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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가려고 일을 한다
함 순 례
산을 걷는 일은 높이를 정복하는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 흩어진 나를 다시 모으는 일이다. 일은 날마다 어깨 위에 보이지 않는 돌 하나씩을 얹어 놓지만, 산길은 그 돌을 말없이 하나씩 내려놓게 한다. 숨이 차오를수록 마음은 오히려 고요해지고, 발걸음이 무거워질수록 생각은 가벼워진다. 나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계절을 견디는 법을 가르치고, 바위들은 한자리에 머물러 묵묵히 시간을 이기는 법을 일러 준다.
그렇게 산을 오를 때마다 나를 조금씩 비우고, 다시 살아갈 힘과 일상을 견딜 마음을 얻는다. 그래서 걷기는 운동이 아니라 삶의 루틴이다. 일의 수고와 고단함을 견디게 하는 가장 조용하고도 단단한 습관이다.
이러한 루틴은 후배 평론가의 “히말라야 트레킹 갈래?”라는 한마디에 즉흥적으로 참여를 결정한 것이 계기였다. 운동에는 서툴렀지만 걷기와 산을 좋아했던 터라, 트레킹을 준비하며 본격적으로 체력을 기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집 근처 비학산을 다녔다. 높이 228m의 나지막한 산이지만 숲길이 너그럽고 그늘이 깊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다. 비학산을 꾸준히 오르기 위해 또래 친구들과 ‘산동무’를 만들고 일주일에 세 번 산행했다. 혼자서는 어려웠던 운동을 함께할 사람을 만들어 지속 가능한 습관으로 바꾸었다. 비학산에서 만난 팔순 노인, 맨발로 걷는 사람들, 다람쥐나 고라니, 계절마다 달라지는 숲은 산행에 생기를 더했다.
주말 이른 아침엔 ‘세종의길 두발로’에 참여해 세종 곳곳을 걸었다. 평범한 걷기를 넘어 지역의 자연을 발견하고 기부까지 이어지는 착한 발걸음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쉬지 않는다. 보통 10km 내외 걷지만 삼일절이면 31km를 걷는다든지, 세종의 4대산을 종주한다든지, 지리산, 덕유산, 제주 올레를 걷는 등의 이벤트도 갖는다. 매주 행선지를 공지하고 회원들의 참여 횟수와 걸은 거리를 기록하는 대장이 있지만 모임 회비도 없다. 세종의 다채로운 천변길, 강변길, 마을길, 숲길에서 시인의 감수성도 자극받았다. 어슴푸레한 새벽길을 걷다가 붉은 해가 산 너머에서 천천히 올라오면 아직 아무것도 쓰이지 않은 하루를 선물 받는 기쁨이 스며든다. 혼자서는 엄두가 나지 않을 장소들. 여럿이 함께하는 즐거움이 잘란잘란 따라다녔다.
월수금 산행, 화목 필라테스, 토요일 걷는 생활의 규칙이 생기며 나의 하루하루는 촘촘하게 돌아갔다. 출퇴근에 매이지 않는 프리랜서이지만 남편이 대표인 출판사에서 시집 만드는 일의 무게감이 컸다. 공동도서관이나 초중등 학교 현장에서 시 창작을 지도하고, 결과물을 시집으로 발간할 수 있도록 도왔다. 그 외 문학단체에서 맡은 일도 추슬렀다. 걷고 일하고, 일하고 걷는 단순한 리듬 속에서 체력이 좋아지고 몸과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만보 이상 걸으면 발바닥에 불이 나고 고관절이 뻐근하던 통증도 점차 다스려졌다.
히말라야 트레킹은 두 번 다녀왔다. 첫 번째는 쿰부 히말라야로 루크라에서 고쿄리(5,360m)까지, 두 번째는 랑탕 히말라야로 샤브루베시에서 강진곰파(3,870m)까지 걸었다. 각각 고산의 웅장한 풍경과 쉽게 접할 수 없는 산길을 경험하며 긴 시간 걷는 힘을 길렀다.
