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학년 막학기지만 18학점을 듣고 있다. 영양학, 체육사, 체조, 의사소통 영어2, 체력트레이닝학 및 실습, 특수체육, 스포츠 지도론까지 쭉 늘어놓고 보니 7개라 당황스럽기도 하고 새삼 많은 과목을 듣고 있구나 싶다. 4학년이라서 일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이 유난히 '이번 하반기에 지원할 거야?' '복수전공을 하는데 어느쪽으로 진로를 선택할 거니?'와 같은 이야기들이 많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 마다 농담식으로 '대학원으로 도피하고 싶어요'라고 말하곤 한다.
어렸을 적부터 의사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나 정형외과의 의사가 되고싶었다. 왜 그랬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학교에서 생물을 배우면서 인간의 몸이 가진 메커니즘이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인체에 대해 배우는게 너무나도 좋았기에 '체질인류학을 하겠어!'란 생각으로 강원대 문화인류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문화'인류학과인 만큼 내가 원하는 수업은 1개 밖에 개설되지 않았다. 앞선 글에서도 이야기 했었지만 그렇기에 운동을 하고, 운동을 하며 다치는 아이들을 보며 물리치료사, 운동처방사, 팀닥터 등의 생각을 하며 스포츠과학과로 복수전공을 신청했던 것이다.
물리치료사를 알아보니 물리치료과를 나오고 국시 합격해야 물리치료사가 될 수 있다고 하며 그럼에도 페이가 적고 근로환경이 좋지 못하다는 소리를 많이 들어 덜컥 겁부터 생겼다. 운동처방사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운동처방사를 하겠어! 라며 스포츠 과학부를 복수전공하고있지만 수업을 들으면 들을 수록 '운동처방사란게 대체 무엇이지? 내가 생각한 것과는 다른 것같아.'란 생각이 많이 들고 있다. 팀 닥터 역시 스포츠 팀에 소속된 의사이기에 의사가 되어야 한다는 거대한 벽이있다.
꿈을 거대하게 가져야 하는가? 혹은 꿈을 내가 할 수 있는 정도의 수준으로 낮추어야 하는가? 그러한 선택의 기로 속에서 나는 지금 '영양'이라는 새로운 길을 발견했다. 스포츠과학부에서 수업을 들으면서 흥미롭게 들은 수업을 꼽자면 단연 해부학, 생리학, 영양학이다. 지금 영양학 수업을 수강하고 있다. 복수전공 면접을 볼 때 김세환 교수님께서 '이 친구 나랑 비슷하겠구만'이라고 말씀하셨던게 기억난다. 생태인류학으로 박사를 하셨다는 김세환교수님의 그때 그 말씀이 나는 참 즐거웠다.
2013년 한 해 동안 휴학을 하고 화장품 임상실험을 하는 곳에서 4개월간 임상실험 보조로 일을 하며 다양한 기기들을 다룰 기회가 되었었다. 그동안 만나왔던 사회과학, 인문학계열의 사람과는 또 다른 자연계열, 공학계열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다. 4개월이 지나고 in-vitro라는 부서에서 연구보조원으로 일하게 되었다. 당시 나는 '앗 알바에게도 승진의 기회인 것인가?'란 생각에 즐겁게 정말 즐겁게 마냥 즐거워서 부서를 옮겼었다. in-vivo라고 불리는 원래 있던 부서와는 달리 in-vitro에서는 세포실험을 한다. cell을 키우고 다양한 MTT(독성검사 실험)을 하며 더욱더 다양한 기계들을 접하고 사뭇 내가 학교를 다니며 배워왔던 지식들과는 다른 업무를 맡게 되었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 당시에 나는 새로운 실험을 배우면서 "아 1년은 트레이닝해야 이제 써먹나... 싶은데 넌 써먹겠다... 싶으면 그만두겠구나."라며 팀장님이 말씀하셨었다. 그럼에도 이런저런 연구 트레이닝과 연구실 관리, 기계 작동법등을 배우며 나는 즐거웠었다. 재미있었다. 모르는게 태반이라 어려웠고 학교를 다니면서도 등한시 했던 영어로 된 책들을 읽어야 했음에도 실험이 즐거웠다.
스포츠 영양학 수업을 듣고 있으면 그때의 감성이 떠오른다. 김세환교수님의 다양한 연구 경험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아 나도 저런걸 하고 싶다.'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일했었던 연구소를 배경으로 연구를 하는 모습이 그려진다. 같이 사는 룸메이트 중에 석사과정을 하고있는 대학원생 언니가 있다. 가끔 언니와 이야기를 하곤한다. 나역시 대학원을 가고싶다고. 그러면서도 너무 고민이 많다고 이야기를 덧붙이게 된다. 부모님의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점, 나라는 1인가구의 생계를 꾸려야 하는 점 그리고 다양한 '겁'이 찾아온다. 언니는 '공부가 더 하고싶어서. 공부를 더 깊게 배워보고싶어서'대학원에 진학했고 그러한 마음가짐으로 대학원진학을 결정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또한 언니 역시 부모님께 손벌리지 않는 한 자신의 생활을 할 수 없노라고 이야기를 해준다. 대학원에 진학하고 영양학을 공부해 프로구단의 영양사가 되고 싶단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 당장은 취직보다는 대학원진학이 감성적으로 끌리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고민을 해야 할 것 같다.
첫댓글 이상과 현실, 이성과 감성이 치열하게 견주고 있네요. 이 상황에서 어떤 사람이 감히 어느 한 쪽의 손을 들어줄 수 있을까요. 나같은 소견이 좁은 사람은 그냥 들어주는 사람일 수 밖에 없네요.
조카가 ROTC제대를 하고 병원에 취직을 했습니다. 요즘처럼 취업이 안 되는 상황에서 정규직으로 채용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런데 그 조카는 부모님을 원망하고 있었습니다. 부모님이 그 자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줬거든요. 그래서 지원을 했고, 그렇지만 합격여부에 부모님이 영향을 준 것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바리스타가 되려고 했는데 부모님 때문에 이 일을 하게 되었다고 원망을 하고 있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죠. 바리스타
바리스타는 정말 원한 일이었을까를 말이죠. 정말 원한 것이 아니라 취업에 대한 부담을 그렇게 도피한 것이 아닐까를 말이죠. 취업이라는 경쟁과 치열함을 회피하는 도구는 아니었는지를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