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2011. 8. 5. 0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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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부 사창리의 아침
사창리의 아침 / 강정수
후루루 타악
해님은 두류산 뒤에서
아침 준비하고 있는 동안
윗집 산들 아줌마와 그 막내아들
널어놓은 말린 콩 나무에 도리깨를 내려쳐
어둠의 꼬리 몰아내며
사창리의 아침을 열어간다
봄부터 가을까지 겪어왔던 일들이
오르내리는 도리깨질에
튀어 오르는 노란 콩들처럼
무질서하게 눈앞을 어지럽히지만
끔쩍도 하지 않고
수십 년 이 골짜기 지켜온 뚝심으로
산들 아줌마 도리깨질은 쉬지 않는다
예쁜 파랑새 기웃 거리며
맑고 높은 소리로 노래 부르고
지나가던 바람의 손짓에
밭두렁에 핀 노란 들꽃들이 고개를 들면
해님이 기지개를 켜며 고개를 내밀다가
이미 시작된 사창리의 아침을 보고
머쓱해 하며 하늘로 곧장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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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바다 / 강정수
바다에 가면 온 몸이 젖어 투명해지고
물 길 따라 내 꿈이 파랗게 펼쳐지며
삶의 뿌리까지 초록으로 천천히 물들어 간다
흔들리는 바닷물을 바라보면
엄마 품에 안긴 아기처럼 저절로 눈이 감기고
사랑하는 딸들아 아들들아 부르는 바다는 어머니
인류의 시작부터 평생을 일렁이는 요람이지
펄떡이는 물고기와 팔씨름 하고
들쳐 맨 그물로 어깨가 무거운
지친 삶을 지탱해 주는 우리의 바다여
작은 생명들 부지런한 갯벌에 퍼져 앉으면
속을 드러낸 소금은 하얗게 익어가고
만선의 깃발 흔드는 어부들의 웃음소리 온 바다를 채운다
바람 끝에 실려 오는 사람 사는 이야기들
바다를 향해 가슴을 열면
넓고 끝없는 생명의 힘이 밀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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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바다 / 강정수
아침을 잉태한 바다는
해변에 찍힌 마중 나온 발자국 들을
쓰다듬고 있는데
날빛의 씨앗들은
자욱한 안개를 헤쳐 내고
새 빛은 수줍음을 은근히 밀치고 나와
어둠을 깔고 앉아
남아 있는 그림자 들을 하나씩 뜯어내며
하루의 행복 싣고 온
금빛 햇살을
이슬 내린 대지의 치마에 섬세하게 뿌리고 있다
그대의 눈동자에 비치는 왜목마을 작은 바다는
장엄하게 울리는
자연의 오케스트라의 감동으로 가득 차
날아 오르는 물새들 처럼
소망의 그물을 펴는 아침을 향해 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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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창 공원 / 강정수
비 내린 후
약간 선선한
어떤 여름 날
역사가 숨 쉬는 효창 공원
푸른 잔디와 소나무 길
눈길 나누며 친구들 같이 걸었다
한평생 의연하게 애국 하신
김구 선생님 묘소 앞에서
나라 위해 기원하니
갑자기 애국자 된 기분
다박솔 줄지어 늘어선 묘소 앞길은
과거에서 현재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다시 돌린다
하얗게 핀 키 큰 망초가
눈물 나는 나의 숙연함에
기웃하며 흔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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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노인 / 강정수
하늘 비쳐드는 먼 바다부터
줄지어 밀려오는 파도가
거품으로 쓸어가는 모래사장은
순백의 드레스처럼 하얗다
환경 보호 플래카드 내걸고
왼손에 비닐 주머니
장갑 낀 오른 손에 집게 들고
모래판 보며 걷는 발길에
무언가 걸려 넘어질 듯 비틀거린다
소주병 두 개 모래 속에 묻혀 딴죽 걸고
넘어질 듯 낮아진 눈길에
담배꽁초 삐죽 보이는 동해 바다 모래 밭
낭만적인 여름 밤
모닥불 주변에서
담배 피워 물고 소주병 기울이는
젊은이들이 떠올랐지만
고개 흔들어 의심을 떨어낸다
한 쪽에 그림자처럼 앉아있는
공공사업 쓰레기 줍기 노인
모래 속 쓰레기들
일 년 내 주워내도 끝이 없다고
먼 바다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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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의 날개 / 강정수
