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문 링크: http://m.newsfund.media.daum.net/episode/437
[지난 이야기 요약]
지난 2015년 1월 8일, 사고로 두 손을 잃었다는 '정상에서' 님의 사연을 읽게 되었다. 돕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생애 처음 3D 프린팅 전자의수 제작을 시작하게 되었다.
2주 간의 시행착오를 거쳤고, 마침내 지난 2015년 1월 24일 첫 번째 3D 프린팅 전자 의수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정상에서' 님을 직접 뵙고 전달해 드렸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665274155C0924F2C)
[ '정상에서' 님과 함께한 프로젝트 팀 '정상에서' ]
비록 위의 전자의수에 부족한 부분이 많지만 이 과정에서 앞으로 해결해야 할 것들을 잘 정리할 수 있었다. '정상에서' 님께는 부족한 부분을 개선하여 한 달 안에 새 전자의수를 드리겠다는 약속을 하고 계획을 세워 추진하기에 이르렀다.
- - - 지난 이야기 끝 - - -
"생애 처음이라 어려웠지만
자유로울 수 있었다"
앞의 1~2화에 소개한 '정상에서' 님을 위한 3D 프린팅 전자의수 제작 과정에서 상당히 많은 것들을 태어나서 처음 하게 되었다. 한 가지 좋았지만 어려웠던 부분은 '생애 처음' 하는 일들이 상당히 많았다는 것이다.
재능 기부를 위해 밤낮을 일해 본 것도, 1박 2일의 창작 지원 해커톤(Hackathon) 행사에 참석한 것도 처음이었다. 의수를 만든 것도, 낚시에나 쓸법한 낚시 줄을 창작에 쓴 것도 처음이었다. 주변 상점을 샅샅이 뒤져 개 목걸이, 허리띠, 팔목 보호대 등을 그렇게 많이 사 본 것도, '정상에서' 님과 같은 두 손이 없는 분을 직접 뵌 것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처음이었기에 즐거웠고 자유로울 수 있었다고 생각했다. 만약 이전에 배운 지식이 있었다면 더 짧은 시간에 했겠지만 그런 열정은 쏟기 어려웠을 것이다. 많이 부족했지만 열정이 넘쳤기에 위키데이 2/3기 창작 지원 행사에 맞추어 1차 프로토타입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상도 탈 수 있었던 것 같다. 이 행사에서 받은 2등 상금은 '정상에서' 님께 개선된 전자의수를 제작하는 데에 쓰기로 하였다.
"앞에서 다루지 않은 한 가지 숨겨진 이야기"
사실 앞의 1~2화에서 소개한 '정상에서' 님을 위한 3D 프린팅 전자의수 제작 과정에서 다루지 않은 한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정상에서' 님께 전자의수를 전달한 다음 날, 즉 2015년 1월 25일에 나는 부산에 계신 한 고등학생 분으로부터 문자 연락을 받았다. 사실 이 분은 '정상에서' 님 보다 1주일 앞서서 3D 프린팅 의수 제작 가능여부에 대한 문의를 써 주신 분이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36BF34655C092D911)
[ 2015년 1월 4일 '김광현' 님의 의수 제작 문의 글 ]
3D 프린팅 커뮤니티에 올라온 위 글에는 먼저 도와주시겠다는 분이 계셨고 나도 약간 늦게 댓글과 함께 연락처를 남겼다. 하지만 20일이 지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아 잠시 잊고 있었는데 첫 번째 의수 제작을 마무리 한 시점에 '김광현' 님께서 연락을 주셨다.
원래는 먼저 도와주시기로 한 분이 계셨으나, 돕겠다는 분과 위치 상 멀리 떨어져 있었기에 연락이 뜸해져서 나에게 연락했다고 했다. 나 역시 서울에 거주하고 있기에 멀리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잠시 고민하는 중 '김광현' 님이 1월 27일(화) 밤부터 1월 30일(금) 오후까지 서울에 올라온다고 하여 바로 1월 27일 밤 9시로 약속을 잡게 되었다.
1월 27일 늦은 밤, '김광현' 님이 서울에 사는 친척 분과 함께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선천적 기형으로 손가락이 세 개 뿐이었고, 이마저도 수술로 인해 오른팔이 짧아져서 몸의 좌우 대칭이 맞지 않는 모습이 안타까웠다. 일단 이 정도로 '김광현' 님의 현재 상태를 이해한 후 원하는 의수의 형태에 대해 간단히 이야기를 나눴다.
"손가락 세 개는 있지만, 팔이 비대칭이라 항상 주머니에 넣고 다녀요.
