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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igging”
Seamus Heaney (1939-2013)
여국현 (시인/영문학박사)
이번에 함께 읽을 시는 아일랜드의 시인 셰이머스 히니(Seamus Heaney)의 “파기”(Digging)입니다. 앞의 두 시인과 달리 히니는 낯설어 하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 잠깐 시인에 대한 소개를 먼저 하겠습니다. “예이츠(W. B. Yeats) 이후 가장 중요한 아일랜드 시인”이라는 평을 듣는 히니는 1939년 북아일랜드 태생으로 퀸즈 대학(Queen’s University)을 졸업한 이후 시를 쓰기 시작,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더블린에서 지냈지만 영국과 미국을 오가며 영국의 옥스포드 대학과 미국의 하버드 대학에서 강의를 하기도 했습니다.
E. M. Forster상(1975), 국제펜클럽 번역상(1985), T. S. Eliot상(2006)을 비롯 아일랜드 예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최고 명예상(1998) 등을 받았지만, 1995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전 세계에 그의 이름을 알렸지요. 1966년 출간한 『한 자연주의자의 죽음』(Death of a Naturalist)을 포함 12권의 시집과 5권의 시선집, 3권의 산문집과 2편의 극작품을 남기고 2013년 세상을 떴습니다. 한때 영국에서 판매되는 생존 시인의 작품 가운데 3분의 2가 히니의 작품이라고 이야기될 정도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그의 시는 고향인 북아일랜드의 자연과 사람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담아내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지요. 노벨상 선정위원회는 “서정적 아름다움과 심오한 도덕성을 지닌 그의 작품들이 일상의 기적들과 생생한 과거를 고양시켜준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지요. 이번에 읽을 그의 시 “파기”는 셰이머스 히니의 시적 특징을 고스란히 담고 있을 뿐 아니라 조국 아일랜드의 땅과 그 땅 위에서 살아냈고 또 살아가고 있는 아일랜드인의 노동과 삶에 천착한 그의 시 작업의 뿌리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빼어난 작품입니다. 시를 보겠습니다.
Between my finger and my thumb
The squat pen rests; as snug as a gun.
내 손가락과 엄지 사이에
몽당연필이 놓여 있다. 총처럼 편안하게.
첫 두 행은 단순하면서도 대단히 인상적입니다. 상징적이기도 하고요. 시인은 자신의 손가락 사이에 놓인 연필을 바라봅니다. ‘몽당연필’입니다. 책상 앞에 앉은 시인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겹쳐집니다. 원고지를 앞에 두고 시 구상을 하고 있는 시인의 손에 있는 ‘몽당연필’은 시인 자신의 오랜 시 작업을 상징합니다. 연필을 쥔 시인의 손이 ‘편안한’ 것은 충분히 이해됩니다. 그런데 “as snug as a gun” 즉, “총처럼 편안하다” 합니다. ‘총’만큼이나 ‘편안하게’ 손에 놓인 ‘펜’. 무엇을 말하려는 것일까요?
아시는 것처럼 아일랜드는 오랜 기간 영국의 식민지였고, 그만큼 오랜 독립투쟁의 역사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1919년 마침내 아일랜드 공화국군은 영국정부군과 독립전쟁을 벌여 1921년에 자치권을 획득합니다. 예이츠(W. B. Yeats) 등을 중심으로 한 아일랜드의 문예부흥 운동 또한 비슷한 시기에 활발하게 전개됩니다. 연필과 총은 아일랜드의 문화적 부흥과 국가적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 이 두 수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편안한’이라는 표현을 통해 문예부흥과 무력투쟁, 두 수단 모두를 인정하고 있는 듯합니다. 다만, 그는 ‘총’이 아닌 ‘연필’을 들고 함께 하는 것이지요. 어느 하나를 배척하지 않는 이 태도는 의미가 있습니다. 특히, 선배 시인인 예이츠가 문예부흥운동에는 적극적이었던 반면 독립을 위한 무력투쟁에 소극적인 혹은 반대하는 입장을 보인 것 때문에 비난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히니의 이러한 태도는 더욱 돋보인다 하겠습니다.
Under my window, a clean rasping sound
When the spade sinks into gravelly ground:
My father, digging. I look down
창 아래 명료하게 들리는 쇳소리
자갈밭을 파고드는 삽이 내는 소리.
