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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준식 시조집 / 네 손 잡고 부를 노래
2018. 9. 21
▢ 작품해설
동행의 길목에 꽃핀 시심
김 석 철
전 한국시조시인협회 부이사장
1.
시조가 우리말의 토양에서 자생한 시의 형태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우리 민족의 숨결 속에 녹아 있는 시조문학! 우리말의 운율이 가장 자연스럽게 발현된 언어조합을 이루고 있는 게 시조다. 시조야말로 우리의 정신과 혼을 담아내기에 가장 적합한 언어 표현의 그릇인 것이다.
류준식 시인이 이번 열다섯 번째 시조집 『네 손 잡고 부를 노래』를 상재한다. 계속되는 류 시인의 푸른 창작열에 감동을 받는다. 류 시인은 이미 시와 수필 부문으로도 등단하여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으며, 특히 시낭송가와 중견 시조시인으로서 그 자리매김을 확고히 하고 있다. 각종 문학상과 낭송가로서의 화려한 수상실적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필자는 과연 류 시인의 그 넓고도 깊은 시조세계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염려하면서 이 글을 쓰게 된다.
류 시인의 이번 시조집에는 무려 125편의 작품이 모두 제4부로 구성되어 있다. 세월과의 동행의 길목에 꽃핀 시심이다. 원숙미와 함께 진솔한 삶의 철학이 있고, 아름다운 만남이 있고, 함께하는 즐거움이 담겨 있는 작품들이다. 오늘도 쉼없는 ‘세월’이 흐르고 있다. 이 덧없는 세월의 인생론 앞에 우리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세월과의 동행이 시작되었고, 강물처럼 흘러가는 게 세월이요 흐르는 세월은 사람을 기다리지 않는다. 사실 좋은 세월을 얻기는 어려워도 잃기는 쉬운 게 세월이라는 말도 있다. 류 시인은 이런 세월과의 동행 속에서 시조를 낳고 시조를 창창하게 기르고 있다. 류 시인의 작품에서 전체적으로 눈에 띄는 특이 사항은 각 작품마다 표기의 기사법으로 ‘행’과 ‘연’의 시작 위치를 조정하여, 시각적으로 형태의 미를 추구함과 동시에 운율적, 의미적 효과를 거두는 배행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점이다. 결국 배행이 일정하지 않으면서도 각 장章마다의 역할이 뚜렷하고, 시조의 삼장은 잘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주지하는 바와 같이 시조의 시적 형식으로 행갈이와 연 구성이 있는데 행갈이는 물론 ‘장’을 나눈 것이며, 연 구성은 ‘수’를 묶은 것이다. 시조의 행과 연은 그 자체가 시적 효과를 위한 시적 장치이며 하나의 감각적, 운율적, 의미적 형태라는 걸 류 시인은 잘 알고 있다고 판단된다.
2.
제1부에서는 주로 노을에 물든 시심이 드러나고 있는 작품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인생관이 내재된 작품들에, 인간에 대한 사랑과 삶에 대한 성찰의 깨우침이 담겨있는가 하면, 내면적인 사상과 감정을 음악적인 운율과 화화적인 이미지로 결합해서 압축하고 통일시켜 조화롭게 표현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류 시인은 안으로 삭힌 생활의 인고며, 그 속에서 싹 틔운 시적 감흥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서도 귀한 깨우침을 붙잡고야 마는 특출한 개성이 있다. 어떤 물상이든 류 시인의 시선이 닿으면 꽃이 되고, 시가 되고, 예술이 된다. 눈이 맑고 가슴이 따스한 시인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이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가 하면 영혼이 없는 물상에 영혼을 불어 넣어 주는 진실한 마술사가 시인이다. 무릇 시인의 눈은 안 보이는 것을 볼 수 있고, 시인의 귀는 안 들리는 것까지도 들을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 새삼 떠오른다.
시작이 반이란 말
안다면 웃지 말게
정녕 이루리라
앙다물고 재어 간다
땅덩이
둥글다는 거
제가 먼저
알았다나
- 「자벌레의 세계 일주」 전문
“자벌레”는 나방의 “애벌레”를 말한다. 몸은 가늘고 긴 원통형이며, 가슴에 세 쌍의 발이 있고 배에도 한 쌍의 발이 있다고 한다. 기어갈 때 꽁무니를 머리 쪽에 갖다 대고 몸을 길게 늘이기를 반복하여 움직이는 것이다. 아직은 애벌레이기에 연약한 몸체인데도 쉬지 않고 한 땀 한 땀 재어가는 모습이 자못 가상하다. “자벌레의 세계 일주”, 과연 자벌레의 세계 일주가 가능할 수 있을까? ‘자벌레’는 화자의 삶에 대한 은유로 차용되고 있다고 볼 수 있으며, 삶에 대한 태도와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고도 짐작된다. 사실 노력하는 과정 자체가 우리의 삶이며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목의 울림도 크다. 내용에서 구어체 예사낮춤의 표현이 친근감과 함께 설득력을 주고 있다. 이 작품 초장에서 말머리를 풀면서 주제를 암시하고 있으며, “말게”, “간다”, “알았다나” 등 각 장 끝 어절의 어미 처리도 다채롭다. 