경자년에 사액하였다. : 이황(李滉)·정구(鄭逑)·정경세(鄭經世)
○향현사(鄕賢祠) : 숭정(崇禎) 기묘년에 세웠다. : 김경창(金慶昌)호는 계동(溪東), 지평(持平)을 지냈다. 이숙량(李叔樑) 호는 매암(梅庵), 왕자사부(王子師傅)를 지냈다. 현보(賢輔)의 아들이며, 퇴계의 문인(門人)이다.
4. ■연려실기술 제17권 선조조 고사본말(宣朝朝故事本末)
영남(嶺南)의병(義兵)
○ 예안 사람 진사 이숙량(李叔樑) 등은 격문을 지어서 여러 고을에 전하고 효유하였다.
5. ■난중잡록1(亂中雜錄一) 임진년상만력20년, 선조25년(1592년)
○ 경상도 예안(禮安) 고을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키는데 진사(進士)이숙량(李叔樑)이 격문을 지어 열읍을 효유하다. 《경상 순영록》에 보인다.
6. ■月川先生文集卷之五 雜著 易東書院事實
■월천선생문집권지오 잡저 역동서원사실
吾東書院之作。於今爲盛。將無邑不有。在處皆然。至或以一州之地。而立數書院者。是非好事而然也。誠有所不得已者存焉。以吾鄕文雅之尙。山川之秀。而獨闕焉。豈理也哉。而況先正禹祭酒倬。當麗季。以儒林風節之宗。實居斯土。考其平生所爲。觸拂君慝。使不得肆。擊碎淫祠。使不得逞。其淸風勁節。旣足以廉頑立懦。而尤留情於易學。使東人得?伊洛之餘波。與聞羲孔之道。則自先生沒。至于今二百有餘年。鄕人所以遐想景慕而不自己者。非直秋天之一?。有若丹山之孤鳳。眞可謂奮乎百世之上。聞者莫不興起也。而其廟貌至今未立。是亦吾鄕之一大欠典也。間與鄕中諸友語及于玆。未嘗不慨然興歎。歲在戊午仲春之望。浮浦琴蘭秀來宿寒齋。遂道鰲潭之勝曰。此處可以立廟置院。爲藏修游息之所。厥明。與琴君往遊其地。徘?瞻眺。以窮其面勢之所在。山自淸凉一枝西南來。??起伏。振迅騰?者至此而盡。靈芝峙于北。破鈍雄于南。芙蓉秀乎西。翠屛聳乎東。四顧雲山。合沓環擁。而前臨大川。川卽汾川。下流出乎太白。經于淸凉。崩奔數百里。至此匯而爲淵。澄深瑩碧。若有神物居于其中。卽所謂鰲潭也。潭上又有黃茅地數十頃。可以耕而食焉。相與?喜曰。吾鄕書院之作。不爲則已。爲則必於斯。旣明之明日。拜先生于退溪。以是白焉。數日。先生貽書曰。吾鄕先正。如禹祭酒風節。東方古今。豈可多得。立學祠賢。旣昉於世。而吾鄕獨闕。此吾輩之恥也。但公等無力。難於倡作。如某亦非有力。而方處猜危之際。難勇於倡此駭俗事。假使不顧而爲之。本縣事力之不逮。又如前日面論者。今若失此幾會。後世亦不復有人慮及於此。恐遂成千古之恨也。可爲浩歎。然旣聞有佳處。懷不能禁。近當乘便一往。臨時相報會尋。若彼處誠合置院。徐徐更商議看。如何。古稱有志竟成。今何爲獨不然。?四月八日。先生?來書。諭以欲踐前約。卽與琴君。候于潭上。薄晩。先生自溪上戾止。杖?逍遙其上曰。可以堂也。然而未克就志者。卽以如先生書中所云。事力之不逮耳。而姑待其可乘之機。後六年癸亥春。苞山郭公?。來臨是邑。邑本十室小縣。地瘠而民貧。賦役多端。前後來官者。皆以爲難。公於是靜而鎭之。寬以撫之。凡有利於民者。靡不爲之。有害於民者。無不除之。去華而就實。約己而裕民。飢者以養。寒者以衣。勞者以逸。闔境?然相慶曰得侯。越三年乙丑。一邑大治。公藏私蓄。上下與足。而流逋四歸。樂生興事。公於是。視民力之可用。?於丙寅春。伐材陶瓦。以治官舍。而又推其餘瓦九千張。以付諸生員使主之。於是更相與謀立祠院。烏川金富弼, 琴應夾等力贊斯議。一邑人士。咸以爲盛事。莫不欲出財力以助其役。於是金君等。與同志稟于先生。請會一邑長老。以議定其事。凡士夫家其子弟可齒於學者。視其?瘠而低?之。以爲出財力之差。則凡百六十餘家。得穀百七十餘石。而金君富弼所出穀物。視他人倍?而尤致意焉。合元來爲蓄穀七十餘石。以資其用。是年陶瓦。其秋鳩材。掌事者金富弼, 琴輔, 琴應商, 禹克昌, 琴應夾。琴蘭秀以居近監役最勤。而穆亦與焉。侯於是。大致其力。自始至終。凡董役之吏。執役之夫。皆官所予。而使境內諸寺僧人分番來役。又擇匠店之有實者。以白雲地歸焉。作院根本。於此定矣。又出倉中耗餘穀四十石。作紙布十五疋以助其費。安東府伯尹公復亦輸送。穀十石。大木十餘條以資之。於是闔境之人。無遠邇。無大小。靡然風動而莫敢後焉。是雖一邑之人。齊心幷力。而微侯之力。則固莫得以成此一段大事矣。然向所謂鰲潭者。雖有其地。而爭之者猶??焉。或以爲宜就前賢所居。或以爲當看風水之利。卒以先生之語定焉。而今年春。始敦匠事。向之諸公及溫溪李寗, 烏川金富儀, 金富倫, 浮浦申洽, 孫興孝, 池沙麻禹致武, 月川蔡雲慶等。分番相適。五日爲限。或留宿而監董焉。其他如汾