쉬지 않고 밀려오는 파도
넘치지 않고 담아내는 바다
바라다 보이는 곳까지
밀려오는 생각
끊임없이 왔다가
돌아보지 않고 떠나간다
가슴 속 내 던지면
마음 편할 수 있으련만
어리석은 미련 놓지 못하는
수평선까지 가엾은 눈길 모으는
산산이 부서지는 하얀 파도의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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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바닷물에 잠긴다 / 강정수
뜨겁고 거친 콧김 뿜어내며
숨을 조여 오는 한낮의 여름 풍경은
태양이 녹아내릴 것 같은
의식의 흐름에 갇히고
어려운 삶의 모습 닮아 가는지
기어가는 자동차 들
도로의 헐떡임 더해도
마음은 항상 수평선에 둔다
그래도 가야지
마음 속 불타 올라도
조급한 마음 냉풍으로 식히며
바람 부는 마을
파도의 고향으로 가야지
바다가 보이면
분노도 원망도 날아가고
마음은 벌써 앞서서
푸른 바닷물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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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달린 것들 / 강정수
풀밭에 가지 않는 어린 아들
나비의 가벼운 날갯짓에
우리 뜰에 태풍 분다
공중에 그림자 만 보이면 도망가고
잠자리 피하느라 넘어지기도 한다
불빛에 날아드는 나방에 놀라
방에 들어가 문 걸어 잠근다
개미가 손등을 기어 다녀도
웃으며 바라보고
배추 애벌레 손바닥 올려놓고
기어가는 모습 귀엽다 고
깔깔 대는 아들이
공중에 파닥임 보이면 겁에 질려 놀란다
날아가는 시간과
알 수 없는 미래가
아빠에게 두려운 것처럼
방향과 시간을 예측할 수 없는
날개 달린 것들이
아들에게는 무서운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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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양 기행 / 강정수
누가 담양을 작은 마을이라 했던가
핏줄처럼 늘어진 길들 따라
곳곳에 대나무 숲
절경에 자리 잡은 옛 정자들
찾아가면 익숙한 느낌
어제 왔던 자리 같은 다사로움
오랜 세월 묻어온
조상들의 숨결 마음에 느껴지고
가슴으로 전해 오는 다정한 손길
어깨에 내려앉는 옛 님의 눈길
대나무 스치는 바람 수 천 년 거슬러
울리는 거문고 가락에 관동별곡 뛰고
청아한 대금소리에
맑은 겨울 하늘 금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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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자의 마음 / 강정수
못다 한 내 그리움이
그대 가슴 끝
한 자락도 적시지 못하고
고요한 하늘가
내 소원 깃든 별빛이
당신 눈에 비쳐들지 못한다 해도
맑은 바람 편에
내 마음 담아 보내리라
항상 모자람 속에서
더욱 진하게 갈구하는 마음 깊은 진실들
나는 당신의 하늘에서 두 손을 모아
세월을 헤아리며
구도자의 마음으로
영원으로 통하는 길을 찾아
방랑의 길을 나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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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꽃 / 강정수
흘러가는 바람결에
바라보는 시선
나무들 숨 쉬는
초록으로 맑은 산자락과
펼쳐진 생명의 들판에서
고운 파장으로 깊은
가느다란 현의 가벼운 떨림으로
때로 폭풍이 부는 바다
천지의 수많은 소리들이
걸러져
빛 고운 하늘의 기운이 머문
정안의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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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바랜 사진 한 장 / 강정수
세월에 낡아진 벽지처럼
책갈피에서 떨어져 내린
빛바랜 사진 한 장
갑자기 눈앞에 활동사진 돌아가며
중학교 수학여행 어제 일처럼 보인다
열차 차창 밖 지나는 경치들처럼
삼박 사일 금방 지나고
덤으로 몇 십 년 훌쩍 흐른다
선생님 몰래 마신 술 한 잔에
빨개진 얼굴 서로 보며
새벽까지 킥킥 대던 같은 방 친구들
그런데도 이튿날 등산에서
선두로 올라갔던 땀투성이 얼굴들
가쁜 숨이 베어 있는 사진 보며
오랜만에 친구들 전화해서
