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재청 홈피 사진)
화엄, 그 아름다움에 들다 - 황매산 산행기
만행(萬行)을 떠나셨나? 아니, 사라쌍수(沙羅雙樹) 아래 열반에 드셨나? 금당도 없어지고, 부처도 사라지고, 승방의 전각이며 수행자도 없는 허허로운 절 뜨락. 철(凸)자 모양으로 돌출된 6단 석축은 세월에 얼룩지고 돌이끼만 푸른데, 석등 하나 자명등 불명등(自明燈佛明燈) 마음의 불을 밝히고 있다.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되어 미망(迷妄)을 일깨우고 있다. 팔각 기단석과 연꽃 받침대에 발돋움하고 서서 가슴과 앞발을 맞댄 채, 화사석(火舍石)과 팔각 지붕돌을 떠받들고 있는 사자 한 쌍. 힘이 제법 들어가 불룩한 엉덩이의 곡선은, 힘줄이 위아래로 곧게 뻗은 굵은 뒷다리의 직선과 이어진다. 이윽고 암수 사자 두 다리 사이의 수평 공간과 뒷다리와 앞다리 사이의 수직공간이 만들어내는 절묘한 여백에 눈길이 이른다. 오호라, 저기 저 황매산이, 부처님이, 조사들이 묵언수행 중이로구나! 침묵의 위대함이여, 비움의 아름다움이여, 텅빈 충만이여! 신라의 장인들은 허공에 우주를 담았구나, 영암사지는 폐허에서 환상의 나라, 불국정토를 보이는구나!
영암사지 석등과 황매산의 장대한 풍광은 유홍준 교수가 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6>(2011)의 표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그는 영암사지 답사기에서, ‘사람의 눈을 놀라게 하고 가슴을 뛰게 하는 폐사지(廢寺地)는 영암사터 이외에 다시 찾아보기 힘들다’고 말한다. 영암사지에 매료된 이후 황매산은 마음 깊이 간직한 그리운 곳이 되어 있었다. 뉴전주 알프스 산우회 제 48차 산행은 산청․합천의 황매산으로 향한다. 늘 그러했지만, 오늘은 떠나기 전부터 마음이 더욱 설렌다. 산도 산이려니와 영암사 폐사지를 답사할 수 있을 듯하기 때문이다.
황매산(1108m). 경남 서부를 가로질러 산청군과 합천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서쪽으로는 산청군 차황면이, 동으로는 합천군 가회면이 있다. 영남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데서 알 수 있듯이 화강암으로 된 기암괴석이 즐비하고, 숨 막히도록 아름다운 철쭉꽃과 바람에 풍화되는 억새들이 황매평전을 중심으로 장관을 이룬다. 산악대장님의 설명에 따르면, 소백산, 바래봉과 더불어 우리나라 3대 철쭉 군락지로 꼽히는 곳이라 한다.
여암 신경준의 산경표에 따르면, 황매산은 백두대간의 진양기맥에 속한다. 백두대간이 지리산을 향해 내달리다 민주지산(1242m) ․ 삼도봉(1178m)과 북덕유산 향적봉(1614m) 사이에서 갈라져 동남으로 뻗어 수도산(1317m) 가야산(1432m)을 이룬 것이 수도지맥이다. 그리고 남덕유산(1507m)에서 동남으로 뻗어 내려가 월봉산(1279m) 기백산(1322m)으로 솟구친 후 잦아들었다가 다시 한 번 황매산으로 우뚝 솟은 후 낙동강과 만나는 것이 진양기맥이다. 수도지맥과 진양기맥 사이를 황강이 흐르면서, 황강이 발원하는 서북쪽에 거창군이라는 화강암 분지를 만들었고, 동남쪽 하류에 합천군을 만들었다. 이와 달리 진양기맥의 남서쪽에는 함양군, 남동쪽에는 산청군이 경호강, 남강을 끼고 자리하고 있다. 문화지리학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산하에 깃들어 살았던 사람들의 삶이 영남 좌도의 문화를 만들어 냈다고 말할 수 있다. 특히 산청과 합천 사람들은 황매산을 신성시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600m 내외의 주변 산을 거느린 황매산, 모산재(영암산)를 신령스러운 바위산으로 여겼고, 이에 따라 이 준봉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절 이름도 얼핏보아 불교와 무관하게 영암사(靈巖寺)라고 짓게 된 듯하다.
