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있다는 걸 나도 안다.
- 문경민, <훌훌> 작가의 말 中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 있다. 만약 내가 '훌훌'을 읽지 않았더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유리의 마음에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통한 간접 경험이 중요하다는 것을 실감했다. 겪어 보지 않은 마음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작가의 말을 읽으며 입양 가정을 비롯한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한 논의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많은 사람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공론장의 역할은 떠올려 보면 책, 영화 등을 통해 이루어지는 듯하다.
'훌훌'은 아동학대, 입양 가정, 학교폭력, 교사 인권 침해 등 무거운 주제를 담고 있었다. 다양한 주제를 관통하는 핵심은 내가 겪어 보지 않은 것에서 비롯되는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라고 느꼈다.
"학교라는 데가 주봉이 같은 애들한테는 안 맞지. 학교에서 좋아하고 칭찬하는 부류는 따로 있으니까."
학교를 통해서 성공하는 애들은 따로 있었다. 차분히 앉아있는 걸 잘 할 수 있고 오랜 시간 집중할 수 있고 두뇌 회전이 빠른 애들이 학교 안의 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했다. 불공평한 건 경제적인 요소만이 아니었다. 특정한 기질을 타고난 아이들을 우대하는 곳이 학교였고 학교에서 우리들이 치르는 경쟁은 따지고 보면 공정한 것도 뭣도 아니었다.
성적을 잣대로 사람을 판단하는 편견이라거나.
"조금 전 그 상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선생님도 잘 알아요. 여기 앉아 있는 여러분들이 아는 것처럼요. 틀니 딱딱. 노인 비하, 노인 혐오 표현이죠. 겪어 보지 못한 상황이라 잠시 당황했어요. 나를 겨냥한 거라고 느꼈어요. 슬펐고 아팠습니다. 좀 기가 막히기도 했어요. 나는 여러분의 담임교사인데 말이죠."
학교에 퍼진 소문으로 학생들 사이에서 조롱거리가 된 고향숙 선생님이나.
세윤이 베이비 박스에 버려져 입양되었다는 사실 따위의 편견 말이다. 그렇지만 생각해 보면 학생들은 개개인 그 자체로 누구나 칭찬받아 마땅한 존재이며 고향숙 선생님은 유리를 위해 연우를 찾아나서기도 하고 법정에 함께 나가주시기까지 했다. 그뿐인가. 세윤은 성숙하게 유리를 위로하고 세상에 찌든 편견과 달리 유리와 연우, 유리와 할아버지는 서로에게 특별한 존재가 된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서 영우는 자신을 버린 엄마를 찾아가 한번은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책 속 유리도 친부모에게 내가 이렇게 잘 자랐다고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유리 역시 친부모를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순간 유리와 영우가 겹쳐 보였는데, 나라면 나를 버린 부모가 보고 싶지 않을 것 같아 의아했다. 이 또한 겪어 보지 못한 마음이겠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내 딸은 자폐 장애가 있다. 영화나 소설에서 자폐 장애인이 등장할 때마다 나는 신경이 곤두선다. 장애인들이 웃음거리나 억지스러운 감동을 자애내는 소품으로 쓰이는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선다. 보면서 마음 편했던 작품은 많지 않았다. 쓴웃음을 짓게 되는 일이 종종이어서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 문경민, <훌훌> 작가의 말 中
작가의 말을 읽으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떠올렸다. 이 드라마를 두고 다양한 우려의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 나 역시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천재 변호사라는 소재에서 비롯된 드라마 속 영우는 사람들이 보고 싶어하는 모습이라는 데에 공감했다. 그렇지만 드라마 3화에서 영우와 다른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가진 또 다른 인물이 등장하고 이를 다룬 내용을 통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염려와 별개로, 나는 이 소설이 좋다고 여긴다. 모든 고통은 사적이지만 세상이 알아야 하는 고통도 있다. 무엇으로 아프고 힘든지 함께 나누고 이야기해야 세상이 조금씩 더 나아지기 마련이다.
- 문경민, <훌훌> 작가의 말 中
분명 과도기적 작품이라는 지적에 동의하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드라마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통해 사람들의 다양한 논의가 지금처럼 이루어질 수 있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훌훌'이 없는 세상보다는 '훌훌'이 있는 세상이 나은 것처럼. 매체를 통해 생각거리를 공유할 수 있는 건전한 공간이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그곳이 세상을 조금 더 나아지게 할 수 있다면 더더욱.
첫댓글 저랑 같이 우영우를 떠올린 점이 너무 좋네요:) 미디어의 힘은 참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이야기가 세상에 많이 나오길 기대하는 독자, 관객 중 한명으로서 언제나 이런 소재가 진정성있게 다뤄질 때 벅차는 마음을 주체 못할 때도 많아요!
요즘 내 이야기, 내 문제를 공론화할 수 있는 것은 과연 얼만큼의 용기가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 고민합니다. 나는 그 용기를 낼 수 있는 사람일까? 그렇지 않을 것 같아서 속상하고 두렵기도 해요. 바다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나눠요!
겪어 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마음이라는 것에 공감해요. 남의 상황까지 신경쓰지 못하고 개인과 사회가 특정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짚어주어서 저는 이 책의 내용이 뜻 깊었다고 느꼈어요. 작품 속에서 더 다양한 등장인물이 등장함으로써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점이 작품의 가장 큰 능력이 아닐까 지수의 글을 읽고 생각하게 되네요:)
뭐든 겪어 보지 않으면 모르는 것 같아요. 무지에서 비롯된 편견처럼요. 새로운 걸 배울 때 내가 이걸 모르고 편견을 갖고 있었구나 깨닫기도 하고요. 책을 읽으며 간접경험을 통해 많은 걸 배우고 있는 저로서 책을 통한 간접경험이 중요하다는 지수의 말이 공감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