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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유파란 말을 많이 씁니다. 그런데 유파란 과연 무슨 뜻일까요? 유파란 단어는 누가 언제 만들었을까요? 아무 데나 막 써도 될까요? 그것을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 볼게요.
일단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겠습니다.
류 [流]
1.사람이나 모임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특성을 지닌 부류의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말.
2.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러한 방식이나 양식의 뜻을 더하여 명사를 만드는 말.(=類)
파 [派]
1.특정한 사상, 주의, 신념, 입장에 따라 다른 집단과 갈라진 사람들의 집단
2.동성동본에서, 높은 벼슬을 하거나 학자로서 널리 이름을 남긴 조상을 기점으로 새로 갈라져 나온 혈족의 무리.
유파1 [流派]
1.주로 학계나 예술계에서, 견해나 주장, 태도가 비슷한 사람이 모여서 이룬 무리.
2.(기본의미) 줄기가 되는 계통에서 갈려 나온 갈래.
제 [制] 마를 제, 절제할 제
1. 마르다 2. 만들다 3. 누르다 4. 법도 5. 정하다
무형문화재 [無形文化財]
모습이 보이지 않는 문화재로 민족의 역사와 개념, 사상을 알 수 있는 노래와 춤, 연극, 무용 등이 있다. 이 기술을 보유한 사람을 보통 인간문화재라 부른다.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에서 주로 다루고 있는 문화재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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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도 파(派)는 오래된 역사가 있습니다. 바로 성씨(姓氏)입니다. 시조(始祖)가 있고 자손으로 내려오다가 중간에 또 나름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중시조(中始祖)로 삼아서 주로 벼슬 이름으로 파를 만듭니다. 대제학파, 판서공파... 나중에 세월이 수십수백년 지나면 전두환도 자손들이 ’대통령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저는 반드시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그들에게서 살인자라는 사실은 별로 중요하지 않을 거예요. 아, 또 있네요. 칠성파, 조양은파 같은 폭력조직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의 연안파, 소련파, 남로당파. 또 학생 시절에 배운 인상파 야수파...
류(流)는 흐름입니다. 계곡에서 한덩어리로 한 방향을 향해 내려가는 물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경향성이죠.
그래서 어떤 조직이나 성향을 분류할 때 특정 집단을 뜻하는 파와 성향을 뜻하는 류를 합하여 유파란 말을 만들었습니다. 유파 또는 유파를 뜻하는 단어를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알 수 없어요. 어쨌든 통용되는 단어입니다. 유파는 일본 같은 경우 수백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도자기, 다도, 검도 등 여러 분야에서 쓰고 있는데요, 다도의 ‘우라센케류’ 이런 식입니니다. 주로 가문으로 내려오는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나라는 판소리에서 처음으로 유파를 나누었는데요, 판소리에서는 유파를 ‘제(制)라고 합니다. 제를 사전적 의미를 살려서 해석해 본다면 ’누가 만들어서 딱 정했다‘ 이런 뜻이 되겠네요. 왜 판소리에서 먼저 쓰였냐면 판소리가 가장 먼저 체계를 잡았고 또 학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크게 동편제, 서편제가 있습니다. 그리고 특정한 사람이 만든 독특한 부분은 ‘더늠’, 특별히 어떤 명창의 소리 한바탕을 다 이를 때는 ‘바디’라고 합니다. 정정렬제, 김세종제, 동초제, 만정제 같이 사람 이름을 붙이는 경우가 바디라고 볼 수 있어요. 판소리의 역사는 시작을 대략 1600년대 중후반으로 잡으면 이제 300년 정도 되었습니다.
악기나 춤은 류를 붙입니다. 누구류 가야금산조, 누구류 살풀이춤...이런 식입니다. 가야금산조를 김창조가 만들었다는데 이게 1800년대 말입니다. 그 뒤에 거문고 대금 해금 아쟁산조 등이 만들어졌으니 불과 백수십년에서 수십년의 역사 밖에 되지 않습니다. 요약하면 판소리는 제를 붙이고 가무악은 류를 붙인다. 그런데 또 제가 존경하는 선생님 한 분은 “처음 만든 사람에게는 제를 붙이고 그것이 일반화되면 '류'로 바꾸면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수긍이 가는 주장입니다.
[김승국의 문화광장]에서 발췌
“여기서 유파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파란 국어사전에는 ‘원줄기에서 갈려 나온 갈래나 무리’ 혹은 ‘주로 학계나 예술계에서, 생각이나 방법 경향이 비슷한 사람이 모여서 이룬 무리’라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에서의 유파라는 것은 어떤 종목에 있어 어느 한 명인을 중심으로 오랜 세월을 지나는 동안 예술적 성취를 통하여 일정한 일가(一家)를 이룬 예능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일본의 경우 무형문화재 예능 종목의 전승은 선대의 예능을 있는 그대로 전승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몇백 년 전의 전통 예능이 지금에도 원형 그대로 전승할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는 선대 예능의 전형은 전승하되 대를 이은 후대 명인의 개성 있는 예술적 표현이 가해져도 그대로 존중하고 인정한다. 그것을 유파라 한다. 국악계에서도 스승의 소리를 그대로 흉내 내는 소위 ‘사진소리’를 금기시할 정도로 개성 있는 표현을 존중하고 인정한다. 그래서 유파의 탄생이 가능해진 것이다.”