우리 격언에도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걷는다”, “시작이 반이다”란 말이 있다. 일단 한 번 시작하면 끝마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오로지 꾸준하고도 성실함으로 목표를 관철할 수 있다는 의미가 담겼다. 이 세상 모든 생명체의 삶은 경이로운 현재진행형의 모험이라는 생각이 든다. 세상을 더 넓고 깊게 바라보는 안목이 나타나 있지 않은가. 시(시조)는 아름다운 예술이다. 누구나 아름답다는 사실을 비유할 때 주저 없이 ‘시적’이라는 말을 쓴다. 자벌레의 세계 일주는 ‘시적 상상력’으로 가능한 일이다. 시인은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상상력을 지닌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살을 에는 세한에도 채찍은 단골손님
굽힘은 치욕이다 녹여 붓던 잘라 내던
피어낼 그날을 위해 까치발로 견딘다
아픔이든 시련이든 혼절도 마다 않고
발끝에 심을 박고 무지개 나랠 편다
환생은 꿈 아닌 현실 어서 쳐라 더 붉도록
무쇠보다 더하더라, 쇳물보다 뜨겁더라
산보다 높은 악형 강물보다 깊게 안고
꿈 하나 이루기 위한 직립보행 설워라
고난 없는 영광이란 해 아래 없는 것을
참고 보듬어서 뜻은 높이 세운 뒤에
몸 던져 마음을 던져 팽팽하게 더 오롯이
-「팽이」 전문
창작은 늘 새로운 발견이라고 어느 시인이 말했다. 시인은 예리한 감성의 소유자다. 눈에 보이는 물상들에서 새로운 의미를 찾아낸다. 이 「팽이」에서는 시조의 틀을 잘 지키는 가운데 서정의 유장한 가락을 자연스럽게 표출해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가 있다. 현대시를 이끈 엘리엇(T.S.Eliot)에 의하여 객관적 상관물로 명명되어지는 시적 대상인 ‘팽이’는 시인과 독자의 공감대를 맺어주는 유기적인 매개체인 것이다. ‘팽이’는 둥글고 짧은 나무의 한쪽 끝을 뾰족하게 깎아서 쇠구슬 따위의 심을 박아 만든 아이들의 장난감, 주로 채끈으로 치거나 때리는 방법을 사용하여 빙빙 돌게 하는데, 요즘에 와선 끈을 몸통에 감았다가 잡아당겨 돌리는 새로운 “팽이”도 나왔다. 때리거나 친다는 것은 자극과 충격을 주는 일이다. 안이해지려는 일상을 깨우쳐주는 작품이 아니겠는가. 치열한 삶의 여정을 비유적으로 그리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장미꽃으로 수놓은 화려한 길이 아니며, 부단한 노력과 수고를 요하는 험난한 가시밭길이다. 참신한 시적 감각으로 관찰하고, 사색하고, 사유하고, 통찰을 겨냥한 속 깊은 노력이 인지된다. 의인화와 감정이입으로 주체와 객체를 합치하여 무생물에 언어를 부여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사물을 새롭게 인식하는 참신성과 상상력이 눈부시며 잠시 생각에 잠기게 하는 끌림이 있다.
전생에
연인였나 봐
다짜고짜 몸을 섞네
그동안
안부쯤은
사치스런 너스레
붙안고
가는 것 좀 봐
웃을 일만
남았다며
- 「두물머리」 전문
‘두물머리’는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갈래 물줄기가 함께 만나는 곳이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두물머리’는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금대봉 기슭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 두 물이 합쳐지는 곳으로 한강의 시작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두물머리’는 예로부터 유명한데, 이른 아침에 피어나는 물안개와 일출, 일몰, 황포돛배, 그리고 400년이 넘은 느티나무와 어우러져 각종 드라마 및 영화촬영 장소로 널리 알려졌으며, 요즘도 수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는 명소가 되었다. 자연적인 현상으로 아름다운 풍광을 이루고 있는 ‘두물머리’의 두 물줄기를 의인화하여 주관적이며 관조적인 수법으로 내부의 감정을 시조의 율격에 맞게 담아내고 있다. 말하자면 자기 목소리로 부르는 심혼의 노래이며 ‘주관적인 자기 노래’다. 특히 종장에서는 “붙안고/ 가는 것 좀 봐/ 웃을 일만/ 남았다며“라고 표현하여 포용과 사랑, 배려와 화합을 암시하며 긍정의 밝은 미래를 예감케 하고 있다.
밑동 잘린 고목이 새 움을 틔워낸다
발은 비록
묻고 사나
가슴 속엔 오색구름
솟대꿈 잉걸불 피워 하늘 가득 밝힐 거야
뼈마디 바스러지는 아픔이 왜 없었겠나
모진 톱날
방자함도
용서한지 오래라며
다가와 속삭여 주네, ‘위기가 기회인 겨’
- 「귀엣말」 전문
‘귀엣말’은 ‘남의 귀 가까이에 입을 대고 소곤거리는 말’이다. 유의어로는 ‘귓속말’이 있다. 고목이 새움을 틔워낸 걸 발견하고서 교감한 내용이다. 대상의 속성과 내면을 들여다보는 철학이 들어 있다. 이 시조에는 자연적인 경험이 환유적인 문맥 속에 변용되어 나타나고 있다. 외유내강의 심성이 느껴지는 시상이다. 대상을 바라보는 화자의 눈길은 따뜻하고 정이 넘친다. 잘리고 꺾인 고목과의 묵언의 대화라고나 할까. 절망에서 희망을, 위기를 기회로 삼는 강한 진취적 모색의 의지가 담겨 있는 작품이다. 고목이 들려주는 “위기가 기회인 겨”라는 귀엣말이 결코 가벼운 속삭임이 아니다. 스치는 ‘귀엣말’이지만 실제 바위보다도 더 무거운 암시로 깨우침을 주고 있다. 영국의 윌리엄 블레이크가 말한 “한 알의 모래 속에 세계를 보고 한포기 들꽃 속에 천국을 본다.”라는 말이 상기된다.
