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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를 위한 클래식
1.
학교를 마치고 동네 산비탈을 오르던 동주에게
앞집의 숙희가 치맛자락을 날리며 달려오더니 “너거 할매 죽었데이!” 하곤 가쁜 숨을 몰아쉰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른 채 양철대문을 들어서던 동주의 눈에 하얀 가운을 입은 사람들과 아버지가 마당에서 무슨 얘긴가를 나누고 있었고, 외할머니가 계시던 방에선 어머니의 애끓는 울음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방안을 들여다보던 동주는 무엇인지 모르지만 흰색의 천 아래로 익숙한
외할머니의 쭈글쭈글한 손이 삐져나와 있는 것을 보고는 울고 있는 엄마의 어깨를 잡아당기며
“엄마! 할매가 왜 저래?” 하며 외할머니를 덮고 있는 하얀 천을 잡아당겼다.
“우리 뿌뚤이 인자 오나?” 하며 언제나 양철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계시던 외할머니는
삼베고쟁이 주머니에서 새카맣게 태운 감자하나를 손에 쥐어주며 “배 고팠제?” 하셨었다.
친구들에게 쪼글쪼글한 주름이 창피하다며 얼른 할머니를 대문 안으로 밀어 넣었던 동주였다.
그랬던 할매는 어디가고 얼음처럼 차가워 보이는 하얀색 얼굴로 꼼짝도 하지 않고 잠자는
것처럼 눈을 감고 계셨다.
“할매! 와이라노 할매, 언능 인나라 할매!” 동주는 할머니의 오그라든 어깨를 안으며
일으키려 애를 썼다. 이때 밖에 계시던 아버지가 들어오시며
“동주야 할매 돌아가셨다! 인자 그만 나오너라!” 하고는 그의 어깨를 잡아당겼다.
동주가 “아부지요! 할매 안 죽었다! 할매가 와 죽노!” 하며 아버지의 손을 뿌리치며 더욱
악착같이 할머니의 차가운 팔을 잡아당겼다. “할매 인나라! 어서~ 인나라!”
서럽게, 서럽게 울며 매달리는 동주를 잡아채던 아버지의 그 억센 힘도 소용이 없을 만큼
동주는 할머니에게서 떨어질 줄 몰랐다. 해는 산비탈을 지나고 있었고
대문 옆 돼지우리에 있던 돼지가 이웃집 아저씨들에게 끌려 나가며 “꽥! 꽥!”거렸다.
....
외할머니 상을 치루고 며칠이 지난 어느 그믐날 밤이었다.
자는 밤중에 아버지가 모두를 깨웠다.
그리곤 집을 나섰다.
달도 없는 칠 흙 같은 어둠속에서 행여 넘어질까 나는 어머니의 치마 끝을
꼭 잡은 채 딸랑 책가방 하나만 매고 아버질 따라 비탈길을 내려갔다.
그리곤 도립병원 뒤의 도랑위에 지어진 판자 집.
아버지의 야반도주.
담임선생님께서 가정방문조차도 오지 않았던 가난이었다.
2.
그의 스무 살은 병원지하 보일러실의 어두움처럼 참으로 암담하고 우울했다.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캄캄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아버지가 기능직으로 취직한 도립병원에서 설비기술을 배우도록 그를 보일러실로
불러 내렸고, 공부보다 기술을 배워두는 것이 험한 세상을 사는데 도움이 될 거라며
막무가내였다.
머리가 좋아 명문고를 나왔지만 어려운 집안형편에 대학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던
그는 어쩔 수 없이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우울한 날이면 그는, 통 기타를 치며 병원 한구석의 오래된 고목나무 밑에서 김정호의
하얀 나비와 팝 가수 톰 존스를 흥얼거리곤 했다.
병원 안에는 도(道)에서 운영하는 간호학교가 있었는데 여기에 다니는 대부분의
여학생들도 가난한 집안 형편에 진학을 포기하고 간호사가 되기 위해 엄격하고 통제된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
울타리 안에 갇혀 지내는 것과 다름없는 학생들에겐 병원직원의 아들이면서
자주 드나드는 구내매점 집, 명문 고등학생인 그가 그리 낯설지 않았고
사춘기 나이가 대부분이었던 그녀들은 병원 근무와 고립된 생활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곧 잘 나무 밑에 모여 그와 함께 새로 나온 노래들을 함께 부르고 기타를
배우기도 하였다.