세계의 지붕인 히말라야Himalaya는 단순히 지리적인 산맥의 이름이 아니라, 그 어원과 의미 속에 깊은 철학적 상징을 담고 있다고 한다. ‘히마hima’는 하얀 것, 눈 또는 얼음을 뜻하고, ‘알라야alaya’는 거처, 머무는 곳을 의미한다. 눈처럼 순수한 본성과 그 본성이 저장된 내면의 깊은 공간. 히말라야에서 가장 익숙해진 말은 ‘따또 바니(따듯한 물)’와 ‘비스타리(천천히)’였다. 겨울 고산증을 예방하는데 꼭 필요한 두 가지다. 눈만 뜨면 따뜻한 물 한 잔으로 밤새 언 몸을 녹이고 보온병에 담아 들고 다니며 자주 마셨다. 비스타리는 트래커들과 인사말로도 주고받는다. 이쪽에서 “비스타리, 비스타리” 건네면 저쪽에서도 “비스타리, 비스타리” 웃으며 대꾸하는 식이다. 고산에서는 서두를 수 없었고, 천천히 걷는 것이 몸을 지키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산은 속도에 익숙했던 삶을 내려놓는 법을 가르쳤다.
겨울 건기에 산길을 걷다보면 바짓단과 등산화는 흙먼지로 뒤덮이기 일쑤였다. 나도 한 점 먼지였다. 산길을 떠도는 먼지처럼, 키 작은 풀포기처럼, 몸을 낮춰 걷다가 쉬다가 풍경에 취하곤 했다. 아침 출발할 때는 코끝 시린 맑은 공기에 웃고 떠들다가도 햇살이 번지고 더워지면서 오르막이 지속되면 점차 말수가 줄어든다. 가쁜 숨과 숨만이 서로를 밀고 당긴다. 저녁이면 녹초가 되지만 신기하게도 아침이면 다시 걸을 힘이 생긴다.
하루 7~9시간씩 걷는 여정은 힘들었지만 8,000m급 설산과 고쿄 호수 같은 장대한 풍경이 고통을 견디게 했다. 4,790m 고도에 드넓게 펼쳐진 에메랄드빛 호수는 뭐라 형언키 어려운 감탄을 자아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를 때마다 나타나 쉼터를 제공해주는 롯지들. 랑탕 계곡의 장쾌한 물소리가 고된 걸음을 밀어주었다. 열흘간 머리를 감지 못하고, 땀에 젖은 몸과 얼굴을 물티슈로 닦아야 하는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트레커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있었다. 히말라야의 웅장함은 봐도 봐도 경이로웠다. 이 자연에 깃들어 호흡하고 있는 나조차 신기했다. 매번 다시는 오지 않겠다면서도 또 찾아오는 어리석음을 토로하던 화가 선생님의 말이 끝나자, 까마귀 한 마리가 다가와 까악까악 울고 갔다.
물론 곡소리가 날 정도로 힘든 날도 있었다. 새벽 3시, 해드 랜턴에 의지해 고쿄리에 올랐다가 하산하는 날이 특히 그랬다. 고쿄리 고갯길은 60~70도 경사진 산비탈인데다 얼굴과 스키장갑을 파고드는 추위와 싸워야 했다. 힘겹게 정상에 다다랐을 때 비로소 고갤 내미는 햇살이 어찌나 반갑던지. 하지만 체력은 소진되고 바람이 거세어 몸을 가누기가 버거웠다. 정상을 알리는 룽다와 타르초를 배경으로, 에베레스트 설산을 스틱으로 가리키며 어렵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때의 사진을 보면 퉁퉁 부은 얼굴이 험난했던 당시 상황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하산은 더욱 위험하고 미끄러웠다. 잠도 못 자고 무리를 해서일까,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내내 잘 먹고 고산증도 없었는데…. 고쿄 롯지에서 식사를 하고 잠시 숨을 돌렸다가 다시 하산 길에 오르자 조금씩 두통이 옅어졌다. 해가 어둑어둑해서야 마체헤르모에 도착했는데, 13시간 넘게 걸었던 고된 날이었다. 저녁식사도 먹는 둥 마는 둥 씻지도 못한 채 잠자리에 들었다.
