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산의 도심속에 도시와 시골이 공존하는듯한 느낌의 한 지역에서 살고 있는 소리홈스쿨을 방문하였습니다. 차가 서로 맞닥드리면 외나무 다리의 염소들처럼 피할 길이 없는 아주 좁다란 외길에서 네비게이션이 끝나 혹시 잘못 찾아온 것이 아닌가 싶어 전화를 통해 집까지 찾아갈 수 있었습니다. 알고 지낸지는 6년째이나 깊은 교제는 없었었는데 이렇게 인터뷰를 핑계로 방문하여 교제할 수 있어 기뻤습니다.
소리 홈스쿨을 소개해 주세요.
황병규: 아내 조은미 그리고 영묵이는 20살 예정이는 18살 승묵이는 16살 이렇게 5명의 가족이에요. 이사야 40장 3절에 나오는 소리처럼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자.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는 소리가 되자 해서 ‘소리홈스쿨’이라 지었어요. 그런데 저희 아이들이 음악을 하게 되면서 소리가 우리에게 더 중요한 의미가 된거죠. 사람들은 음악할거 알고 이렇게 지었냐고 하는데 그런건 아니었고 사실상 처음할 때는 음악하리라곤 전혀 생각 못했지요. 제 아내나 저도 음악에 대해 알지 못했고요.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이사야 40:3
홈스쿨을 시작하시게 된 계기는?
황병규: 저희는 90년에 결혼을 했어요. 결혼한지 13년되서 홈스쿨을 시작했어요. 영묵이가 그때 6학년 때였고요. 예정이가 4학년 승묵이가 2학년이었어요. 그때 홈스쿨 이야기를 듣고 김남영교수님이 저희 교회 오셨다가 홈스쿨을 강권하다시피 권면을 하셨어요. 꼭 해야한다. 그리스도인은 모두 해야한다! 그전까지는 엄두를 못내고 있었는데 알기는 좀 알고 있었거든요. 이두홍 목사님이 저희 목사님이셨는데 그분은 홈스쿨을 하고 계셨어요. 영어가 되니까 아베카 교재를 갖고 비디오 강의로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저희는 영어가 안되니까 그런 커리큘럼도 없고 엄두도 못내고 있었는데 김교수님이 커리큘럼 없어도 할수 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이면 무조건 해야한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그때 그게 감동이 됬어요. 그러면 한번 생각해보자 해서 홈스쿨 컨퍼런스에 참가를 했지요. 브래드 볼러를 비롯 패널로 참석하신 분들 이야기들 듣고 홈스쿨 시작한 아이들을 보고 하면서 홈스쿨이 뭔지 처음 배웠지요. 그리고 나서 가족회의를 해서 여름방학동안 홈스쿨이란걸 한번 시도해보고 2학기때 학교에 갈지 안갈지를 생각하기로 했는데 여름방학 지나고 나서 만장일치로 시작하게 됬어요. 영묵이 같은 경우는 6학년 1학기 남았으니 초등학교라도 졸업하자 했는데 그럴 필요 없다 해서 바로 그만뒀어요.
조은미: 처음에는 과격했어요. 6개월이라도 아깝다 생각했어요.
황병규: 예 그렇게 생각했지요. 얘기 좀 들으니까 학교 보내는게 아깝다 생각이 들더라구요.
박진하: 저희도 유치원 졸업 2개월 남겨놓고 안 갔어요. ^^
홈스쿨을 하시면서 특별히 어려웠던 점은 없었나요?
황병규: 커리큘럼이 없으니까 시행착오를 많이 했고 없다보니 게을러졌어요. 없으니까 더 부지런하게 해서 잘하는 분도 계시는데 그런게 어려웠어요.