차라리 의수를 당당하게 끼고 다니고 싶어요."
나는 이 이야기를 듣고, '김광현' 님의 짧은 3일의 서울 내 체류기간 안에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었다. 당당하게 끼고 다닐 만한 멋진 의수의 제작을 3일만에 하기엔 시간이 너무나 짧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음 번 만남을 기약해야겠지?" 라며 망설이던 찰나, 조금 더 고민해 보니 딱 맞는 퍼즐의 해답이 머리 속을 스쳐가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은 바로 지난 '정상에서' 님을 위해 무의식적으로 만들어 드린 전자 의수는 '왼손' 이었고, 오른손은 아직 남아 있었다는 것이었다.
(신에게는 아직 오른손 의수 부품이 1개나 남아있사옵니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134043F55C093420A)
[ '정상에서' 님께 1월 24일에 드렸던 의수 (왼쪽), 아직 드리지 못했던 의수 (오른쪽) ]
"뭐 일단 끼워보자"
그리하여 제일 먼저 한 일은 오른손 의수의 팔 거치 부분을 '김광현' 님이 항시 착용하고 계신 딱딱한 손목 보호대에 끼워 보는 일이었다.
그 결과 아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위 내용을 바탕으로 약간의 궁리를 통해 '세 손가락이 들어가는 '너클'형식으로 의수의 다섯 손가락을 잡아당기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비록 밤이 늦긴 했지만, 생각은 바로 실행해야 하기에 밤 11시가 다가오는 늦은 시간에 내가 갖고 있던 저렴한 3D 스캐너를 사용하여 3D 스캐닝을 수행했다.
"3D 스캐닝이
적정기술로 보이는 순간"
참고로, 본 3D 스캐닝에 쓰인 스캐너는 아래의 것이다.
- Structure Sensor (by structure.io)
- 50만원 정도 하는 저렴한 3D 스캐너로 해외구매를 해야 하는 상품이다.
- 국내에서 중고로 45만원에 사 두었는데 사길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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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패드 미니 레티나에 장착한 3D 스캐너 Structure Sensor의 모습 ]
이렇게 첫 날의 1시간 반 정도의 미팅을 끝내자 시계는 벌써 밤 11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천천히 언젠가 할 수 있겠지' 라는 생각과 함께 퇴근 본능이 몰려오는 시점이었다.
하지만 3D 스캐닝 결과와 실제의 괴리(?)가 얼마나 될 지에 대한 지적 호기심과 함께, 일은 할 수 있을 때 빨리 끝내야 한다는 급한 성격의 발로로 인해 3D 스캐닝 결과를 활용한 손가락 너클 및 팔 보호대의 3D 모델링을 수행하게 되었다.
- 참고로 나는 3D 모델링 부분을 가장 어려워하지만 다행히 1시간 동안 이 정도는 할 수 있었다.
"3D 모델링, 어렵지만 해 보자!"
![](https://t1.daumcdn.net/cfile/cafe/2521EA3955C0945F21)
[ 팔 보호대가 들어갈 부분과 손가락 와이어를 잡아당기는 너클 부분의 3차원 도면 ]
결국 그날 밤 12시를 넘긴 시점에 위와 같은 3D 모델링을 마무리했고 한 대의 3D 프린터를 활용하여 작업을 착수했다. 예상 시간이 9시간 20분으로 표기되기에 프린팅 속도를 약간 상향 (115%) 시킨 후 우리의 '김광현' 님께 카카오톡 메신저로 문자 한 통을 보냈다.
첫 날의 일과는 이렇게 마무리하며 퇴근했고 우리의 3D 프린터가 밤새 프린팅을 무사히 하기를 기원하며 잠이 들었다.
드디어 약 8시간 반이 흘러, 다음 날인 1월 28일 오전 9시가 되었다. 간밤에 실패 없이 3D 프린팅 작업이 완료된 것을 확인하며 안도하던 찰나 '김광현' 님이 내 사무실에 다시 방문하여 주셨다. 약 5분 내외의 시간을 들여 3D 프린팅 결과물에 약간의 가공 후 '김광현' 님이 원래 착용 중인 팔 보호대에 출력한 결과물을 장착하여 보았다.
