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특집 문학의 창을 비추는 등대 윤정구 시인
유리시경琉璃詩境
-윤정구 시인 인터뷰
임 경 하 시인
바람은 아직 차갑지만 버드나무 마른 가지마다 연둣빛이 번져오는 3월. 햇빛 좋은 봄날에 윤정구 시인을 사당역에서 만났다. 몇 년 전 「시인 만세」 영상을 찍을 때 뵌 이후 두 번째 만남이다. 윤정구 시인은 약속 시간보다 30분이나 일찍 도착해 영풍문고 앞 빨간 의자에 학생처럼 앉아 있었다. 뵌 지가 오래되어 건강은 괜찮으신지 생각했었는데, 짙은 먹색 바바리코트 차림의 시인은 여전해 보였다. 파스텔시티 4층에서 간단히 점심을 먹고 1층에 있는 찻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통차를 좋아하시지 않을까 싶었는데 커피를 좋아한다고 하신다. 뜨거운 아메리카노 두 잔을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솔안
윤정구 시인의 시 「풀의 시집」에는 “풋풋한 고향 산의 향기를 모아 묶은 마른 풀의 시집 한번 엮었으면” 하는 구절이 있다. 시인의 고향 이야기부터 여쭈었다.
“제 고향은 경기도 평택군, 서해대교가 시작되는 바닷가 마을입니다. 소나무가 많은 고장이라 동네 이름이 솔안이었지요. 아랫마을 스무 호, 윗마을 스무 호가 오순도순 함께 사는 작은 마을이었습니다. 아랫마을과 윗마을이 한 이장님을 두고 농사일을 함께하고, 세배나 둘레놀이나, 마을회의 같은 일도 함께하는 공동체였지요.
솔안이라는 이름이 좋아서 한글서예에 아호로 쓰고 있습니다. 한문을 쓸 때는 ‘수인(樹人)’을 사용합니다.”
나무 樹, 사람 人. 나무 같은 사람이라는 뜻의 수여(樹如)가 어떤가 여쭈었더니, 초정 김상옥 선생님께서 ‘검여(劍如)나 운여(雲如)는 좋으나 수여는 약하다’고 하시며 그 자리에서 아호를 지어주셨다고 한다.
-부모님은 어떤 분이셨어요. 선생님 시에서 보면 부모님에 대한 마음이 각별하신 것 같습니다.
“제 아버지는 1900년, 고종황제 때 태어나셨습니다. 어머니와 함께 평생 농사를 지으며 재산을 일구고, 7남매를 키우셨지요. 그야말로 척박한 환경에 어려운 시절을 성실히 사시면서, 오로지 자식들이 잘되기를 소망하며, 평생을 희생하셨습니다. 부모님을 생각하면 늘 애틋하고, 가슴이 뭉클해져서, 자세를 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두 번 말씀하는 법 없이 “어흠, 어흠” 낮은 기침 하시던 아버지와 까만 무쇠솥에 “그윽하게 익히고 다린 무릇”을 하얀 백자 탕기에 담아 주시던 어머니를 그린 시를 읽은 적이 있다. 누구든 부모님 생각을 하면 그렇겠지만 서로 아끼고 그리워하는 마음이 전해져서 읽는 사람도 애틋해지는 시였다. 윤정구 시인은 2022년 출간한 『서정시선집』에서 “순박하고 곧은 성품의 아버지와 자애롭고 인정 많았던 어머니는 내 시의 시작점이었다.”라고 썼다.
글쓰기가 좋아진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어릴 때부터 글재주를 인정받았을 것 같다.
“초등학교 때에 가끔 글짓기 대회가 열렸는데, 그때마다 입상을 하곤 했습니다. 4학년부터는 특별활동을 하잖아요. 그때부터 문예부에 들어가 활동했고, 5학년 때 장원을 한 것이 자극이 되었구요. 중학교 때 등사판으로 밀어내는 교내 신문 뒷면에 제 동시가 굵은 글씨로 실리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못 가고 집안일을 도와야 했던 제가 국어 시간에 감상문을 써서 조회 시간에 읽었던 일도 있었구요. 국어 선생님과 함께 한글날 여주 영릉에서 열린 전국 백일장에 참가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그런 일들이 책 읽기를 좋아하고 내성적이었던 제게 글재주가 있는 건 아닐까, 하고 믿게 했었던 것 같습니다.”