조은미: 어려움도 처음할 때 어려움 시기마다 어려움이 달랐기 때문에 어떤 어려움을 말해야 하나.. 처음에는 저도 그렇고 주변에도 정말 믿음으로 하는 분들도 있지만 가만히 보다 보면 믿는 구석이 있어서 하신 분들도 있더라구요. ‘나는 애들도 좋아하고 끼고 앉아 애들 가르치는거 좋아하고 나는 애들을 가르쳐본 경험도 있고 그러니까 할 수 있을거야’ 하는 마음도 있었어요. 그런데 해보니까 이건 교사적인 경험이 있어서 되는게 아니더라구요. 진짜 홈스쿨은 가르치는게 아니잖아요. 공통적으로 다 깨달으시더라구요. 삶이 완전히 드러나니까 삶이 공개되는 거에서 나오는 내 자신의 이중적인 모습이 폭로가 되니까 거기에 대해 난감한... 심지어 신앙적인 것들도요. 우리 애들은 저보다 더 신앙이 좋길 바라잖아요. 공부도 난 이정도 했는데 더 잘했음 좋겠는거. 또 친구 문제에 대해서도 어려움이 있었어요. 셋 다는 아니고 예정이한테 외로움이 오고... 쇠뇌당했던 거 같아요. 친구 필요없다. 가족끼리 친하면 됬지. 그런데 그 말이 일부는 맞고 일부는 틀리거든요. 그 나이 또래 친구들하고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을 이해 하나도 못하면서 말이에요.
처음에는 좋은 원칙이 있으면 그 원칙 가지고 나는 아직 준비가 안되었는데도 거기 들어가 있는 느낌이 있잖아요. 나도 못하면서 다른 사람한테 하라고 하고 왜냐하면 그게 옳고 좋다는걸 아니까 하지만 옳고 좋은거 보다 진실된거 진짜 나한테도 적용이 되는지가 중요한거 같아요.
황병규: 홈스쿨을 만병통치약처럼 생각하면 부작용이 있지 않나 생각해요. 홈스쿨이 모든걸 해결할 수 있는 것처럼 생각하면 무리가 있지 않을까. 부족한 부분에 대해선 인정을 하고 그런 것에 대해선 너무 배타적일 필요가 없을거 같아요. 인정할건 인정하고 다른식으로 보충할 수도 있고 그게 안되더라도 부족한 점을 좀 인정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해요. 저희가 처음 홈스쿨할 때는 워낙 반대세력이 많았고 그걸 방어하다 보니까 “아니다 홈스쿨로 다 된다. 너희들이 걱정하는거 다 된다.” 너무 지나치게 방어적이지 않았나 싶어요.
조은미: 매일 매일 욕심을 버리는 훈련... 자꾸 자꾸 욕심이 생기잖아요. 공부에서도 욕심이 생기고 그러면 또 내려놔야 하고.. 남편이 제가 바랬던 도움은 안 줬어요. 제가 처음 학습이 자신 있다 해서 했는데 안되는 것도 있고 그중 하나는 아빠가 수학을 해주기로 했는데 안해주니 원망도 있었고 그런데 남편으로부터 영원한 가치 일시적인 가치에 대해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어요. 성품은 영원한 가치이고 선택을 해야하잖아요. 갈등을 해소하는 데는 두시간 이상 걸릴 때도 있었어요. 그렇게 해결하는 도중에도 마음은 빨리 빨리 공부를 해야할 것 같은 마음이 들잖아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서 보니 그게 옳은 선택이었더라구요. 정답은 알겠는데 실천할 때 힘든거 있잖아요. 그 스트레스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내가 선하게 투자한 것에 대한 열매가 없으면 더 힘들어요. 그런데 남편이 격려하면서 했던 그 열매들을 하나님께서 주셨어요. 남편이 뭐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 계속 바로잡아 줬거든요. 실제로 수학 이런 거에는 도움이 안되었는데 제가 제 정신으로 다시 갈 수 있도록 마음을 안내해 주는 역할을 해주었어요.
홈스쿨을 하면서 만족하는 점은?
황병규: 가족들에게 마음을 많이 쏟게 됬어요. 제 입장에선 다른데 빠지기 쉬운데 남자들은 특히 일에도 빠지고 취미에도 빠질 수 있는데 그래도 가족들을 많이 생각하고 집에 일찍 와서 집에서 시간을 많이 쓴게 저한테는 복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는 홈스쿨은 처음엔 학교 안 보내는게 홈스쿨인줄 알고 했는데 지금 생각하는건 부모가 자녀를 책임지는 것, 부모가 자녀와의 관계를 우선시하는 것. 물론 부부관계가 제일 우선인데 그 다음으로 교육문제가 아니라 아이들과 부모와의 관계 문제 그 관계에 대한 책임을 부모가 다시금 껴안고 책임을 지는 것 그것을 배운게 가장 큰 혜택이었어요.