발끝에
차인 돌이 홉뜨고 노려본다
너보다
진한 삶은 내게도 있다 하며
허투루
딛는 발길도 물어 디딜 일이다
- 「돌멩이의 호통」 전문
시조의 묘미를 느끼게 한다. 각 장의 첫 어절(마디)을 한 행으로 하고 중앙에 배치하여 시각적 효과와 함께 의미 강조의 리듬을 유발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돌멩이’는 돌덩이보다 작고 자갈보다는 큰 돌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쩌다 비포장 길을 갈 때면 발끝이 돌멩이에 부딪치거나 차일 때가 있다. 지나치기 쉬운 일상의 체험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는 시의 눈을 지녔다. “고정 관념을 깨뜨릴 때 비로소 시는 탄생한다.”는 티보테의 말이 상기되어진다. 일상적 사소하고 하찮은 일일지라도 허투루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경구가 아니겠는가. 보편적 감동과 정서를 노래하면서 깨우침을 주는 매력이 있다. 류 시인은 여타 작품에서도 상상의 세계를 활짝 열어 현실 세계를 재창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항상 새로운 영지를 찾아나서는 시심이 빛나고 있다.
한 밤을
서너 번씩
토막 처도 긴 밤인데
길 잃은
파랑새는
제 집 두고 한뎃잠을
지금쯤
어느 하늘 밑
버린 세월 되 거두나
- 「불면의 밤」 전문
잠 못 이루는 밤에는 온갖 잡념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나 “한 밤을 서너 번씩 토막 처도 긴 밤이다” 잠은 오지 않고 이 생각 저 생각에 길을 잃고 허공을 헤매는 밤, 중층 비유로 생략과 설의의 표현기법을 혼용하여 불면의 밤을 잘 그려내고 있다. 잠이 오지 않는 밤, 시인의 상상력이 하늘을 넘나들고 있다. 초, 중, 종장이 각각 독자적인 의미체계를 지니면서도 실은 주제를 향한 연계 고리를 형성하여 응집력을 보이고 있다. 가슴 깊숙한 곳에 시적 울림을 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대상에 대한 새로운 인식, 새로운 언어의 구조, 새로운 유추, 그리고 새로운 시어의 운용이 현대시조의 진정한 현대화에 열쇠가 되리라고 생각된다. 단수에 함축된 의미가 깊다. 류 시인의 작품들은 쉽게 읽히면서도 생각이 깊은 철학적 사유가 담겨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노려보는
네 눈매를
무심코 보노라면
섬뜩
기는 죽고
오금마저 저렸다
막힌 혈
뻥 뚫어주는
그 은공을 모르고
- 「송곳」 전문
직관에서 얻은 감성을 단시조에 담고 있다. 어떤 대상이든 보는 각도에 따라 그 모양과 느낌이 다르기 마련이다. ‘송곳’은 작은 구멍을 뚫는 데 쓰는 도구로써 쇠로 만들어 끝이 뾰족하고 자루가 달려 있는 물건이다. 이 송곳은 어떤 물건에 구멍을 뚫을 때는 요긴한 필수품으로 쓰이나, 때로는 본래의 구실에서 벗어나 사람을 찌르거나 상처를 주는 흉기로 사용될 수도 있는 물건이다. 송곳의 상징성을 드러내 주고 있다. 따라서 송곳의 뾰족한 끝은 섬뜩한 인상을 주기도 하는데, 도치와 생략, 구어체의 표현이 실감을 주면서도 시조의 감흥을 북돋아 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초장과 중장에서는 송곳의 뾰족한 부분을 바라보는 느낌을 그리고 있으며, 종장에서는 유용하게 쓰이는 송곳의 고마운 쓰임새를 생각하게 한다. 일상적 소재를 취택하여 단아한 작품으로 그려내 공감을 얻고 있다.
성묫길 짬을 내어
잠시 들른 고향 옛집
잡초들의 무도회다
장독이며 지붕까지
부릅뜬
도둑고양이
웬 놈이냐
내게 묻네
남 불러 문 열어라 여닫을 필요없네
다니면 길이라니 드나들기 편하겠다
몸을 푼 흙담보다도 더 무너진 내 어린 날
- 「옛집」 전문
‘옛집’은 류 시인이 살았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서린 고향집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성묫길에 짬을 내어 잠시 들른 고향 옛집엔 장독이며 지붕까지 잡초들만 무성하고, 빈집을 지키는 도둑고양이가 놀란 모습으로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는가 하면, 문이란 문은 다 열려 있고 흙담도 다 무너진 폐가의 형국이다. 첫수와 둘째 수의 표기 기사법을 다르게 하여 색다른 느낌을 주고 있다. 시상의 전개를 순차적으로 구성하여 이미지를 선명하게 드러내고 있으며, 시골의 옛집에서의 한국적 정서를 온전히 시화하여 공감을 더해주고 있다. 특히 둘째 수 종장 “몸을 푼 흙담보다도 더 무너진 내 어린 날” 의 세련된 시적 표현이 옛집의 이미지 형상화에 효과를 더해주고 있는 점이 압권이다.
순리를 거역한 죄
천륜을 망각한 죄
낱낱이 못 고한 죄
죄명 따라 치도곤을
아직도
넌, 모르겠니
마른 날 널 부른 뜻을
- 「천둥」 전문
‘천둥’은 뇌성과 번개를 동반하는 대기 중의 방전 현상을 일컫는다. 작품에 쓰인 시의 언어가 평이하면서도 명징하다.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죄는 도피할 수 없는 올가미라고 할 것이다. 화자는 도덕적으로 떳떳하지 못한 삶을 누려가는 이들에게 ‘천둥’으로 경고성 메시지를 날리고 있다. ‘뇌성’은 호통소리 같고, ‘번개’는 후려치는 칼날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특히 종장에선 도치의 표현기법과 함께 주제심화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 특히 대낮에 일어나는 순간적인 천둥의 뇌성과 번개는 멀쩡한 사람이라도 금새 마음을 졸이게 되며, 주눅이 들게 할 뿐만 아니라, 혹시 어떤 나쁜 일이라도 저질렀다면 자칫 죄값을 받을 것 같은 느낌이 들게 한다. ;천둥‘소리를 듣고 느끼게 되는 심정을 실감나게 그려내고 있다.
