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온천의 역사
해운대 온천은 오래전 신라 진성여왕이 어릴적에 마마(곰보병: 天然痘)를 앓아 해운대에 와서 온천욕을 하고 씻은듯이 나았다는 전설이 지금까지 전해질 뿐 그 후 근대까지 온천에 관한 기록이 사라지게 된다. 이에 대해 추측하기를, 온천욕에는 광적이라 할수 있는 왜인들, 특히 대마도 왜인들은 그들의 본토보다 해운대가 가깝기 때문에 이쪽으로 자주 목욕을 하러와서 민폐 또한 많았을 것으로 보이며 또 하나 해운대 온천이 피부병을 치료하는데 좋다고 하여 각지에서 환자들이 모여들어 주민들이 홍수를 기회로 천원을 묻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경상좌도 수군절도사영이 바로 이웃의 수영에 있어서 좌수영 관원들이 목욕을 하고 민폐를 끼쳐 천원을 막아 버렸다는 설이 있다.
그래서 동국여지승람이나 동래부지에도 해운대 온천에 관한 기록은 없다. 해운대 온천은 개항후 일본인의 내왕이 잦아짐에 따라 세상에 알려진 셈이다.
개항후 광무원년(1887)에 부산의 일인의사 和田野茂라는 자가 해운대 온천 주변의 토지를 매수하고 온천원을 발견하여 욕장을 건축하였다고 한다.
당시의 온천은 龜南溫泉이라 하였는데 그때만 하더라도 교통의 불편과 외래 욕객을 위한 설비가 전무하였으므로 부근의 부락민이 이를 이용할 따름이었다.
이어서 광무 9년(1905)을 전후하여 이곳에 거주하였던 일본 態本縣의 岩永米吉과 정강현의 資産家 依田善六, 渡邊平四郞등이 공동으로 시추기를 사용하여 지하 30자 내외를 굴착하여 15℃의 온천을 발견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무료욕장으로 개방하였으나 남욕의 폐단이 있어 입욕료를 받게 되었다.
1920년대 해운대 온천
1923년경의 해운대 온천 주변 일대는 숙박시설로 해운루 외 2, 3개소의 여관이 있었을 뿐 위락시설도 없었고, 또 시가도 조성되지 않았으므로 그야말로 자연의 풍치뿐인 미개발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온천은 온천장의 중심에 특별탕과 보통탕으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각각 남, 여탕, 대절탕을 겸비하였고, 욕실로는 湯, 微溫湯, 砂湯이 설비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 때만 하더라도 온수의 온도가 낮았으나 일본인들은 전문기사를 고용하여 시굴케하고 온천에는 20마력의 발전기를 설치, 양수하여 온천장의 각 여관과 상점으로 송수하였다.
이와같이 시설정비가 진전됨에 따라 소학교와 우편소를 설치하였으며 당시의 일본인 가구는 24호 정도였다.
이때 여관은 일본인만이 경영하였던 해운루, 연광여관, 가무여관 등이 있었는데 그중 가장 설비가 좋은 해운루는 2층건물에 객실 20개의 규모로 화대를 폐지하고 연광, 가무여관도 요금을 저렴히하여 욕객유치에 노력하였다.
일제후기의 해운대 온천
해운대 온천은 1937년에 동해 남부선(중앙선)이 개통되면서 욕객의 왕래가 대거 증가되어 부산에서 경주로 관광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해운대에 일박하는 것이 관광 관례로 되어 있었다.
그리고 해수욕장까지 겸비되면서 주변 자연환경과 더불어 그 관광적인 가치가 국제적인 수준으로 촉망되는 형편이었다.
또한 철도 호텔이 생기게 되자 당시 조선총독 자항은 이 곳에 투숙하는 일이 많아져 총독의 첩까지도 이 곳에 두었다고 전한다. 그러는 동안 일인들은 해운대 온천 기업합자회사를 설립하여 동래군 일광면까지 인근 주민의 부역으로써 도로를 개설하는 한편 소형자동차 15대와 15인승 대형자동차를 운행하여 제법 활기를 띄게 되었다.
해운대 온천기업회사는 1932년 1월14일에 자본금 15만원으로 황정 初太郞이 대표사원으로 설립하여 본점을 서울에 두고 해운대 일대의 토지 약30만평을 그들의 재산으로 하여 하나의 온천사업과 지주의 행세를 하였다.
또한 온천지구 토지내에 토지임대, 온천관리를 하는 한편 온천풀, 동물원과 농장을 경영하였다. 당시 이 회사에는 한국인이 주주가 될 수 없었고, 오로지 일본인만이 주주가 되었다.
해방후 온천의 실태
1934년 이후 2차대전 종전까지의 해운대 온천에 대한 문헌이 없으므로 그 상황을 알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운 실정이다.
해방이 되면서 해운대 온천 기업회사의 일건서류는 다년간 해운대 지구에서 중추참의원까지 지낸 일제때 부산의 유지로써 어업계에서도 잘 알려진 김화수가 이를 인수하게 되었다.
1952년 6월16일 부산시는 해운대 온천의 관리권을 인수하여 제1차 공사를 1955년 3월20일에 공사비 145만5천원, 제2차로 동년 10월17일에 공사비 49만8천원을 각각 투입하여 펌프시설을 하였고, 제3차로 1955년 1월23일 공사비 165만원으로 배수탕 본관개수공사를 하였으며, 제4차로 동년 3월20일에 공사비 75만원을 들여 보호관내 각종 안전장치를 설치하였다.
해운대 온천의 현재
해운대 온천수의 성분은 단순식염 약알칼리성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온천이 대부분 유황천인데 비해 해운대 온천수는 바닷물의 영향으로 나트륨 성분이 전국 최고치이며 염소이온도 많이 함유돼 있다. 해수성분이 풍부하여 류마티스 빈혈 등에 특히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식이염천이기에 비누가 잘 안풀리는 특성이 있다.
해운대 온천은 현재에 이르러 중1동 일대 11곳의 대중목욕탕과 호텔 여관 등 모두 27곳에서 만날 수 있다. 사설 온천공(溫泉孔)을 갖고 있는 청풍장, 국제탕을 제외하고 부산시 상수도사업본부에서 관리하는 양탕장 등의 시영공에서 물을 공급받는다.
해운대 온천에서는 해마다 정월 대보름에 다양한 민속 문화행사가 곁들여진 ‘해운대 달맞이 온천 축제’가 열려, 만월의 정취와 함께 할인된 요금으로 온천욕도 즐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