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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P Photo 지난 2월13일 당시 오바마 민주당 대통령 경선 후보가 위스콘신 제인스빌의 자동차 공장을 둘러보고 있다. | 미국 자동차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 12월18일 데이너 페리노 백악관 대변인은 부도 위기에 놓인 미국 자동차 회사가 혼란스럽게 무너지지 않도록 순차적 파산을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빅3로 불리는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포드·크라이슬러는 의회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지만, 상원은 140억 달러 구제금융안을 부결시켰다. 부시 행정부는 의회 동의 없이 사용 가능한 7000억 달러 기금을 동원할 계획이다.
미국에서 자동차 산업은 상징적·실질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공장이 멈추면 수십만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는다. 미국 연구소 오토모티브는 빅3 노동자를 합치면 약 23만9000명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자동차 산업 특성상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하청업체 연쇄 부도가 발생한다. 내년에 GM이 문을 닫으면 실직자 수가 총 250만명, 빅3가 모두 파산하면 350만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연구소는 밝혔다.
미국 자동차 회사 몰락은 그동안 기술 개발을 소홀히 하고 ‘규모의 경제’에만 집착한 탓이 크다. 미국 자동차 업체는 연비 높이기를 연구하기보다는 싼 기름값만 믿고 기존 자동차의 대량생산에만 열을 올렸다. 무리한 투자로 대출을 늘리고 할부금융 등 파생 사업을 키워, 최근에는 ‘자동차 회사가 아니라 금융회사’라는 비아냥까지 받았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석유산업에 신경을 쓰는 사이 미국 자동차 산업은 방치됐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은 12월7일 스웨덴 스톡홀름 기자회견에서 “미국의 자동차 업체들은 결국 사라질 것이다”라며 비관스러운 전망을 내놓았다.
빅3, 기술 개발 소홀히해 파산 위기
미국 자동차 위기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캐나다 역시 미국 ‘빅3’ 현지법인에 수십억 달러를 지원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대변인은 AP·CNN 등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빅3 파산이 우리 사업에 미칠 손실은 분명히 엄청날 것”이라며 구제금융을 지지했다. 경쟁 회사가 몰락하는 게 오히려 해가 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치열한 시장 다툼을 해왔던 현대자동차 고위 관계자도 “우리는 미국 빅3의 파산을 원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일본·한국 자동차 회사가 미국 빅3를 옹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자동차 산업 불황으로 자칫 미국 정치·사회에 보호무역 바람이 일까봐 걱정하기 때문이다. 국수주의 분위기가 팽배해져 외국 차를 쓰지 말자는 운동이 일거나, 무역규제가 생기는 것은 도요타나 현대에 가장 큰 악몽이다.
거기에 요즘 자동차 산업은 국제적으로 서로 얽히고설켜 있다. 예를 들어 미국 자동차 회사에서 하청을 받는 한국 회사가 있다. 또 미국 자동차 메이저가 몰락해 미국 부품업체가 연쇄 부도하면, 그 미국 부품업체 도움을 받는 한국 메이저 회사도 타격을 입는다. 특정 브랜드의 완성차 한 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른 4~5개 나라 공장이 함께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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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s=Newsis 12월5일 제너럴모터스 회장 리처드 왜고너·크라이슬러 CEO 로버트 나델리·포드 회장 앨런 멀랠리(왼쪽부터)가 구제금융을 받기 위해 하원 청문회에 출석했다. | 물론 빅3가 파산한다고 해서 미국 자동차 시장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누군가가 회사를 인수할 것이고, 차 수요는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인에게 자동차는 의식주와 같다. 아무리 금융위기 한파를 겪더라도 차 없이 걸어다닐 수는 없다. 빅3 붕괴는 역설적으로 미국 자동차 시장, 아니 세계 자동차 시장의 지각 변동을 불러온다. 새판 짜기가 시작되는 것이다. 한국 자동차 회사는 이 격변의 기회를 살려 도약할 수도 있고, 어쩌면 중국이나 인도 회사에 밀려날 수도 있다.