휴일에는 중학교부터 선수생활을 했던 연식정구를 그녀들에게 가르쳐주기도 하였다.
그 중에서 3학년인 조 하영은 유난히도 그를 따랐다.
그녀는 왼쪽 다리가 어릴 적 소아마비를 앓아 조금 짧았다.
그래선지 가냘픈 몸매에 하늘색 실습복과 하얀 캡을 쓰고 걸을 때면 조금씩 뒤뚱거리는
모습이 그에겐 조금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했다.
그가 키탈 치며 노랠 부르면 “목소리가 참 좋아요” 하면서 칭찬도하고
자주 먹기가 쉽지 않은 달달한 커피를 간호사실에서 가져와 주기도하였다.
하지만 아무리 암담한 처지의 재수생이긴 해도 반드시 성공해 부잣집 딸과 결혼하여
멋진 인생을 살겠다는 그에게 그녀는 절대 아니라는 생각에 늘 무심했었다.
마침 병원의 방사선과에는 김창수라는 기사가 조수로 새로 왔는데 그와 같은 또래였고
집이 울진인지라 병원에서 숙식을 하면서 그와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일찍이 어려운 집안사정으로 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병원에 취업하여 방사선 촬영기술을
배워서인지 영어나, 한자는 물론이고 제 이름도 잘 못 쓸 만큼 무식했지만
엑스레이 촬영 기술만큼은 뛰어나 이곳, 저곳에서 스카우트 할 만큼 명성이 나 있었다.
어느 날 저녁인가 창수는 그를 제 방으로 와보라고 했다. x-ray실 한 칸을 숙소로 만들어
지내던 그는 일요일만 빼고는 거의 매일을 병원에서 살았다.
녀석의 방에 들어서면 일반 가정에서는 꿈도 못 꾸는 에어컨과 히터시설이 되어있고
환자용 침대를 고쳐 캐시밀론 이불을 덮어놓은 푹신한 잠자리가 고급스럽게 놓여있었다.
그리고 벽 쪽으로는 석유풍로가 있는 조리대가 있어서 그가 갈 때마다 자주 먹기 힘든
라면을 한번 씩 끓여주곤 했다.
그때의 라면 맛이란 녀석이 무얼 시켜도 거절하기 힘든 것이었다.
그의 방에 들어서자 녀석은 무엇인지 종이로 포장된 커다란 박스를 뜯기 시작했다.
뜯은 박스에서 나온 것은 대우전자의 “독수리 표 쉐이코” 전축이었다.
부잣집에서나 볼 수 있는 아주 최고급, 최신형 전축을 녀석이 사서는 그에게 자랑하고 싶어 부른 것이었다.
한참을 주물럭거리며 조립을 하더니 전원코드를 연결한 뒤, LP 판을 올려놓으니 귀가
뻥! 뚫릴 만큼의 쉬원한 스트레오 사운드가 쏟아져 나왔다.
당대 최고의 팝송가수 simon Butterfly 의 “rain rain rain” 이었다.
음악다방이나 라디오의 심야 음악프로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팝송의 명곡이었다.
녀석은 가난뱅이 재수생인 그가 꿈도 꾸지 못할 고가의 전축에 LP판을 사서 틀어놓고
“어때?”라는 듯 그를 쳐다보는 얼굴에는 의기양양함을 넘어 “넌! 명문 고등학교 나왔다고
잘난 척 하지만 나와는 게임이 안 되는 가난뱅이야!” 하는 것 같았다.
스테레오 전축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사가 무엇을 뜻하는지도 모르는 무식한 놈이,
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는 또 한 번 열등감에 젖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녀석은, 저녁마다 그가 기타를 치며 간호학생들에게 인기가 있는 듯해 보이자
최신형 전축을 구입한 게 틀림없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녀석의 작전대로 나이트 근무 여학생들은 김창수의 신형 전축과 LP판이 있는 곳으로 몰려들었다.
녀석은 수시로 병맥주나 탕수육을 시켜 그녀들을 먹였고 라면이나 고급커피를 아낌없이
제공했다. 그래도 그는 어쩔 방법이 없었다.
그의 어머니가 군고구마와 과자 나부랭이를 아무리 팔아도 동생들 넷의 학비와 육성회비를
내기도 힘든데다 재수생인 그에게 용돈까지 챙겨주기란 꿈도 못 꿀 일이었으니 말이다.