히말라야에서 길을 잃으면 말똥을 따라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말뿐만 아니라 말과 야크를 교접한 좁교와 야크들이 등짐을 메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내린다. 짐승들은 목에 종 하나씩 매달고 오가는데, 종소리가 들리면 산길 안쪽으로 피해야 한다. 그 종소리가 여간 낭랑할 수 없다. 허나 짐승 무리가 가까이 오면 고약한 냄새와 된 숨을 뱉어내는 푸악질과 흙먼지가 한바탕 공기를 휩쓸고 지나간다. 어찌 힘들지 않겠는가. 하필이면 히말라야 산자락에 살아서 뿌리칠 수도 벗어날 수도 없이 등짐을 날라야 하는 짐승들. 그 히말라야 종소리 낭랑하게 울리면 마음이 먼저 고개 숙이고 길을 비켜주곤 했다.
고산마을 사람들의 삶도 이와 다르지 않다. 척박한 자연 환경에 굴하지 않고 저마다의 삶을 바지런히 일구어간다. 한겨울에도 맨손으로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야크 똥을 주워 땔감으로 삼는다. 가파른 산자락을 일구어 감자와 배추를 심는다. 화려한 문명의 혜택과는 조금 먼 삶이지만, 그들의 소박한 하루에는 질긴 생의 기운이 꿈틀거린다. 올라가면 머리가 아프고 내려오면 다리가 아픈 히말라야를 우리가 걷는 이유도 어쩌면 여기에 있는지 모른다. 때로 번아웃이 찾아오는 삶의 고단함과 무심하게 반복되는 일상의 권태를 잠시 내려놓게 하는 것. 그곳에는 맑고 거친 바람처럼 몸과 마음을 씻어주는 생의 기운이 있다.
히말라야를 다녀온 뒤에도 산행과 걷기는 삶의 루틴으로 남았다. 운동을 멀리하던 나에게는 가히 혁명적인 변화다. 산을 찾아 걷는 일에 점점 마음을 빼앗기다 보니, 일은 갈수록 버겁고 재미가 없다. 일하기 위해 운동을 시작했는데, 어느새 산에 가기 위해 일을 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무엇이 먼저이든 이 둘 사이의 균형을 잘 맞추며 살아가야 하리라. 21년째 ‘애지시선’ 시리즈 책임편집자로 시집을 만들고, 예술 강사로, 또 시인으로 살아오면서 어느 하나 포기하지 않고 여기까지 왔다. 앞으로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내 깜냥껏 내 삶을 꾸려갈 것이다. 가끔은 산에 다니고. 책을 읽고 시나 쓰며 살면 좋겠다. 그런 소망 하나쯤 투정처럼 품고 살아도 좋지 않겠는가.
결국 내가 산을 찾는 것은 운동을 위해서가 아니라 삶의 고단함에 지지 않기 위해, 내 일도 성실하게 하루를 살아낼 마음을 얻기 위해서다. 오늘도 한 걸음씩 산길에 나를 맡기며 그 길 끝에는 정상보다 더 깊어진 나 자신이 조용히 기다리고 있다.
함순례 충북 보은 출생. 1993년 《시와사회》 등단. 시집 『구석으로부터』 외. 아름다운작가상 수상.
나무의 발자국처럼 멀리가는 마음
강 미 정
어릴 때 걷지 않고도 멀리가는 마음이 생긴 사건이 몇 있었다. 여름밤 모깃불을 피운 마당의 평상에 온 가족이 함께 누워 은빛 가루를 뿌리며 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북두칠성을 찾곤 했는데 어쩌다 새벽에 깨어 하늘을 보면 저녁에 보았던 별자리가 놀랍게도 방향이 바뀌어 있었다. 밤하늘을 쉬지 않고 걸었을 저 별. 어린 마음이었지만 그 별을 보며 멀리가는 마음이 생겼다.