조은미: 저도 애들이 이렇게 많이 컸는데 가족들 대화중에 저나 아이들의 가치관이 아이들에게 심겨진 것을 확인했을 때 기뻤어요. 지금 많이 확인이 되었거든요. 가족들간에 대화할 때요. 결혼관이나 자신의 인생관같은 것을 이야기할 때 말씀에 근거한 실제적인 원칙들 그런게 공유가 되고 그럴 때 보람이 있었어요. 우리랑 같은 세상을 살고 있구나
특별히 자녀들이 모두 음악에 달란트가 있는 것으로 아는데 어떻게 다들 음악을 시작하게 되었나요?
조은미: 홈스쿨하고 1년 안에 하게 됬어요. 다른 집들이 다들 악기들을 하더라구요. 셋다 피아노는 하고 있었으니까 피아노 말고 들고 다니면서 할 수 있는 악기를 하고 싶다고 해서 승묵이, 예정이는 바이올린 영묵이는 클래식 기타를 하게 됬어요. 설날에 세뱃돈 가지고 중고 악기 사고 또 아는 분이 악기를 빌려 주시기도 했고요.
그러다가 클래식 기타 연주를 가고 싶다고 해서 저희가 회의를 했어요. 좋은 연주를 한명만 갈 것이냐 아니면 싼 자리를 다 같이 갈까. 예정이가 “오빠가 클래식 기타니까 7만원 내고 오빠만 가라.” 그런데 영묵이가 자기만 못간대요. 7만원짜리를.. 그럼 어떻하나 했는데 영묵이가 인터넷 서핑을 잘하거든요. 똑같은 연주자인데 세종문화회관은 7만원인데 평촌에서는 만 얼마래요. 왜 그런가 알아봤더니 평촌아트홀 개관 1주년 기념으로 하는 거였어요. 똑같은 연주에 레파토리도 똑같았고요. 연주회 끝나고 바로크에서 윤이상까지 전체 음악사를 평촌아트홀에서 1년 계획으로 하는데 5천원씩 하더라고요. 만약 거기를 가지 않았으면 몰랐었을 거에요. 격주로 한달에 2번이라 부담도 없었고요. 1년 스케줄이 나왔는데 오케스트라, 앙상블, 독주 거기다 어떨 때는 첼로 오케스트라 어떨 때는 관악 오케스트라 어떨 때는 성악, 오페라 완전히 음악의 모든 장르를 코앞에서 실물의 연주를 다 들을 수 있는 거에요. 공연 가는게 좋은게 좋은 자리는 연주자의 숨소리도 다 들려요. 그게 다르거든요. CD로 아주 아름다운 소리만 듣는 거랑 살아있는 사람의 실수도 듣고 실수할 때 어떻게 당황 안하고 넘어가는지도 배우고 연주자들끼리 틀렸을 때 서로 사인하는 것도 보고요. 인격도 보여요. 근데 그게 아침 음악회였어요. 우리만 학생이고 다들 아줌마들.. 아줌마들도 많이 안와요. 그 크고 아름다운 공연장에 한 30명.. 제가 홈스쿨러들에게 홍보를 했어요. 거기 왔다가 음악 전공한 애들도 몇몇 있어요. 거기 1년 반 다니는 동안 귀가 다 열리고 가기 전에 무슨 곡을 하는지 레파토리를 주니까 공부하고 갔거든요. 음악적으로 굉장히 성장을 했지요.
갔다오면서 영묵이가 클래식기타는 작은 오케스트라인데 자기가 진짜 오케스트라 가서 활동을 못하잖아요. 귀가 열려서 온갖 악기들이 다 들리는데 비올라 소리만 안 들린데요. 비올라 소리가 중간음이거든요. 고음과 저음을 메꿔주는 음이에요. 그러니까 안 튀어요. 암만 들어봐도 첼로소리도 들리고 바이올린 소리도 들리고 더블 베이스까지도 들리는데 비올라는 소리를 모르겠는거에요. 비올라 소리가 너무 궁금한게 내가 조금 배우면 들릴 것 같대요. 당시 클래식 기타 가르쳐주셨던 선생님이 다 가르쳤으니 전공하려면 큰 선생님께 가라하셨어요. 그때 영묵이가 클래식 기타가 좋긴 하지만 전공할 정도로 사로잡힌 악기는 아니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다가 비올라로 바꾸게 되었죠.
