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의 현재와 미래
김철교(시인, 평론가, 국제PEN한국본부 부이사장)
시각예술은 문학을 비롯한 모든 예술발전의 전위에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금년 2월에 선정한 <올해의 작가상 2023>을 보면 현대 예술이 나아가고 있는 방향을 어느 정도 가늠해볼 수 있다. 수상자 권병준의 작품에서는 “이주민들의 낯선 노래들과, 풍경의 향, 지나간 시대의 변화가 사운드 하드웨어에 담겨 전시장에서 제공”되고 있고, “작가는 인간을 닮은 비-인간의 상징인 로봇을 파트너로 삼아, 이 비눗방울과 같이 투명하고 아름답지만 찰나적인 공동체가 이웃과 타인의 구분을 넘어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까지 확장될 수 있을지, 인간 공동체의 궁극적인 한계를 시험한다.”
여기에서 현대미술의 지금과 미래를 전망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장르 간의 벽이 무너지고 있으며, 음악과 디지털 색채의 어울림 또한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이해가 불가능한 작품들이다. 둘째, 인간과 인간, 인간과 비인간 관계 등 ‘여기-지금’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특히, 이민자는 물론, 로봇과 인간과의 관계에까지 눈을 돌리고 있다. 셋째, 기술적 측면, 즉 각종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역할이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미래를 이끌어나갈 AI가 화두가 되고 있는 요즈음 더욱 그렇다. 인간 삶은 워낙 복잡하여, 만족스럽게 설명하기 위해서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정보를 참조해야 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AI는 지금까지 존재하는 정치, 경제, 사회는 물론 문화, 예술까지도 아우르는 모든 정보를 기반으로 답을 찾아내는 것을 기본원리로 하고 있다. 문학도 인류가 쌓아온 삶의 데이터베이스인 무의식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 무의식은 인류가 세상에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 쌓은 삶의 흔적인 집단무의식과, 개개인이 태어난 이후 쌓인 정보인 개인무의식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예술 작품은 이러한 무의식의 의식화 작업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AI가 의사결정의 근거로 삼고 있는 전자정보는 계속 축적되고 사라지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다. 인간 두뇌는 이러한 모든 정보를 다 수용할 수 없고 개개인의 능력 범위 안에서만 활용할 수 있어, 오히려 AI가 더 우수한 의사결정 혹은 예술 작품을 내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물론 인간에게는 지성, 감성, 영성 그리고 창의성이 있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또한 과거 삶의 정보들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예술의 범주 안에 있는 문학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AI에 질문을 던져서 얻은 대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문학은 장르의 벽을 넘나들며, ‘지금-여기’ 인간 삶의 다양한 측면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형식과 스타일을 창조해 낼 것이다. 둘째, 환경은 물론 다민족, 다문화에 대한 관심을 포함한, 다양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이슈는 계속해서 문학 작품의 주요 주제로 부상하여, 독자들에게 사회적 변화와 개인적인 책임에 대해 생각하게 할 것이다. 셋째, 기술 발전은 문학 영역에 혁신적인 방법을 제공할 것이다. 소셜 미디어, 블로그, 전자책 등을 통해 작가들은 더 많은 독자와 상호작용하며, 홀로그램, 가상 현실, 인공 지능 등의 기술이 작품의 창작과 소비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현대예술의 주요 이슈는 신화 · 종교 · 역사에서 벗어나 정치 · 인종 · 성(性) · 환경 · 미디어(media) 등 ‘지금-여기’(now & here) 인간사가 중심이 되고 있다. 특히, 아서 단토의 『예술의 종말 이후』에서 예술가가 예술에 관한 어떤 이론에 의거, ‘예술은 이런 것이다’라고 주장하면 모든 것이 예술이 될 수 있다.
인류 정신사의 흐름은, 범박하게 말하면, 플라톤 사상을 중심으로 신과 이데아의 세계를 탐구하다가, 데카르트로부터 촉발된 과학에 의존하던 시대를 지나, 이제는 예술의 시대(이성⸱감성⸱영성의 통합시대)로 나아가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아서 단토가 주장하는 것처럼, 어떤 도그마에 얽매어 고생하기보다는 이즘(-ism)이나 주의(-主義)에서 해방되어, 지금-여기의 문제 해결에 집중하고자 하는 것이 예술의 현주소가 아닐까 싶다. 물론 아직도 신의 영역인 ‘본질’에 대한 향수를 버리지 못하고 있기는 하다.
이러한 예술철학의 흐름을 실제 작품에 구현하기 위해 최근에 다양한 기술과 손을 잡고 있다. 예전에는 자연미를 좋아했으나 이제는 인공미도 예술의 영역에서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사진 분야도 다양한 소프트웨어에 의존하여 인공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필자가 40년여 년 전 사진예술에 미쳤을 때, 공모전에 출품하려면 원본에 손을 대면 평가대상에서 제외되었으나, 얼마 되지 않아 포토샵으로 가공한 사진이 억대 금액으로 거래되기 시작했다. 과거에는 유명 탤런트들이 성형외과에서 얼굴에 손을 대고는 쉬쉬했으나, 이제는 너도나도 성형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을 당연시하고 있다. 문학과 음악은 물론이고 시각예술, 영화, 무용 등 모든 분야에서 기술의 도움 없이는 이제 한 발짝도 나갈 수 없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