창수가 월급을 타면 꼭 끝자리 잔돈을 넣어두는 돼지 저금통이 창가에 있었다.
그 통에는 오백 원짜리와 백 원짜리 십 원짜리가 삼분의 이쯤 채워져 있었다.
족히 몇 천원은 되어보였다. 늘 용돈과 한통의 막걸리 값이 아쉬웠던 그에게는 틀림없는
유혹이었다.
그렇게 시간은 무의미하게 자꾸 흘러갔고 그는 점점 더 절망감을 느끼며 우울해 져 갔다.
창수는 병원 지하의 보일러실에서 그가 일할 때면 가끔씩 내려와 “이렇게 하면 한 달에
얼마 받느냐고” 물었다
그는 월급을 받는 게 아니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도와주고 있는 거라고 얘기했다.
그러자 녀석은 “야! 너 그럼 너 아부지 시다 바리네?” 하면서 비웃는 것처럼 낄낄 웃었다.
그랬다! 그는 병원과 간호학교의 소사인, 이름만 서무과 기능직인 아버지의 시다 바리에
불과했다. 돈이 없어 대학도 못가고 소사 아버지 밑에서 보일러 불이나 때는 조수였고
공무원이든 어디든 합격해서 이곳을 벗어날 때까지는 완벽한 백수로, 보일러기사인 아버지
일을 거들어 주고 단돈 오백 원을 받는 시다 바리일 뿐이었다.
3.
비가 오는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는 병원으로 실습을 나가던 조 하영을 기숙사 정문에서 만났다.
여전히 푸른색 가운에 흰 간호사 캡을 쓴 그녀는 왠지 창백해 보이는 얼굴이었다.
다리도 전보다 더 많이 쩔뚝거리는 것 같았고.
그녀는 “어디가요?” 하면서 눈웃음을 지어보였다. “예! 친구 좀 만나러 요”하고는
지나치려는데 “이번 주 일요일 오프(off)인데요, 같이 놀러 안 갈래요?” 한다.
그녀의 집은 시내 평화동의 옛 철도관사에 있었다.
그녀의 아버지가 철도 기관조사로 근무하면서 사둔 집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원주 역에서 입환 작업 중 기관차에 치어 돌아가셨는데 공상으로 순직 처리되어 유족
연금을 타고 있다고 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다가
“이번 주 일요일엔 지난번 시험 본 경찰공무원 체력장이 있는 날이라 대구에 가야하는데
다음 주엔 어때요?“ 라고 했다.
“그럼 그때 가서 근무일정을 보고 얘기 할게요” 하고는 총총히 병원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그녀의 다리는 불편해 보였고 몸 전체가 비틀거리는 것 같았다.
그는 모처럼 만난 몇몇 친구들과 그동안 먹지 못했던 술을 실컷 먹었다.
녀석들 역시 그와 같이 이 것 저 것 시험을 쳐놓고 기다리면서 가난한 부모에 대한 원망과
낙오자가 되어버린 자신들에 대한 울분을 쏟아내며 통금이 될 때까지 퍼 대었다.
친구들과 헤어진 뒤 병원으로 들어서는데 x-ray 실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는 녀석이 뭐 하느라고 여태 불을 켜놓고 있는지도 궁금하고 라면이나 하나 얻어
먹을까하는 생각으로 녀석의 방문을 열었다.
그런데 녀석의 방에 놓여 진 침대위에는 놈과 조하영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입을 맞추며
뒹굴다가,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녀가 깜짝 놀라며 용수철 튀듯 벌떡 일어나더니,
간호사 캡이 바닥에 떨어진 걸 줍지도 못한 채 밖으로 달아났다.
놈이 새로 산 쉐이코 전축에서는 톰 존스의 Delilh가 창밖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와 뒤섞여
우울한 비트를 쏟아 내고 있었다.
그는 어느새 문밖으로 뛰어나간 그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고목나무 밑에 서서, 비를 맞으며 서있던 그녀의 양 어깨를 두 손으로 잡아 흔들며
그는 외쳤다. 이게 무슨 추잡한 짓이냐고! 그러면서 왜 내게 놀러가자고 했느냐고!