자녀양육을 하면서 가장 초점을 맞추는 부분이 있다면?
황병규: 자녀와 대화, 소통하는 것. 실제로 대화를 많이 해요. 하루중에 저희는 대화를 너무 많이 하다가 공부를 너무 못할 정도에요. 아이들이 자기가 있었던 일 저도 사무실에서 있었던 일 그런거 서로 이야길 하고 그래요.
조은미: 애들이 크니까 외출했다가 볼일 보는 횟수가 많아졌어요. 갔다와서 오늘 어땠니? 그러면 “좋았어요”, "나빴어요“ 이렇게 이야기한 적이 없어요. “잠깐만요. 이따가 얘기 같이 해요” 하고 모여서 이야기를 해요. 굉장히 구체적으로 자세히 이야기를 해주니까 한명이 나갔다 오면 다같이 나갔다 온게 되요.
황병규: 예를 들어 홈스쿨오케스트라 갔다오면 그냥 갔다와서 끝내는게 아니라 선생님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이들하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내 생각은 어떤지 이야기해요.
박진하: 어느 정도나 이야기를 해요?
황병규: 1시간은 넘어요. 거의 평균 2시간 정도는 되는거 같아요.
조은미: 그래도 모자라요. 자야되지 않니? 12시 넘기는데 그래요.
박진하: 그렇게 할 이야기가 많아요?
황병규: 네, 많아요.
박진하: 굉장히 보기 드문 가정이네요. ^^
황병규: ㅎㅎ
조은미: 얘기하다가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다가 깊은 이야기도 하고 그래요.
박진하: 이렇게 길게 대화를 언제부터 하시게 되었나요?
황병규: 대화가 깊어지게 된 게 아이들이 외부활동을 하면서.. 오케스트라 활동을 하면서 그렇게 되었어요. 저희 애들은 홈스쿨 오케스트라 하기 전에 일반 오케스트라도 했었거든요. 1시간을 갔다왔다. 그러면 30분 정도는 그 갔다온 이야기를 하는 거에요.
박진하: 그런데 저 같으면 갔다와도 할 말이 별로 없을 거 같은데요.
황병규: 직장 8시간 갔다와도 이야기 하라고 하면 “좋았어”, “힘들었어” 이거 밖에 없잖아요. 그런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 사실 많다고요.
조은미: 저희 남자들이 이상한가봐요. 말이 많아요. ^^ 영묵이는 다 컸잖아요. 영묵이는 자기 배우자에 대해서 국적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경건한 여성이면 결혼할 수 있다는 말을 해왔었거든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와서 한국사람이어야 할 거 같다고 그러는거에요. 그래서 무슨 말이냐고 물어보니까 전철에서 어떤 애를 봤는데 숨을 못 쉴 정도로 마음이 갔대요. 근데 어떻게 열아홉살, 스므살 아들이 집에 와서 엄마한테 그런 이야기를 해요. 이런 관계가 있었다는게 전 너무 감격해요.
이런식의 아주 시시콜콜한 대화에요. 그러면 동생들이 “어떻게 생겼는데?” “교복 입었어?” 시시콜콜 얘기가 실타래 풀리듯이 풀리는 거에요. 그러다가 “외모를 너무 중요시하게 생각하지 말자” “저도 알아요” 이러면서 결혼관, 속깊은 이야기까지 하게 되요. 그러니까 나갔다 와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건 대화의 단추거든요. 대화의 단추가 눌러지면 그 다음부터는 대화의 주제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되요.
황병규: 사실 이런 대화가 친구들하고 하지만 그런 얘기를 저희는 가족들하고 한다고 생각하면 되요.
조은미: 보통 홈스쿨하지 않는 일반 고3 아이가 자기 부모하고 도저히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한다고 생각하시면 되요.
박진하: 제가 생각할 때 홈스쿨 했다고 아이들이 컸다고 가능한게 아니라 아이들 어렸을 때부터 대화를 많이 했나 봐요?
조은미: 아, 학교 다닐 때부터 애들이 학교 갔다오면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황병규: 우리는 흩어졌을 때 각자 자기가 경험한 것이 궁금한 거에요.