하지만 불교적 관점에서, 황매산이란 명칭의 연원은 중국의 하북(河北) 황매산(黃梅山)에서 찾을 수 있다. 중국 선종 6대 조사인 혜능이 스승 5조 홍인(弘忍)선사로부터 <금강경> 가르침을 받고 의발(衣鉢)을 전수받은 곳이 바로 황매산이다. 광동성 영남 신주(新州)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남쪽 오랑캐'라 불렸던 혜능은 이후 조계산에 들어가 보림사를 중심으로 돈교(頓敎)의 법을 전해 수많은 제자들이 그의 문하에서 배출되어 남종(南宗)의 비조가 된다. 한국 불교의 대표적 종파인 조계종은 중국 선종 6대 조사 혜능의 가르침을 따르므로, 황매산이란 명칭은 불교적으로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황매산을 '영암'이라 부르고 영암사를 지어 신성시 한 것은 이곳이 달마 - 홍인 - 혜능으로 이어지는 중국 선종, 특히 남종의 불법을 이은 한국의 대표적인 도량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라 해석할 수 있다. 마이산의 신령한 모습을 보며 아침 식사를 마친 일행은, 대전-통영 고속도로를 빠져 나와 산청군 신등면 단계리를 지난다. 조선조 양반마을(班村)의 풍모를 보여주듯, 당당한 한옥 고택들과 돌담, 단계초등학교가 눈에 들어온다. 특이하게도 이 초등학교의 정문은 서원의 솟을대문과 같은 형태를 하고 있는데, 삭비문(數飛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어린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열심히 날개짓을 익히듯, 어린이들이 열심히 학문을 배우고 익히라는 뜻을 담고 있다. 단계리는 전형적인 시골의 씨족마을로서 진양기맥의 기운을 이어받은 진양 유씨를 비롯하여, 진양 유씨의 사위로 들어온 안동 권씨, 안동 권씨 집안의 외손이며 부농이었던 순천 박씨들이 모여 살았던 고장이다. 그래서 이 마을의 돌담길은 전국의 돌담길 중 가장 먼저 문화재로 등록되었다. 황매산에서 흘러내린 사정천(沙汀川)의 냇돌을 쌓아 만든 돌담, 그 길의 정겨운 골목 풍경을 상상해 본다.
9시 30분 경 모산재 주차장에 도착하자마자 해우소를 찾는다. 산에 오르기 전에 전주의 뱃속 근심을 내려놓으라 한다. 비우고 내려놓아 가벼워져야 비로소 하늘에 다가갈 수 있다 한다. 황매산 화강암처럼 단단한 번뇌 덩어리가 떠나지 않아 점차 혈압이 오른다. 마음이 급할수록 몸이 쉽사리 화해하지 않으려 한다. 고통은 집착에서 오는 법. 지천명(知天命)을 훨씬 지난 나이에도 아직껏 식탐을 떨치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반성하며 몸에게 용서를 구한다. 어리석음에서 욕심이 생기고 집착과 탐욕이 무명을 심화시킨다. 지혜가 있을 때에는 번뇌가 없고, 번뇌가 있을 때에는 지혜가 없는 법. 봄 나무들은 깨달음의 꽃등불을 켜는데, 자그만 집착조차 내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참회한다. 이윽고 참회와 하심(下心)으로 마음의 뒷문이 열린다. 회원들은 몸 풀기를 이미 끝내고 산행에 앞서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왼쪽에 황룡사가 있고, 오른쪽으로 접어들면 영암사터가 있지만, 영암사지 답사는 하산길에 하기로 하고 우선 황포돛대바위를 향한다. 폐사지를 둘러보아야 하기 때문에 오늘은 후미와 동행할 수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서두르기로 했다. 버스 파트너인 최선생님은 황매봉을 지나 1104봉우리, 1060(중봉) 990(하봉) 830(삼봉)을 종주하자고 제안한다. 하지만 산행 계획에 없어 일행과 떨어지게 되고, 영암사지를 갈 수 없을 듯해서 순결바위로 하산하기로 했다. 나의 와룡산 산행 파트너인 ‘산도깨비’ 등과 함께 산을 오르면서 최선생님은 진양기맥의 산들을 설명한다. 철마산(772m), 바람산(706m), 허굴산(682) 등이 황매산과 이어져 있다.