그녀는 울먹이며 말했다. 너무 외롭고 힘들었다고. 다리마저 성치 않은 내게 동주 씨는
한 번도 관심을 가진 적이 있었느냐고. 그랬다. 그가 왜 그녀에게 그런 질문을 해야 하고,
그녀가 무얼 하든 분노할 자격이 있는 입장인지 그 자신도 이해를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슬펐다. 그는 너무 억울했다.
일자무식인 창수 놈보다 못한 게 무엇이냐고. 가난해 대학엘 합격하고도 못 갔을 뿐!
가난하니까 전축도 못 사고, 듣고 싶은 팝송도 마음대로 못 듣고, 담배도 못 사고,
녀석에게 술이나 얻어먹고, 연애할 엄두도 못내는 가난한 재수생이었을 뿐,
제 이름도 잘 못 쓰는 저 무식한 인간, 알량한 재주 하나로 몇 푼 번다고 계집애들에게
온갖 주접을 떨면서 꼴 난 전축하나로 밤마다 판을 벌리는 제비 같은 자식!
저 김창수 놈보다 못한 것이 무엇이냐고!
그는 그날 밤 그의 아버지가 준 수고비를 아껴서 모아둔 돈 삼백 원을 털어, 기차 역 앞
사창가의 창녀에게 그의 동정을 팔았다. 치마를 벗지도 않고 턱 밑으로 걷어 올린 채
다리를 벌리고 누워있는 창녀를, 조금 전 창수와 입을 맞추며 침대에서 뒹굴던 조하영일
거라고 아무리, 아무리 생각해도 그 창녀는 결코 조하영이 아니었다.
4.
그가 임관 후, 부대가 있던 의정부의 한 주점에서였다.
앳 되 보이는 아가씨 둘이 맥주잔을 들이키며 깔깔거리며 웃어대는 모습에
언 듯 고향에 두고 온 여동생들이 생각나 500 cc 한잔을 단숨에 들이키는 그에게
“안주라도 드세요!“ 하면서 단발머리의 아가씨가 땅콩접시를 들이민다.
앳된 모습이긴 해도 당차보이고 헤 맑게 웃는 웃음이 예쁜 아가씨는 바로 옆자리에서
방금 전까지 친구와 깔깔거리며 맥주잔을 마주치던 그 아가씨였다.
“왜? 혼자세요? 군인아저씨가 혼자 술 먹는 건 처음 보는데요?”
“어? 신삥 소위 아저씨네?”
재수생이라는 그녀는 휘경동이 집인데 아버지에겐 학원 간다며
이곳까지 친구와 술을 먹으러 왔단다.
-빌어먹을 무슨 복을 타고 났기에 시켜주는 공부를 마다하고 저 난리들인지...
그는, 고향을 떠나 제각각 먹고 살길을 찾아 공장으로, 남의 가게의 점원으로 뿔뿔이
흩어진 동생들의 처량한 모습이 생각나 기분이 불쾌해졌지만
괜히 조잘대는 그녀를 무시한 채, 500 한잔을 더 시켰다.
“아니 소위 아저씨! 우리가 안 이뻐요? 와~ 이 아저씨 되게 웃긴다!”
그러면서 깔깔거리더니 옆에 있는 친구에게 “명희야! 이 아저씨 되게 순진해~ 장교라서 그런가?”
그는, 이런 놈들은 술집접대부 대하듯 해서 버릇을 고쳐야한다는 생각을 하곤
“그래 좋아요 이리 와서 한 잔합시다”
때 늦은 봄비가 부슬 부슬 내리던 6월 중순의 그날 밤
동주는 생전 처음 만난 당돌한 아가씨들과 밤새도록 술을 펐고 무슨 얘기를 했는지
얼마나 먹었는지 조차도 모른 채 술에 골아 떨어졌다.
며칠 후, 위병소에서 연락이 왔다.
어떤 아가씨가 면회를 왔다며 선임하사가 히죽 웃는다.
그가 면회실 문을 들어서는데 “아저씨!” 하며 그날 밤 처음 만났던 아가씨가 생글거리며
반가워한다.
아버지가 경찰이셨는데 얼마나 엄한지 그동안 연애는 꿈도 못 꾼 채, 재수학원과
집만 왕복하다가 그날 우연히 친구와 도망가보자고 작당을 하였단다.
괜히 군인아저씨를 놀려먹고 싶어 장난을 쳤는데 아저씨가 진짜 순진해서 그녀들도
별 재미가 없었다며 부대마크와 명찰을 보고 아저씨께 인사라도 하고 싶어 찾아왔다고 했다.