박진하: 그런데 하루에 두시간씩을 시간을 낼 수 있나요?
황병규: 다른 것 안하는데 그 시간에 공부를 안하면 가능하지요.
조은미: 매번 두시간씩은 아니고 어떨 때는 세시간도 되고요.
황병규: 퇴근하고 와서 TV를 보고 그러는게 아니니까 공부 아니면 따로 할게 없잖아요. 밥먹고 애들하고 어울려서 이야기하는 거죠.
조은미: 엄마 아빠 침대에서 뒹굴면서 다같이 누워서 이야기해요. 다 씻고 잠들기 전에 아빠가 축복기도 해주기 전까지 11시, 12시까지 이야기해요.
대학진학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황병규: 초기 때는 상당히 이상적인 꿈을 꾸잖아요. 그 당시는 입시가 코앞이 아니었고요. 대학은 우린 생각 안한다. 입시준비로 우리가 홈스쿨 한 것도 아니고 학습도 입시준비로 하진 않는다 생각했어요. 그러다 ATI하면서 ATI 교재도 입시하고는 동떨어진 학습방법이라 계속 그렇게 해왔는데 저희 아이들이 어느 날부터 음악에 관심을 많이 가지면서 처음엔 제가 하도 대학을 안가는 쪽으로 이야기를 하다보니 아이들이 음악전공에 대해 말을 못 꺼냈어요. 대학을 가고 싶으면 입시를 하지 말고 네가 원하는 훌륭한 교수를 찾아라.
평생 교육이라 생각하고 자기가 관심있는 분야의 교수를 찾아다니면서 하는 것이 더 도움이 된다 말했지요. 약점은 학력이 없다는게 약점이지만 나름대로 그걸 프로필로 만들어서 이런 교수님들과 면담이나 인터뷰를 통해 이런걸 갖고 있다 보여줄 수 있다 생각했죠.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일단 음대 교수가 자신의 대학교 학생 외에 가르치는 것 자체가 허락이 안되는 일이었고요.
그리고 제가 아이들이 악기를 전공하고 싶어하는 마음을 뒤늦게 읽었어요. 음악에 대한 편견도 있었고요. 음악 분야는 공부하기 싫어하는 애들이 하는 것처럼 편견을 갖고 있어서 음악도 얼마나 연구하면서 해야 하는줄 몰랐어요. 결국은 허락을 하고 한마음을 품고 협력하고 그러면서 대학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됬어요. 저희 형편상으로는 버겁고 가기까지 들어가는 레슨비, 악기문제등이 사실 힘들어요. 콩쿨도 돈을 내고 참가하거든요. 참가비, 반주비, 콩쿨 한번 나가는데 제대로 하면 70,80만원 드는거에요. 활털 갈고 줄갈고 하다보면요.
조은미: 몰랐어요. 알았으면 다른 방향으로 가도록 격려를 했을텐데요. 취미로 한다던가 ^^ 그런데 너무 행복해해요. 레슨 선생님도 지속적으로 없었어요. 있다 없다 있다 없다 그랬거든요. 저는 없으니까 여기서 마음이 정리되나 보나 했는데 더 열심히 하는 거에요. 서로들 봐주면서 말이에요. 혼자는 못 보는게 있으니까요.
황병규: 그래서 지금 영묵이는 학교준비를 하고 있어요. 작년엔 전혀 생각을 안하고 있어 못했고 올해는 한국예술종합학교를 목표로 공부하고 있어요. 너무 들어가기 힘든 학교니까 수능준비도 하고 있고요.
박진하: 세명다 모두 대학진학을 할 계획인가요?
황병규: 다 전공을 하고 싶어해요. 지금까지는 다 대학 쪽으로 밖에 달리 길이 없는 것 같아요.
조은미: 작년에 기아차에서 후원하는 콩쿨을 나갔는데 그 콩쿨이 나름대로 아이들에게 꿈을 확고하게 하는 계기가 됬어요. 콩쿨에서 셋다 입상을 하면서 장학금을 받았거든요.
자녀들이 참 훌륭하게 잘 자랐다는 평들을 많이 하는데 비결이 무엇인지?
