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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만 보면
살아생전 어머니 모습이 먼저 떠올라요”
팔순 노모 폐암 고친 정성으로‘약닭’길러 보급하는 이준영 선생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했던가? 정성이 지극하면 그 뜻이 하늘에 닿아 하늘도 감동한다는 말인데, 약닭을 키워 어머니의 폐암을 고친 이준영(李俊泳. 68세.강원도 원주시) 선생의 경우가 좋은 본보기가 된다.
1993년, 이준영선생의어머니(정운분. 1912~2001)가 폐암말기판정을 받는다. 막팔순에 들어선어머니의 갑작스런 폐암 판정에 누구보다도 충격을 받은 것은 5남매중외아들이었던이준영선생.
“어머님 폐암 판정을 받고, 외아들이기 때문에 다른 자식들보다 더 사랑을 주셨던 부모님을 생각하니 하염없이 눈물이 났어요. 아버님은 당신 시골사람 행색 때문에 아들이 창피해질까 싶어 제 대학 졸업식에도 일부러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실 정도로 자식
사랑이 넘친 분이셨고, 어머니 사랑이야 이루 말 할 수도 없지요. 주변에서는 팔십이면 살 만큼 사셨으니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했지만, 그럴 수는 없었습니다.”
80세 때 폐암 말기 판정을 받은 어머니는 아들이 지극정성으로 기른 약닭을 먹고 이후 8년이나 더 사시며 천수를 누리셨다. 사진은 폐암 치료 후, 약닭에게 보리밥과 약재를 섞어주고 있는 정운분 여사의 생전 모습.
노모의 발병 사실을 안 뒤 이 씨는 백방으로 치료 방법을 찾아 나섰다. 의사마저 포기한 노모였지만 그 자신은 포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끝까지 자식들을 포기하지 않고 건사하신 어머님이 아니던가?
그는 더 이상 병원에 의지하기 않기로 했다. 암세포가 폐를 잠식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어머니를 위해서 무슨 일이든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었다. 그는 닥치는 대로 건강 관련 서적을 읽기 시작했다. 틈만 나면 서점에 들러 암 치료와 관련된 책이라면 무슨 책이든 구해 읽었다. 100여 권이 넘는 책들이 그가 교편을 잡고 재직하고 있던 학교 책상과 집안 거실에 쌓여 갔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의 간절함을 곁에서 지켜보던 그의 아내(金香經. 59세)가 몇 해 전 한 여성지에 난 인산 선생 관련 기사를 기억해냈고, 그는 결국 인산 선생의 저서인『神藥』을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어머니는 점점 기력이 쇠잔해 갔고, 그럴수록 그는 정신이 번쩍 들어 책을 읽어 내려갔다.
며칠 만에 그 두꺼운 책을 읽었는지 기억은 없었지만, 작은 글씨들이 머릿속에 쏙쏙 박히는 느낌이 들었다. 어머니 폐암 치료에 대한 막막함이『神藥』을 읽음으로써 구체성을 띠고 그에게 각인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거다 싶은 생각에 그는 매달리듯 다시
『신약』을 집어 들었고, 곧바로 책 제8장 오장 육부의 제병을 펼쳤다. 그 중에서도 세 번째 단락인‘폐(肺) 폐선(肺腺) 기관지(氣管支)의 제병 중에서‘결핵과 폐암 및 위암(142~143p)’의 치료법으로 인산 선생이 제시한, 독사와 구렁이를 닭에게 먹여 치료제로 쓰는 ‘약닭(일명 뱀닭)’에 관한 내용을 읽고 또 읽었다.