그녀의 이름은 한수경 이었다.
열여덟이고 현직경찰인 공무원 아버지의 외동딸이란다.
동주와 그녀는 무작정 사랑을 시작했다.
오래지 않아 그는 b.o.q (독신 장교숙소)에서 나와 부대 인근에 방을 얻었다.
둘은 서로에게 의지했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고 싶어 먼 미래로 도망쳐 나온 동주와
지금 막 세상 밖으로 나온 철없는 어린아이는 세상이야 어떻게 돌아가든 내일이야 어떻게
되든 둘은 그저 사랑에만 집중했다.
노란 양은냄비에 밥을 태워도, 반찬을 만들 줄 몰라 부대에서 가져온 김치와 단무지만으로
밥을 먹어도 행복하기만 했다.
그러는 동안 가을이 지나고 초겨울의 문턱에서 부대야외훈련에 참가했던 그가
일주일 만에 돌아온 집에는 차가운 냉기만이 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녀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동주는 벗어 든 모자를 손안에서 녹여버릴 듯이 힘을 주며 부르르 떨었다.
며칠 뒤, 유선중대의 교환병이 그가 근무하던 1중대로 올라왔다.
한수경이란 아가씨가 서울이라면서 부대 일반전화를 통해 소대장님을 찾았고, 곧 돌아 올 테니
기다려달라는 말을 전해달라고 했단다. 그는 그제 서야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그러나 그녀는
겨울이 지나고 이듬해 봄이 되어도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5.
중위로 진급한 그에게 집에서 편지가 왔다.
중매가 들어왔는데 집 근처의 양곡도매상 딸이고 여고를 나왔으니 한번 내려오라는
어머니의 편지였다.
많은 식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언제나 배고픔을 면하는 일이었으므로
어머니는 쌀집으로 장가들면 아들이 배는 곯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셨으리라.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찾지 못한 수경만이 있을 뿐이었다.
수경은 여전히 그를 슬프게 했다.
도저히 잊혀지지 않는 그녀를 찾기 위해 주말이면 서울로 나가 휘경동 일대를
헤매고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서울을 다녀와 그녀와 만났던 술집에서 정신 줄을 놓을 만큼 퍼 마신 뒤
집 앞에 당도했을 때였다. 누군가 문 앞에 서있었다.
수경이었다.
그는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어딜 갔었느냐며 그녀를 안고 방안에 들어 선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채
그녀의 얼굴과 가슴과 전신을 훑어 내려갔다.
눈물범벅이 된 그는 밤새도록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고 깊은 안도의 한숨으로 잠에 들었다.
아침이 되어 눈을 뜬 그의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은 수경이 아니었다.
“수경 씨가 누구예요?”
조하영이 다소곳한 채 그가 일어나도록 침대 아래서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에서 근무 중 휴가를 얻어 잠시 귀국했는데 동주 씨가 여기서 근무하신다기에
얼굴이라도 보고 싶어 소식 없이 올라 왔다며 수줍게 웃었다.
“이제부터 제가 수경 씨를 대신 할게요” 라고 말하는 그녀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거렸다.
동주는 미안해했다.
해가 바뀌어 2월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그의 보직도 바뀌어 대대 운영보좌관으로 옮겼다.
진급을 위해서는 필 히 거쳐야 할 중요 보직이었기에 그는 최선을 다했다.
하영도 점점 배가 불러왔고
비록 적은 월급이지만 그녀는 아끼고 절약하며 조금씩 그와 아이를 위해 미래를 준비해 갔다.
마침 시내의 모 개인병원에 자리가 나, 그녀 또한 직장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기에
두 사람은 그저 행복하였다. 가끔!
당신이 그때 진짜 창수를 좋아했느냐고 짓궂은 소릴 하면, 하영은 얼굴이 새빨개져선
쓸데없는 소릴 한다며 당신이 날 안 알아줘서 그랬으니, 모든 건 당신 탓이라며
그의 가슴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영은 그녀를 닮은 예쁜 딸아이를 낳았다
선천적인 소아마비로 다소 출산에 힘은 들었지만 다행히 건강한 아이를 출산 해준
그녀는 행복해 했고 그 또한 아빠가 되었다는 생각에 잘 키워야지 하는 책임감으로
더욱 열심히 근무에 충실하였다.