3.
제2부의 작품들에서는 자연 현상에서 얻은 귀한 시상들이 많았다. 시인은 자연을 대상으로 서로 교감하면서 상상력을 통한 의인화 과정을 거쳐, 자신의 감정을 대상에 이입시키고 있다. 자연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인생을 발견하며, 새로운 깨달음으로 참신한 이미지를 창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의 모든 생물이나 무생물들은 다 그 존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조물주께서 다 필요해서 이 세상에 내보냈을 터이니 말이다. 우리는 그 존재 이유를 모두 다 알 수도 없으며, 또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우리와 관련이 있는 것들은 어떻게든 그 존재 가치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깊은 사유를 하게 되는 것이다. “자연은 인간의 스승이다”라는 말이 있다. 오묘한 자연의 이치는 우리 인간에게 많은 가르침을 준다.
갈라진 논바닥에 주먹이 자유롭다
기네스에 올리려고 작정을 했나부다
그 기록 타는 농심農心쯤
강 건너에 있나 봐
하늘은 무심치 않다 그런 말 누가 했나
귀 막고 눈 돌린다 ‘헉헉’소리 진동해도
태워도 탈 것 없는데
더 무얼 태우시려
- 「가뭄·1」 전문
무조건 버텨야 한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슬에 빚을 내고 깔딱 숨을 쉴지라도
삿된 맘 삿되다 할 날 구도자求道者의 마음처럼
꼴딱 넘어서면 봄꿈 한 편 이승인데
모진 게 목숨이라
모질게 깨달으며
아침놀 붉어 올 날만 기도하는 마음으로
갈 자는 갔나 보다 천지가 고요하다
오직 성결한 맘 기도손이 남았을 뿐
뚜두둑 떨어진 눈물
피가 섞여 있었다
- 「가뭄·2」 전문
연시조로 구성된 「가뭄·1」과 「가뭄·2」 전문을 옮겨 놓은 것이다. 류 시인은 새로운 시어를 창조해 내기도 하지만 일상어들을 알맞게 구조하여 거기에 참신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살아 숨 쉬는 시어를 부활시키는 개성이 있다. 위 작품 두 편은 극심한 가뭄의 정경이다. 논바닥이 타고, 농심도 타는 가뭄이다. 심한 가뭄은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인심조차 메마르게 한다. 가뭄에의 호소가 극에 다다르고 있는 형국이다. 갈라진 논바닥 틈에 주먹이 들랑거릴 정도로 심한 상태인데도 농심을 몰라주는 천심의 무심함이 안타깝기만 하다. 두 작품 다 ‘가뭄’이라는 제재를 제목으로 설정하여 주제를 잘 드러내고 있다. 자연재해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살다가 보면 장마도 있고, 가뭄도 있기 마련이다. 허나 장마든 가뭄이든 그 정도가 지나치면 우리 인간의 힘으로선 어찌할 도리가 없다. 과학의 발달로 이제 우주여행을 꿈꾸며 4차 산업혁명을 눈앞에 둔 우리로서도 이런 극심한 가뭄 앞에선 어쩔 수도 없는 미약한 인간이 되고 만다.
생명은 위대한 것 겨자씨 그 안에도
숱한 땅 마다 하고 바위를 송곳질 해
너끈히 철심 꽂고서 가부좌를 틀고 있다
뉘 감히 어느 면전 고갤 비켜 세웠는고
치도곤도 마다 않고 물볼기를 치라 한다
대꾸는 요망하다며 어서 냉큼 비키라며
발 디딜 틈이 없다 위며 아랠 살펴봐도
먹은 맘 뉘 꺾으랴 돌올한 저 위풍은
사는 거 한 가지란 말 내 앞에선 삼가란다
하룻볕 하룻낮이 키를 재는 언덕에서
가슴팍에 새긴 글발 서책보다 더 높다며
오늘도 무른 발톱을 지성으로 갈고 있다
- 「노거수에 등 기대니·2」 전문
‘노거수’의 사전적 의미는 ‘수령이 많고 커다란 나무’를 일컫는다. 이 작품의 노거수는 용케도 바위틈에 뿌리를 내려 안정적인 자세로 자리를 잡고서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더구나 셋째 수를 보면 위아래 발 디딜 틈도 없는 벼랑에 버티고 서 있으니 생명의 위대함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노거수’의 상징성을 고려해 볼 때, 거칠고 피폐한 환경의 직장이나 사회에서도 굴하지 않고 어려움을 잘 이겨내어 성공신화를 이룬 위풍당당한 리더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작품에선 시적 요소들을 자연스럽게 유기적으로 직조하는 창조력이 인지되기도 하며, 시상이 순차적 구성으로 자연스럽게 연결성, 통일성을 갖추고 있다. 시조가 인간과 자연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조화로운 노래시임을 다시 한 번 깨우치게 된다. 달관의 경지를 내다보는 먼 안목을 살피게 하며, 주지적인 잠언시조의 한 표본을 보는 듯하다.