“병이 있으면 약 또한 있다는 것을 약닭을 통해 기력을 회복함 을 읽음으로써 알게 되었지요. 방법을 안 이상 한시도 지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폐암 걸린 팔순 노모 살려낸 약닭
약닭을 길러 어머님께 드리기 위해서는 최소한 1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모를 리 없기에 흐르는 시간이 더욱 아쉽기만 했다. 미리 인산의학을 알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하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이제라도 인산의학과 인연이 닿은 것도 그나
마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약닭을 만들기 위해서는 우선 토종닭이 필요했다. 어렵사리 토종닭을 구한 후 그 닭에게 봄철부터 입추 무렵까지 옻 껍질 말린 것과 인삼 말린 것을 절구에 찧고 채로 걸러 보리밥과 섞어 먹여야 했다. 약닭을 만드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
이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 하나로 시작한 일이었기에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혹시라도 어머님 폐암 증세가 갑자기 악화된다면 약닭 사육은 처음이자 마지막 일이 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몰라도 기력이 쇠진한 어머니의 암 세포는
생각보다 더뎠다. 팔순을 넘긴 나이였으니 암 세포의 증식도 일반 세포와 마찬가지로 활발하지 못했을 터였다.
애초에 고생할 것을 각오는 했었지만 막상 현실과 부딪치고 보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옻 껍질을 구하기 위해 길가에 있는 옻나무 껍질을 벗기다가 주인이 나타나 큰소리로 나무라는 소리에 눈물을 흘렸던 일이며, 어머니 약을 하기 위해 할 수 없었다는
이준영 선생의 하소연을 들은 주인이 남은 가지마저 잘라주며 더 가져가라던 말에 다시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명색이 학교 선생이란 자가 생전 처음 그런 일을 당하고 보니 정말 어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창피한 마음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머니를 생각하면 무슨 일인들 못하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뿐인가?
닭들이 설사병에 걸려 시름시름 죽어나가 1/3이 죽어나가기도 했다. 어머니 약 해 드릴 닭은 가을까지 살아남아야 하는데…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간 날때마다 닭장 앞에 서서 닭들을 보살폈다. 설사병은 뱀 구더기를 많이 먹으면 생기는 병인데, 닭들에게 죽염수를 먹여 그나마 설사병을 잡을 수 있었다.
뱀 구하는 일 역시 수월하지 않았다. 일반인들과 다를 바 없이 이준영 선생 역시 평소 뱀을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리 흔치 않았다. 당장 뱀을 구해야 하는 데 막막하기만 했다. 입추가 지나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뱀 구더기를 닭에게 먹여야 했기 때문이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에 닿는다고 했던가? 마침 이준영 선생이 가르치던 학생의 학부형 중에 뱀을 잡는 일로 생계를 이어가는 이른 바 ‘땅꾼’ 이 있었던 것. 그 이를 통해 독사와 구렁이 등을 구했고, 생각지도 않게 조상님 벌초를 다녀오다가 뱀 떼를 만나 70여 마리나 되는 뱀을 잡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반평생 동안 아이들을 가르치던 사람이 뱀을 잡아 구더기를 내어 닭에게 먹이는 일도 불가능한 일이고, 벌초를 다녀오다가 뱀 떼를 만난 일도 달리 설명할 길이 없는 기이한 일이 분명하 다. 하지만 세상에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은 얼마나
많은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진실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러한 경험들은 그가 인산의학을 좀 더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때는 단지 어머니를 살리겠다는 일념뿐이었다면, 시간이 점점 지날수록 병고에 신음하는 인류를 구제하고자 생을
살다 가신 인산 선생의 뜻이 조금씩 그에게도 전해지기 시작했다.
