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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형의 틀 속에서 자유를 누리는 시조의 멋과 맛
시조시인 김덕남
1. 들어가며
태풍 ‘힌남노’가 휩쓸고 간 온천천에서도 시조의 운율을 느낀다. 흐름[流]이 있고, 굽이[曲]가 있고, 마디[節]가 있고 풀림[(解]이 있다고 한 정완영 선생의 ‘유, 곡, 절, 해’의 시조론을 온천천의 물결에서 읽는다.
폭우 직후의 온천천이 궁금했다지만 사실은 물구경이다. 피해 속의 물구경이라니. 그러나 그만한 구경거리도 없다. 예부터 불구경, 싸움구경과 함께 3대 구경거리라 하지 않았는가. 갑자기 쏟아진 비로 하천은 접근 금지라 천변길을 따라 걸었다. 바위에 부딪히는 물살이 솟구치면서 금방이라도 덤빌 것 같다. 내리꽂히다 너울을 일으키며 흘러가는 물결을 보면서 걷노라니 현기증이 일어난다. 쏜살같이 흘러가다 징검다리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또 한바탕 소용돌이를 일으킨다.
출렁출렁 흘러가는 것이 마치 우리의 인생 같기도 하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 시조의 길도 이러해야 하겠거니 다짐한 바 있다. 물의 흐름이 바로 시조의 흐름인 것을.
낙동강에 기대어 시어를 낚으며 강변 서정이 깃든 서민적 삶을 노래하는 서태수 시인, 낙동강 하구에서 생을 영위하며 풍자로 정곡을 찌르는 변현상 시인의 작품을 독자의 관점에서 읽는다. 활달한 시적 상상력으로 새로움에 늘 도전하는 그들의 시조가 자못 궁금하다. 또한 어린이 시조 창작을 적극 지도하며 수행자 같은 말씨와 작품으로 잔잔한 감동을 주는 신진경 시인의 시조가 정형이란 틀 속에서 어떻게 신인다운 자유를 누리는지 더듬어 읽는다.
2. 도전적 창작을 꿈꾸는 멀티플레이어, 서태수
낙동강 연작 제1시조집 『물길 흘러 아리랑』에서 제6시조집 『당신의 강』까지 500여 수를 담아낸, 그야말로 낙동강이 낳고 길러낸 시인이다. 낙동강이 흘러가는 한 그는 낙동강 시인으로 영원히 남을 것이다. 강원도 태백시의 천의봉 아래 황지연못에서 발원해 부산 을숙도를 거쳐 바다로 빠져나가기까지 1,300리 길을 굽이굽이 흐르는 사연이 어찌 짧다고 하겠는가. 낙동강은 그 모든 것을 보고 들으며 안고 흐른다. 영광과 부침, 가까이는 6·25전쟁의 핏물을 씻어주기까지 그 고단함이 눈을 감고도 보는 듯하다.
철새와 물고기가 인간과 더불어 사는 곳, 오늘도 수도꼭지를 틀어 황지연못으로부터 흘러온 사연을 마신다. 정맥이 꿈틀거린다. 그가 시작 노트에서 밝혔듯이 “수많은 지천, 지류에 춘하추동 표정, 몸짓이 변화무쌍”한 낙동강에 올인하고 있는 시인을 보면 한국인의 은근과 끈기가 그의 몸을 관통하여 흐르는 것 같다. 시조뿐만 아니라 수필로, 문학평론으로 멀티 작가로 종횡무진 뛰고 있는 그를 보면 어디로 또 튈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그는 ‘낙동강 시조시인’으로 불리고 싶다니 다행스런 마음이다.
