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식사 전까지 호텔 주변을 둘러보러 나가니 호텔 입구에는 security 복장을 한 무장경비원 서너명이 지키고 있고 조금 열려있는 호텔 정문 밖에는 역시 무장 경찰들이 거리 곳곳에 보인다. 내가 호텔 정문을 나서자 경비원 한 명이 다가와 손으로 X자를 그리며 밖으로 나가면 안 된다고 제지한다. 요즘 아프가니스탄 주류 민족인 파슈툰족의 테러로 배후인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간의 분쟁이 격화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그 때문인 것 같다.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분쟁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영국령 인도제국 시절에 영국이 아프가니스탄 점령에 실패하면서, 아프가니스탄의 바라크자이 왕조는 독립을 유지하고 파슈툰 족의 거주지는 영국이 근 듀랜드 라인(Durand Line)에 의해 양분되었다. 사실 파키스탄/아프가니스탄처럼 다민족으로 구성된 나라에서 지역분쟁은 곧 민족분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오늘날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국경은 1893년 영국이 멋대로 설정한 듀랜드 라인을 그대로 이어받은 것인데, 이 경계선이라는 게 애초부터 아프가니스탄의 주류민족인 파슈툰(Pashtun)을 분할시켜 그 세력을 약화시키려는 데에 의도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아프간의 1/3가량의 영토와 파슈툰족 절반 이상이 파키스탄에 편입되었다. 즉 탈레반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는 북부지방의 주민들은 불과 백년전까지만 해도 파슈툰족으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었는데 대뜸 영국에 의해서 파키스탄 사람이 되었으니 펀자브인들로 이루어진 파키스탄 중앙정부를 좋아하지도 않고 그들의 압제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알다시피 탈레반은 이슬람 원리주의 성향의 파슈툰 족이 주류인 테러단체다. 지금의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 양국관계가 갈등이 심해진 보다 직접적인 이유는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 이후 탈레반이 부상했기 때문이다. 아프가니스탄인의 근본주의 성향도 파키스탄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생각하지만 반 탈레반 성향이 있는 경우에는 종종 파키스탄 국기를 불태우는 행사까지도 벌일 정도로 극도로 증오하는 상황이다.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지지자들 입장도 별로 호의적이지 않은데다 파키스탄이 자국을 반식민지로 예속화하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파키스탄인의 펀자브인, 신드인들 입장에서도 북부 국경을 넘어오는 탈레반 때문에 자국의 치안이 불안해져 해외투자가 안 이루어진다고 불만이다. 실제 아프가니스탄 인이나 파키스탄 인들에게 물어봐도 양국 사이의 국민감정이 대단히 좋지 않다는 점을 금방 알 수가 있다고 한다. 당연히 테러는 일어나면 안 되지만 일부 언론에서 종종 테러를 이슬람에 의해 벌어진 테러라는 식으로 얄팍하게 호도하고 역사, 문화, 지리, 종교적 맥락이 완전히 제거된 채 일종의 가십성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에 경계해야 한다. 무슬림들은 삶이 종교다. 우리나라는 국교가 없어 이해하기 힘들지만 삶이 종교인 경우 모든 것들이 종교의 일부분이기에 그들이 사용하는 언어, 행동이 종교적일 수 밖에 없다. 이런 부분이 과격해지는 원인이 될 수도 있지만 그들이 세상에 요구할 때도 종교의 언어를 구사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론들은 그것들을 겉보기 그대로 받아 적을 것이 아니라 그 속내를 읽어내야 한다.
오늘은 아침 6시 반 아침을 먹고 호텔에서 환전을 한 다음 9시에 우리가 어제 타고 온 소형버스에 탑승해 라호르 시내를 돌아 볼 계획이다. 호텔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고 간단하게 외출 준비를 해 로비로 내려오니 환전상이 와 기다리고 있다. 150달러를 달러 당 270루피에 환전을 하니 40,500루피다. 이중 25,000루피를 오늘 라호르 박물관과 라호르 성, 그리고 내일 탁실라 박물관과 시르캅 유적지 입장료로 미리 낸다. 파키스탄은 내국인과 외국인의 입장료가 다른데 외국인 입장료가 내국인에 비해 월등히 비싸단다.