무에 그리
부끄러워
붉힌 낯 더 붉히나
남몰래
태운 속이
내보다 더하단다
검은 속
희어지도록
탈 대로 다 타시게
- 「늦가을」 전문
늦가을은 단풍의 계절이다. 가을로 가득 찬 산과 들, 늦가을의 주요 모티브는 뭐니 뭐니 해도 ‘단풍’이다. 쪽빛 하늘 아래 모든 산과 들이 붉게 물들어 가는 광경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늦서리 맞은 단풍은 봄꽃보다 더 붉고 아름답다는 시구도 있다. 붉게 물들고 있는 단풍에서 착상된 작품이다. 절정의 단풍을 바라보는 화자의 시각이 일반인의 경우와는 사뭇 다른 면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의 경우 붉게 물든 단풍을 아름다움으로 느끼는 게 보통이지만, 화자는 고정 관념을 벗어나 “무엇이 그리 부끄러워 붉힌 낯을 더 붉히고 있나, 남 몰래 태운 속이 내 보다도 더하구나. 검은 속이 희어지도록 탈대로 다 타시게”라고 의인화 수법을 적용하여 대화체로 자연의 순리를 수용하는 자세를 보이고 있다. 시적인 사고방식이 무위자연의 노자 철학을 떠올리게 한다. 시상이 선명하고 결속력 있는 얼개로 숨긴 듯 드러내는 시인의 언술이 감성을 자극해 주고 있다.
물소리 캐물어도 들은 척도 아니한다
새소리 잡아채도 아는 척도 아니한다
인간사
오염된다며
손사래를 치며 간다
- 「산문에 들어서니·1」 전문
‘산문에 들어서니’ 연작 세 편 중에서 단수 한 편을 골라 보았다. ‘산문’은 ‘산의 어귀’일 수도 있고 ‘절’ 또는 ‘절의 바깥문’일 수도 있다. 산사를 찾아가려면 먼저 ‘산문’에 들어서야 한다. 특히 깊숙한 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산사라면, 그 분위기는 한껏 고요하고 엄숙하며 속세와는 단절된 어떤 위엄이 느껴지기도 하는 청정한 곳이다. 산문에 들어서니 고요함 속에 물소리와 새소리만 제 갈 길을 갈 뿐이라고 했다. 화자는 산문에 들어서면서부터 속세의 때묻은 마음을 씻으며, 잊고 살았던 자아를 발견하는 깨어 있는 의식을 만나고 있다. 중생들의 영혼에 일침을 가하는 깔끔한 단시조다. 행간에 함유하고 있는 의미가 깊고, 특히 종장의 “인간사/ 오염된다며/ 손사래를 치며 간다”의 표현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물렀거라’ 외쳐댄다 초롱 들고 길을 트며
소동이며 그 요란이 예사롭지 아니하다
아마도 까막 세상에 크게 쓰실 모양이다
- 「일출·1」 전문
부른 배를 매만지다 거친 숨을 몰아쉰다
‘불쑥’ 솟구치다 ‘풀썩’ 주저앉다
새 생명 점지한 뜻을 손 모아 받아든다
- 「일출·2」 전문
홰 들고 오르신다. 내 뒤를 따르라며
팔 걷고 오라신다. 새 시대 열겠다며
흩은 맘 곧게 세우고 멘토로 서셨단다
- 「일출·3」 전문
미국의 대표적 낭만주의 시인 에드가 알렌 포우는 “서정시가 길어지면 불순물이 담긴다고 했다. 군더더기 없이 잘 다듬어진 산뜻한 단시조 세 편이 그야말로 일출처럼 환하다. 실감 있는 묘사와 재미있는 상상력의 조화가 시조미를 더하고 있다. ‘일출’은 단순히 ‘해가 뜨다’의 사전적 의미를 넘어, ‘빛’, ‘희망’, ‘새 시대’, ‘멘토’ 등으로 의미 확장의 상징성을 보여주는 시어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일출·1」은 해가 뜨기 직전의 상황을 그리고 있고, 「일출·2」 는 해 뜨는 순간을, 「일출·3」은 해가 뜬 직후의 상황을 그려내고 있다. 시는 언어로 그린 그림이란 말이 실감난다.
4.
제3부에서는 끈끈한 가족애를 읽을 수 있다. 류 시인은 인간 존중의 사상이 투철한 시인으로 특히 가족사랑 정신이 지극한 선비 시인임을 알 수 있다. 특히 이번 시조집에서 제호를 「네 손 잡고 부를 노래」로 명명한 것을 비롯하여, 가족관계인 아버지, 어머니, 아내, 아들, 며느리, 손자까지의 사랑과 인연을 귀하게 여겨, 가족의 따스한 사랑을 고루 작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란 경구가 있다. 우선 가정이 화평해야 만사가 순조롭게 잘 풀린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문화 발전으로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 접어든 요즈음, 한 쪽에서는 가족관계의 붕괴니, 핵가족시대니 하면서 가족관계가 해체되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하지만, 류 시인의 작품에는 충⸳효⸳예의 동양적인 기본예절이 자연스럽게 작품에 승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타고난 심성과 함께 평소의 돈독한 신앙심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다고 짐작된다.