또 하나는 우리 동네에서 저 먼 아랫마을을 보면 밤마다 반짝이는 불빛이 있었다. 초록색과 빨간색 불빛이 교대로 한 번 반짝이거나 두 번 연달아 반짝이기도 했다. 저 불빛은 무엇일까 무척 궁금했는데, 저곳은 비행장이며 비행기 조종사에게 비행장이 있는 것을 알려주기 위해 불빛이 반짝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비행기를 타고 다른 나라로 멀리 갈 수 있는 곳. 그때부터 걷지 않고도 멀리가는 마음을 간직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둥치가 아주 굵은 나무가 동네 중앙에 있었다. 여름엔 그 굵은 나무 그늘 아래에 동네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장기를 두고 낮잠을 자고 채소를 다듬곤 했다. 나무 그늘이 사랑방과 놀이터 같았다. 나무는 가지를 펴서 사람들을 품고 있는 모습이었다. 사람들이 이 나무는 하늘로 뻗은 가지보다 땅속을 뿌리가 더 멀리 걸어갔을 거라는 말을 했다. 아, 나무도 멀리가는 마음이 있구나 싶었다.
학교 다닐 때는 초중고 모두 15리가 넘는 길을 걸어서 다녔다. 별과 비행기와 나무가 걸어나간 길을 생각하면 내가 걷는 길은 먼 길도 아니었다. 같은 학년의 여학생이 나 혼자뿐이어서 나는 혼자 15리 길을 걸었다. 그 길에서 국어책을 꺼내 읽고 희곡에 나오는 사람의 모든 역할을 나 혼자 해내기도 했다. 새 울음 소리를 흉내내며 가지런히 뻗어나간 작은 나뭇잎의 잎맥을 그리기도 했다. 바람이 불면 물결처럼 몸을 뉘었다가 일어서는 층층 논의 모를 하염없이 바라보기도 했다. 혼자였기에 나는 마음껏 놀 수 있었고 마음껏 혼자였기에 풀과 나무와 바위와 새와 하늘이 조그만 발자국으로 나와 함께 걸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고등학생을 둔 어른이 되어 횡단보도를 건너려고 서있었다. 갑자기 물소리가 났고 나는 물 속에 가라앉았다. 순간 모든 소리가 끊기고 조용해졌다. 짧은 순간이었는데 나는 고작 왕복2차선 짧은 도로를 건너지 못하고 쓰러졌던 것이다. 저혈압. 규칙적인 식사와 충분한 잠, 매일 조금씩 걸어보라고 했다. 내 삶의 전 과정이 걷기였는데 정작 나의 삶은 걷기만 쏙 뺀 상태로 정신 없이 바쁘게 살며 여기까지 왔구나 싶었다.어린 시절의 둥치 굵은 나무가 생각났다. 그래, 잃어버렸던 나무의 발자국처럼 걷자.
처음엔 집 앞의 700m도 안되는 수로왕비릉과 구지봉까지 걸었다. 중간에 여러 번 쉬며 천천히 걸었다. 그렇게 매일 6개월을 걸어 김해국립박물관, 대성동 고분박물관, 연지동원까지 왕복해서 걸을 수 있었다. 조금씩 발걸음이 쌓이고 다리에 힘이 올랐다. 연지공원 둘레길을 처음엔 ¼ 정도 걷고 다음 ½, 다시 ¾ 걷기를 반복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완주. 비가 오면 우산을 쓰고 걸었다. 오직 몸의 근력과 몸의 기력을 다지기 위해 맹목적 걷기였다. 주위의 나무와 바람과 하늘 모두를 증발시키는 맹목이었다. 오직 걷는 몸에만 집중하는 맹목. 걷는 고통이 좀 익숙해졌을 때 ‘왕후의 노을’을 보기 위해 만장대에 오를 수 있었다. 삶은 자신의 자리에 다시 서는 일이 가장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이었다.