철계단에 이르기 전까지는 비교적 완만한 길이다. 산을 오를수록 황매산은 진면목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화강암 육산으로 큰 골격, 장대한 기상을 자랑하면서, 영암사지를 품고 있다. 요사채와 승방터가 있는 아랫단은 비교적 널찍하고, 법당이 있는 상부공간은 좁아든 모습이다. 수평공간과 수직공간 모두 자연스럽게 수미산의 형상을 지니고 있을 것으로 짐작된다.
황포돛대바위를 오르는 돌계단을 조심스레 오른다. 절로 하심(下心)을 배우고, 묵언 수행을 하게 된다. 화엄법계(華嚴法界)에 오르는 힘겨움과 긴장감이 나를 문득 감싼다. 글쓰기, 아니 삶의 길 찾기가 그러한 것처럼, 산을 오르는 것은 언제나 힘겹고 두렵다. 나에게 등산은 외부 세계의 길을 더듬어 나가는 행위이면서 동시에 마음의 길을 찾는 지형도, 즉 ‘참 나(眞我)’를 발견하는 형이상학적 작업이 되기 때문이다. 김명인 시인은 구도행을 드릴(穿孔)로 바위를 뚫는 행위에 비유한 바 있다. 꽃, 진리의 세계는 잠겨 있고, 진리의 하늘은 구름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뚫고, 밀치고, 올라서고, 힘겹게 밀어야 한다. 자재(自在)로움, 무애의 지혜를 터득하기 위해 오리무중, 구절양장의 미궁을 헤맬 수밖에 없다. 그 과정에서 구도행이 자신의 실존을 발견하기 위한 고독한 모험이라는 사실, 그리고 생의 진실은 선험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탐색해야 한다는 것, ‘먼 곳에의 그리움’이 생을 지속하게 하는 진정한 힘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자각하게 된다.
멀다. 멀기 때문에 가지 않으면 안 된다. 먼 곳이야말로 사람의 마음을 깨워서 모든 사람의 고독과 고민으로부터 건져지게 하는 것이다. 이 세계에 먼 곳이 없다면 얼마나 암담할 것인가. 저 먼 곳에 해탈한 존자가 있다. (고은, ‘화엄경’ 64쪽)
황매평전 들머리에 이르렀다.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촬영지에 태극기가 휘날리고 있다. 그 곳에서 아이스크림 장수가 등반객을 맞이한다. 여름 초입에 들어선 듯한 날씨 때문인지, 장사를 하는 아주머니가 보살로 보인다. 회원들께 아이스크림 보시를 한 후 능선을 오른다. 철쭉 군락지는 꽃망울만 맺혀 있을 뿐이다. 이상 저온 현상으로 철쭉의 개화 시기가 늦은 탓에 철쭉은 다음 주에나 활짝 필 모양이다. 서운한 마음에 마음속으로 ‘뽀샵’을 해서 풍경을 바라본다.
‘바람소리’님을 비롯한 선두 그룹이 종주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최선생님께 전했다.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이내 우리와 헤어져 황매평전 아랫길을 가로질러 정상을 향한다. 등산화 뒤축이 심하게 닳아 있는 뒷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졌다. 인생도처유상수(人生到處有上手), 세상 곳곳에 고수가 존재한다고 했던가. 깊이가 있으면서 고요하고 맑은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황매평전 억새밭을 가로지르는 긴 데크를 지나 봉우리에 오른다. 성도 라사 포탈라궁을 오르는 티벹인들의 신심이 문득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얻고자 산을 오르는가, 무엇을 비우고자 계단을 밟고 있는가 스스로 물어본다. 황매산 정상 0.8km를 알리는 이정표가 보인다.
황매봉(黃梅峰)은 오래 머물 수 없이 옹색한 바위덩이에 불과했다. 하지만 황매산의 의연하고 높은 기상은 무학대사나 남명(南冥) 조식 선생에 비할 바 아니었다. 철쭉꽃이 피어나는 부드러운 평전 위에 우뚝 솟은 황매봉은 진리의 높고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듯했다. 황매산에서 본 우주 자체가 진리이며 화엄의 세계였다. 산길에서 만난 굴참나무는 비로자나 법신불이 되어 나를 일깨우고 있었다. 먼 길을 달려와, 능선을 지나고 벼랑을 올라 만난 황매산은 선재동자가 찾아 헤맨 어머니였다. 그 화엄의 세계에 안겨 ‘나’를 본다. 산은 내게, 색에서 공을 공에서 색을 보며, 만물이 자족한 상태로 수평관계 속에서 생성되어 있음을 깨달으라 한다. 언젠가 다시 이곳에 올라 진리의 비를 흠뻑 맞으리라. 번뇌와 망상을 소멸하리라. 굴참나무 잔가지로 후려치는 화엄의 죽비를 죽도록 맞으리라.
