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문 작가와 가까운 양용문친구의 안내로 남산자락 필동에 있는 작가의 작업실을 방문하였습니다. 남산 케이블카가 지척에서 오르내리는 곳이었습니다. 3층에 올라서니 문을 열고 기다리고 있었지요. 진공관 앰프에서 잔잔한 명상음악이 흘러나왔고, 긴 머리의 양작가가 반갑게 맞아 주었습니다. 고 2 쯤 같은 반이었을 것으로 기억이 되는데. 잘 생겼고, 늘씬한 키에 항상 깔끔했던 학생이었습니다. 그 시절에 비해 몸은 약간 불었고, 세월의 스쳐지나간 듯 또레보다는 많이 젊어 보였지요. 깔끔했던 인상 그대로 정돈된 스튜디오에서 맞아주었습니다. 삼면이 작품사진으로 장식되어 있었고, 유리 창문 쪽으로 오디오가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오래 숙성된 보이차를 꺼내 찻물을 우려냈고, 차를 마시며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중2때 채수환군이 사진기를 가져와 처음 찍어 봤는데, 호기심에 필름을 열어서 풀어보았던 덕에 첫 작품은 실패작이 되고 말았다네. 어머니를 졸라 고등학교 때 사진기를 구입했고, 그때부터 사진을 찍게 되었지. 대학을 마치고 옥구에 있는 중학교에 5년 근무를 했고, 사진에 대한 갈망을 덮을 수 없어 학교를 그만 두고 상경을 하여 본격적으로 사진에 몰두하게 되었어. MBC 프리랜서로 활동을 할 정도로 사진에 대한 감각과 재능을 인정받았지만, 사진 공부를 더 하기 위해 영국으로 유학을 가고 싶었지. 간절한 바램이었다네. 그러나 7대 독자로 태어난 태생적인 한계에 부딪치지 않을 수 없었지. 누나들의 극심한 반대에 뜻을 접을 수밖에 없었어.
처음 본인의 한을 담은 작품을 풀빛 여행( blue journey)이라는 주제로 세상에 작품을 선 보였지. 그러나 첫 전시회의 작품은 아직 나 자신과 내가 가진 한을 벗어나지 못했다네. 그 한은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사무치는 불효에서 시작되었지. 그 슬프고 음울한 한에서 벗어나야겠다는 깨달음이 왔었어. 어머니에게 활기차고 신명나는 모습을 보여드려야 웃음 지으실 것 같았다네. “천상의 춤을 꿈을 꾸는 자는 행복하다.”는 뜻에서 만들어 낸 작품이 비천몽이었어. 하늘을 나는 꿈. 이 비천몽은 양재문의 브랜드가 되었다네. 언뜻 보면 수묵화 같기도 하고, 화려한 색채를 구사한 한국화 같은 느낌이 있는 작품이었다고 들 하지. 사진이라고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 독특한 장르를 선보이게 된 것이지. 흔히들 사진은 빛과 찰나의 순간과 공간의 작품이라고 하는 데 , 내 작품은 찰라보다 좀 더 긴 시간의 움직임을 담았다네. 의성어로 표현하자면, ‘찰칵’에서 ‘차알 칵’ 하면서 일련의 동작을 담은 것이고. 전문 용어로는 Sequence(일련의 연속적인 동작)라고 하는데 이 Sequence를 한 장의 사진에 담는 것이라네.
그의 작업은 감성을 자극하여 시상(詩想)을 떠오르게 하는 마법,분명 사진인데 보는 이는 번짐의 시간을 목도한다.초서체(草書體)를 보듯 전통춤의 미와 흥이 있고,신명스러운 기운이 서려 있다.그의 복선 이미지 율동 속에는 춤 생명선이 꿈틀댄다.아니 '피어난다'고 해야 마땅하다.<평론가>
그는 전통춤을 통해 자아에 대한 정체성을 보여주는1994년 풀빛여행展을 시작으로 비천몽展에서는 내재된 한(恨)을 신명으로 풀어내었으며,아리랑판타지展에서는한민족의 굳샘과 역동성을 묘파한다.이어 발표한 처용나르샤展은 처용의 호방함과 너그러움을 보여주었다. <평론가>
다음은 내 작품이 해들 거듭하면서 내공이 더해가면서 변천해 왔던 과정이라네.
풀빛 여행 비천몽 아리랑 환타지: 우리 민족이 힘든 시기에 견디어 낼수 있었던 구심점이 되어 왔을 우리의 춤 처용 나르샤: 백성과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는 춤 농악: 백성들이 추는 춤
첫 작품에서는 나에서 시작했고, 그 다음은 나에서 우리를 생각하게 되었고, 우리를 생각하다 보니 나라를 생각하게 되었고, 나라를 구성하는 각 개인을 생각하는 백성을 생각하는 단계에 이르게 되었다네. 더 나가서 민족화합의 차원에서 앞으로 북한의 문화를 아우르는 작업을 하고 싶다네. 내 작품을 큰 틀의 The KOrean Odyssey( 한국인의 대서사시)로 풀어내고 싶은 것이지.
나는 스스로 길을 터득하며 사진의 길을 개척해왔고, 누구에게도 배우지는 않았다네. 그렇지만 나는 많은 사진작가를 길러냈지. 신구대학 사진 아카데미와 한국 기술대학교 평생교육원 교수로 강의를 나가고 있어. 나에게 사진 교육을 받은 사람이 칠팔천 명은 될 것이네. 나는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걸어왔고, 그 자체로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교육의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네.
양재문 작가와의 대담은 시종 감성넘쳤고, 작가적인 상상력이 풍부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더 먾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올 가을에 다섯개의 전시회가 있어 더 시간을 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다음 더 편안한 시간을 기약하고 작업실을 나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