선녀인가
천사인가
복에 복 주시었네
이보다 좋은 날이 우리 아들 장가 든 날
알았네, 남 없는 보물 하나 더 받았음을
비단보다 더 곱더라, 그 마음이 월척인 걸
춤을 덩실 뛰는 가슴 둥둥 나는 마음 날개
柳씨네 경사 났다며 부럼 탄 저 눈들 좀 봐
아가, 며눌 아가, 넌 내게 청淸이란다
이 세상 어느 규수 뉘 미쁨이 널 누르리
한 점 살 나눈 바 없거늘 피보다 진한 정이
가진 게 나 없어서 내민 손 민망한데
탓하지 않는 미소 잡은 손이 뜨거웠지
柳봉사 청淸일 만났군
어디 보자
내 새끼
- 「네 손 잡고 부를 노래·1」 전문
네 기도 이거냐며 예 있다 주신 인연
남 가진 거 나 없거니 너 있어 십대 재벌
넌, 우리 축복의 통로 남을 만큼 주실 거야
내 받은 복 시샘 아닌 입방아를 예서 제서
살아봐야 안다지만 하날 보면 열을 몰라
통 큰 복 누리고 말구 그 기대 꼭 맞도록
내 자식 외로울까 예 있다 주신 반쪽
하나님께 감사감사 낳아주신 그 분께도
끝 큰숨 몰아쉴 때에 네 손 잡고 부를 노래
- 「네 손 잡고 부를 노래·2」 전문
에미야, 고맙구나 하나에서 열·열까지
우리 삶 깊을수록 눈 밝혀 더 볼수록
하나님 날 사랑하심 너로 하여 앎이라
너른 들 한 점 바람 긴 세월 짧은 만남
스침도 인연이언만 가슴으로 낳은 자식
하나님 내게 주신 복 너로 하여 앎이라
빛이어라, 소금여라, 하늘 떠괼 힘진 기둥
내 손자 너로 하여 내리물림 주시었음
하나님 축복의 통로 너로 하여 앎이라
- 「네 손 잡고 부를 노래·3」 전문
「네 손잡고 부를 노래」는 연작으로 모두 여섯 편을 싣고 있는데 그 중 세 편을 뽑은 것이다. 각 편마다 연시조로서 “아가, 며눌 아가”라는 부제를 달아 며느리에게 주는 사랑이 담긴 메시지이다. ‘며느리’를 다정다감하게 ‘며눌 아가’로 부르고 있다. 속 깊은 정을 구어체 어법으로 친근하고도 사랑스럽게 구사하고 있다. 섬세한 정감으로 순수한 서정의 세계를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체험은 곧 시의 중요한 레시피가 된다. 이 세 작품만 보더라도 역시 시적 진정성과 감성이 자아올린 작품으로 일상적 체험을 시적 서정 세계로 승화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시아버지의 며느리에 대한 도타운 사랑이 진정 아름답기만 하다. 사랑하는 사람의 뇌에서는 행복한 감정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이 퐁퐁 샘솟는다고 했다. 사랑 없이 하는 일은 모두 헛것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사랑은 베풀면 베풀수록 샘물처럼 솟아나기 마련이며 베푼 만큼 자신에게 되돌아오는 게 사랑의 진리다. 편마다 작품 속 분위기와 정서를 통해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 넘쳐나고 있다.
비익조 삶이란다
둘이면서
하나인 삶
한 하늘 올려보며
몸 섞고
마음 섞는
맞잡아
시름 삭이며
도란도란 먼 길 간다
- 「동아줄로 친친 감고」 전문
‘부부 사랑’은 ‘연리지 사랑’이라는 말이 있다. “비익조 삶이란다/ 둘이면서/ 하나인 삶”, ‘비익조’는 ‘암컷과 수컷의 눈과 날개가 하나씩이어서 짝을 짓지 아니하면 날지 못한다는 전설상의 새’로서, 남녀나 부부 사이의 두터운 정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 하늘 올려보며/ 몸 섞고/ 마음 섞는// 맞잡아/시름 삭이며/ 도란도란 먼 길 간다” 그야말로 화목한 부부의 삶을 느낀다. 이 세상에 부부간의 사랑처럼 깊고 아름다운 게 또 어디 있겠는가. 부부는 한 마음 한 뜻으로 희로애락을 함께하며 살아가는 삶의 동반자요 반려자이다. 그대로 부부의 끈끈한 애정이 동아줄로 친친 감은 듯하다. 부부의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며, 늙어가는 게 아니라 익어가는 거라는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말씀도 거두시고
미동도 접으신 채
피다 만 하얀 미소 일다 지는 너울인가
가시 핀 불효의 채찍 울컥울컥 내칩니다
이랑마다 쌓인 눈물 닿은 손이 앗, 뜨거라
제 볼을 만지시던 다순 손길 절 주소서
안개 속 가물거리는
노스탤지어 손사래여
- 「사모곡·3 - 병실에서」 전문
우리는 어머니에 대한 무한한 사모와 감격을 가진다. ‘어머니’란 말만 들어도 눈시울을 적시는 한국인이다. 어머니는 한없는 사랑이요 절절한 그리움이다. 그 시작도 끝도 없는 어머니의 사랑, 온갖 어려움을 참고 견디며 살아오신 어머니의 한 평생은 자식들을 위한 헌신의 세월이다. 연작 “사모곡” 세 편이 다 각기 곡진한 사연을 담고 있는데 그 중 이 「사모곡·3」은 “병실에서”란 부제가 붙은 작품이다. “말씀도 거두시고/ 미동도 접으신 채/ 피다 만 하얀 미소 일다 지는 너울인가/ 가시 핀 불효의 채찍 울컥울컥 내칩니다” 이렇게 첫 수의 이미지는 탈진한 어머니의 모습이다. 노환에 시달리시며 곡기도 끊으시고 말씀도 거두신 채 움직임조차 없으신 어머님을 바라보며 화자는 때늦은 불효의 후회와 함께 감정이 북받쳐 솟아올라 목이 메이는 모습이다. 둘째 수에선 주름마다 쌓인 눈물, 고생하신 삶의 흔적에 충격을 받으며, 부디 원기 회복하시길 간절히 기원한다. 특히 결미에서 “손사래여”라고 탄식하여 호격조사에 의한 표현의 효과를 배가시키고 있다. ‘부모은중경’의 어머님 은혜가 뇌리에 스친다.