황매평전에 새로 개축한 성루에서 식사를 한 후, 후미 일행을 만나 철쭉 군락지를 걷는다. 회원 두 분이 흥에 겨워 한바탕 소리를 한다. 등반대장님의 안내로 한국 최고의 명당터라고 알려진, 무지개터에 들른다. 용마바위가 모신 분이 무학대사였을까, 영남 유학의 거두 남명 선생이었을까? 명당의 참 의미를 생각하며 '황매산 기적길'을 따라 내려온다. 모산재-순결바위로 이어지는 화강암 암릉과 그곳에서 바라본 돛대바위 풍경은 또 다른 감흥을 자아낸다. 화강암 수직절리가 만들어낸 순결바위에 들어가 잠시 마음을 정화한 후 가파른 산길을 따라 국사당으로 향한다.
태조 이성계 개국 전설이 어린 국사당을 지나 갈림길에 이르러 잠시 망설인다. 왼쪽으로 가면 덕만 주차장이요, 왼쪽 소나무 숲으로 들어서면 영암사지가 있기 때문이다. 산악대장께 전화를 하니, 냇가에서 발을 담그고 있다 한다. 집결 시간 3시가 거의 다 되었지만, 영암사지를 꼭 보고 싶어 반대 방향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황망히 가쁜 숨을 몰아쉬고 언덕을 올라, 스산한 그 절터에서 잠시 머문다. 부처를 모신 상부, 탑을 세운 중부, 승방과 요사채가 있었던 하부가 수미산의 형태를 띠며 불법승(佛法僧)의 조화로움을 연출하고 있었다. 곱게 다듬은 화강암 3단 축대, 기둥을 떠받친 연꽃 모양의 돌들, 그리고 쌍사자석등(보물 제353호), 삼층석탑(보물 제480호), 영암사지귀부(보물 제489호) 등이 화려했던 옛 모습을 떠올리게 하고 있었다. 사적 131호로 지정될 만큼, 영암사의 자연 풍광이나 남은 잔해가 주는 시각적 미학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원형의 환상과 폐허의 실체가 교차하는 공간에서 시간과 문화의 의미를 생각하는 것이 폐사지 답사에서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 비록 시간의 흔적은 땅에 스며들었지만, 폐사지는 천둥 같은 침묵으로 말하고 있었다. 삶의 부질없음, 마음의 공허함을 바로 인식하라 한다. 현상계의 모든 것은 변하고, 나라고 생각하는 것 또한 내가 아님을 깨달으라 한다. ‘sin 12도’의 각도로 기운, 금강계단에서 하심을 배우게 된다. 세상을 공경하고 자연에 겸허한 자세를 취했던 선인들의 자세를 마음판에 새기고 발길을 돌린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시간은 이미 지났고, 집결지인 덕만 주차장은 아득하다. 약초 식혜를 파는 갈림길을 뛰어 오른 후 서둘러 언덕을 내려갔다. 산행에 동행한 회원이 길목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주차장 오르는 길을 잘못 찾아 둘이서 잠시 헤매다 언덕을 오르는데, 나를 부르는 전화가 울린다. 미안한 마음에 얼굴이 화끈거리고 땀만 흐른다.
다랭이 논밭을 끼고 돌아 내려오는데, 마음의 눈길은 여전히 황매산을 향한다. 느티나무 정자와 도래솔이 아름다운 마을 쉼터에서 하산주를 한 후 귀로에 오른다. 산을 감돌아 흐르는 경호강 맑은 물줄기가 창밖으로 흐른다. 술기운일까, 황매산, 영암사지와의 감미로운 첫키스의 추억 때문일까? 의식이 몽롱해지고 스스르 잠이 밀려오는데, 마음밭에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다. 황매산의 꽃들이여, 그대 처음 내 맘에 피어날 때처럼, 늘 그렇게 피어나거라. 내 마음의 꽃밭이여, 늘 봄날이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