시골에서 자랐기 때문에 유일한 재미가 학교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일이었다고 한다. 자연스럽게 문학책을 많이 읽게 되었고, 점점 더 문학에 깊이 빠져들게 되었던 셈이다.
문학
-문학을 전공하지 않으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시를 쓰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등단은 언제 하셨는지요.
“먹고 사는 일이 우선 중요한 과제였으므로 이공계로 진학했지만, 때가 되면 때려치우고 글을 써야지 하는 생각을 감추고 살았지요. 그런데 훌쩍 마흔 살이 가까워진 어느 날, 우연히 신문사 앞을 지나다가 문학 강좌 광고를 보게 되었어요. 정말로 가슴이 뛰었습니다. 그때 강사가 정진규 선생님이셨어요. 시가 뭔지도 모르던 제게 걸음마부터 가르쳐주셨지요. 그 후에 박제천 선생님을 만나 시 공부를 좀 더 깊이 있게 했습니다.
등단은 1994년 경산 선생님이 주간으로 계시던 『현대시학』으로 했어요. 심사는 정진규, 박제천, 김인환 시인이 하셨습니다.”
등단 후 1997년 윤정구 시인은 『대산문화재단』 창작 지원에 당선되어 첫 시집 『눈 속의 푸른 풀밭』을 상재했고, 2000년에는 『문예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두 번째 시집 『햇빛의 길을 보았니』 펴냈다. 시인은 운이 좋았다고 말했지만, 문득 어느 글에선가 읽은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모든 일에 정성을 다하지 않고, 이룰 수 있는 것은 없다.” 좋은 시를 쓰기 위해서는 끝없이 공부하고 사색하며 써야 한다고 했던 말도 생각났다.
-박제천 선생님과는 어떻게 만나셨습니까.
“등단 전인 1992년 대구에서 열린 『청구문화제』에 응모한 시가 입선되어 내려갔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같이 입선한 분 중 한 분이 ‘방산 선생님께 배우면, 한 시간에 한 편씩 시를 쓸 수 있다’고 하는 겁니다. 귀가 번쩍 켜지더라구요. 그해가 가기 전에 문학아카데미 교실을 찾아갔었지요. 그날부터 수업에 참여했습니다.”
-박제천 선생님께서 주관하시던 『문학과창작』에 「부채시로 안부를 묻다」를 오래 연재하셨지요. 어떤 작업이었나요.
“2019년 봄, 제가 써 드린 부채시를 보신 방산 선생님의 제안으로 여름호부터 연재를 시작했어요. 시인 한 분 한 분의 작품 가운데 의미있는 시를 골라 부채에 붓글씨로 쓰고, 각각 여덟 매 정도 분량의 산문을 함께 실었습니다. 2026년 봄호까지, 햇수로는 7년이 되었네요.”
-『문학의 창』 봄호에서 연재를 그만두신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부채에 쓰신 붓글씨도 좋았지만, 저는 곁들여 쓰신 글이 좋았는데 너무 아쉽습니다.
“100분을 코앞에 두고 멈추게 되어 저도 아쉬움이 큽니다. 차례가 다가오는 후배들에게 미안하기도 하지만, 최선을 다할 수 없을 때는 접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사람이 더 발전시키고, 이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야기하는 중에도 윤정구 시인은 앞에 놓인 A4용지에 무언가를 계속 쓰고 있었다.
유심히 보니 방금 한 말을 되새기듯, 말했던 몇몇 단어를 적고 있었다. 단어들과 기호들로 채워지고 있는 흰 종이, 말하면서도 생각은 더 깊은 곳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문득, 붓글씨는 언제 어떻게 시작했을까 궁금해졌다.
서예
“시골 중학교 시절 국어 선생님이자 문예반 지도교사였던 박용식 선생님께서 건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계시다가 충주 캠퍼스의 부총장까지 지내셨는데, 세배를 드리러 갈 때마다 ‘붓글씨는 수양도 되고 깊은 맛이 있으니, 더 늦기 전에 시작하라’고 권해주셨어요. 그래서 환갑이 되는 2007년 봄에 시작했습니다. 어느덧 30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네요. 세월처럼 무서운 것이 없습니다.”