아이가 태어나고 일주일이 지나 하영이 산후조리원에서 퇴원했다.
그동안 집도 더 넓고 깨끗한 곳으로 이사하여 태어난 딸과 하영이 불편하지 않도록
준비하였고 그런 그를 하영은 더욱 신뢰하고 사랑해 주었다.
6.
대위로 진급하면서 그는 부대를 옮겨야 했다.
양평으로 부대를 옮긴 그는 부대에서 제공하는 군인 아파트로 이사했고
하영도 기뻐했다. 딸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커나갔고 제 어미를 닮아 참으로 예뻤다.
부대 인사장교를 맡은 그는 늘 최선을 다해 근무에 충실 했고, 상황근무를 위해
주간에 4일, 야간에 3일 씩 사단 상황실에서 주번근무에 임했다.
가을이 깊던 10월 어느 날 야간 상황근무 중 이었다. 갑자기 조용하던 상황실이 어수선해 졌다.
당직하사가 T.T 병을 데리고 전문 한 장을 손에 든 채, 황급히 당직 장교실에 들어오면서
“당직사관님! 큰 일이 난 것 같습니다.” 그가 받아 든 전문에는
“V.I.P -1 유고! 1개 연대를 제외한 전 부대를 한양대학교로 이동한 후 작명 대기할 것!”
그는 사단장을 비롯한 작전참모에게 보고한 후, 지시대로 예하 부대에 부대 이동명령을
하달했다. 대통령의 유고였다. 그는 아내에게 전화를 했다.
아이에게 시달리다 잠에 든 하영은 “무슨 일이에요?‘ 하며 잠이 덜 깬 목소리였다.
“작전 상 부대 이동을 해야 하는데, 아마 오래도록 집에 오질 못 할 거야.
몸조심하고 아이와 당분간 친정에 내려가 있어“ 놀라는 그녀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그는 밤새도록 차를 선탑 해 한양대학교로 부대이동을 시작했다.
이미 서울은 전시상태 그 자체였다.
한양대학교 체육관에 상황실을 준비한 그는 전방 상황을 수시로 체크하며 예하부대의
병력과 장비 배치에 대한 브리핑을 준비하고 상급 부대의 명령하달과 정보수집에 최선을 다했다.
이튿날 오전 7시 부로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10시에 계엄사령관 배석 하에
보안사령관이 사건개요와 함께 대통령의 저격 사망사건 전모를 발표했다.
18년의 장기 집권을 해오던 대통령을 중앙정보부장이 시해한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정국은 얼어붙고 국민들에 대한 무한 통제가 시작되었다.
마침 사건의 주범인 중정부장이 고향인 안동의 모 고등학교 출신이었다.
그로 인해 군 내 안동출신의 고급 간부들이 때 아닌 고초를 겪는 해프닝도 있었지만
국가의 미래와 안보위기에 비하면 실로 찻잔 속의 흔들림에 불과했다.
수사와 관련자 색출, 군 내 역학구도의 변화가 빠르게 이루어졌고
민주화를 추구하던 재야, 정치권의 민주세력은 초토화 되어갔다.
새로운 권력의 핵심으로 떠오른 보안사령관은 시간이 흐를수록 두각을 드러내었고
많은 사람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갔다.
친정엘 가있던 아내가 집으로 돌아오고
정국은 빠르게 안정되어 갔지만 군내 반대 세력에 대한 숙청과 대학생들의 반발은
갈수록 커져갔다.
특히나 전남, 광주지역의 소요사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졌다.
잠깐 시간을 내어 부대로 돌아 온 그는 아내와 아이를 보자 새삼 가정의 중요성을
깨달을 수 있었고 이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겠다는 결심을 굳혔다.
다시 부대로 복귀한 그는, 사단 화학대장과 함께 광주 상무대로 이동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았다.
전남대학교의 학생들을 주축으로, 불순 세력이 포함된 폭도들로 광주, 전남지역
소요사태가 심각해져 계엄군과 특전사를 투입하기 위한 사전 준비를 위해 상무대에 작전상황실을 보강하라는 지시였다. 사단이 보유하고 있던 예비차량 20여대를 운전병, 선탑자인 선임하사
20여명을 선발한 후, 화학대장과 그가 인솔하여 광주로 이동하는 것이 작전의 요지였다.