강물은 흐르면서 일 년 내내 시를 쓴다
바람 잘 날 없는 세상
굽이마다 시 아니랴
긴 물길 두루마리에 바람으로 시를 쓴다
낭떠러지 떨어지고 돌부리에 넘어진 길
부서진 뼛조각을 물비늘로 반짝이며
수평의 먼동을 찾아 휘어 내린 강의 생애
온몸 흔들리는 갈대숲 한 아름 묶어
서사는 해서체로, 서정은 행서체로
시절이 하 수상하면 일필휘지 초서체다
비 섞고 눈을 섞고 햇볕도 섞은 시편詩篇
파고波高 높은 기쁨 슬픔
온몸으로 새겼어도
세상은 시를 안 읽고 풍랑風浪이라 여긴다
- 서태수 「강이 쓰는 시詩(낙동강·415)」 전문
시조에서 운율이 형식이라면 서정과 시대성은 내용일 것이다. 군말이나 수사 따위 모두 버리고 고갱이만 남아 넘실넘실 물결치며 흘러가는 한 편의 시조를 읽는다. “강물은 흐르면서 일 년 내내 시를 쓴다”고 시의 문을 연다. “온몸 흔들리는 갈대숲 한 아름 묶어 / 서사는 해서체로, 서정은 행서체로 / 시절이 하 수상하면 일필휘지 초서체다”. 풋내기는 감히 넘볼 수 없는 관조의 품격이다. 이미지도 선명하여 시 중에 그림이 있고 그림 중에 시가 있다고 소동파가 말한 ‘詩中有畵 畵中有詩’가 바로 이런 거란 생각이 든다. 내용은 끊임없이 강과 소통하는 시인의 생애와 오버랩된다. 살아오면서 “낭떠러지 떨어지고 돌부리에 넘어진 길”을 어찌 경험하지 않았겠는가. 가장으로 직장인으로 작가로 살면서 이단아 취급도 받고 변격 시조로 눈총도 받았으리라.
그러나 새로움이 없으면 어찌 문학이라 할 수 있겠는가. 제품을 찍어내는 기술자가 되기 전에 창의적 도전으로 작가가 되고 싶었던 시인의 자화상을 읽는 느낌이다. “비 섞고 눈을 섞고 햇볕도 섞은 시편詩篇”을 온몸으로 새겨도 “세상은 시를 안 읽고 풍랑風浪이라” 여기는 안타까움을 토로한다. 「강이 쓰는 시」란 시를 뛰어넘어 인류 역사성까지도 아우르는 강의 원형을 담고 있을 것 같아서 한 편의 유장한 서사를 읽은 느낌이다.
내리막 굽잇길에 원동쯤 지날 무렵
기찻길 바라보면 부러운 것 하나 있지
금수저 물고 태어난 저 행로는 참 좋겠다
물맛이 낯설다고 침 뱉는 이도 없고
빛깔이 다르다고 돌 던지는 이도 없고
출신이 개천이라는 손가락질 한번 없고
뒹굴 일 자빠질 일, 떨어질 일 바이 없고
맞바람에 멱살 잡혀 제 살 저밀 일도 없고
폭우에 강둑과 싸워 옆구리 터질 일도 없고
행여나 탈선할까 평행으로 놓인 철로
쇠붙이로 태어나서 탄탄대로 달려온 길
한 생애 상처 하나 없는 저 기차가 참 부럽다
- 서태수 「물수저의 독백(낙동강·569)」 전문
며칠 전 『월간 문학』 9월호에서 시인의 「신조어 2제」 1. 물꽃부리(낙동강·560) 2. 물꽃판(낙동강·561)을 읽은 적이 있다. ‘물수저’ ‘물팔매’까지 신조어를 끊임없이 생산하는 도전정신을 본다. 시인은 “장미꽃을 물병에 꽂으면 꽃꽂이가 되고 시멘트 바닥에 처박으면 시가 된다”고 그의 시론에서 낯설게 하기의 예로 든다. 도발에 가까운 이 시론이 그가 꿈꾸는 예술정신일 것이다. 통념을 벗어난 감각과 재치가 그의 시조를 관통하고 있다. 어느 날 ‘물수저’로 이입한 시인이 기찻길을 바라보면서 “금수저 물고 태어난 저 행로는 참 좋겠다”고 토로한다. 우리가 흔히 저지르는 근원에 대한 몰이해와 차별적 불이익 때문이다. 물수저는 ‘태생’, ‘물맛’, ‘빛깔’에 따라 ‘침’과 ‘돌’ ‘손가락질’을 받기가 일쑤고, “폭우에 강둑과 싸워 옆구리 터질 일”도 걱정해야 한다.