삶터와 일터를 경주로 옮긴 후 집에서 가정교사 학원을 열었다. 오전엔 밀린 집안일을 하고 오후엔 수업, 밤엔 오늘 수업한 교재의 피드백과 다음날 수업준비로 바빠 집밖을 나가보지 못하는 삶이 이어졌다. 낯선 곳이었고 때때로 내가 없거나 나를 찾을 수 없는 나날이었다. 나의 발은 길을 끊은 듯 했다. 나무를 보고 걸으면 순해지던 내 마음에 짜증과 미움이 생겼고, 누가 내 몸의 기력을 쪽쪽 빨아먹는 것 같았다. 나의 육체적 정신적 에너지가 남김없이 다 빨린 듯 했을 때 나는 병원에서 두 번의 큰수술을 하고 긴 병원 생활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 왔다. 오래 앓은 뒤 만나는 세상은 고맙기도 하고 좌절감이 일기도 했다. 보도블록의 틈새를 비집고 싹을 틔운 작은 풀씨를 보고도 눈물이 솟았다. 생이란 빈틈이 없는 것이었다.
다시 걸었다. 외로워서 걷고 낯설어서 걷고 지금의 내 삶을 내가 만들었다는 자괴감 때문에 걸었다. 참고 견디기만 하다다가 병 만들어서 치료받으러 가는 일을 다시는 만들지 않으려고 걸었다. 경주시내로 나가 대릉원 첨성대 국립경주박물관 안압지 황룡사지 반월성 삼릉숲을 걷고 왔다. 남산 곳곳에 흩어져 있는 불상과 탑을 찾으며 남산을 올랐다. 밖을 향해 내 발길이 쉬엄쉬엄 나아가는 걷기란, 나를 마주보기 위한 시간을 내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란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그때부터 내가 걸으며 의미있게 다가온 풍경을 사진으로 남겼고, 사진과 함께 내가 걸었던 발길에 대한 짧은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다. 이것으로 《시인뉴스포엠》에 <강미정의 Photo Poem>을 연재하게 되었다.
포토포엠에 쓸 사진을 찍는 일이 많아지면서 산행을 자주 갔다. 가까운 산부터 먼 산으로. 우리나라 100대 명산이라 불리는 곳으로. 진달래와 철쭉, 단풍과 상고대를 보기 위해 산을 올랐다. 나에게서 완전히 사멸되어 없는 줄 알았던 마음에 얇은 꽃잎을 머금은 꽃이 담기고 잎맥 도드라진 나뭇잎이 바람에 살랑였다. 아름다운 눈꽃이 최선을 다해 녹는 것에 눈을 맞추는 내가 있었다.
황매산 모산재 바위 틈에서 꽃을 피운 진달래와 소백산 주목나무의 죽어서도 의연한 자태, 덕유산의 햐얀 눈꽃 상고대, 설악산의 우람한 울산바위, 숨이 넘어갈 듯하던 가파르던 금오산 할딱고개, 안개 속에서 커다란 바위가 걸어다니는 듯하던 합천 남산 제일봉, 마의산 암마이봉에서 바라보던 수마이봉, 콩밭 메는 슬픈 노래 가사가 있는 칠갑산, 둥글게 휘돌아가는 섬진강을 보았던 노고단, 바위에 아슬하게 잔도길을 엮어놨던 순창 용궐산, 성판악 탐방로로 올라가서 관음사 탐방로로 내려왔던 한라산의 기나긴 등산로를 걸으며 나는 내 마음의 모난 것이 무뎌지는 것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간 너무 낭비하며 게으르게 써먹은 내 육신에게 집중해보는 시간이기도 했고, 꽉 막혀 이야기가 통하지 않던 나와 내가 서로 만남의 악수를 나누는 시간기도 했다.