전남 장성을 거쳐 광주와 가까운 남면에 들어서자 갑자기 도로의 좌우에 있는 낮은 야산에서
탕 탕 탕! 하는 총소리와 함께 머리에 띠를 맨 폭도 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선탑으로 차량을 인솔하던 화학대장과 그가 탄 찌프 차에도 한발의 탄알이 관통했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지만 통제할 사이도 없이 뒤를 따르던 M60 군용 트럭과 병사들이
차를 버린 채 뿔뿔이 야산으로 달아났다.
나중에 확인 된 상황이지만 그때 흩어졌던 병사들과 선임하사 대부분이 폭도들에게
잡혀 고초를 겪었다고 했고 일부 탈출에 성공한 병사들은 산을 타고 도망 친 후
인근 군부대로 복귀할 때까지 죽을 고생을 했다며 폭도들과 이들에 동조하는 전남 광주
지역주민들을 절대 그냥 두어서는 안 된다고 울분을 토하며 적개심을 불태웠다.
그와 화학대장도 휴대한 권총과 차량을 이용해 겨우 위기를 모면한 뒤 대전인근의 타 지역
계엄부대로 복귀했지만 폭도들이 탈취한 군용 차량에 태극기와 군부타도 등의 붉은 글씨가
적힌 깃발을 단 채 거리를 활보하는 뉴스를 접할 수밖에 없었다.
화학대장과 그는 헬기를 이용해 상무대로 복귀하였고
전남도청과 광주 인근 주요 거점을 확보한 뒤, 폭도 진압작전에 참가하였다.
수많은 시민과 학생들이 투항과 무기 반납을 거부한 채 대항하자 결국 수뇌부는 특전사를
작전에 투입하였다.
전남도청이 수복되고 난 뒤, 잔당들에 대한 소탕작전을 위해 투입되었던 그의 부대는
수십 명의 병사를 잃었고, 그들의 죽음은 끝내 광주항쟁이라는 이름하에 역사 속으로
잊혀져갔다.
7.
그도 더 이상 작전에 실패한 장교라는 꼬리표가 붙어 진급에 몇 번 누락된 뒤
군 생활을 접기로 하였고, 마침 추진되는 군 현대화 작업의 일환으로 현역에서 전역하는
예비역 장교를 예비군 지휘자로 임용하는 제도의 수혜자가 되어 고향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딸은 어느덧 자라 세 살이 되었고 아내는 둘째를 임신 해 출산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면단위 지역예비군 중대장으로 보임한 그는 현역에서의 복무 경험을 살려 무너진 예비
병력의 기강을 바로 잡고 유사시 전력화에 혼신의 힘을 쏟았다.
더구나 그가 속한 지역에는 군 통신 중계소와 민간 방송 중계시설이 있는 주요 국가
보안시설이 있는 곳이어서 다양한 군 작전과 각종 시범훈련이 늘 실시되어 그 역시 매우
바쁜 일과로 시간가는 줄 모르게 업무에 충실해 갔다. 부대회의를 다녀 온 어느 날 오후였다.
중대본부에 도착해 차에서 내리는데, 행정병이 뛰어나와 “중대장님! 손님 와 있습니다!” 한다.
“누가 왔어?” 하며 들어 선 중대장실에는 누군지 익숙한 얼굴의 여자가 서 있었다.
수경이었다.
수없는 밤을 술과 눈물과 그리움으로 찾아 헤매던 사람.
한 수경! 그녀였다. 그는 침을 꿀꺽 삼켰다. 어떻게 해야 할까.
어떤 말로 그녀에게 무엇을 물어야 하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묻고 싶은 데 입 밖으로 무슨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전히 가냘프고 예쁜 얼굴의 그녀였지만, 왠지 어둡고 쓸쓸한, 수심이 가득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무작정 그녀의 손을 잡아끌어 차에 태웠다.
그리곤 가급적이면 멀리, 누구도 그들을 알아 볼 수 없는, 아무도 그들을 찾을 수 없는
먼 곳으로 도망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가 차를 세운 곳은 시내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강가의 모래사장이었다.
낙동강이 흐르다가 산줄기를 만나 크게 휘돌며 고운 모래가 쌓인 둔치였다.
그는 눈물이 쏟아 질 것 같아 입을 꾹 다문 채,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녀도 눈가에 이슬이 맺힌 채 그런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꼬옥 잡으며 물었다.
