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이 좋아 도시 생활을 접고 농촌으로 간 자발적 귀농ㆍ귀촌인이라 할지라도 시골 생활에 100% 만족할 수는 없다. 편의시설도 부족하고 교통도 불편하고 익숙하지 않은 농촌 문화도 버거울 때가 적지 않다. 그리고 무엇보다 먹고살 수 있는 일을 찾기가 쉽지 않다. 시골살이라 한들 돈 없이 살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적지 않은 귀농·귀촌인이 생각하는 부업이 농촌체험장 운영이다. 하지만 농촌체험장 운영에도 자신만의 노하우와 비결이 필요한 법. 전남 강진에서 장류 체험장을 운영하고 있는 김혜정 씨에게서 그 비법을 배워보자.
1 전남 강진에서 장류 체험장 ‘강진뜨란에’를 운영하는 김혜정 씨. 체험용으로 즉석 고추장을 개발하기도 했다. 고속도로를 타고 한반도의 남서쪽 끝까지 가고서야 도착할 수 있는 곳 전남 강진. 고속도로를 벗어나자마자 누런 논이 펼쳐지고 야트막한 지붕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전형적인 시골 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이 마을 어 디쯤에 목적지가 있겠거니’ 생각한 것도 잠시, 내비게이션은 길 안내를 멈출 줄 모르고 차를 산속으로 산속으 로 이끈다.
기암괴석이 줄지어 있는 산봉우리를 지나고, 다시 산봉우리 사이에 갇힌 저수지를 지나고서도 목 적지는 나올 줄을 모른다. 이 깊은 산속에 집이 있기는 한 걸까? 설사 있다 한들 여기까지 체험하러 오는 사람 이 있을까? 머릿속이 온통 물음표로 가득찰 때쯤, 길 끝 저쪽에 드디어 집 한채가 나타났다. 된장과 고추장을 담으며, 농촌체험장을 운영하는 김혜정 씨(47) 집이다.
2 김씨 집 마당에 있는 장독대. 체험객들의 눈을 즐겁게 하기 위해 나무도 심고 장독대도꾸몄다.
면사무소 박차고 나와 얻은 체험장
김씨가 강진에 자리를 잡은 것은 15년 전. 도시 생활을 접고 남편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오면서부터다. 처음에 는 강진 읍내에 살면서 직장 생활을 했었다. 남편은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고 김씨는 면사무소 계약직 직원으 로 일했다. 나쁘지 않은 생활이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항상 허전했다‘. 이렇게 살려고 고향에 돌아온 것은 아 닌데’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다 우연히 덕룡산 서쪽 자락 아래, 산세 깊은 곳에 땅을 사게 됐다. 이참에 차라리 나무나 심고 자연과 벗하며 살자 싶었다. 그렇게 면사무소를 그만두고 이 산속 깊은 곳에 들어온 것이 2002년 일이다. “친정 엄마가 반대 많이 했죠. 사람들도 이해할 수 없다고 했고요. 그런데 나는 확신이 있었어요. 면사무소 에 다니는 것보다 이곳에서 나무 심고 농사지으며 사는 것이 더 좋을 것이라는, 그리고 그런 삶이 더 가치 있 을 것이라는. 그래서 망설임 없이 면사무소를 그만뒀죠.”
은행나무를 심고 집을 지었다. 철철이 산에서 나는 것들을 가져다 효소도 담그고 술도 담궜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된장도, 고추장도 담그게 됐다. “내가 담근 장을 먹어본 사람들이 자꾸 된장 담그는 법을 알려달라는 거예요. 그래서 집으로 불러서 직접 담 그면서 알려줬죠. 한 사람이 두 사람이 되고 열 사람이 되더니 어느새 우리 집이 장 담그기 체험장이 되어 있 더라고요.”
마치 처음부터 그렇게 정해져 있었던 것처럼, 너무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일이었다.
강진의 덕룡산 자락에 자리 잡은 김혜정 씨의 체험농장. 계곡과 나무와 산의 어우러짐이 아름다운 곳이다.