걷기에 빈틈을 보이면, 내 몸은 잡풀이 무성하게 자란 것 같았고 종일 머리가 아파 일상이 토막나곤 했다. 폭우 속에서 자동차에 갇혀 자동차와 함께 물에 잠겼던 교통사고가 있었는데 그후 악몽에 시달리며 잠을 이루지 못하고 걷기도 산행도 멈추게 되었다. 걷기의 빈틈이었다. 종일 두통과 피로감에 불면증에 시달리던 나에게 고혈압이 왔고, 다시 걷기 처방이 내려졌다. 고혈압 가족력이 있었기에 나는 두려웠다. 아픈 가족을 돌보는 일의 지난함을 지금도 겪고 있기에 더욱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 했다. 예전처럼 함부로 내 몸을 홀대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이때부터 매일 무조건 걷기를 했다. 동네 뒷산의 둘레길을 걸었다. 오로지 나 혼자 걸어야 했다. 하루 만보 걷기는 나를 만드는 시간이라는 타이틀을 붙였다.
여름엔 오전 7시 30분 근처에 걷기 시작했고 겨울엔 오전 9시 안팍이면 걸었다. 때때로 쓰레기봉투를 들고 내 발길이 지나는 곳의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아침의 숲은 새들의 노래소리로 생동했고 밤 사이 반으로 접혀있던 산책로를 가장 먼저 펼치고 챙기질한 멧돼지의 흔적을 만나기도 했다. 내 발자국 소리에 놀라 후다닥 몸을 숨긴 야생의 발자국 소리도 들렸다. 나무잎의 술렁임과 들꽃의 반짝임, 내 가 무심코 자연 속으로 내 몸을 밀어넣는 순간, 산은 모두의 산이 되고 자연은 모두의 자연이 된다는 것을 알아차린다.
걷는 일은 나에게 침묵과 휴식을 주었고 생각의 단순함과 글을 쓸 수 있는 씨앗을 잉태하는 시간을 제공해 주었다. 느리게 걷는 나의 무질서가 무질서하게 보이는 자연의 질서정연함을 보기도 했다. 두 발에 자신을 맡기고 자신의 발걸음에서 자신의 길이 태어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도 걷기 덕분이다. 나를 일으켜 세운 첫 힘은 걷기였고 그 걷기가 나를 조각한 것임을 이제 나는 안다. 걷기는 내 발끝에서 생겨난 길을 내가 걸으며 나를 조각한 것. 만보 걷기는 치료 걷기이고 나만의 명상 걷기였다.
걷기의 처음이 비록 몸의 재활과 몸의 기능을 찾기 위해 걷고 걸었지만 걸으면서 나무를 흔들며 불어오는 바람에 숲이 움직이는 것을 보았고, 나무가 느리게 몸을 바꾸는 것을 보았고 새의 울음소리에서 평화로운 느낌과 다급함을 읽어내기도 했다. 핸드폰 녹음기로 수집한 새 소리와 꽃 나무 사진, 낙엽 속에서 졸졸 흐르는 샘물. 보이는 것이 더 많았고 들리는 것이 더 많아서 걸을 때는 집중의 힘이 높아졌고 나무가 있는 곳에서는 더욱 집중이 잘 되었다. 어느 책에서 읽었던가. ‘수양버드나무에선 소나기 소리가 들린다’는 구절이 생각나서 나도 그 소나기 소리 들어보려고 저수지 물가의 수양버드나무에 귀를 대보기도 했다. 그래서 걷는 시간은 나에게 쉬는 시간이기도 했고 멀리가는 발걸음이기도 했다. 나무처럼 비행기처럼 별처럼. ‘지구에서 가장 멀리 있는 별에서 방출된 빛은 아직 지구에 도달하지 않았다.’ 문장처럼 내가 멀리가는 마음으로 나무의 발자국으로 한 발자국씩 나에게로 오고 있는 중이라는 것을 믿는다. 아직도 꾸준한 걷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몸이 아플 때마다 느낀다.
강미정 경남 김해 출생. 1994년 《시문학》 등단. 시집 『검은 잉크로 쓴 분홍』 외 . 산문집 공저 『로맨스보다 예술』 있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