약닭의 비밀, 『神藥』읽고 터득
인산 선생은 약닭을 키우는 방법을『神藥』에 적고 있는데, 이준영 선생에 의하면 뱀 구더기를 내는 방법이 보통 신경 쓰이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독사10마리를배를갈라보통독뚜껑2개에 각 5마리씩 그 안에 서리어 놓는다. 그리고 큰 독 뚜껑에는 아주 큰 금구렁이나 황구렁이 1마리를 배를 갈라 놓는다. 그러면 입추 후에 쉬파리가 많기 때문에 이것들이 모여 들어 쉬를 슨다. 이 쉬가 독 뚜껑 안에 서리어 놓은 독사와 구렁이의 진물을 먹고 하얀 구더기로 성장한다. 그러면서 독수를 뿜어내는데, 이때 구더기가 독사와 구렁이를 다 먹어 가면 또다시 그 위에 전과 같이 독사 10마리와 구렁이 1마리를 먹이로 준다. 이렇게 3번을 실시하여 모두 독사 30마리와 구렁이 3마리 정도를 구더기의 먹이로 대어 준다. 그런데 이를 실시할 때 구더기가 독사 및 구렁이의 진물을 먹고 어지간히 성장한 뒤에는 밤이 되면 모두 밖으로 기어나가 땅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그러므로 구더기가 조금 성장하면 기어나가기 전에, 해질 무렵 두꺼운 광목으로 위의 세독뚜껑을 싸서 묶어 놓아야만 한다.
“뱀을 먹은 구더기들 정말 힘이 대단해요. 독을 빠져나온 구더기들은 땅 속으로 1미터 이상 기어들어간다니까요.”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김향경 씨가 뱀 구더기 이야기가 나오자 말을 거든다.
정말 뱀 구더기들의 힘은 대단하다고 한다. 그 힘이 고스란히 닭에게 옮겨가는 것인데, 뱀 구더기를 먹은 닭들은 그 약성으로 인해 털이 뭉텅뭉텅 빠져 나간다고 한다. 그리고 뱀은 꼭 국산 뱀을 써야 한다고. 수입 뱀을 써서 약닭을 키운다는 사람이 있어 확
인해봤더니 구더기 덩치는 큰데 결정적으로 힘이 없더란다.
“국산 뱀 구더기는 작고 기운이 좋은 반면, 수입뱀으로 낸 구더기는 크기만 하지 기운이 없더라고. 문제는 돈인데, 사람 목숨을 살리는데 쓰이는 것을 돈 몇 푼 아낀다고 그러면 쓰나. 자기 어머니가 먹을 약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수입산 뱀 쓰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제대로 키운 약닭은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일부 정직하지 못한 약닭 상혼을 꼬집으며 이준영 선생이 덧붙였다.
기자도 처음에 약닭 가격을 들었을 때, 너무 비싼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준영 선생이 약닭을 키우는 과정을 수차례에 걸쳐 듣고, 또한 취재차 방문해 그‘고생스러운 과정과 자부심’을 확인한 이후에는 결코 비싼 가격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산 선생은『神藥』에 밝히기를,‘결핵에는 약닭 1마리를 먹으면 되고, 폐암 및 위암에는 2마리 이상을 먹어야 한다. 이를 먹는 법은 닭의 털과 똥만을 버린 다음 나머지를 모두 푹 삶아 그 국물과 고기를 함께 먹는다. 그리고 이와 함께 그 뼈도 말려서, 가루를 만들어 함께 먹는다’고 하였다.
죽은 죽지 못해 먹는 것, 밥 다오!
그 해 가을 끝자락, 그토록 힘들게 키운 약닭을 약으로 쓸 수 있게 되었을 때, 이준영 선생의 어머니도 무척이나 위태로웠다. 여름까지만 해도 닭을 관리할 수 있을 정도로 큰 문제가 없었는데 계절이 바뀌자 급격하게 체력이 기울더니 결국 몸져눕게된것이다.
순식간에 밥은 물론 물도 못 삼킬 지경이 되었다. 겨우 사람을 알아볼 정도였는데, 주변에서는 장례 준비를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까지 들렸다.