沙麻禹致武, 月川蔡雲慶等。分番相適。五日爲限。或留宿而監董焉。其他如汾
사마우치무, 월천채운경등。분번상적。오일위한。혹류숙이감동언。기타여분
川李叔樑, 西村柳贇等。亦時來監。凡監役人。以勤慢多小爲次。吏竭其職。
천이숙량, 서촌류윤등。역시래감。범감역인。이근만다소위차。이갈기직。
工?其巧。晨夜展力。罔敢或怠。是夏四月堂成。前列六楹曰明敎堂。東西各有
공?기교。신야전력。망감혹태。시하사월당성。전열륙영왈명교당。동서각유
溫房。東曰精一齋。西曰直方齋。直方之北藏書閣曰光明室。堂後少東立祠廟三
온방。동왈정일재。서왈직방재。직방지북장서각왈광명실。당후소동립사묘삼
間曰尙賢祠。前列東西二齋各三間。東四勿。西三省。其南立大門曰入道。西齋
간왈상현사。전열동서이재각삼간。동사물。서삼성。기남립대문왈입도。서재
之西立廚庫。總名之曰易東書院。皆先生所定也。曰易東云者。蓋取丁寬易已東
지서립주고。총명지왈역동서원。개선생소정야。왈역동운자。개취정관역이동
矣之語。而參究易傳。實祭酒先生事業也。是冬。侯將南歸。於是邀侯于堂而觴之。凡干措置等事。無不曲盡其方。境內者社田畓。久爲游手之徒所占。刷出而歸之院者二百餘負。於是金富弼, 李完, 琴應夾, 金富倫, 金富儀, 琴輔等。各有所納。以出地多小爲次其有?於財而嗇於田。則以穀石代納者。若朴君士熹,
金君生溟也。亦以多少。先後。亦有願納土田臧獲。而祈免役者數人。侯亦從而許之。又除書員一人。閑良六人以屬院。?掌書廚錢穀之任。趨走使喚之役。而別爲謄錄。使藏院中。臨行又有前件餘布二十五疋穀七十石以付之。凡前後所給。木四十疋。穀百十石。噫。侯之於此。可謂終始竭盡其心。而無復餘蘊矣。大抵人物隆替。地氣衰旺。莫不有數存乎其間。惟祭酒先生。以挺特之資。値衰亂之世。不得有爲於時。卷而懷之。杜門潛思。以續夫龍門之餘韻。而其後世。泯泯無聞焉久矣。故?畢齋有詩云。麗運涵儲五百年。不圖衰叔有斯賢。?庭持斧眞唐介。白屋窮經似鄭玄。鄕里幾人懷舊德。子孫今日稅荒田。嗟余早抱希顔志。獨拂儒紳一?然。則其在于今可知矣。幸今聖明當?。文運大昌。而我邑得賢侯。一鄕議克合。擧無前之盛典。得鮮有之吉地。使數百年泯滅之迹。得顯于今時。則玆豈非數也歟。而吾祭酒之後裔居于是土及散處旁邑者。非一二數。雖曰衰微零替之甚。然安知不有因是擧。而或能感遺風服前訓。而奮?興起。以至有成者乎。而凡自一鄕以及遠近之士。游於斯學於斯。而有得於景仰之餘者。日新月盛。由是學之博而問之審。思之愼而辨之明。切之磋之。琢之磨之。以求盡乎篤行之實。則由是得聞周孔之道。可也。由是得見羲文之心。亦可也。況玆鰲潭之地。荒茅蔓草之所蒙?。鋤??艾之所往復。不知其歲年。而自戊午探討之後至于今。又復十年而堂成。則玆亦不可不謂之數也。事之顚末。不可不記其實。以傳于
。우복십년이당성。칙자역부가부위지수야。사지전말。부가부기기실。이전우
後。且後之來學院中。而欲求聖賢之道。聞祭酒之風者。必願得先生語以爲矜式
후。차후지래학원중。이욕구성현지도。문제주지풍자。필원득선생어이위긍식
。幸先生有以發揮而精迪之。丁卯冬末。趙穆敢採鄕人之意。錄上于退溪書堂下
。행선생유이발휘이정적지。정묘동말。조목감채향인지의。녹상우퇴계서당하
7. ■松巖先生文集附錄
■송암선생문집부록
挽詞汾川李叔樑
만사분천이숙량
松巖韻致本淸眞。閉戶看書五十春。自是高懷能守分。曾無一念可循人。樽中有
송암운치본청진。폐호간서오십춘。자시고회능수분。증무일념가순인。준중유
酒顔常好。物外論詩語益新。今曰不堪埋玉樹。溪光月色摠傷神。
주안상호。물외론시어익신。금왈부감매옥수。계광월색총상신。
8. 이숙량(李叔樑) 족형매암선생(族兄梅巖先生)
澗松堂文集(문고 보관)
乖庵先生逸稿 (古上 810.819 이14?) (古西 810.819 이14?)