그러나 시인이여! 부러워 마시라. 철로는 휘어질 수 있고 끊길 수도 있다. 물은 길이 끊기면 쉬었다 가고 지진이 일어나도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지 않던가. 그것이 바로 물의 길이요 시인의 길인 것을. 시상을 끌고 가는 주제가 일직선으로 나아가니 메시지가 단순 명쾌하다. 자유정신과 함께 정형정신에도 충실한 시를 읽으니 그의 변격은 외연 확장일 뿐, 시조미학의 본질에 충실한 시인인 것 같다.
3. 풍자로 정곡을 찌르는 도발적인 시, 변현상
요즘 왠지 변현상 시인의 작품이 뜸하다는 생각이었는데, 부산시조 소시집에서 만나니 반가웠다. 시조집 『차가운 기도』, 『툭』, 현대시조 100인선 『어머나, 어머나』에서 만난 그의 시조는 반골의 기질이 꿈틀거리며 도발적이었다. 언어를 부리는 솜씨가 황소를 길들이듯 고삐를 죄었다 풀었다 하는 맛이 팽팽하여 시조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다만 요즘 쓰지 않은 탯말은 사전을 찾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아름다운 우리말이 자꾸 사라지는 안타까움에 의도된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자 고개를 끄덕인 적이 있다.
특유의 재치와 번뜩임으로 반전을 꾀하는 종장이 가히 일품이었다. 「벌교」, 「사랑 이미지」, 「흐린 후 맑음」, 「해동」을 읽고 단수를 읽는 기쁨이 이런 것이로구나 하고 무릎을 쳤던 기억이 난다. 특히 「쪽빛 하늘 바라보다」에서 극적인 맛을 안겨주어 빙그레 웃기도 했다. 다만, 행갈이가 자유분방하여 정형성의 정신을 훼손하는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다가도 아슬하게 틀 속의 자유를 맘껏 누리고 있음을 보았다.
세워라! 멈추어라!
삭발, 단식 판을 폈네!
강물 향해 호통치는 청맹과니 큰 나팔들
역류를 꿈꿔 보지만 바다 향해 흘러갈 뿐
보이지는 않지만 얼마나 정직한지
바람을 등지고 선
된비알 기슭에서
지나는 걸음 하나를 꽉 묶고 해부를 한다
지구는 또 얼마나 뒤돌아보고 싶을까?
빠르다
참, 지겹다
몽니를 부려 봐도
꼬로록 뱃속의 바늘 거짓 없이 돌고 있다
- 변현상 「시간 해부解剖」 전문
해부학 의사처럼 시간을 해부하고 있다. 해부란 죽은 자의 몸을 절개하여 그 내부를 들여다보고 조사하는 일이다. 그렇다면 시간이 죽었다는 뜻이 된다. 화자는 죽었다고 생각하는 4대강을 해부하고 있다. 환경론자들의 절대적인 반대에도 4대강 사업은 착착 진행되었다. 굴착기가 들어오고 덤프트럭이 굴러갈 때 그 앞에서 “세워라! 멈추어라!”하고 깃발을 들이대고 종주먹을 내질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멈추지 않으니 삭발과 단식으로 대항을 했겠지. 그것은 역류를 꿈꾸는 몸짓에 불과했다. 4대강 사업은 끝났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자 수문을 개방하느니 보를 허무느니 하는 갑론을박으로 보낸 시간을 하나하나 해부하고 있다.
훼손된 지구가 자신을 뒤돌아보는 마음은 어떨까? 물 부족을 해소하고 물의 적극적인 이용을 위해 지구가 좀 아프더라도 개발을 참아줘야 하나? 좀 더디더라도 인간과 자연이 더불어 잘 살 수 있게 지구의 훼손을 막아야 하나? 그것은 가치관에 따라 달라질 수 있지만, 시절가조라는 시조를 쓰는 시인으로서 외면할 수만은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는 말했다. 시인은 ‘세상의 부패를 막는 방부제여야 한다’고. 그래도 시간은 흘러 개발된 4대강 자체가 또 다른 자연이 되어가고 있다.