아버지가 땅을 파고 있다. 나는 내려다본다
그때 시인이 앉은 방의 창 아래에서 소리가 들려옵니다. 아버지가 삽으로 자갈밭을 파는 소리입니다. “자갈 가득한 땅으로 삽이 파고드는” 소리. 비옥한 땅이 아닙니다. 척박한 아일랜드 땅에 발 딛고 살아온 아버지 세대의 노동이 이 한 장면에 그대로 담겨 전해지는 듯합니다. 이 시의 제목이며 시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미지인 ‘파다’(dig)라고 하는 행위의 상징성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아버지는 자갈투성이 밭을 ‘파 일구며’ 살아온 것입니다. 시인은 소리 나는 쪽을 봅니다.
Till his straining rump among the flowerbeds
Bends low, comes up twenty years away
Stooping in rhythm through potato drills
Where he was digging.
화단 사이로 용을 쓰는 아버지의 엉덩이가
낮게 구부린 채 땅을 파던 감자 이랑 사이로
장단 맞춰 웅크리며 이십 년의 세월
저편에서 올라올 때까지.
아버지는 화단에서 삽으로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자갈밭이라 힘이 들겠지요. 몸을 숙이고 용쓰며 일하고 있는 아버지의 엉덩이가 보입니다. 그 순간, 시인의 의식은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떠올립니다. 동시에 현재의 시간에서 과거의 어느 순간으로 시점이 바뀝니다. 화단에서 ‘땅을 파던’ 아버지는 이십 년 전, 이젠 감자 이랑에서 삽으로 ‘땅을 파고’ 있습니다. 이 지점에서 시인의 상상력은 빛을 발합니다. 시인은 책상에 앉은 채 의식 속에서 현재를 지나 과거를, 과거의 ‘기억을 파들어’ 갑니다. 그렇게 시인도 아버지도 ‘파다’라는 행위를 통해 이어집니다. 시인의 기억, 상상력 속에 작업하는 아버지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 후의 묘사 부분은 시인 히니의 섬세하고 사실적인 묘사가 돋보이는 장면입니다만 넘어가기 전에 먼저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상에서 상상력을 꽃피우는 순간, 시를 꽃피우는 이 순간 시인에게 작동하는 능력에 대한 하버드 대학교의 시학 교수였던 블리스 페리(Bliss Perry)의 언급을 듣고 넘어가겠습니다.
“구근을 심는 여인과 같은 물리적 이미지를 포착하여 그 이미지를 죽은 이들의 부활에 대한 상징으로 변형시키는 능력, 인간 언어의 단속적인 음절들을 완전한 음악으로 개조하는 능력, 따분한 사고와 끝없이 출몰하는 두려움 때문에 풀이 죽은 인간의 영혼을 고양시켜 황홀하게 함으로써 울음은 웃음으로, 한창때를 지나 떠오르는 죽음의 예감은 삶에 대한 확신으로 변형시키는 능력, 나아가 개인적 경험이라는 좁디좁은 길을 상상력이 다스리는 무한한 공간으로 확장하는 능력.” (블리스 페리, 『시학』(맹문재, 여국현 역, 푸른사상, 2019, 16)
구체적인 사물이나 현상에서 상징을 발견하고 그에 걸맞은 언어를 사용하여 무한하게 확장시키는 시인의 능력, 히니는 지금 바로 그 경계를 지나고 있습니다.
The coarse boot nestled on the lug, the shaft
Against the inside knee was levered firmly.
He rooted out tall tops, buried the bright edge deep
To scatter new potatoes that we picked
Loving their cool hardness in our hands.
거친 장화는 삽 끝에 착 올리고
삽자루는 무릎 안쪽에 견고하게 받쳐져 있다.
아버지는 큰 줄기를 모두 뽑고, 반짝이는
삽날을 깊숙이 박아 넣어 햇감자를 캐 올렸다
우리 손에 들린 차갑고 단단한 감자의 느낌이 좋았다.
