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자의 갈기는 토끼도 뜯을 수 있다
정신의 용기가 육체의 힘을 능가한다는 어느 철학자의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누구나 한 번 굴복하면 또다시 굴복하고 계속 굴복하게 된다고. 그러므로 아무도 꺾을 수 없는 용기를 지니라고. 합덕성당은 붉은 벽돌에 검정색 첨탑지붕이 무척 아름다운 곳이다. 특정종교의 성지라는 의미를 넘어 내포지역 근현대사의 출구와도 같은 이곳은 충남도 문화재로 지정되어 요즘 원형복원이 한창이다.
아름다운 성당이 올려다 보이는 합덕읍 합덕리 마을에서 고성기(48세)·차덕분(45세)씨 부부는 작은 의상실을 하나 운영하고 있다.
고은 의상실.
점포가 밀집한 상가도 아닌 곳에 한적하니 가정집처럼 생긴 의상실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꾸민 흔적 없이 소박하고 단정한 작업장이다. 남편은 논일을 나갔다 막 들어왔고, 곱상한 인상의 부인 차씨가 작업대에 앉아 옷가지를 매만지고 있다.
‘그냥 고운 이름이라서’ 의상실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는 부인 차덕분씨는 1급 소아마비 장애인. 세 살때 소아마비를 앓아 평생 장애를 안게 된 차씨는 다리를 가린 긴 치마를 입고 작업대에 앉아 있는 모습만 보고는 장애를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단정하고 곱상했다. 체구가 조금 왜소해 소녀같은 인상을 풍긴다는 점이 외견상 다른 중년의 부인과 다를 뿐이었다. 손님을 맞기 위해 일부러 목발을 짚고 아주 천천히 안락의자로 걸음을 옮길 때에야 비로소 그녀의 불편을 눈치챌 수 있었다. 차씨는 그때 왼팔을 다쳐 왼손은 오른손의 보조역할밖에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내와 함께 의상실을 공동 운영하며 짬짬이 농사일과 사회활동을 하는 남편 고성기씨는 척추장애인이다. 어려서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 화근이 되어 척추장애를 안게 되었다. 두 사람 다 당시의 부족한 의료혜택으로 신체적인 장애를 갖게 된 것이다.
두 사람에게는 후천적 장애인이라는 사실 말고도 몇가지 공통점이 있다. 두사람이 모두 양복 양장 기술을 가졌다는 게 첫째다. 부부의 인연을 맺은 1984년 이전에 두사람은 각자 다른 곳에서 웬만큼 기술을 익힌 터였다. 활동력이 떨어지는 대신 손끝에 집중된 예민한 감각이 특별한 섬세함을 낳은 것이다.
장애인의 삶에 관한 수많은 작품과 전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하느님은 하나의 문을 닫으실 때 반드시 다른 하나의 문을 열어놓으신다”는 헬렌켈러의 말이다.
19개월 되던 때 열병을 앓은 후 소경·귀머거리 ·벙어리가 된 헬렌켈러는 1900년에 하버드대학교 래드클리프 칼리지에 입학하여, 세계최초의 대학교육을 받은 맹농아자로서 1904년 우등생으로 졸업하였다. 이 당시 작가 마크 트웨인은 그녀에게 “삼중고를 안고 마음의 힘, 정신의 힘으로 오늘의 영예를 차지하고도 아직 여유가 있다”는 찬사를 보냈다. 그녀의 노력과 정신력은 전세계 장애자들에게 희망을 주었다. 그녀를 지칭하는 가장 적절한 표현은 ‘삼중고(三重苦)의 성녀’다.
후에도 그녀는 매사추세츠주 맹인구제과 위원으로 활약하는 한편 미국 전역과 해외로 돌아다니며 신의 사랑 ·섭리와 노력을 역설하여 맹농아자 교육과 사회복지시설 개선을 위한 기금을 모아 복지사업에 크게 공헌하였다.
이들 부부를 보며 헬렌켈러가 생각나는 것은 이들의 의지 또한 남달라 보였기 때문이다. 기술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아무 재산도 없는 상태에서 간판 없는 옷집을 15년동안 해왔다는 말에서 저력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부인 차씨는 작은 체구와 약한 몸에도 어떻게든 가족 모두 일어서야 된다는 각오로 들어오는 일마다 최선을 다했다. 밤을 새기도 여러 번 했다. 덕분에 간판 하나 없는 옷집에 옷을 해입으러 멀리 천안, 아산에서도 고객들이 찾아오곤 했다.