- 테스트를 위해 임시로 손가락 와이어를 고정한 상태라서 약간 지저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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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색으로 제작한 너클 부분과 팔 보호대 결합부위 ]
아래는 약간의 시연 사진으로 오른손의 세 손가락이 들어가는 너클 부품이 너무 크고 헐렁하여 부적합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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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현' 님의 첫 착용 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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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클 부분을 세 손가락으로 잡아당겼을 때의 모습 ]
비록 위의 너클 부분의 설계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아래와 같이 주먹을 쥐었을 때 비교되는 왼팔의 길이, 그리고 왼손의 주먹 크기와 거의 똑같이 맞아떨어졌다는 것이 너무나 기뻤다. 너클 부분만 조금 더 개선하면 진짜로 3일만에 뭔가 도움을 드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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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거의 같아진 왼팔과 오른팔의 길이와 두 주먹의 크기 (예전엔 비대칭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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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존의 팔 보호대와 잘 맞아 떨어지는 3D 프린팅 의수 결합 ]
아직 '김광현' 님이 다시 부산으로 내려가는 1월 30일까지는 2일이나 되는 넉넉한 시간이 있었다. 먼저 현재의 미완성 작품을 이 분께 드린 후 1월 30일에는 꼭 다시 만나서 개선된 너클 부품으로 교체하기로 결정하였다.
그날 밤 나는 '김광현' 님으로부터 하루 동안 전해 들은 여러 사용 후기와 착용 사진을 분석하였다. 그 결과 네 가지의 서로 미묘하게 다른 너클 부품을 재설계 및 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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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가지의 서로 미묘하게 약간씩 다른 너클 부품들의 3차원 도면 ]
드디어 마지막 날인 1월 30일이 되었다. 오전 10시에 다시 내 사무실에서 미팅을 가졌고, 네 개의 서로 다른 너클 중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 기존 너클과 교체하였다. 그 결과 꽤 그럴싸한 주먹의 움직임을 구현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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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클 교체 후의 3D 프린팅 의수 모습 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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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클 교체 후의 3D 프린팅 의수 모습 2 ]
![](https://t1.daumcdn.net/cfile/cafe/21060D3455C0968429)
[ 너클 교체 후의 3D 프린팅 의수 모습 3 ]
아래는 '김광현' 님이 직접 찍은 주먹 쥐기 시연 영상이다. 남아있는 세 손가락으로 직접 의수의 손가락 각도를 조절할 수 있기에 이후 손바닥 부분과 관절만 개선하면 꽤 쓸만한 의수를 제작할 수 있을 것이다.
"완벽하진 않지만, 더 나은 것을 향한 경험"
위와 같이 단 몇 일만에 맞춤형 의수를 제작하며 얻은 경험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오른손 수술 후, 많은 스트레스와 함께 어려운 나날을 보내셨다는 이 분께 앞으로도 종종 개선된 설계 및 노하우를 바탕으로 3D 프린팅 의수를 제작해 드릴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 분의 부모님께서 이 글을 아드님을 통해 전해 들으신다면 3D 프린터 한 대 정도는 언젠가 사주실 것 같다는 즐거운 상상을 했다. (아직 3D 프린터를 구매하셨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숨겨진 이야기: '정상에서' 님과의 만남에 징검다리를 놓아주신 분
이제 3화의 내용을 마무리하기 전에, 3화의 전반부에서 언급했던 '숨겨진 이야기'를 언급할 때가 된 것 같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김광현' 님이 작성한 2015년 1월 4일의 글 덕분에 '정상에서' 님이 3D 프린팅 의수 제작과 관련된 글을 내가 활동하던 커뮤니티에서 찾을 수 있었고, 그리하여 1월 8일에 본인의 사연을 올려주시게 되었다는 것이다. 만약 '김광현' 님의 글이 없었더라면 내가 '정상에서' 님의 사연을 보거나 만날 수 없었을 것이고 나는 아마 아직까지도 3D 프린팅의 더 큰 가치를 발견하지 못하고 똑같은 나날을 살고 있었을 것이다.
더 신기한 사실은 두 분 모두 부산에 계신 분이라는 것이다. 서울-부산 왕복 800km의 거리를 극복하고 3D 프린팅 (전자) 의수를 전달할 수 있었다는 이 경험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지금처럼 매일 매일이 새로운 3D 프린팅 의수 제작의 재능 기부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https://t1.daumcdn.net/cfile/cafe/24771F3355C0971F24)
[ 최근 진행 중인 전자의수 제작 과정 중 일부 ]
현재의 나는 위의 사진과 같이 '정상에서' 님을 위해 더 나은 3D 프린팅 전자의수를 제작하는 과정에 있다. 앞으로의 연재에서는 이러한 이야기와 함께, 국내 및 세계 이곳 저곳에서 보내주신 여러 이야기들을 다루도록 하겠다.
첫댓글 짧은 시간에 두 건의 의수제작이 일사천리로 진행된 것은 하나의 기적과 같은 일인 것 같습니다. 소중한 경험 나누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