오전에 델리 게이트(Delhi Gate)와 와지르 칸 모스크(Wazir Khan Mosque), 라호르 성(Lahore Fort)과 그 앞에 있는 바드샤히 모스크(Badshahi Mosque)를 둘러 본 다음 점심을 먹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하면서 뜨거운 낮의 더위를 피한 후 오후 4시 인도와 파키스탄 국경인 와가 게이트(Waga Gate)로 이동해 유명한 국기하기식을 보러 갈 예정이다.
여기서 라호르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라호르는 카라치 다음으로 파키스탄 제2의 도시로 파키스탄 북동부에 있는 펀자브 주의 주도이며 파키스탄의 정치, 경제, 교통 및 교육의 중심지 중 하나다. 인도국경 근처 인더스강 지류인 라비강을 따라 형성된 인더스 평원 북부에 자리잡고 있다. 라호르(Lahore)에 대해서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전 역사는 별로 알려진 게 없다. 힌두전설에는 라마의 아들인 라바 또는 로가 세웠다고 전해 로하와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도 하고 인근 라비강 혹은 대장장이를 뜻하는 로하르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1152~86년에는 가즈니왕조의 수도였고 14세기 수차례 몽골족의 침략을 받았으며 1524년에는 무굴제국 바부르 황제의 군대에 점령되어 무굴제국의 통치를 받으면서 크게 번성하기 시작해 황족의 거처가 되는 등 샤쟈한 통치 시 크게 발전했으나 아우랑제브가 통치하면서 쇠퇴했다. 당시 명나라의 베이징, 오스만제국의 이스탄불과 함께 세계 3대 도시였다. 아우랑제브 사후 시크교도인 란지트 싱이 왕위를 이을 때까지 라호르에서 시크교도의 폭동이 여러 번 일어났다. 나디르샤의 침략을 받아 무굴제국의 전초기지가 되기도 했으나 이후 시크교도가 융성함에 따라 시크교도 우두머리인 란지트 싱(1799~1839 재위)이 다스릴 때 다시 한 번 강력한 행정중심지로 떠올랐다가 싱이 죽은 후에 쇠퇴했다. 1849년부터 영국의 지배를 받았으나 1949년 인도가 독립하면서 서(西)펀자브 주(후에는 펀자브 주가 됨)의 주도가 되었고 1955년에는 새로 생겨난 서파키스탄 주의 주도가 되었다. 1970년 서파키스탄 주가 펀자브 주로 재편되면서 펀자브 주의 주도로 선정되었다. 파키스탄 독립선언이 발표된 곳이며, 파키스탄 독립 직후 가장 큰 도시였다. 그리고 독립을 전후해서 힌두교도와 시크교도, 무슬림간의 일어났던 많은 시위와 폭동 등, 파키스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2023년 기준으로 도시의 인구는 1,300만 명이고 인구 밀집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바로 인접해 있는 사히왈 구와 합산하면 2011년을 기준으로 2,200만이 넘어간다. 오래된 도시로 유적지도 많고, 특히 도시 내 샬리마르 정원과 라호르 성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오전 9시 호텔을 출발한다. 또 시내 도로는 희뿌연 먼지가 날려 숨쉬기가 불편한데 라호르는 세계에서 가장 공기가 안 좋기로 유명하며 이게 다 스모그란다. 환경 대책이 필요한 것 같다. 도처에 쓰레기가 보이고 사람들도 아무데나 쓰레기를 버리고 수많은 릭샤에서 매연을 뿜어내니 공기 질이 나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인도와 인접해 있어 그런지 도시의 모습도 비슷해 보인다. 길가에 보이는 풍경이 인도 거리와 다를 바가 없으나 사람들의 복장이 서로 다르다. 인도는 힌두교를 믿기 때문에 남녀가 같이 걸어가는 것이라든가, 같이 있는 것, 그리고 복장 등에 제한을 두지 않지만, 파키스탄은 이슬람교를 믿는 국가로 성인 남녀가 같이 있는 것이라든가 복장 등이 이슬람 율법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인도와는 다른 분위기이며, 호텔 로비 같은 곳에 여직원들이 없다. 스모그로 희뿌연 시내 잠시 달리니 델리 게이트 입구 도로 양 옆으로 매우 지저분해 보이는 바자르(Akbari Mandi bazar)가 길게 보이는데 헌옷과 헌 신발을 수북히 쌓아놓고 파는 모습이 많이 보인다.