잠자는
손자 녀석
볼에 볼을 대어본다
눈에 넣어
보드랍단
그 한 말을 하고싶어
할배는
볼에 놀거니
저 안다며
숨이 깊다
- 「손자가 뭔지·1」 전문
구린내도 고소터라
강울음도 감사터라
애비 닮고 어미 닮고 할애비도 닮았으리
옹알이 그 뜻 몰라도 그래그래 알았네
파고波高를 뛰어넘을 한 더미 파랑波浪 인다
어둠세상 환히 밝힐 한 줄기 새 빛 인다
천하의 우러름이 될
솟구칠 인물 되라
- 「손자가 뭔지·7」 전문
비온 뒤 왕대처럼 우쑥우쑥 자라거라
땅만큼 하늘만큼 꿈도 함께 자라거라
장한 꿈
높이 세워서
하늘 고일 기둥 되라
동서고금 둘도 없는 새날 새빛 되어
세상 모두 흠모하는 우러름의 동량되어
손자야
할애비 소원
다 이뤘다 하여라
- 「손자가 뭔지·10」 전문
“손자가 뭔지”의 시리즈는 모두 14편이나 싣고 있다. 인간적인 향기를 지니고 있으며, 메마른 정신에 윤기를 불어 넣어 주는 작품들이다. 개인적인 체험에서 예술적인 체험으로 재구성하여 내용과 형식의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참으로 시조 형식에 정직하면서도 감정에 맞게 자연스런 표현으로 빛내고 있는 현대시조다. 시조가 상상력을 통한 형상화 작업이라 하더라도 궁극적으로는 인생의 표현이며 시대의 반영이 아닐 수 없다. 거듭 언급하거니와 류 시인의 상당수 작품에서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시조가 언어예술이란 걸 입증이라도 하듯이 일상어가 부담감을 주지 않고 시어화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일상어가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새로운 일상어를 창조하는 류 시인만의 개성을 발견하게 된다. “시의 본질은 언어의 본질로 파악되어야 한다”라고 한 하이데거의 말이 상기된다.
「손자가 뭔지·1」에서는 손자에 대한 할배의 무한 사랑이 느껴지고 있다. 손자를 둔 것만으로도 마냥 행복한 할배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손자의 잠자는 모습조차 사랑스럽기 그지없다. 단잠에 빠져 있는 손자의 모습에 할배의 잔잔한 미소가 번지고 있는 것이다. 다음 「손자가 뭔지·7」은 두 수 연시조다. 첫수에선 손자의 일거수일투족이 다 귀엽고 감사한 마음이며 무조건적인 내리사랑이 나타나 있다. 둘째 수에선 손자에 대한 기대감이 표출되고 있다. 모진 세파를 이겨내고 어둠을 밝히는 한 줄기 새빛이 되어 천하의 우러름을 받는 리더가 되라는 기원이다. 「손자가 뭔지·10」에서는 구어체로 다정다감하게 손자에게 건네는 메시지가 자연스럽고도 산뜻한 음보율을 형성하고 있다. 낭송하기에도 알맞은 작품이라고도 생각된다. 할아버지는 손자에 대한 장래의 기대감으로 미리부터 기뻐하고 있는 것이다. 할아버지의 손자에 대한 사랑과 기대하는 소원이 정비례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당신이 주신 발로 세상 구경 다 하고
당신이 주신 손으로 온갖 부富함 다 얻어 내고
당신이 주신 머리로 매듭 풀며 삽니다
당신께서 가시던 날 노자 한 푼 못 드리고
당신을 그린다며 안부 한 번 못 전하고
당신의 살붙이라니요, 마소馬牛가 웃겠지요
- 「아버지 전 상서」 전문
가족은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구성원이다. 혼인과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것이다. 특히 ‘아버지’는 한 집안 의 가장으로서 살림을 이끌어가고 자녀들을 훈육시켜 바르게 자라도록 인도한다. 가정에서 ‘아버지’의 역할은 그야말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작품은 화자가 아버지께 올리는 글이다. 자식인 화자의 도리로 볼 때 아버지의 은혜에 보답하지 못한 후회스러움을 절절한 사연의 구어체, 경어체 어법으로 풀어내고 있다. 첫수에서는 아버지에 대한 고마운 은혜를 열거하고 있으며, 둘째 수에서는 아무런 보답도 못하고서, 때늦은 불효를 뉘우칠 수밖에 없는 한심한 자식이라고 자책하는 글로서 가슴을 찡하게 한다. 아무리 자식이 훌륭하다 해도 아버지만한 자식이 없다는 말이 진리다.
5.
제4부에는 ‘인생길’에 얽힌 작품들이 골격을 이루고 있다. 세월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은 나그네 길이다. “인생은 나그네 길”이라는 노래도 있다. 넓고 넓은 우주 속에서 잠시 왔다가 가는 길이 인생길이 아니던가. 류준식 시인의 가는 길에는 주로 긍정의 인생관이 내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어떤 물상이든 좋게 보고, 아름답게 보고, 낙관적이고도 생산적인 사고방식을 지니고 있다.
차창 밖
내다보니
다 두고 나만 간다
엊그제가
분명한데
갈 날이 모레란다
눈 감기
연습을 한다
-껄 -껄 -껄
-껄 –껄 –껄
- 「가는 길」 전문
요즈음 흔히 100세 시대라고 하지만 살다가 보면 짧고도 짧은 게 우리의 삶이다. ‘가는 길’은 ‘삶의 길’이요 ‘인생길’이다. 작품 「가는 길」을 살펴보면 화자는 버스나 기차를 타고 어디 나들이라도 가고 있는 모양이다. 도중에 창밖을 내다보니, 풍경은 그대로 두고 자신만 쏜살같이 간다고 하소연한다. 빠르게 흐르는 삶, 태어나고, 자라고, 젊었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 새 떠날 날이 내일 모레라고 탄식한다. 화자는 「가는 길」에서 결국 인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덧없는 세월이요 부질없는 인생이어라. 화자는 껄껄껄 웃으며 눈감기 연습이라도 한단다. 낙천적이면서도 긍정적인 심성이 그대로 묻어난다.