윤정구 시인은 가방에서 짙은 청색 표지의 서첩 하나를 꺼냈다. 표지에는 『운정록雲井錄』이라 적혀 있었다. 몇 해 전 인터뷰 때 보물 1호라며 보여주셨던 그 책이었다.
“2000년을 전후해 『문학과 창작』에 특집으로 연재한 「첫 시집을 찾아서」 인터뷰를 맡은 적이 있어요. 그때 인터뷰한 선생님들의 친필을 모았습니다. 시 공부를 하는 한편 산문 훈련도 겸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자료를 찾아가며 여러 이름 있는 시인들을 찾아다니던 때였어요. 인사동에서 화선지 별책을 사서, 그 위에 글씨를 받기 시작했지요.
초정 김상옥 선생님을 필두로 구상, 최승범, 김춘수, 김종길, 조병화, 정진규, 김영태, 이제하, 허영자 선생님 등 여러분의 글씨를 받았습니다. 그렇게 모은 제 보물 1호는 중간에 멈추게 되어 미완성으로 남았습니다. 「첫 시집을 찾아서」는 그 후 『한국 현대 시인을 찾아서』라는 책으로 묶었습니다.”
윤정구 시인은 여섯 권의 시집과 한 권의 시선집을 펴냈는데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시집이 어떤 것인지 여쭈었더니 2022년에 출간한 서정시선집 『봄 여름 가을 겨울, 일편단심』을 꼽았다.
“역시 시인은 좋은 시가 씌어질 때 가장 행복하지 않을까요. 그러고 보니 그런 순간이 많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비록 전력투구해서 몰두하지 못했지만, 돌아보면 제 삶에 있어 시가 차지하는 비중은 생각보다 높습니다. 시인에게 시 세계를 구축하고 그 안에 질서를 세워 완성에 가까이 가는 일은, 먹고 사는 일만큼 중요합니다.”
근황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요.
“한글 글씨를 배우러 한나절, 한문 글씨 배우러 하루, 문인화 배우러 한나절, 국선도를 하러 이틀에 한 번씩 한 시간 정도 나갑니다. 그 외에는 이틀에 한 번쯤 집 앞산을 걸으며 컨디션 조절을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도서관에 가거나 친구들과 어울립니다.”
윤정구 시인은 주머니에서 두세 번 접힌 누런 종이를 꺼냈다. 빼곡히 글씨가 적힌 그 종이는 시집을 발송할 때 사용하는 봉투를 자른 것이었다. 산길을 걷다가 시가 생각나면 적는다고 했다. 시집이 오면 봉투를 버리지 않고 잘라두었다가 사용하는데, 여러 번 접어도 찢어지지 않아서 쓰기 좋을 듯했다. 사람들은 윤정구 시인을 두고 선비 같다고들 말한다. 모습뿐 아니라 생활하는 것도 청렴한 선비 같다.
인터뷰를 마치고 지하철역에서 윤정구 시인과 인사를 하고 헤어졌다, 가방 안에서 교통카드를 찾느라 잠시 멈춰 서 있었는데, 저만치 가던 걸음을 멈추고 이쪽을 바라보고 계셨다. 말씀을 많이 하는 분은 아니지만 참 다정한 분이라고 느꼈다.
윤정구 시인은 두 번째 시집 자서自序에서 이렇게 썼다.
“아아, 하나의 작품이라도 제대로 된 놈을 남길 수만 있다면!
꽃잎처럼 부드럽고, 나비처럼 자유로운 시! 구름처럼 포근하고, 바위처럼 단단한 시! 아니 가벼우면서도 가볍지 않고, 무거우면서도 무겁지 않은 시!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장대한 뜻과 발랄한 몸을 가진 시!
격치의 치열한 밤을 지내고도, 무심한 듯 한 걸음 뒤에서 느긋하게 기다리다가, 단칼에 진수를 버히는 그런 시인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인가.”
조선 후기의 문인이자 서예가인 자하 신위가 생각난다. 자하 신위는 시를 향한 맑고 고요한 마음의 지극한 경지를 유리시경琉璃詩境이라고 했다. 윤정구 시인의 시를 향한 마음이 그렇지 않은가. 오래 건강하셔서 불가능한 기적을 이루시길 바란다.
2016년 『문학과 창작』 등단
시집 『슬픔의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