지금 우리 눈앞에 벌어지는 상황을 1908년 미국 포드 사가 T모델을 만들어 자동차 생산 혁명을 일으킨 이래 100년 만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다. 단지 거대 자동차 회사 3개가 쓰러지기 때문이 아니다. 포드가 컨베이어벨트 시스템으로 생산 패러다임을 바꿨듯이, 엔진 구동 방식과 자동차 에너지원에 대한 패러다임이 지금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선거가 끝난 뒤 바로 공개한 ‘오바마-바이든 플랜’에서 2015년 미래 미국 자동차 공장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이브리드 카 100만 대를 생산해온 GM 등 자동차 기업 생산라인에 노동자 수만 명이 새로 배치됐다.”
오바마는 현재 진행되는 자동차 업체 도산 위기의 해결책을 ‘그린카’에서 찾으려고 한다. 선거 기간에 오바마가 “자동차의 원조는 미국인데 왜 하이브리드 카와 전기 자동차의 디자인과 제조를 한국과 일본이 하도록 내버려두었냐”라고 발언한 것은 ‘올해의 문장’에 뽑힐 정도로 자주 인용되었다. 일본 도요타 하이브리드 카 프리우스가 히트를 한 것이 오바마 당선자의 뇌리에 깊이 박힌 듯하다. 하이브리드 카란 기존의 내연 엔진과 배터리 엔진을 모두 장착한 겸용차를 말한다. 저속으로 달릴 때는 전기 모터를 쓰고 고속 주행에는 보통 엔진을 쓰는 색이다. 유해가스를 90% 이상 줄이고 연비를 획기적으로 높인다. 고려대 기계공학과 박심수 교수는 “미국 빅3는 기회를 놓쳤다. 빅3는 도요타와 비슷한 시기에 하이브리드를 개발했지만 양산하지 않았다”라고 지적했다.
오바마는 구미 자동차 산업이 회생하려면 구시대 차량으로 승부할 것이 아니라 친환경 자동차 기술을 선도하는 방식으로 앞서나가야 한다고 믿는다. 이제 그린카는 환경문제가 아니라 경제 문제다.
오바마는 하이브리드 차량을 이용하는 운전자에게 세금을 7000달러 공제해주겠다고 공약했다. 하이브리드 차량 생산업체에는 대출 혜택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자기 스스로 자가용을 크라이슬러 300에서 포드 이스케이프 하이브리드 SUV로 바꿨다.
그린카 혁명 시작하다
12월5일 구제금융을 요청하기 위해 워싱턴 청문회장에 출석한 빅3 CEO는 하이브리드 카를 몰고 나타났다. 자신들이 변하고 있다는 걸 증명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포드는 구제금융 신청안을 쓰며 하이브리드 모델을 2010년까지 양산하겠다는 약속을 집어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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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s=Newsis 2007년 뉴욕 모터쇼에서 직원이 도요타 하이브리드 카 프리우스 앞 유리창에 스텐실 글자를 박고 있다. | 현재 미국 에너지 사용량의 30%가 자동차에 쓰인다. 이산화탄소 등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25%가 미국에서 나오는데 부시 행정부는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하며 온실가스 감축 노력에 미온적이었다. 반면 오바마는 온실가스 감축 협상을 적극 주도하겠다고 공약했다.
온실가스 감축은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미래 흐름이다. 100년 만의 자동차 혁명은 여기서 시작한다. 유럽 도로교통연구자문위원회는 2020년까지 승용차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95g/km로 규제하도록 권고했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자동차는 비싼 세금을 물게 될지도 모르고, 그만큼 시장성을 잃게 될 것이다.
세계가 그린카 전쟁에 뛰어들고 있다. 유럽 자동차 업체가 각 나라 정부와 유럽연합(EU)에 400억 유로(약 72조원) 규모의 금융 지원을 요청하자, 유럽투자은행(EIB)은 청정교통계획(ECUT)이라는 명목으로 자동차 업계가 2010년까지 총 40억 유로를 낮은 금리로 대출받을 수 있도록 했다. 돈을 주는 대신 친환경 차로 바꾸라는 뜻이다. 스웨덴 정부는 지난 12월11일 친환경 자동차 연구개발 부문에 대한 투자를 위해 총 35억 달러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는 10년 이상 된 중고차를 온실가스 배출 감소 차량으로 교체할 때 최고 1000유로를 지원한다고 발표했다.