황병규: 들을 때마다 부끄러운데 그렇게 봐주신 것에 대해 감사하고 사람이란게 좋게 보면 한없이 좋고 나쁘게 보면 아무리 잘해도 그게 뒤집어지기가 힘들어요. 아이들에 대해 그렇게 봐주시고 저희에 대해 봐주신 것 감사한데 굳이 비결을 말씀하라시면 저희가 사실 본을 봤어요. 결혼 전에는 청년시절 아내랑 같이 다니던 교회에 그 당시에 나이도 많지 않은 매우 젋은 목사님이셨어요. 한 살짜리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28살의 미국 목사님이셨는데 1984년 대학 3학년때였는데 그분의 집을 자주 방문할 기회가 있었어요. 가서 식사를 하고 할 때마다 인상 깊게 봤던게 그 목사님이 아내를 존중하면서 정말 예의를 갖춰 대하시더라고요. 특히 한 살 아이를 제시를 했을때 말을 안 들으면 데리고 들어가요. 데리고 들어갔다 나오면 얼굴은 웃는데 눈물이.. 맞고 나온 거에요. 그걸 보면서 이상해서 질문을 했어요. 뭘 한거냐? 매를 댄거에요. 그런데 한 살짜리를 무슨 매를 대냐?
조은미: 말하자면 '성공적인 자녀양육 지침서‘에 나온 내용을 저희는 실물을 본 거에요. 그리고 제가 그 집에서 방한칸을 줘서 6개월을 살았었거든요. 사모님이 남편에게 어떻게 대하는지도 보았고 둘째 아기를 낳는 것도 보았는데 애기를 싱크대에서 씻겨요. 애기를 쉽게 쉽게 기르면서 그보다 더 중요한게 훈육하는게 성공적인 자녀양육 지침서랑 똑같아요. 예를 들어 아기가 기어다니다가 위험한 것을 만진다거나 하게 되면 탄력있는 스틱 같은 걸로 톡하고 때려요. 그래도 안되거나 하면 방으로 가서 때리고 말로 다 하고 기도하고 안고 방긋 방긋해서 나오는 것을 직접 봤어요. 저는 무슨 애가 마법에 걸린 줄 알았어요. 들어가서 맞고 울고서 착한 애가 돼서 나오고..
황병규: 매를 맞고 용서를 받고 축복을 받고 나오는거죠.
조은미: 저희도 그런 마음으로 첫애를 나았어요. 처음에 브래드 볼러 선교사가 왔을때 자녀훈육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뭐 그런 이야기를 하나 했는데 저는 감회가 새로웠어요. 20년전에 다 봤던거에요.
황병규: 어떤 분들은 홈스쿨하면서 이렇게 됬다 생각하는데 저희는 오래전에 이미 훈련하는걸 보면서 배운거였어요.
조은미: 학교 다닐때도 “너희 아이들은 다르다.” 이런 이야기들을 자주 듣긴 했어요.
황병규: 또 외국의 홈스쿨 가족들을 통해 저희 부부도 그렇고 아이들도 그런 본을 보았어요. 저희 아이들도 ‘훌륭하게 잘 자라는 아이들도 있다. 겸손하게 성장해야 한다.’ 이런 생각과 확신을 갖게 되었고요.
현재 일하고 계신 IBLP 사역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주세요. 어떤 일을 하고 계신지?
황병규: IBLP는 기본적으로 베이직 세미나가 있는데 한국어로 번역중이고 올해 말에 소개가 될텐데 그간 소개된 것은 정식 버전이라 할 수 없고 원래의 풀세미나가 아니에요. 오리지널 버전이 번역을 마친 상태고 현재 교정작업을 하고 있는데 더빙을 해서 자유롭게 들을 수 있도록 한국어로 세미나를 하려고 계획 중이에요. IBLP는 성경적인 삶의 원리를 가르치고 그것에 실천에 대한 방법으로 49가지 품성을 가르치죠. 분노해결세미나, 재정관리세미나라든지 그런 세미나들이 운영이 되고 있고요. 그중에 ATI는 한 부분이에요. 지금은 번역과 교정, 성품교육도 하고 있고요. 매달 마지막주 토요일에 샘물교회 홈스쿨가정에 가서 나누고 있고 일산비전스쿨에 젊은 어머니 모임에 가서 저와 예정이가 가서 부모님은 제가 교육을 하고 예정이는 아이들을 교육하고 있어요.(유치원생부터 초등학교 6학년)
IBLP가 타단체랑 잘 협동하지 않고 단독적으로 하는 인상을 많이 받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황병규: 그렇게 보이기가 쉬워요. 절대로 다른 단체랑 협동단체로서 세미나를 개최한다는게 없어요. 다른 곳에 우리의 이름을 낸다거나 하는 것에는 자유롭지 못해요. 제가 이해하는게 100% 정확한지는 모르겠는데 동업을 하지 말라는 것과 연결이 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랑 가치가 같지 않은 부분이랑 하나가 돼서 하는것이 쉽지가 않아요.
