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봉산 기슭에 자리한 만의사는 본래 화성군 동탄면 신리에 있던 고찰이었으나, 1669년(헌종10)에 우암 송시열선생의 이장지로 선정됨에 따라 현 위치로 옮겨 자리하게 되었다.
만의사가 처음 언제 누구에 의해서 세워졌는지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없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만의사의 연혁은 현재 일주문 옆에 세워져 있는 만의사사적비(萬儀寺事蹟碑)를 통해 비교적 상세히 알 수 있다.
폐허가 되어 있던 절은 고려시대에 와서 1284년에 정길(貞吉)스님과 현묵스님이 중창하였으며, 1313년에는 천태종의 진구사 주지였던 혼기(混基)대선사가 절을 새로 중건하였다. 그후 의선(義旋)스님이 뒤를 이어 중창불사를 이루고 천태종에 속하게 하였다.
1390년(공양왕 2)에는 신조(神照)스님이 절의 주지를 맡아 크게 중흥시켰다. 스님은 1388년(우왕 14) 이성계가 위화도에서 회군할 때 큰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이 공로로 사패를 받아 만의사와 그에 따른 노비를 영구히 신조스님의 법손에게 전하게 하였고, 또 토지 70결을 내려주어 절을 유지하는 비용으로 쓰도록 하였다. 이에 스님은 그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1391년에는 국가를 위한 소재도량을 7일 동안 열었으며, 1392년에는 330여 명의 천태종 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21일 동안 화엄법화법회를 열어 중생을 교화하고 국가의 복을 빌었다.
조선시대 중엽에는 사명당 유정스님의 제자인 선화(禪華)스님이 오랫동안 주석하였는데 1646년에 스님이 입적하시자 많은 사리가 나와 지해(智海), 보응(寶應) 두 스님이 부도를 세웠으며, 1669년에는 우암 송시열 묘의 이장지로 선정됨에 따라 부득이 사찰 건물을 현 위치로 옮기게 되었다.
1796년(정조 20)에 수원성곽이 중수되자 팔달문에 만의사의 종을 옮겨 달았으며, 1894년에는 지장전이 퇴락하여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판관상, 동자상 등을 화성 용주사로 옮겨 모셨다. 1911년에 선교양종 본산 용주사의 말사가 되었고, 1955년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의 말사가 되었다.
만의사 일주문
만의사 전경
미소가 아름다운 포대화상
만의사 봉서루
만의사 범종각
만의사 미륵블
만의사 대웅전
만의사 대웅전내
불단에는 삼세불(三世佛)로 중앙에는 현재불의 석가모니불좌상, 왼쪽의 협시는 과거불의 약사불좌상, 오른쪽에서는 미래불인 아미타불좌상을 모시고 있다. 뒤의 후불탱은 삼세불을 한 폭에 함께 그린 삼불회탱(三佛會幀)이 봉안되어 있다. 닫집과 유사하게 보이는 불단의 천정에는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이 그려져 있다. 삼세불의 얼굴은 사각형에 가깝고 귀는 어깨까지 늘어져 있다. 다리에 비하여 어깨가 좁은편으로 통견(通肩)을 걸치고 있으며, 팔과 결가부좌한 다리가 경직되어 있다.
만의사 삼층석탑
만의사 용궁전
만의사 용왕상
만의사 산신각
만의사 삼성각
만의사 극락전
만의사 극락전
만의사 천불전
만의사 천불전
만의사 지장보살상
만의사 요사채
만의사 관음전
만의사 찾아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기흥IC로 빠져나온 다음 사거리에서 제우스모텔이 있는 중앙길로 빠져 리베라CC 표지판을 따라 약 2km 정도를 가면 중리 다리가 있고, 다리를 건너서 좌회전하면 중리로 들어서게 된다. 좌회전 한 후 계속 길을 따라 마을로 들어서면 저수지가 나오고, 저수지를 끼고 왼편으로 길을 따라가면 마을이 끝나는 곳에 만의사가 자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