李幹 (1576∼1637) ; 字 公直, 號 乖庵, 本貫 永川.
木板本. - [發行事項地不明].
3卷1冊 ; 30.1x21.2cm.
四周雙邊. 半匡 ; 19.7x16cm.有界.11行19字.註雙行.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
조선 중기의 학자인 이간의 시문집이다. 이간은 개신(介臣)의 아들이며 1615(광해군 7)년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이숙량(李叔樑)의 문인이며 정탁(鄭琢), 이산해(李山海)의 문하에 종유하였다. 17세 때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천에서 의병을 모아 적과 싸워 영천성을 수호하였다. 그 뒤 청송으로 이사하여 위기지학에 힘쓰며 조형도(趙亨道), 권익(權翊) 등과 교유하였다. 1627(인조 5)년 정묘호란 때 우국충분을 이기지 못하고 군사를 모아 싸우러 가려고 하였으나 난이 평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중지, 하양(河陽)으로 이사하였다. 하양 임호사(臨湖祠)에 봉향되었다.
이 문집은 1919년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1939년 그의 9세손 병제(秉濟) 등에 의하여 편집, 중간되었다. 시(詩)는 어의가 간도(懇到)하고 사기(辭氣)가 온아 하다는 평을 들었다. 「조난(遭亂)」은 그가 17세에 임진왜란을 만나 영천 진중에서 지은 것으로 우국충정이 깃들여 있다. 이밖에 시는 주로 조형도(趙亨道), 이준성(李俊成), 조준도(趙遵道), 권익(權翊), 신즙(申楫) 등과 수창(酬唱)한 것과, 당시 석학들에 대한 만사(挽詞)들이다.
序 ; 張錫龍.
目錄.
卷之 1. 賦 ; 五柳春風自一家賦.
詩 ; 萬里相看忘逆旅, 祈平亂, 思鄕(2首), 贈申河陰(楫), 重陽聞雨聲, 贈趙東溪(亨道), 挽李德溪(俊成), 贈趙方壺(遵道), 贈權楓崖(翊), 奉同趙東溪醉吟, 登望雲亭, 贈趙東溪, (附東溪次韻), 東山書社修契, (附東溪次韻), 贈申河陰, (附河陰次韻), 희濟司馬榜, 寄閔上舍(根孝), 贈趙東溪, (附東溪次韻), 閒居偶吟, 挽安參議(恪), 盛暑, 大駕還都喜而有詠, 思歸, 贈趙東溪, (附東溪次韻), 拜聾巖族父墓, 贈趙東溪, (附東溪次韻), 偶吟, 還鄕吟病, 輓曺參奉(卓然), 省大田祖墓, 贈朴陶窩(璿), 輓曺公(盡孝), 輓曺承旨(友仁), (附曺承旨次韻), 築養性齋, 謝宋參議(福崇)寄音, 和贈琴府使(?業), 謝李翰林(?), (附李翰林次韻), 謝李修撰(慕), (附李修撰次韻), 築亭琴湖, 新秋, 丹楓, 卽事, 贈申河陰趙方壺, (附河陰次韻, 附方壺次韻), 磨屹里新亭, 九日倣龍山古事, 靜坐見新月憶周濂溪光風霽月氣像, 書齋偶吟, 又, 書齋獨坐, 亂離吟, 夢見聾巖族父因感有述, 述懷, 酬趙景一景行李季卿, 嘆世, 萬古亭.
祭文 ; 祭族兄梅巖先生(叔樑)
卷之 2. 附錄 ; 輓章, 祭文, 遺事, 行狀, 墓碣銘, 臨湖祠奉安祝文, 臨湖祠常享祝文, 家廟上樑文, 萬古亭記, 靑松士林通文, 靑松松鶴書院通文, 漆谷士林通文, 臨湖祠上樑文, 臨湖祠遺墟碑銘, 臨湖書堂記, 臨湖書堂契案序, 萬古亭重修記.
卷之 3. 符? ; 編年略, 遊從錄.
跋 ; 盧相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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