그리고 15년만에 옴팡집을 벗어나 네모 반듯한 집을 사서 나왔고, 길가에 고은의상실이라는 상호도 내붙였다. 3년이 흘렀다. 물론 요사이 사정이 나빠져서 옷수선이라는 입간판을 하나 더 세웠지만 여전히 찾아주는 손남들이 누구보다 고맙다. 그리고 아직도 그들에게 보답하는 길은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 뿐이다.
이 오십쯤 되면 다 슬퍼하지 못한 지난날과 그럴 겨를 없이 지나온 일들이 한꺼번에 가슴에 밀려든다더니 이야기 도중 부인 차씨는 몇차례 눈시울을 적셨다. 건강하고 착실하게 자란 두딸에 대한 고마움과 그 아이들의 어린 시절에 함께 묻고 지나온 눈물나는 사연들이 불현듯 가슴을 아프게 하는 모양이었다.
눈물이 많아진다는 나이. 거기다 장애인으로 살아오기가 쉬웠을 리 없다. 꼭 필요한 것은 도음을 받지만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절대로 남의 도움을 받지 않으려 해 더 고생하는 아내가 안쓰러워 남편은 남편대로 속이 상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그런 의지가 있었기에 아이들도, 집도, 일도 이만큼 반듯해졌을 것이다.
“아니에요. 저는, 제 할 도리도 다 못하고 살아요. 오직 나 하나와 내 가족들 건사하느라고 바빴지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은 도와줄 생각도 못하고 살아온 걸요. 하지만 이이라도 그러고 살아서 다행이에요. 장애인협회 활동도 했고 남의 일이라면 두말할 것 없이 앞장을 서고 그러니까요. 얼마 안되지만 농사일도 열심히 해요. 가끔 몸이 힘들다고 앓을 때는 마음이 아프죠.”
그런 와중에서도 아내는 저 혼자 잘살려고 몸부림쳐온 삶에서 뭐 내세울 게 있느냐고 도리어 손을 내저으며 남편에 대한 안쓰러움을 털어놓았다. 그녀는 “덕을 나누다”는 뜻의 이름 덕분(德分)이 민망하기만 하다고 했다.
다리가 불편한 아내를 대신해 남편은 수박을 자르고 쥬스를 따라 내어왔다. 척추장애로 앉은 키가 작다는 것 말고는 서글서글하고 자상하기가 보통은 넘는 남편이었다.
근검해 보이는 살림. 그러나 결코 찌들어 보이지 않는 가족. 이들의 생활 저 깊은 곳에서 빛나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상대를 위해주고 염려해주는 마음. 내가 힘든 것보다 마주 앉은 그 사람의 아픔을 더 안쓰러워 하는 마음. 어려웠지만 이만큼 주어진 삶에 감사하는 마음.
남편 고성기씨가 말하는 이 가정의 가치관은 이런 것이다.
“정신적인 문화는 온전하게 누리되 물질적인 혜택은 한 십년 늦게 받는다고 생각하기로 했죠.”
그래서 핸드폰이나 에어컨에는 관심이 적고 신앙과 봉사에는 늘 관심을 갖는다. 차씨가 쓰는 작업대는 20대부터 써온 손때 묻은 것이다.
얼마 전에 부인 차씨는 충남장애인기능올림픽에서 양장부문 금메달을 땄다. 부부는 기뻤다. 남보다 곱으로 애써야 남만큼 인정받을 수 있는 비장애인들의 사회. 그 바다에 용기있게 뛰어들어 비로소 인정을 받았다는 것이 기쁘고 보다 높은 목표에 대한 기대가 있어서 기쁘다. 아마 가을쯤 전국대회가 있을 것이다. 차씨는 바깥 세상에 나가고 도전하는 일을 한사코 거부해온 자신을 3년전부터 이 대회에 나가도록 독려해준 남편이 고맙다. 차씨는 이제 깊숙한 달팽이집에서 빠져나온 기분이다.
역사는 고통과 시련에 용감하게 선 사람들에 의해 새로 쓰여진다.
태풍이 몰아치면 닭은 자신의 날개 속에 머리를 파묻고 잔뜩 움츠리지만
독수리는 날개를 활짝 펴고 바람을 이용해 유유히 이동한다.
에디슨은 청각장애자였으나 축음기를 발명했고
밀턴은 시각장애인이었으나 영국 최고의 시인으로 칭송받았다.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지체장애인이었으나 미국의 대통령이 됐다.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자는 시련을 '신의 저주'로 여기고 움츠리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