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생포에는 물결도 고래로 치더라. 누가 보기나 하랴, 휘휘 젓는 시커먼 바다. 선창이 생각에 잠겨 발목이 젖고 있더라. 장생포에는 거룻배도 고래 뱃속이더라. 늙은 포수는 망둥이도 고래로 보이는지, 노을녘 눅눅한 술청엔 옛노래가 반짝이더라. - 강세화 시 '장생포'에서
고래 뱃속으로 들어가는 기분이다. 고래로 흥청거렸다는 포구로 가는 길. 한 집 건너 한 집이 고래고기집이고 한 집 건너 한 집에서 고래향을 풍긴다. 이 집도 저 집도 고래가 아가리를 벌려서 나를 삼킬 것 같다.
빠져나가는 길을 표시라도 해 두듯이 한 집 두 집 간판을 본다. 고래명가 고래할매집 고래막집…. 온통 고래다. 고래 판이다. 떠올랐다가 잠수하는 고래처럼 한 사나흘은 잠수하고 싶은 포구 장생포. 일을 잊고 세상을 잊고 나를 가두고 싶은 포구가 장생포다.
포구가 젖어간다. 무슨 비가 이리 오노. 오는가 싶던 비가 빗발이 거세진다. 빗줄기가 굵어진다. 수족관 같이 생긴 문어통발을 깁는 뱃사람 손길이 빨라지고 장구 같이 생긴 고동통발을 배에 실어나르는 손길이 빨라진다. 배는 통발을 놓거나 그물을 놓는 배. 배에 얹힌 홍기 청기 백기 깃발이 젖어간다.
배는 앞으로 한 번 기우뚱대고 뒤로 한 번 기우뚱댄다. 앞으로 뒤로 기우뚱대면서 중심을 잡는다. 중심을 잡지 못해 마음 안에서 기우뚱대고 마음 밖에서 기우뚱대는 나. 무엇이 나를 기우뚱대게 하는가. 내 안인가 내 밖인가. 둘 다인가. 기우뚱대면서 중심을 잡아가는 배가 기특하다. 부럽다.
"포구를 다 보여주고 싶은데 아쉽습니다." 울산해경 소속 박광혁 상경은 내년 5월에 제대하는 중고참. 부대가 포구에 붙어 있다. 해경 배에 태워서 사진도 찍게 하고, 포구자랑 울산자랑도 하고 싶다. 태워줄 배가 있는지 여기저기 전화를 건다. 선약을 하지 않아 승선은 불가. 마음이 고맙다. 날쌘 배를 얻어 타고 포구를 다 둘러본 것 같다.
장생포는 고래잡이로 잘 나가던 포구. 동네 강아지도 지폐를 물고 다닌다는 말이 나돌 정도로 풍성하던 포구다. 엔간한 배는 고래잡이 배고, 엔간한 사람은 고래잡이 뱃사람. 나라에서 고래잡이를 금하기 전에는 고래가 밥 먹여주던 포구다. 기억의 힘은 무서워 장생포에서는 여전히 고래가 판을 친다. 시도 고래시고 노래도 고래노래고 박물관도 고래박물관이다.
"오는 날이 장날이네요." 경북 봉화 출신 김분자 씨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곳은 박물관 입구 정자. 초등학교 1학년 3학년 두 아이와 함께 비를 피해 정자에 앉아 있다. 모처럼 나들인데 비가 얄밉다. 아이 아버지는 갯가에서 낚시 중이다. 사람도 많고 볼 것도 많은데 고래고기가 비싼 게 불만이다.
고래고기는 비싸다. 젓가락질 가는 게 눈치 보일 정도로 비싸다. 비싼 건 귀하기 때문. 나라에서 법으로 금한 까닭에 고래는 무슨 고래든 잡지 못한다. 고래고기집에서 파는 고래는 작살로 잡은 고기가 아니라 그물에 걸려서 저절로 죽은 고기. 다른 고기를 잡으려고 쳐둔 그물에 고래가 와서 걸려 죽으면 유통이 가능하다. 고래 자체도 귀하지만 잡지 못하니 더 귀하다.
고래 한 마리는 몇 천만원. 소 열 마리 가격이니 비쌀 수밖에 없다. 포구 길목에서 철물점을 하는 울산토박이 이춘식(50) 씨 말대로 '단돈 3천원이면 실컷 먹던' 옛날이 그립다. 박물관 마당에는 배가 한 척 전시돼 있다. 고래 잡던 포경선으로 실제의 배다. 뱃머리에 기관총처럼 생긴 작살총이 보인다. 작살과 배는 묵직한 밧줄로 이어져 작살이 고래를 맞추면 배와 고래는 한몸이 된다. 고래가 가면 배도 가고 고래가 멈추면 배도 멈춘다.
포경선 뱃머리가 고래고기집을 보고 있다. 작살총이 고래고기집을 겨누고 있다. 작살총을 조준하는 모형포수 눈매가 고래고기집 유리창을 와장창 깨트리고 냉동고래를 맞출 것처럼 매섭다. 배 앞에 선다. 작살 앞에 나를 세운다. 나를 쏘아라. 내 안에서 꿈틀거리는 고래를 쏘아라. 잠수하려고 꿈틀거리는 나를 쏘아라.
울산에서 고래 역사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역사다. 무려 3천년의 역사다. 선사시대 그림인 반구대 암각화는 국보. 호랑이도 나오고 거북이도 나오고 돼지도 나오는 이 암각화엔 고래그림이 '수두룩빽빽'이다. 새끼고래를 업은 고래, 작살에 맞은 고래, 주름이 많은 고래, 머리가 사각인 고래. 심지어는 고래잡이 배와 고래 잡는 사람도 보인다.
장생포가 고래특구로 지정된 지 두 달. 해운대가 관광특구이듯이 고래특구가 되어 꿈틀거린다. 고래가 다니는 물길은 이미 천연기념물로 불리고 고래축제는 벌써 열네 번째다. 포경기념일도 있다. 고래잡이가 금지되면서 공단에 묻히면서 색깔이 바래진 장생포. 장생포는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기억을 들추면서 꿈틀거리고 고래가 일으키는 물살에 꿈틀거리고 있다.
"따개비랑 같이 사는 고래가 인상적이네요." 동행한 강정이 시인이 고래박물관을 둘러본 소감이다. 고래 몸에 붙어서 기생하는 따개비 사진을 보고서 하는 말이다. 안내판 설명에는 귀신고래는 바다 진흙을 파헤쳐 먹이를 찾는데 그때 따개비가 몸에 달라붙는다는 것. 고래와 따개비. 그럴 듯하다. 부드러움과 딱딱함의 공존이고 힘센 것과 힘 약한 것의 공존이다. 고래도 따개비도 붙어사는데 내가 무엇이라고 어디든 붙어살지 못하랴. 굳이 잠수해서 나를 가두랴.
비는 그쳐 가고 낚시꾼은 늘어난다. 갯가에 다닥다닥 달라붙은 게 영판 따개비다. 저 어디에 초등학교 두 아이 아버지도 있을 것이고, 망둥이가 고래로 보이는 고래 잡던 포수도 있을 것이다. 밑밥을 던져 넣던 낚시꾼 대가 수면에 닿을 만큼 큼지막하게 휜다. 낚시꾼 시선이 쏠리면서 "뭐고? 뭐고?" 술렁댄다. 에라 모르겠다, 말보시 삼아 한 마디 거든다. "고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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