친환경 자동차, 즉 그린카는 크게 하이브리드, 디젤, 바이오에탄올, 수소연료 전지, 전기 자동차 등으로 구분된다. 나라마다, 처한 지리적 조건에 따라 어떤 그린카를 육성해야 할지가 달라진다.
그린카 시장의 맞수 디젤과 하이브리드
미국의 경우 친환경 자동차라고 하면 지금까지(부시 행정부까지) 바이오에탄올 차를 부르는 말이었다. 에탄올 혼합연료 차는 석유 대신 옥수수 등에서 나온 에탄올을 대체 연료로 쓰는 자동차를 말한다. 듀퐁이나 GM에서 의욕적으로 개발했고 정부 지원도 많이 받았다. 브라질도 옥수수 대체 연료를 개발하는 나라다. 하지만 식량으로 쓰일 곡물을 자동차 연료로 사용하면 세계 곡물가가 올라 빈국의 기아 사태를 초래한다. 결정적으로 에탄올이 호흡기 질환을 유발하고 오존층을 파괴하는 가스를 내보낸다는 연구가 나오면서 바이오에탄올은 친환경 자동차가 아니라 도리어 반환경 자동차라는 비판이 높아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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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uters=Newsis 유럽 차의 50%는 디젤 엔진을 쓴다. 위는 2008년 파리 모터쇼. | 수소연료 자동차나 전기 자동차는 아직 상용화하려면 오랜 시간이 걸려야 한다. 혼다가 수소연료 자동차 FCX를 내놓으며 연료전지 차 전망을 밝게 한 적도 있다. 하지만 수소는 자연 상태에서 존재하는 물질이 아니다. 아직도 경제성 있게 수소를 대량생산하는 방법은 발견되지 못했다.
결국 그린카 시장의 맞수는 디젤차와 하이브리드 카다. 또는 둘이 결합한 디젤-하이브리드 카다. 일본 도요타는 2012년까지 하이브리드 카를 연간 100만 대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2020년에는 모든 모델을 하이브리드 카로 병행한다는 것이 목표다. 미국 GM도 2012년까지 하이브리드 카를 총 16종 출시할 계획이다.
하지만 한국 실정에는 아직 하이브리드보다 디젤 엔진 개발이 더 시급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유럽은 전체 차 중에서 50%가 디젤 차다. 디젤 엔진은 그동안 가솔린(휘발유) 엔진보다 매연을 많이 배출한다는 인식 때문에 한국에서는 널리 확산되지 않았다. 황산화물과 질소산화물을 많이 배출한다는 것인데, 요즘 기술 개발로 이 문제가 해결되고 있다.
12월16일 여의도 국회에서 그린카 정책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한국과학재단 정동수 박사는 “디젤 차량이 오히려 연비가 높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더 적다”라고 말했다. 같은 토론회에서 홍창의 관동대 교통공학과 교수도 “우리나라는 먼저 클린 디젤차 기술개발에 집중, 이를 대중화하고 그 다음에 디젤-하이브리드 차량을 확산해야 할 것이다”라고 제안했다.
세계 각국 정부는 그린카 사용자에 대해 세제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자동차 산업을 재편하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기준치 이상 차량은 세금을 최고 2600유로 부과하고 기준치 이하 차량은 인센티브를 제공한다. 벨기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기초해 등록세를 할인해준다. 일본은 하이브리드 카 구매시 일반 차량과의 차액 50%를 보조해준다. 한국교통연구원 도로교통연구실장 성낙문 박사는 “한국의 경우는 디젤 엔진 차량에 오히려 환경세가 붙는다. 탄소 배출량을 기준으로 세제를 개편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