아들딸 다 떠난 집 노부부 다투셨다
언쟁하신 그 강도가 꽤 세게 높았는지
오늘은 할머니까지 슬그머니 나가셨다
다투셔도 시간 가면 엉킨 타래 잘 풀려서
가까운 재래시장 두 분 외출했었다가
할머닌 팥죽을 사고 함께 귀가하셨는데
사는 게 순환인데 탈선하면 어쩌냐고
오늘은 할아버지 혼자 먼저 귀가시고
할머닌 빈손이셨다
다 비운 듯
가벼운 듯
- 변현상 「순환선循環線」 전문
어깨에 힘을 빼고 신작인 「순환선」을 읽는다. 어느 집이나 노년이 되면 아들딸이 떠나가고 부부만 사는 게 일반적이다. 이제 아들딸 눈치 안 보고 제대로 좀 살아보려나 했더니 부부간에도 시집살이한다는 말이 나온다. ‘삼식이’ ‘오식이’가 되기 전에 눈치껏 서로에 대한 배려를 지금이라도 연습하며 살아야겠다. 둘이서 다투다 할아버지가 집을 나가더니 할머니까지 나가버렸다. 텅 빈 집에는 적막만이 감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엉킨 타래도 풀려서 할머니는 재래시장에서 팥죽을 사서 함께 귀가한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다 들었으니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은 깊숙하게 남아있다. 오늘은 다투어도 “사는 게 순환인데 탈선하면 어쩌냐고”라며 할아버지 먼저 귀가한다. 아마 할아버지 손에는 팥죽이든 뭐든 먹을거리가 들려있지 않을까. 할머니는 다 비운 듯 가벼이 빈손으로 귀가하고. 이제 달관한 듯 눈빛만 봐도 서로가 통하는 따뜻한 시다.
삶 자체가 순환이 아니던가. 등단 15년째의 관록이 느껴진다. 앞으로 자주 신작을 읽었으면 좋겠다. 재치 있고 감칠맛 나는 시를.
4. 추구하는 진솔한 삶의 시정신, 신진경
음성만 들어도 겸손함이 느끼지는 시인이다. 부드럽고 단아한 자세에서 깔끔하고 편안함을 느낀다. 곗돈으로 술사면서 자기 돈처럼 생색내는 ‘계주생면契酒生面’이 판치는 세상을 나무라듯 시인은 맑게 살고자 한다. 그래서 성경과 불경을 읽고 신부님, 스님 등과 면담한다고 시작 노트에서 밝히고 있다. 이렇듯 자신의 내면을 담금질하고 비우려 애를 쓴다.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하나의 수행일 터이다.
순정한 마음으로 어린 학생들에게 시조를 지도하다 본인이 직접 시조를 쓰게 되었으나 아직 길이 멀다고 시인은 말을 한다. 가창성이 사라진 현대시조를 접하는 신인의 자세가 어떠한지 내면에서 파동치는 시정신을 짚어본다. 시정신은 살아온 과정과도 무관하지 않다. 추구하고 지향하는 바가 문맥에서 저절로 얼비치기 때문이다.
납죽한 꼬락서니
부끄러운 줄도 몰라
낯짝인지 볼기짝인지
발라당 까 놓고서
일단은 한 번 잡숴 봐
빙긋하고 웃는다
삭히면 삭힐수록
톡 쏘는 살점처럼
묵혀둔 내 안의 말
시어로 발라내어
찡 하고 코를 찌르는
그런 시를 쓰고 싶다
- 신진경 「홍어의 시」 전문
잘 삭힌 홍어회는 톡 쏘는 맛이 일품이다. 홍어 하면 흑산도와 목포다. 홍어는 낚시에 걸리면서 출혈이 시작된다. 출혈과 함께 노폐물이 모두 빠져나가 살과 내장이 깨끗하여 삭힘이 잘 된다고 한다. 묵은김치와 돼지수육을 곁들이는 삼합이라야 홍어의 제맛을 즐길 수 있다. 막걸리 한 잔 곁들이면 세상이 더욱 즐겁다. 맘이 통하는 시인과 함께 멋진 시를 낭송한다면 금상첨화다. 아마, 저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지지 않을까. 어깨가 들썩거리는 것은 부록으로 따라오고.