늦은 오후에 방문했는데 식사하고 벌써 늦은 밤이 되어 아이들 모두에게 물어보지는 못하고 큰 아들 영묵이에게 몇가지 질문을 해보았습니다.
학교를 다니다가 이렇게 홈스쿨을 하게 된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솔직히 말하면 기억이 잘 안나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당시에 한두가정 정도가 홈스쿨하는 분들 계셨는데 그분 애들하고 놀다가 좋은 인상을 받았던 거 같아요. 자유롭다고 해야하나. 좀 더 편하게 대할 수 있었고 학교 다니는 애들하고 다르단걸 느꼈어요. 그 당시에 과학자가 되고 싶었기에 혼자 열심히 공부를 하면 엄청 잘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했는데 생각보다 학교 다니다가 학교 안 다니는게 이상하지 않은게 방학중에 하게 되었고 그냥 방학이 길어진 느낌이었어요. 그냥 아빠가 그때는 “학교 다니느라 힘들었으니 그냥 쉬어라.” 해서 ‘옳다구나.’ 하고 했지요. 어떻게 보면 타이트하지 않은걸 보면 쉬면서 놀면서 한거 같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학교에 다녔더라면 어떻게 됬을까 생각도 해보고 하는데 학교를 다녔어도 공부를 잘했을거다 그런 생각이 있어요. 어떤 면에선 공부같은 것은 훨씬 더 잘해서 과학자가 될 가능성도 있을거 같은데 하지만 저는 지금이 너무 좋아요. 홈스쿨했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음악을 경험하게 되었고 음악으로 삶의 방향을 정하게 된 것을 감사하게 여기고 음악이 아니더라도 열린 생각을 하게 된거 같아요. 생각이나 글들에서도 학교 다니는 아이들보다 자유롭고 그런거 같아요. 예술가로써 좋은 심성을 만드는데 홈스쿨이 좋지 않은가 생각해요.
홈스쿨을 하다보니 친구들이 많지는 않을텐데?
학교 다닐때 애들이 학원을 많이 다녔고 저도 워낙 하고 싶은 것들이 많아서 친구에 대한 필요를 느끼지 못했어요. 홈스쿨 하면서도 크고 작은 모임들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는 갈망이 크게 있진 않았어요. 조율을 배울때나 하자센터에서 비기독교친구들을 만날 때도 있었고 무엇보다 음악하면서 선생님들과 제자들도 만나고 오케스트라 하면서 계획하진 않았지만 사람들을 많이 만났던거 같아요. 솔직히 말하면 약간 아쉬운 점은 있어요. 내 또래 동갑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고 만났더라도 고민을 나눌 기회가 없었어요. 그렇지만 제가 그런 스트레스를 못 풀었던 건 아니고 부모님이랑 많이 풀었어요. 또래 친구보다 아빠엄마가 저에 대해서 더 많이 아는분이고요. 오히려 동생들이 친구에 대해 갈망이 있었던 거 같아요.
벌써 스므살이 되었는데 앞으로 진로계획은?
올해 입시를 볼 거구요. 현재로는 수능 준비를 하고 있어요. 음악을 전공하기로 해서 비올라 연습 하면서 그걸로 학교를 들어가서 공부를 하고 싶고 학교를 다니면서 생각해봐야겠지만 유학도 가고 싶어요.
너희 형제들이 실제론 어떤지 모르지만 남들이 보기엔 참 올곧게 잘 자랐다고 남들이 평가하는데 너희 생각은 어떠니?
