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을 거리
4․19 혁명
(http://www.419revolution.or.kr/index1.html)
▶ 4․19혁명의 전개 과정
4․19혁명은 1960년 3․15부정선거를 규탄하는 학생, 시민의 봉기에서 촉발되었으나, 그 저변에는 누적된 국민들의 울분과 정치적 불신감이 근원이 되었습니다.
일제의 식민통치에서 광복된 우리 신생 대한민국의 이승만 초대정권은 친일세력의 잔재를 청산하지 않은채 그들을 집권세력으로 재등장시키고, 일인독재를 위한 권력의 우상화, 종신집권을 위한 발췌개헌, 사사오입파동, 반대세력에 대한 폭력탄압, 언론기관의 폐쇄, 정치사찰 등 절대권력을 행사하여 민주공화국의 기본질서를 파괴하였습니다.
주권자인 국민의 기본권과 자유는 유린되었으며 거듭되는 경제정책의 실패로 국민의 생활은 도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이와같은 정치행태로 인하여 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가 폭발적인 대중운동의 거대한 불길로 타올랐으니, 이 항거는 1960년 2월 28일 대구시내 고등학생들의 대규모 가두진출을 시작으로 3월 중순까지 전국 대도시에서 지속적으로 전개되었습니다.
그해 3월 15일, 공정한 선거로는 독재정권의 유지가 어려운 이승만과 그 일당 자유당이 권, 금권, 폭력단체 등을 동원하여 갖가지 부정선거를 자행하였으며, 마산에서 사상 최악의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격렬한 시민봉기가 일어났습니다.
자유와 민주를 염원하는 주권자의 정의의 함성을 독재자는 총격을 가해 다수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만행을 저질렀으며 무고한 학생과 시민을 공산당으로 몰아 형언할 수 없는 고문을 자행했습니다.
4월 11일, 1차 마산시위에서 실종되었던 김주열군이 눈에 최류탄이 박힌채 참혹한 시체로 발견됨으로써 이에 분노한 시민들의 노도와 같은 제2차 의거가 다시 일어나 4․19혁명의 분화구를 열어 놓았습니다.
4월 18일 고려대학교의 4천여 학생은 "진정한 민주이념의 쟁취를 위하여 봉화를 높이 들자"는 선언문을 낭독하고 "마산사건의 책임자 처벌"을 주장하며 국회의사당까지 진출하였습니다. 하지만 많은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귀교하는 도중 정치폭력배의 습격을 받아 50여명이 중경상을 당하는 유혈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고대생들의 평화적 시위에 대한 깡패들의 무력진압은 4․19총궐기의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4월 19일 깡패들의 데모대 습격에 경악과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전국의 시민과 학생이 총궐기하였으며, 시위의 성격도 이제까지의 "부정선거 항의"투쟁에서 이제는 "이승만 하야와 독재정권 타도"를 위한 혁명적 투쟁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서울에서는 동국대를 중심으로 한 학생과 시민들이 이승만 대통령과 면담을 요구하며 경무대로 향하던중 경찰의 무차별 총격을 받아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습니다.
빼앗긴 주권을 되찾으려는 주권자의 정의의 함성을 독재정권은 총칼을 앞세운 무력으로 탄압하였으며, 서울, 부산 등 5개 대도시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였습니다.
4월 23일, 야당 소속의 장면 부통령은 "권력을 갈취하여 압제와 폭정을 계속하는 이승만 정부에게 경종을 울리고, 자유, 민주의 정신을 소생시키기 위해 부통령직을 떠나 민주투쟁의 전열에서 국민들과 더불어 최후 승리의 날까지 분투할 것"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하였습니다.
4월 24일에는 이기붕이 부통령 당선사퇴와 함께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고 이승만은 자유당 총재직을 사임하는 미봉책을 썼습니다.
4월 25일 독재정권의 학살만행에 분노한 서울시내 각대학 교수단 300여명은 "학생들의 궐기는 정의감의 발로이며 불의와 부정에 항거하는 민족정기의 표현이다. 대통령이하 3부요인은 퇴진하라"는 선언문을 채택하고 학생의 피에 보답하라는 플랭카드를 앞세우고 시위를 감행하였습니다.
이에 다시 수많은 학생과 시민들의 항쟁의 불길이 타올랐습니다. 그러나 집권야욕에 여념이 없던 독재자는 이 시위대에 또다시 총격을 가해 200여명의 사상자를 내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4월 26일 전날에 이어 서울시내를 가득 메운 대규모의 시위군중들은 총칼 앞에서도 굽히지 않고 더욱 완강하게 투쟁하였으며, 이승만 독재자는 마침내 굴복하고 대통령직에서 하야하였습니다.
2․28 대구시위에서 시작된 전 국민적 투쟁에 의해 12년간의 독재정권이 막을 내린 민권승리의 날이었습니다.
4․19혁명의 민주제단에는 186명의 꽃다운 젊은 생명이 민주주권의 수호신으로 산화하였으며, 6,400여명의 중경상자가 4월의 민주광장에 선혈을 뿌렸습니다.
4․19혁명은, 자유, 민주, 정의, 진리를 실현하기 위한 민족정기의 발현이며 부정과 부패를 척결하고 정치도의의 확립과 자유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성스러운 투쟁이었습니다.
4․19혁명은 국민 위에 군림하며 집권을 연장하려는 권위주의적 독재정권을 주권자의 힘으로 응징한 정의의 투쟁이었습니다.
숭고한 4․19혁명은 민족정기의 전통을 이어받은 청년학도의 희생을 각오한 용기에 전국민이 거족적으로 호응하여 우리민족에게 새힘과 희망을 가져다 준 민권수호운동이었습니다.
그러므로 4․19혁명의 정신과 이념은 후세에 길이 계승되어 승화시켜 나가야 될 것입니다.
▷4․19혁명의 계승 방향
186명의 민주열사 산화, 6천여명 부상자의 희생, 그리고 전 국민의 고난에 찬 투쟁 끝에 4․19혁명을 쟁취하였다.
그러나 5․16군사쿠데타에 의해 우리 민족은 또다시 기나긴 독재의 암흑을 겪어야 했으며, 70년대의 유신반대투쟁, 80년 5․18광주민중항쟁과 87년 6․29항쟁 등 지난한 투쟁과 희생을 다시 치루어야 했다.
하지만 아직도 4․19혁명이 지향했던 자유․민주․정의와 민족의 통일은 완성되지 않고 있다.
아직도 미완성인 4․19혁명의 이념을 실현하여, 자유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민주주의가 꽃처럼 만발한 조국, 그리고 남과 북이 하나되는 통일조국을 건설하는 역사적 책무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몫으로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