삽으로 거친 땅을 파는 작업을 해 본 분이라면 알 것입니다. 삽과 발과 다리가 어떤 모양으로 만나야하는지를. 오랜 노동으로 닳은 ‘거친 장화’를 신은 발은 삽날이 있는 윗부분에 편안하게 착 얹고, 무릎 안쪽에 삽자루를 단단하게 고정시킨 모습으로 아버지는 ‘큰 줄기감자’(tall tops)를 뿌리째 뽑은 다음 ‘반짝이는’ 삽날을 땅속 깊숙이 박아 넣어 햇감자를 캐 던져 올립니다. ‘반짝이는’ 삽날은 1연에서 나왔던 ‘몽당연필’과 짝을 이루는 이미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의 오랜 글 작업이 ‘몽당연필’로 은유되었듯, ‘반짝일’ 정도로 쉴 새 없이 흙과 만난 삽에서 아버지의 오랜, ‘빛나는’ 노동이 드러나는군요. 아버지가 그렇게 파낸 ‘햇감자들’은 얼마나 차갑고 단단 했을지요! 아버지의 노동은 시인의 기억 속에서 그렇게 ‘좋은’ 감각의 기억으로 생생합니다. 아버지의 노동을 올곧이 인정하는 시인의 태도가 읽힙니다. 아버지는 그렇게 숙련된 땅의 일꾼이었습니다. 아버지, 당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By God, the old man could handle a spade.
Just like his old man.
아버지는 정말 삽을 잘 다루셨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이제 시인의 의식은 더 먼 과거로 더 깊이 파들어 갑니다. 아버지를 넘어 아버지의 아버지에게로 말이지요.
My grandfather cut more turf in a day
Than any other man on Toner's bog.
Once I carried him milk in a bottle
Corked sloppily with paper. He straightened up
To drink it, then fell to right away
Nicking and slicking neatly, heaving sods
Over his shoulder, going down and down
For the good turf. Digging.
할아버지는 토너 습지의 그 누구보다
토탄을 많이 캐셨다.
언젠가 할아버지께 엉성하게 종이마개를 한
우유병을 가져다 드렸다. 할아버지는 허리를 펴고
우유를 들이키더니 곧장
금을 긋고 깔끔하게 잘라낸 토탄을
어깨 위로 들어 던지고는 깊이깊이
좋은 토탄을 찾아 땅을 파들어 갔다.
아버지가 감자를 캤듯 아버지의 아버지는 토탄을 캐는 모습으로 기억됩니다. 감자와 토탄. 아시는 분은 아시겠습니다만, 아일랜드를 대표하던 농산물이 감자였으며, 광물이라면 광물이 토탄입니다. 늪지, 습지와 같은 수분이 많은 아일랜드 대지에 퇴적된 수목은 석탄으로 변하지 못한 채 표피층이 얇고 척박한 토탄층을 형성하는데, 이런 땅에서는 다른 농작물이 제대로 자랄 수 없어 감자만 심고 수확했다고 하지요. 감자 한 가지 작물에 의존하던 아일랜드에 19세기 중반 감자 기근이 들어 아일랜드 인구의 3분의 1정도가 아사했다는 비극도 그 때문이었지요. 쉽게 구할 수 있는 토탄은 아일랜드인들에게는 유용한 연료 역할을 했지요. 땅에서 캐낸 토탄을 동그란 모양이나 각진 네모 형태로 굳힌 다음 우리가 사용하던 연탄처럼 창고에 저장에 두고 난로나 화로에 불을 피우는 장면은 아일랜드의 소설이나 극작품에서 일상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입니다. 이처럼 감자와 토탄은 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인들의 지난한 삶을 상징하는 이미지라 할 수 있지요.
아버지에서 할아버지로 이어지는 역사를 파들어 가는 시인은 감자와 토탄을 통해 아일랜드의 대지와 그 대지 위에 살아온 질곡의 삶을 별다른 설명도 필요 없이 또렷하게 보여줍니다.
아버지의 노동이 노련한 만큼 아버지의 아버지도 땅을 파서 토탄을 캐는 삽 작업에 능숙했지요. “누구보다 토탄을 더 많이 캤다”는군요. 여기서 주목할 만한 것은 할아버지와 시인의 만남입니다. 둘은 우유병을 매개로 직접 만나고 있습니다. 아버지는 바로 지금 내 창 아래 존재하는 현재의 인물이지만, 할아버지는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인물이지요. 시인은 할아버지에게 전해주던 ‘우유병’을 통해 할아버지와 직접 연결됩니다. 역사는 아들에게서 아버지로 다시 할아버지에게로, 혹은 할아버지에게서 손자에게로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더불어, 시인이 할아버지에게 ‘우유를 전달’하는 이미지는 다음 세대가 이전 세대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이미지로 해석할 수 있으며, 이는 시인이 시를 통해 할아버지 세대의 삶, 즉 아일랜드 민중의 역사를 ‘파낸다, 발굴 한다’는 시 쓰기의 본질적인 의미와도 닿아있다 할 수 있겠습니다.