쉬이 만날 약속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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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의 노래/ 강정수
이 산 개울 저 골 물
온갖 사연
조상 대대 이웃들의
응어리진 한과 소박한 기쁨 모아져
북한강물과 남한강물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두물머리 큰 물 줄기
합쳐진 거대한 생명의 숨소리
가슴에 울려오는 함성
바라보는 연인들의 맑은 시선
강물 위에 반짝이는 고운사랑
그리움의 바다를 이루고
강변 곳곳 생명을 전하고
희망의 씨앗들을 나누며
민족의 혈관은 도도히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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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치의 꿈 / 강정수
긴 줄 기다려
어렵게 얻은 승차권
자전거처럼 생긴 레일 바이크
정선군 구절리역
열차 멈춰선
폐광 지역 석탄 운반 선로
달리는 레일 바이크는
남아있는 주민들의 가녀린 희망
객차 두 개 아래 위 겹쳐
여치가 여치를 업은 모양의
역 구내 카페 이름도 여치의 꿈
맑은 계곡에 손 씻고
마음까지 비치는
맨발에 운동화로 페달 밟아도
두 가닥 선로 위로 미끄러지듯 굴러가
선녀의 옷자락처럼
바람 부드럽게 스쳐가는
정선 아리랑 휘감아 도는 계곡을 간다
으스스한 굴도 지나고
높고 낮은 산도 지나
오손 도손 사랑을 나누며 선로 위를 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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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생명 줄기 / 강정수
오월에 내리는 비
마른 대지위에 뿌려지는
푸른 생명 줄기
무릎 꿇고 하늘 향해
민심 들어 올린
물 대는 논바닥에
하얗게 바래던 고랑마다
비 줄기 흔들며 희망가를 부르고
위태롭게 논두렁 달리는 엄마
졸랑거리며 뒤 쫓는
아이들과 강아지의 급한 발걸음 따라
초록으로 색칠해 간다
쪼들리는 농심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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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서 간 울릉도 / 강정수
계획 없이 떠난 것
인생 하나면 족한데
망설이다가 무작정 떠난
울릉도 길
후회로 더욱 희미한 등불 빛
겨울 묵호항 여행 안내소
삼월 이후 배 떠난다는 직원의 말에
어달리 해변 횟집에서 새우잠 자고
여명에 총알처럼 포항으로 달려
10시 출항 직전 겨우 배를 탔다
쾌속정 4시간 걸리도록
풍랑에 시달려
넘어가는 배 멀미에
거의 죽어 간다
도착 알리는 안내 방송에
모두 생기 찾아
울릉도 내려서니
고향이 따로 없다
덥석 손잡는
아기 업고 내달리는 소박한 민박집 아주머니
명이 나물 파란 언덕 길 돌아
나리 분지 가로 지르며
자상하게 설명하는 개인택시 기사님
바다와 기암괴석이 전설을 만드는
해안선 지나며
매고 온 시름 푸른 바다에 녹아버리고
감탄사만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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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감동 / 강정수
이른 봄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으리라 생각하며
다가선 시골 밭
뿔 달린 투구 쓴 고춧대들
겨울 고추밭에 굳건하게 버티고 서 있어
혹독한 겨울 이겨냈다
까맣게 잊고 있었던
가슴에 작은 감동이 일었다
사라진 줄 알았던 어제가
모습을 드러냈다
고추 만 따가고 남겨진
앙상한 고춧대에게 새삼 할 말이 없다
완고하게 땅 속에 박힌 뿌리
한 그루씩 뽑아내며
누군가의 가슴에 박혀 있을지 모를
고춧대들을 걱정한다
잡초 / 강정수
시골 고추 밭에
지난주 마음먹고 호미질한 후
퇴비거름 잔뜩 주었는데
한 주 사이 고추는 조금 자라고
주변 풀들만 무성하다
걱정하며 바라보다가
오후에 작정하고 풀 뽑기 시작했는데
뽑아도 또 뽑아도
풀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어린비름은 붉은 뿌리 쏙 뽑혀지는데
쇠뜨기 쇠비름 줄기 툭툭 부러지고
세포아풀 하얀 꽃
방동사니 노란 꽃들도
미운 생각에 사정없이 잡아 뽑지만
깨끗하게 뽑히지 않는다
여퀴와 덩어리진 바둑나물
안보이던 닭의장풀까지 괴롭힌다
모자 밑으로 흘러내리는 땀과 갈증 나는 목
은근히 허리까지 아프다
없었던 잡초들은 어디서 왔을까
잡초들의 끈질긴 생명력을 생각하며
한 주 지나면 다시 무성할
잡초들을 뽑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