유파를 정의하는 방식이 우리와 일본은 좀 다른 것 같습니다. 어쨌든 지금까지 나와 있는 유파를 보자면 일단, 맨 처음 시도한 사람이 있는데, 나름 멋져 보이고, 그래서 배우고 따라 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러다가 자연히 어느새 ‘류’가 붙게 되는 것 같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당연히 남들이 인정할 만한 독창성과 예술성이 있어야 하고 어느 정도 보편화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예를 보자면 당사자의 사후에 후학들이 붙여왔습니다. 결코 본인이 자기 잘났다고 자기 팔을 들지 않았어요. 그런 점에서 류는 본인이 규정하는 것이 아닌 것 같아요. 자타가 인정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들이 인정하는 것이 제일 먼저이지 싶어요. 이게 이 업계(?)의 대충 불문율이고 나름 관례도 있는 것 같고, 만든 이에 대한 존경심도 포함되어 있다하겠습니다. 오랜 세월을 거쳐 나름 일가를 이루고 많은 후학들을 배출해 내어 ‘류’ 를 갖게 되면 대중들에게 예술성을 인정받게 되는 것이니 자긍심을 갖게 될 법해요. 이 유파를 나라에서 인정한 것이 무형문화재라고 볼 수 있겠지요.
설장구는 원래 판굿에서 치던 거라서 독립된 형태의 연주형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가 비교적 늦게 류를 붙이기 시작했으니, 김병섭류 설장구의 경우에도 설장구 중에서는 아마 가장 이르지만 김병섭 선생님 사후 몇 년 지난 1990년 넘어서 제가 비로소 붙였으니 그리 오래 되지 않았습니다.
김병섭 선생님은 소년 시절에 김학순이란 분에게 설장구를 배우고 50~70년대에는 전사섭, 이정범 명인들과 같이 굿을 쳤습니다. 전사섭 명인이 가장 연장자인데, 예전 어느 인터뷰에서 "이정범, 김병섭이 손에 꼽는 제자이다"고 말 한 적이 있습니다. 김병섭 선생님은 제 기억으로는 전사섭 이정범 선생님을 스승으로 생각하지 않았던 것 같지만 선배들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초기 설장구는 일반적인 우도설장구와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70년 전후로 본인만의 설장구를 만들어 나갔습니다. 선생님은 천재적인 작곡가이고 연주자이자 안무가였고 지독한 노력파였습니다. 뭔가 영감을 얻으면 장단을 만들어 내고 거기에 맞는 디딤새와 발림을 만들어 숱한 연습 끝에 정착을 시키거나 폐기했습니다. 도살풀이, 동래학춤, 가야금산조 등을 보고 만든 장단들도 있습니다. 또, 한 장단 한 장단씩 몇년에 걸쳐서 만들어 나가 한 마루를 완성하기도 했습니다. 자진모리의 따구궁 가락이나 굿거리의 도살풀이가락은 완성되는데 몇 년이 걸렸어요. 그래서 선생님의 설장구는 현존하는 설장구 중에 가장 길고 다양한 가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많은 장구잽이들이 김병섭류설장구에 관심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더러 김병섭설장구는 전통적인 우도설장구에다 개인이 첨삭을 많이 했다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고 들었어요. 그렇다면 전사섭 이정범 김병섭 김오채 김동언의 설장구가 같습니까? 누구 것이 정통 우도설장구입니까? 이건 김승국의 글에서 보듯 개인의 개성 있는 예술적 표현을 무시하는 처사라 할 수 있어요.
일반적으로는 무슨무슨류라고 할 때, 유파의 창시자와 똑같이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렇게 배운 사람이 나중에 자기만의 예술성을 더하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라 할 수 있어요. 그래서 직접 배우지 않으면 그 내밀한 속내까지 알기가 쉽지 않겠지요. 직접 배워도 틀리는 경우가 수두룩합니다. 흔히 사람들은 정확도를 말할 때 '눈'을 말합니다. "내 눈으로 봤다, 보고 배웠다..." 이때의 '눈'은 사실 '뇌'입니다. 눈이라는 렌즈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에서 판단합니다. 눈을 뇌라고 착각한 것이지요. 저 말은 "내가 판단했다" 입니다. 그걸 장본인은 눈으로 봤다고 말하는 것이에요. '귀'도 똑 같습니다. 불경에 보면 "여시아문" 이라는 말이 자주 나옵니다.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을 나는 직접 들었다"입니다. 대부분 여러 사람이 같이 들었지만, 혼자 들은 경우도 있었을 거예요. 그 사람이 설령 없는 말을 지어내거나 잘 못 전달해도 확인할 방법이 없지요. 사실 여시아문도 주관을 배제하려고 한 말이에요. ‘부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가 아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나는 들었다‘입니다. 단정이 아니라 조심스럽게 객관화시킨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 사람들의 말을 다 듣고 종합해서 불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들로서는 최대한 객관화시킨 것이에요.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휘모리의 '물레밟기가락' 다들 알지요? 이 가락은 사물이든 풍물이든 설장구 치는 사람은 다 아는 가락인데요. 장단은 이렇습니다.