거듭된 실패를 약으로 삼다
장 담그기를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늘어나자, 김씨는 본격적인 체험장 운영에 나섰다. 때마침 농촌진흥청과 함께 고추장 개발 사업을 시작하면서 체험장 운영은 꼭 필요한 일이 되었다. 하지만 시작이 자연스러웠다고 해서 과정도 자연스럽고 쉬웠던 것은 아니었다. 하나에서 열까지 모든 일에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막상 체험장을 열고 보니 마땅한 체험 프로그램이 없는 거예요. 처음에는 메주 쑤기나 된장 담그기 같은 체험을 했었는데 일 년에 한두 번밖에 못하는 데다 체험에서 만든 메주나 된장을 우리 농장에서 숙성시켜야 하는 문제가 남더라고요. 그러다 보니대부분의 프로그램이 그냥 말로 강의하고 결과물만 보여주는 형태가 됐죠. 그러니 체험이 재미있을 리가 없었죠.”
그때부터 시작한 것이 체험 아이템 개발이었다. 청국장 만들기 체험, 장아찌 담그기 체험 등 여러 가지를 시도했지만 딱 맞아떨어지는 것이 없었다. 청국장은 띄우기 체험을 할 수 없어양념하는 것만 했더니 재미가 덜했고, 돼지감자 장아찌는 원가가 너무 비싸서 적당하지 않았다.
“별거 별거 다 해봤어요. 하지만 생각처럼 잘 되지 않아서 다 그만뒀죠. 그러면서 체험용으로 만들어 뒀던 청국장만 창고에 잔뜩 쌓이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녀는 프로그램 개발을 포기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의 실패에서 얻은 교훈을 십분 활용했다. 재미있을 것, 체험객이 결과물을 가져갈 수 있을 것, 너무 비싸지 않아야 할 것 등등. 그렇게 완성한 것이 지금의 즉석 고추장 만들기 체험이다.
“제 방식대로 하면 고추장을 즉석에서 아주 손쉽게 만들 수 있어요. 준비물 간단하죠, 비싸지 않죠, 만드는 재미도 있죠,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 가져갈 수 있죠. 체험용으로 딱 좋은 프로그램이죠.”
?3 도자기 체험을 실연하는 김씨. 장류체험의 단조로움을 보완하기 위해 시작했다.
농촌 체험은 농사가 기본
주말이면 김씨 집 마당은 대형 버스 차지가 되곤 한다. 고추장 체험을 하러 온 사람들이거나 체험장 운영 노하 우를 배우러 온 사람들이다. 평일에도 지나가다 들렀다며 불쑥 체험을 하러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렇게 누 가 봐도‘ 잘나가는’체험장 주인이지만, 그녀는 체험 프로그램 운영만으로는 수익을 내기 힘든 것이 현실이라고 말한다. 체험장 운영으로 수익을 내려면 다른 여러 가지 주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직접 농사를 짓는 거예요. 체험장 운영에 필요한 식재료는 가능하면 모두 직접 키우는 거죠. 그렇지 않고 일일이 시장에서 구입해서 사용한다면 비용이 너무 많이 들거든요. 농사 없이는 체험장도 없다고 보면 되요. 저는 올해 처음으로 땅콩을 심었어요. 체험객이 많이 오다 보니 손님들에게 줄 간식거리가 많이 필요한데 사서 쓰기보다는 직접 키워서 쓰려고요.”
간단한 식사를 포함해서 운영하는 등 체험과 연계한 다른 수익거리를 덧붙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단 어떤 것을 하든 자신이 운영하는 체험장의 주제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을 해야 한다고. 부수적인 일에 너무 많은 돈과 시간이 들면 안 하느니만 못하기 때문이다.
“저는 식사를 포함한 체험 프로그램을 주로 하는데, 식사는 체험에 사용하는 장아찌를 활용한 밥상을 제공하고 있어요. 식사를 위해 따로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없어 시간도 돈도 절약되죠.”
요즘은 자신이 개발한 즉석 고추장을 좀더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는 김씨는 오늘도 챙이 넓은 모자를 쓰고 장독대로 향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