할아버지의 숙련된 노동은 군더더기 없이 표현됩니다. 토탄을 캐기 전에 땅에 먼저 삽으로 ‘금을 긋고’(nicking), ‘깔끔하게 잘라낸’(slicking neatly) 다음 어깨 위로 던져 올립니다, 아버지가 감자를 ‘캐 던지듯’(scattering). 할아버지의 노동은 멈춤이 없이 계속 파들어 갑니다. 지속적으로 땅을 ‘파고드는’ 이 노동의 이미지는 할아버지에게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과거로 이어지는 아일랜드 민중의 노동의 역사를, 또 멈춤 없이 그들의 역사를 ‘파고들어갈’ 시인의 중단 없는 시 쓰기를 함의한다고 보아도 과하지 않을 것입니다.
The cold smell of potato mould, the squelch and slap
Of soggy peat, the curt cuts of an edge
Through living roots awaken in my head.
But I've no spade to follow men like them.
차가운 감자 흙 냄새, 축축하게 젖은 토탄 덩어리의
철벅거리는 소리, 싱싱한 뿌리들을 뭉툭뭉툭
잘라내는 삽날 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들을 따를 삽이 없다.
이제 시인의 의식은 다시 현재로 돌아오고, 상상과 기억 속에서 하나씩 존재하던 이미지들이 하나로 통합됩니다. 아버지의 감자, 할아버지의 토탄, 철벅거리는 소리, 싱싱한 뿌리들을 자르던 삽날의 소리. 그러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노동과 시인의 노동은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그들의 노동은 몸으로 대지를 파고들던 육체의 노동이었으며, 그들의 손에 들려있던 삽이 그의 손에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그의 손에는 삽 대신 자시의 도구이자 무기인 몽당연필이 들려 있습니다. 그 몽당연필을 들고 머리로, 가슴으로 그들의 삶을, 역사를 파고들 그의 지적, 정서적 노동은 질퍽한 토탄층 그 아래 깊숙이 묻힌 수많은 아일랜드의 아버지 할아버지들의 삶을 생생하게 살려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Between my finger and my thumb
The squat pen rests.
I'll dig with it.
내 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는
몽당연필이 놓여 있다.
나는 그 연필로 파들어 가리라.
그가 연필로 파들어 갈 것이 무엇인지는 분명합니다.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삶, 그들의 역사를 파들어 가는 것, 그것이 시인으로서 그의 책무가 될 것임을 그는 분명하게 자각하며 천명하고 있습니다.
역사는 이어집니다. 할아버지에게서 아버지로 또 그 아버지의 아들에게로 또 그 아들의 아들에게로. 아버지의 삶이 전쟁이었듯 아버지의 아버지의 삶도 전쟁이었겠지요. 삽을 들고 땅을 일구며 생존하기 위해, 살기 위해 치른 전쟁. 이제 그 아버지의 아들의 아들은 삽이 아니라 펜으로 하는 전쟁을 치르려합니다. 삶이 전쟁이듯 글을 쓴다는 것, 삶을 기록한다는 것, 그 또한 전쟁처럼 치열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삶의 터전이 아일랜드이기에 더욱.
삶과 역사를 살아낸다는 것, 그 삶과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 삽을 들고 생존을 위해 땅을 파거나 총을 들고 땅을 찾기 위해 싸운 삶과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낸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의 삶을 펜으로 그려내는 것, 어느 하나 경건하지 않은 것 있을까요!
아울러 이 시에는 히니 시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감각적 요소들과 세밀한 묘사가 두드러져 보입니다. 자갈밭을 파고드는 삽날이 내는 쇳소리(rasping), 토탄의 철퍽거리는 소리, 감자 뿌리들을 뭉툭뭉툭 잘라내는 삽날 소리 같은 청각적 요소들과 막 땅에서 캐낸 햇감자의 단단하고 서늘한 촉감, 무릎 안쪽에 단단히 고정된 삽자루의 느낌, 손가락 사이에 편안하게 놓인 몽당연필의 느낌 등 촉각들이 시를 더욱 생생하게 살아있게 해줍니다.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파기’(digging)라는 행위가 보여주는 상징성입니다. 어떤 시인이 자신의 창작을 상징할 수 있는 하나의 이미지를 갖는다는 것은 복입니다. 그것이 대상이건 행동이건 말이지요. 예를 들어 존 단(John Donne)과 아널드(Matthew Arnold)는 고독한 인간 관계의 본질을 은유, 상징하는 ‘섬(island)’을, 예이츠는 자신의 예술적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모드 곤(Maud Gonne)이란 평생의 연인과 문명의 순환을 상징하는 ‘나선형 원뿔’을, 셰익스피어는 인생의 무대(stage)를, 바이런(G. G. Byron)은 ‘악마적 영웅’(Byronic Hero)과 ‘귀공자 헤럴드의 여행’(Harold's Pilgrimage)을, 셸리(P. B. Shelley)는 ‘서풍’(West Wind)을, 보들레르(Charles. P. Baudelaire)는 ‘꽃’과 ‘신천옹’을, 제임스 조이스는 ‘더블린’이란 도시와 ‘걷기’라는 행위를, 휘트먼(W. Whitman)과 우리의 김수영은 ‘풀’(Grass)을, 그리고 오르한 파묵(Orhan Pamuk)은 ‘이스탄불’이라는 도시를 지니고 있었지요.