1. 일반적 : 덩쿵/다다/쿵기닥/쿵
2. 김병섭 : 더구궁/기닥딱/쿵기닥/쿵
발디딤도 미묘한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가락은 확연한 차이가 납니다. '류'라는 관점에서만 본다면, 이것 하나만으로도 1번을 치는 사람들의 설장구는 김병섭류라고 하기 힘듭니다. 어느 멋진 한 부분을 만들어 끼워 넣으면 판소리처럼 '더늠'이 될 수 있겠고, 달리 친다면 새로운 류도 만들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선생님의 가락 디딤새 발림을 정확히 모르면서 대충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는 대로, 또는 사물이나 풍물에서 배운 비슷한 가락과 발림을 하고 어려운 부분은 얼버무리면서 김병섭류라고 이름을 붙인 것을 보면 안타깝습니다. 김병섭류라고 이름을 붙이려면 장단이 정확해야 하고 디딤새를 비롯한 발림이 김병섭 선생님과 일치가 되어야 합니다. 직접 배웠든, 건너 배웠든, 건너 건너 배웠든, 어떤 방법으로 배웠든 같습니다. 정확하게 익히고 나서 자기가 판단할 때 이 부분은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을 하면 바꿀 수 있어요. 그런데 정확히 모르면서 이곳저곳에서 배운 장구를 토대로 치는 것을 김병섭류라고 하면 곤란해요. 여러분들은 설장구연구회에서 배우면서 기닥과 딱 하나가 달라져서 그 가락의 느낌이 달라지는 것을 많이 느꼈을 거예요.
자기가 하는 김병섭류와 제가 하는 김병섭류가 다르다고 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당연히 다릅니다. 그런데 그분들은 자기가 틀렸다고 꿈에도 생각하지 않으니 이러면 제가 틀렸다는 말이 됩니다. 이 말을 확장을 하면, 김병섭류 설장구에서 김병섭 선생님이 자기와 다르다는 희한한 모순되는 말을 아무 고민 없이 쉽게 하고 있는 거예요. 그래서 이런 이야기 함부로 하면 안 됩니다. 선생님이 남기신 동영상이 있어서 선생님의 직접적인 말씀만 없을 뿐이지 여전히 우리를 가르치고 계신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아주 자세한 것 까지는 몰라도 확인이 어렵지 않습니다.
제게 김병섭류를 배우는 여러분들에게 늘 고마움을 느낍니다. 그리고 지상 최고의 설장구를 배우고 있는 우리 모두는 설장구에 관한 한 최고의 행운아입니다. 긴 글 읽게 해서 미안해요. 고맙습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김병섭 선생님 만큼 연구하고 고민 하시는거 같아요. 선생님과 인연이 닿아서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차피 설장구는 몸공부인데 몸공부로는 정옥샘이 최고입니다.
매일 연습시간 두시간에 완판만 서너번씩 누가 할 수 있겠어요?
존경합니다^^
선생님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4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한결같이 고민하고 노력하신 선생님의 시간이 그대로 느껴지네요. 선생님의 그 시간 덕분에 지금의 우리는 김병섭류 설장구를 수월하게 배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할 일 없는 사람은 원래 심심하면 강변 모래알 개수 세고 앉았어요.
딱히 설장구 말고는 할 일이 없고 세월 흐르다 보니 대충 어림짐작 할 수 있게 된 것이오.
캠프 때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을 글로 더 자세히 설명해 주셔서 이해 하는데 더 도움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항상 의심하고 다시 생각하며 정확히 연습하도록 노력 하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그러요. 지금처럼만 하면 될 거예요.
처음 배운 설장구가 김병섭류라서 그냥 그게 전부인줄알고 지낸 세월들이었습니다.
그후 아~ 아~~ 아~~~ 이러며 알아가고 있었지만 설장구에 '류'를 붙인게 박철선생님이라는..
또 새로운 사실을 알게되었네요.
주신 말씀처럼 끊임없이 눈과 귀를 의심하며 공부하는 자세를 견지해나가겠습니다!!
아마 때라는 것이겠지요. 어느 듯 세월이 흘러서 저절로 되는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