델리 게이트는 무굴 제국의 악바르 황제 때 라호르를 수도로 삼으면서 델리 방향으로 향하는 게이트를 세워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델리 게이트로 가는 도로 한 견에는 남자 어른 몇 명이 낙타를 정성스럽게 목욕시키고 있는데 내일이 이슬람 축제 중 하나로 그 때 희생 제물로 바칠 제물이란다. 델리 게이트를 통과하여 안으로 들어가니 시장 통이다. 그런데 시장 안은 일요일이라 문 닫은 가게가 대부분으로 가끔 골목 식당 등 몇몇 가게 만 문을 열어 놓고 있다. 골목은 좁고 환경은 열악하다. 얼키고 설킨 전선 케이블이 주렁주렁 매달려있는 전봇대가 10개 가까이 시장 골목 한가운데 모여 있다.
델리게이트에서 시장 통을 지나 250여m쯤 걸어가니 왼쪽에 와지르 칸 모스크(Wazir Khan Mosque, Shahi Hammam라고도 한다)가 보인다. 골목 끝에 탁 트인 광장과 3개의 첨탑이 우뚝 솟은 모스크가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캘리그라피로 장식된 모스크의 외관은 빛이 바랜긴 했어도 화려하다. 입구에서 신발을 맡기고 맨발로 태양열에 달궈진 뜨거운 마당을 가로질러 들어간다. 이 모스크는 미란 바드샤의 무덤을 감싸기 위해 하킴 일람-우드-딘 안사리(Wazir Khan)의 의뢰로 샤 자한 치세 중인 1634년 또는 1635년에 시작되어 약 7년 만에 완공되었다. 미란 바드샤는 존경받는 수피 성인으로, 그의 무덤은 현재 모스크 안뜰에 있다. 와지르 칸 모스크가 건설되기 전, 이 곳에는 성인을 기리는 오래된 성지가 있었다. 와지르 칸 모스크는 라호르의 회중 금요예배를 위한 주요 모스크로서 오래된 마리암 자마니 모스크를 대체했다.
와지르 칸 모스크는 정교하고 광범위한 장식으로 유명한데 모스크는 높은 받침대 위에 세워졌으며, 주 출입구는 와지르 칸 초크로 열려 있다. 와지르 칸 모스크의 외곽 둘레는 85mx 48m이며, 이 건물은 칸카르 석회에 쌓은 벽돌로 지어졌다. 모스크 내부는 무굴과 펀자브 전통양식을 결합한 프레스코화로, 외부는 카시-카리(kashi-kari)라 불리는 복잡한 펀자브 타일 모자이크로 장식되어 있다. 모스크의 여러 아치에는 무카르나스(muqarnas)가 장식되어 있는데 와지르 칸 초크를 마주한 모스크 입구의 아치형 벽감은 꽃무늬로 장식되어 있으며, 스페인 알함브라와 이란의 여러 제국 모스크에서 발견되는 건축요소인 무카르나스(muqarnas)의 초기 예 중 하나라고 한다. 모스크 안뜰에는 이슬람 의식용 세정용 우두(wudu)에 사용되는 작은 연못과 14세기 수피 성인 사이드 무함마드 이샤크 가즈루니(Miran Badshah로도 알려짐)의 무덤이 안치된 지하 납골당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