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문으로 된 고전을 번역하거나 교감을 하기 위해서는 고전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선행되어야 한다. 고전의 영역은 매우 광범위하고 내용이 대부분 난해한 고사와 용어로 되어 있기 때문에 해박한 지식이 요구된다. 한문은 단순한 한자만 안다고 결코 해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한 문장이 가지고 있는 문맥상의 의미와 여러 한자들이 조합되었을 때 2차적으로 생성되는 의미를 잘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다.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한문의 문리를 터득해야 한다. 옛 선현들은 한문 문리를 터득하기 위해 최소한 10여 년, 많게는 수십년 이상 한문경전을 배웠다. 오랫동안 다독(多讀)하다보면 문리력을 얻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방법은 현대사회에는 권장하기 어려운 공부방법이다. 바로 이러한 점을 해소하기 위해 한문에도 문법서가 나오게 되었다. 원래 한문에는 어조사에 해당하는 허사에 대한 이론연구가 중국 서주(西周)시대부터 시작되어 한(漢)나라와 당송(唐宋)시대에 이루어졌다. 그러다가 청나라에 와서야 문법연구가 이루어 진 것이다
고전한어의 최초 문법서는 1881년 언어학자인 독일인 게오르그 폰 가벨렌츠(Georg von der Gabelentz, 1840-1893)가 쓴 chinesische grammatik이다. 이는 서구의 중국학계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스웨덴 출신의 버나드 칼그렌(중국명 : 고본한(高本漢))은 역사비교언어학을 중국어 연구에 처음으로 적용하였다. 그래서 중국 청말(淸末) 학자 마건충(馬建忠)이 영향을 받아 고문문법의 이론을 창시하였다.고전 번역을 잘하려면 한문원전에 대한 허사와 문법연구부터 체계적으로 해야 한다. 고전의 대부분은 기존 고전의 용어들이 재인용되거나 수정된 채 작성된다. 이러한 점에서 고전은 정확한 전고(典故)를 토대로 문맥에 맞는 해석을 해야 한다. 만약 전고를 모르고 해석한다든지 또는 사전적인 의미만을 취한다면 오역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전고를 사용하되 문맥에 맞는 의미를 도출해 내는 단장취의(斷章取義)를 잘해야 하는 것이다.
이순신의 저작인《난중일기》는 초서(草書)로 흘려 쓴 기록이다. 정자체의 한문해독도 어려운데 초서체를 해독하거나 교감한다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초서해독을 위해서는 초서의 기본서인《초결백운가》와《서보》를 반드시 배워야 한다. 이 역시 오랜 세월이 소요되는 공부이다. 초서는 서로 다른 글자라도 자체가 비슷한 경우가 매우 많다. 때문에 여기에는 반드시 글자를 변별할 수 있는 문리력이 뒷받침 되어야 한다. 글자를 해독했어도 문맥에 맞지 않거나 문맥에 맞아도 글자체가 맞지 않는다면 역시 오독이 되는 것이다.최근에는《난중일기》관련 연구서들이 붐을 이루고 있다. 조선 정조때 간행된《이충무공전서》본《난중일기》와《난중일기초》등 후대의 여러 판본과 번역서들이 나와준 덕이다. 특히《난중일기》번역과 교감은 쉽게 시도하기 어려운 작업이다. 한번 잘못할 경우에 또 다른 오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근대 중국 북경대학의 예기심(倪其心)교수는 “교감의 궁극적인 목표는 원래대로 복원하는 것(存眞復原)이다.”라고 말했다. 하나의 고전 원전을 복원하여 해독하기까지 반드시 스스로 내공을 쌓는 상당 기간의 고전연구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이러한 노력 없는 시도는 깊이 있는 연구가 되지 못할 뿐 아니라 또다른 문제에 봉착할 것이다.
글 : 노승석 이순신 전문연구가(증보교감완역 난중일기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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