남들이 칭찬해주는 부분은 맞는거 같아요. 하지만 남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들 있잖아요. 제가 형으로써 본을 보여줘야겠단 생각이 많이 없었어요. 그래서 미안하게 생각해요. 동생들이 더 잘하는 것도 많아요. 집안일도 그렇고요. 다른 사람들이 모르는 부족한 점이 많아요. 딱 칭찬해주는 부분만 맞는거 같아요. 저한테 칭찬해주시는 것들을 생각해보면 제가 잘하는 것보다 부모님이 잘 가르쳐 주셔서 그렇지 사실 제가 잘난게 없잖아요. 홈스쿨 한 것도 그렇고요. ‘이게 아니다’ 라고 격렬한 반항을 안한게 잘했다면 잘한거지..^^ 사람들이 홈스쿨 한다 하면 “정말 대단하다.” 하는데 사실 저는 정말 한게 없어요. 부모님께 감사하지요.
나에게 부모님은 OOO 이다 라고 표현한다면?
부모님은 나의 조언자, 격려자이다.
영묵이가 느끼는 부모님의 모습을 설명해준다면?
아빠는 우리를 성경에 맞춰서 성경대로 가르치고 성경대로 사는 삶을 살도록 노력을 정말 많이 하세요. 우리보다 성경 읽고 외우는 것을 더 중요한 걸로 여기실 때도 있고 그것을 의무, 책임감으로 많이 갖고 계셔요. 그렇지만 특별히 저희 부모님이 좋은 것은 뭐를 가르치거나 잘못 되었을대 바로잡기도 하고 혼내시기도 하지만 항상 스스로 부모가 본이 되도록 노력하시고 또 “본이 되지 못해 미안하다. 더 같이 노력해보자.” 하세요. 우리가 가족이니까 같이 살아나가는 거란걸 많이 얘기하시고 제가 힘들고 난감한 일이 있을 때 성경적으로 혹은 자신의 경험에 맞춰 조언해 주셔서 힘이 됬고 힘들 때 공감해주고 위로해주고 하세요. 그래서 제가 많이 힘을 얻고 제 나름에는 힘들다고 여겼던 순간에도 내가 사랑받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지금도 항상 가르치려는 것 보다 겸손함을 느낄 수 있어요. 부모님의 부족한 삶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셔서 저로서는 강압적으로 하는 부모님이 아니라 본이 되려고 늘 노력하셔서 그게 저한테는 중요한 메시지로 남았어요. 제가 어렸을 때는 무서우셨지만 지금은 굉장히 친구같은 면이 많이 있어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희 셋보다 어머니를 중요하게 여기세요. 시간도 따로 보내시고 아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제가 커서 가정을 꾸리더라도 중요하단걸 배우고 있어요. 저는 부모님이 가르쳐주는 존재이기도 하지만 같이 살면서 같이 힘들면서 같이 하나님을 바라보도록 도와주고 서로 감싸주고 하는 존재인 것 같아요.
에필로그: 직접 농사지어 만든 김치와 샐러드,상추,고추등 제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푸짐한 자연의 먹거리와 카레로 식사대접을 받고 집으로 돌아갈 때는 상추와 고추등을 한가득 챙겨주셨습니다. 식사준비를 할 때 온 가족이 함께 정성스레 준비를 하는 정겨운 이 가정을 통해 배운 것은 가정간의 풍부한 대화가 참 중요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다른 가정 같았으면 차마 꺼내지 못할 말들 조차도 서로 내어놓으면서 소통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자녀들이 사춘기에도 이탈을 하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핵가족시대인 너무도 바쁜 대한민국에선 중고생과 부모와의 대화는 거의 하숙생과 주인의 관계라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변해있지 않나 싶습니다.
학원으로 전전하는 일반 학생들과 달리 부모와 늘 함께 있는 홈스쿨러들일지라도 사실 속깊은 대화를 하는 가정은 그리 많지 않을 수도 있겠습니다. 가족간의 친밀함이 매우 부러운 인터뷰였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간 제자들에게 하셨던 것은 많은 진리의 말씀도 있지만 본을 보여주는 삶이 더 큰 영향이 있었던 것처럼 부모 또한 자녀들에게 연약함과 죄됨을 고백하면서 본을 보여주는 그러한 삶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며 부끄러움과 함께 다시금 저희 부부 스스로를 다시 뒤돌아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한국기독교홈스쿨협회 http://khomeschool.com 글,인터뷰: 박진하 사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