이준영 선생은 손수 키운 약닭 3마리를 준비해 지극 정성으로 끓였다. 물 한 모금도 못 넘기는 상황까지 암이 악화되었지만 일 년 동안 어머니만을 생각하며 키운 약닭을 한 번이라도 드셔보게는 해야 나중에 후회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는 누워 있는 어머니 귀에 대고‘꿈에 도인을 만났는데, 닭을 고았는데 어머니를 드리면 병이 낫는다’고 큰소리로 말했다. 그의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머니는 그가 떠준 약닭 국물을 몇 숟가락 드셨다. 수시로 입 안에 국물을 넣어 드렸는데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물도 제대로 못 삼키셨던 어머니가 약닭을 드신 지 이틀이 지나자 미음을 드시더니 사나흘 후엔 죽을 드시는 게 아닌가. 1주일이 지나자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밥을 드실 수 있게 되었다. 이준영 선생은 이때 어머니가 한 말을 아직까지 기억하고 있다.
“얘야, 죽은 죽지 못해 먹는 거란다. 밥 다오!”
『신약』에서 인산 선생이 밝힌 약닭의 효능을 기력을 되찾은 어머님을 통해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이다. 폐암으로 인해 죽음을 목전에 두었던 어머니는 약닭으로 기력을 회복한 후 8년을 더 사시다 89세 되던 해인 2001년 천수를 다 누리시고 타계하
셨다.
어머니를 통해 약닭의 효능을 확인한 이준영 선생은 인산 신약이 사장(死藏)되게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이후 매년 20~30마리씩 약닭을 키워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인산의학의 활용법은 무궁무진합니다. 저는, 다만 양심에 저촉됨 없이 매년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만큼만 약닭을 기릅니다. 어머니를 구한 그 기쁨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나눠주고 싶을 뿐입니다. 아무리 어려움이 닥쳐도 어머님 병구완을 위해 닭을 키웠던 그 마음만은 절대 저버리지 않을 겁니다.”
이준영 선생의 이런 이야기는 알음알음 바깥 세상에 알려져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약닭을 통해 건강을 되찾았다. 이후, 대학 동창생 장인의 폐암을 치료한 것을 비롯해 최근엔 당진에 사는 유방암 환자 장모 씨 등 많은 암 환자들이 약닭을 통해 기력을 회복
해 암을 떨쳐냈다. 또한, 현대의학을 업으로 삼고 있는 의사와 약사들도 약닭을 구하기 위해 그를 자주 찾는다. 얼마 전엔 당뇨병으로 고생하던 50대 남성이 약닭을 먹고 기력을 회복해 10여 년 만에 다시 ‘부부관계’를 가진 후 감격에 겨워 전화를 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례들은 약닭의 효능을 말해주고 있거니와, 일 년 전에 미리 예약을 하거나 늦어도 매해 5월 이전에 확인을 해야만 그나마 어렵사리 약닭을 구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몇 해 전, 30년 간 잡았던 교편을 놓은 이준영 선생은 남은 인생을 약닭의 명맥을 잇는 일에 매진 할 요량으로 치악산 기슭에 천혜의 약닭 농장 부지를 마련해 놓고 있다. 그는 수령 30~80년 이상의 옻나무 껍질 몇 년 치를 준비해 놓을 정도로 준비성이 철저할 뿐만 아니라, 뱀은 7년 이상 큰 것, 인삼은 6년근, 보리쌀은 꼭 경상도 지역에서 재배한 것만 따로 준비해서 쓰고 있다고 한다.
“15년 넘게 약닭을 키워왔지만 그 약성을 확인 할 때마다 여전히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게 다 인산 선생님의 혜안 덕분이지요.”
기필코 어머님을 살리겠다는 마음으로 사육을 시작한 약닭이었다. 지금 그 어머니는 곁에 계시지 않지만, 그는 병마에 시달리고 있는 또 다른 우리의 어머니들을 위해 오늘도 15년 전 초심을 간직한 채 약닭을 키우고 있다.
글·사진 박홍희(본지 편집장)
첫댓글 많은 사람이 뱀 하면 가장 먼저 징그럽고 무섭다는 생각을 떠올린다. 입안에 독(毒)을 품은 채 혀를 날름거리며 꿈틀대는 모습을 보면 이런 이미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뱀이 가진 독(毒)이 요즘 들어 사람의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한창 연구되고 있어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