어떻게 여기 있는 줄 알고 왔느냐고? 어떻게 된 일이냐고?
왜 좀 더 일찍 돌아올 수 없었느냐고?
그녀는 그제야 쏟아지는 눈물을 닦지도 않은 채 그의 품에 쓰러졌다.
그녀는
용케 찾아 온 아버지에게 잡혀 집으로 들어간 뒤 머리를 잘리고 방에 감금된 채
두어 달을 지냈는데 그녀의 아버지는 현직 형사였고 외동딸인 그녀를 버릴 수 없다며
가혹하리만치 범죄자를 다루듯 집안에 철창을 만들어 그녀를 감시하며 단속하였단다.
그러다가 몸이 아파 병원엘 다녀오는 사이 눈을 피해 부대로 전화를 했고
두 번인가 진료를 받기 위해 집을 나와 아버지 몰래 도망했다.
그녀는 우선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하기 위해 다방과 술집을 전전했으며
그가 있는 부대를 찾아왔을 땐 이미 그가 결혼 했다는 걸 알게 되었고, 끝내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단다.
지금은 대전에서 조그만 카페 하나를 운영하며 살고 있는데,
세상이 하도 어지럽게 돌아가는 걸 보며 혹시나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하여 전에 근무하던
부대에서 당신의 소식을 물었다고 한다.
침대에 누웠던 그녀가
가방에서 담배를 꺼내더니 불을 붙이곤 후~ 하며 길게 연기를 뿜어낸다.
그러면서 맥주잔을 채우고 한 모금을 삼켰다.
여전히 그녀는 아름답고 귀여웠다.
그도 그동안 끊었던 담배가 갑자기 피우고 싶어졌다. 그리곤 그녀를 바라보며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어떻게 해줄까?
금방이라도 그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 수많은 날을 찾아 헤매던 휘경 동의 꼬불꼬불한 골목길.
밤새워 엎드려 울던 그 술집의 바텐을 떠올리면 하영이고, 아이고 모두 다 팽개치고
그녀와 떠나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고 싶다는 욕망이 그의 온 머릿속을 헤집고 다녔다.
결혼은? 아니!
왜?
그녀가 그를 바라보며 씁쓸히 웃는다.
혹시나 해서, 내가 당신께 돌아갈 때가 올까봐...
가요!
그녀가 일어서며 단호하게 말했다.
잊혀 질 만 하면 올게요. 당신이 잘 살아가야 나도 사는 의미가 있을 테니...
그리곤 그녀는 떠나갔다.
8.
어제 사위 될 녀석이 다녀갔다.
그림을 전공한 큰 딸은 오래전에 파리로 건너가 돌아오지 않고 있었고
둘째 딸은 공주사대를 나와 세종의 모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지 3년째인데
얼굴이 뽀얗고 선하게 생긴 착한 녀석 하날 데리고 왔다.
내 딸아이와 결혼하고 싶다며
“아버님! 송이를 사랑합니다. 평생 울지 않도록 행복하게 해주겠습니다. 허락 해주십시오.“
하며 넙죽 엎드린다.
어디선가 본 것 같은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녀석이 내 사람이 되려는 인연인가 보다
하며 “그래 잘 해보게!” 허락을 하고 말았다.
“아빠! 지훈 씨는 엄마 한분을 모시고 사는데 어머님이 너무 자상하고 고운 분이예요.” 하며
제 시어머니 자랑을 해 대는 것이 벌써 그 집 사람이 된듯하다.
그리고
5월의 어느 좋은 날을 택해
양가의 상견례를 하는 날이었다.
나와 아내는 들떠있는 딸아이를 토닥이며 예약된 뷔페식당에 들어섰다.
녀석이 쫓아 나와 넙죽! 인사를 하며
“아버님! 제 어머니세요.” 하며 인사를 시킨다.
고운 자태의 다소곳한 모습으로 커피 잔을 마주하고 앉아 있던 그의 어머니가
일어서며 그에게 가벼운 목례를 한다.
그리곤 “한수경입니다.”라며 그를 쳐다보았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은 충격과 함께
온 몸에서 피가 빠져 나간 듯 맥이 풀리며, 그냥 의자에 주저앉고 말았다.
클래식이 조용히 흐르고 있는 홀 안에는
그가 좋아하는 헤이즐럿 커피향이 가득해지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