히니에게는 ‘파다’라는 행위가 그 자신이 써내려 갈 시의 의미와 내용을 상징적으로 담아내는 절묘한 상징이 되었습니다. 동시대 아일랜드인의 삶은 물론 아버지와 아버지를 거슬러 가는 조상들의 삶과 역사에 천착하는 그에게 이보다 더 적절한 비유가 있을까요? 그래서였을까요. 히니는 이 시가 시 창작과 관련된 자신의 생각을 처음으로 밝힌 시라며, 첫 출발을 알리는 힘을 지닌 시이자 두고두고 다시 보게 되는 시라고 밝힌 바 있지요.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에게는 여러분의 시 쓰기를 상징할 행위나 대상이 있나요? 셰이머스 히니의 “파기”(Digging)입니다.
Digging
Between my finger and my thumb
The squat pen rests; as snug as a gun.
Under my window, a clean rasping sound
When the spade sinks into gravelly ground:
My father, digging. I look down
Till his straining rump among the flowerbeds
Bends low, comes up twenty years away
Stooping in rhythm through potato drills
Where he was digging.
The coarse boot nestled on the lug, the shaft
Against the inside knee was levered firmly.
He rooted out tall tops, buried the bright edge deep
To scatter new potatoes that we picked
Loving their cool hardness in our hands.
By God, the old man could handle a spade.
Just like his old man.
My grandfather cut more turf in a day
Than any other man on Toner's bog.
Once I carried him milk in a bottle
Corked sloppily with paper. He straightened up
To drink it, then fell to right away
Nicking and slicking neatly, heaving sods
Over his shoulder, going down and down
For the good turf. Digging.
The cold smell of potato mould, the squelch and slap
Of soggy peat, the curt cuts of an edge
Through living roots awaken in my head.
But I've no spade to follow men like them.
Between my finger and my thumb
The squat pen rests.
I'll dig with it.
파기
내 손가락과 엄지 사이에
몽당연필이 놓여 있다. 총처럼 편안하게.
창 아래 명료하게 들리는 쇳소리
자갈밭을 파고드는 삽이 내는 소리.
아버지가 땅을 파고 있다. 나는 내려다본다
화단 사이로 용을 쓰는 아버지의 엉덩이가
낮게 구부린 채 파고 있던 감자 이랑 사이로
장단 맞춰 웅크리며 이십 년의 세월
저편에서 올라올 때까지.
거친 장화는 삽 끝에 착 올리고
삽자루는 무릎 안쪽에 견고하게 받쳐져 있다.
아버지는 큰 줄기를 모두 뽑고, 반짝이는
삽날을 깊숙이 박아 넣어 햇감자를 캐 올렸다
우리 손에 들린 차갑고 단단한 감자의 느낌이 좋았다.
아버지는 정말 삽을 잘 다루셨다.
아버지의 아버지가 그러하셨듯이.
할아버지는 토너 습지의 그 누구보다
토탄을 많이 캐셨다.
언젠가 할아버지께 엉성하게 종이마개를 한
우유병을 가져다 드렸다. 할아버지는 허리를 펴고
우유를 들이키더니 곧장
금을 긋고 깔끔하게 잘라낸 토탄을
어깨 위로 들어 던지고는 깊이깊이
좋은 토탄을 찾아 땅을 파들어 갔다.
차가운 감자 흙 냄새, 젖은 토탄 덩어리가
철벅거리는 소리, 싱싱한 뿌리들을 뭉툭뭉툭
잘라내는 삽날 소리가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러나 내게는 그들을 따를 삽이 없다.
내 손가락과 엄지손가락 사이에는
몽당연필이 놓여 있다.
나는 그 연필로 파들어 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