금 가고 나뉘면 버리는 게 세상이치
깨어지고 망가져도 보듬고 함께 간다
애당초
하나였음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물집도 아우르면 새 살이 돋아난다
삶으면 삶을수록 진국이 울어나듯
날 두고
말하지 마라
연단 없는 사랑은
- 「강물」 전문
시제 「강물」 이 함축하고 있는 그 의미가 깊다. ‘함축’은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속에 간직하고 있다는 의미다. “금 가고 나뉘면” 쓸모없다고“ 버리는 게 세상 이치”이지만, 흘러가는 강물은 “깨어지고 망가져도 보듬고 함께 간다”는 첫수의 내용이다. 우리는 대범하게 포용하는 ‘강물’에서 모름지기 진정한 ‘사랑’을 배우게 된다. 시적자아인 ‘강물’은 스스로의 자부심도 대단하다. “날 두고/ 말하지 마라/ 연단 없는 사랑은”이라고 명령법과 도치법의 표현 기교로 변화를 꾀하며 ‘사랑’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좁아도
널널했던
고파도 배불렀던
잊혔던
시간들이
뜬금없이 뛰쳐나와
눈발에
적힌 사연을
늦도록 읽고 있다
- 「눈오는 밤에」 전문
포근하고 고요한 ‘눈오는 밤’의 정서 속에 잊혔던 추억들이 내리는 눈발을 타고 어렴풋한 이미지로 다가오고 있다. 우리에겐 천진무구한 어린 시절, 공연히 하늘만 쳐다봐도 즐거웠고, 그 좁은 집도 넓게만 느껴지던 그때,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천방지축 장난치며 놀았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화자는 눈 내리는 고요한 밤 창밖을 보며 이 생각 저 생각에 잠기며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사연을 떠올리고 있는 것이다. 시(시조)에서는 뜻밖에 뜻이 있고, 말밖에 말이 있다고 했다. 시(시조)의 음률과 내용이 온전히 조화된 현상에서 느낄 수 있는 시의 암시를 이르는 말일 것이다. 이 「눈오는 밤에」는 사유의 바다에서 건져 올린 시혼의 산물이다. 추억을 회상하며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모습이 오버랩 되어 진다.
펼치고 싶은 욕망慾望
감추고 싶은 허점虛點
저무는 뜨락에서
방황하는 절획絶劃 하나
탕진한
시공時空을 모셔
무릎 세워 알현謁見이다
- 「어떤 아픔」 전문
아픔은 철학을 낳는다고 했던가. 진솔한 삶의 궤적을 살피고 있다. 못다 이룬 것들에 대한 고해성사랄까 스스로에게 던지는 고백이다. 화자는 저무는 뜨락에서 “탕진한/ 시공時空을 모셔/ 무릎 세워 알현謁見이다”라고 성찰하고 있는 것이다. 시조를 통한 성찰의 의지가 깃들어 있다. 하고 싶은 욕망과 감추고 싶은 허점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현재에 안주할 수 없다는 데에 시인의 아픔이 있으며 그게 문학의 몫이리라. 고도의 절제와 압축미를 살려 단시조의 단아함을 잘 보여주고 있다. 저무는 뜨락에서 자신의 삶을 더욱 성숙한 성찰의 자세로 그려내고 있다. 특히 종장에 밑줄을 긋고 싶다. 독자가 생각할 수 있는 여백을 남겨 압축의 원리에 의한 상상의 세계를 선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시인의 겸양이 반영되어 있어서 진한 감동을 주고 있다.
성이 난
굶주림은
헛젖 물려 따돌리고
맷돌 진
노예처럼
해종일 비틀비틀
사는 게
죽는 거라며
앞만 보고
걸었다
- 「자화상·1」 전문
‘자화상’이란 ‘스스로 그린 자기의 초상화’다. 류 시인은 ‘자화상’ 연작 두 편을 싣고 있는데 그 중의 「자화상·1」이다. 삶의 무게를 짊어지고 최선을 다해 살아왔던 화자의 인생길로서 겸허한 자기 응시의 미학이랄까 자신에 대한 내적 조명이 환하다. 우리네 삶에는 언제나 해갈이 없다.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집착과 욕망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다는 게 인간이 아니던가. 자신의 삶을 가감 없이 진단하는 진솔함이 묻어난다. 시조 창작은 “자기 성찰의 도구이자 자기 수련의 목표”이기도 하다. ‘자화상’의 작품으로는 미당 서정주 시인의 시 ‘자화상’이 많이 알려져 있는데, 자신이 살아온 삶의 과정을 대담한 언어 구사를 통하여 표현함으로써 생명에 대한 강렬함을 노래한 서 시인의 초기 작품이었다. 이렇게 문학의 메시지는 자기 성찰을 통한 자기 발전의 바탕을 마련해 주는 것이다. 문학은 가장 본질적인 문제가 자신의 감정을 언어를 빌어 표현하고 그것을 통해 독자와 커뮤니케이션하는 데에 있다고 할 것이다.
류 시인의 노을에 물든 ‘동행의 길목에 꽃핀 시심’이 쉼 없이 아름답게 펼쳐지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무사蕪辭를 접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