시인은 이러한 삭힘의 시를 쓰고 싶어 한다. “삭히면 삭힐수록 / 톡 쏘는 살점처럼 // 묵혀둔 내 안의 말 / 시어로 발라내어 // 찡 하고 코를 찌르는 / 그런 시를 쓰고 싶다”고 간절히 원한다. 지성이면 감천이라 하지 않던가. 시인의 꿈이 이루어질 날이 머지않기를 바란다.
봉긋한 꽃술 앉혀 묘하게 빚은 화잔
부어서 채우려니 비우고 버리라네
칠부七部는 절제의 경계
깊은 뜻을 품은 잔
채워야 제맛이고 넘쳐야 흥이 나지
저 잔 아래 잠긴 술은 숨겨둔 욕심인가
계영배 그 가르침이
사무쳐서 버겁다
- 신진경 「계영배戒盈杯」 전문
계영배는 술이 일정 한도에 차오르면 새어나가도록 만든 잔이다. 가득 참을 경계하기 위해 제작되었다. 사람도 가득 차면 교만해지기 마련이다. 이에 선비들은 자신의 교만을 경계하기 위해 계영배를 곁에 두고 자신을 다스리지 않았을까. 최인호가 쓴 소설 「상도」가 드라마로 방영되면서 주인공 임상옥이 책상 위에 계영배를 두고 경계로 삼는다는 장면이 나온다. 조선시대 최고의 거부이자 무역상으로 당시 모든 상인으로부터 존경과 흠모를 한 몸에 받았던 순조 때의 거상 임상옥이 가득 차는 것을 항상 경계했기에 거상이 될 수 있었음을 보았다. “봉긋한 꽃술 앉혀 묘하게 빚은 화잔 / 부어서 채우려니 비우고 버리라네”에서 보듯 술잔의 묘사와 자신의 심상을 진술하고 있다.
시도 이와 같다. 덜어낼 것은 다 덜어내고 비울 것도 다 비우고 간결과 여백의 미를 살려 시의 고갱이로 말해야 한다. 계영배를 통한 시인의 시조정신을 엿볼 수 있다. 삶의 지향이 참으로 진솔하고도 검박하다. 그의 시조도 그렇다.
5. 나가며
부산시조 문단의 원로와 중견, 신인의 시조 각 5편을 세밀히 읽고 대표작과 신작 1편씩을 언급했다. 시인의 영감으로 무에서 유를, 유에서 또 다른 유를 생성해 내는 창작 정신을 보았다.
최소의 이야기 단위를 가지고 나무, 숲, 산을 보는 서태수 시인의 낙동강 물길이 유장하다. 순리로 흐르다 윤슬로 반짝이다, 때로는 역리로 거슬러 오르는 역동의 힘을 보았다. 비바람에 부대끼는 파란만장한 낙동강 물길을 인생의 희로애락에 대입하는 운율미가 돋보인다.
하고 싶은 말은 하고야 마는, 시업과 사업을 병행하는 변현상 시인의 개성은 시에서도 유감없이 드러난다. 그게 바로 정형의 틀 안에서 자유를 누리는 배포이기도 하다. 사방에 적이 포진해도 아랑곳 않고 뚫고 나가는 뚝심의 시라고나 할까. 활달한 시적 상상력으로 대반전의 극화를 노린다. 이 시대의 어둠을 까발려 청정한 밝음으로 만들고자 하는 그의 깊은 마음이 느껴진다. 따라서 시 읽기의 재미는 저절로 따라온다.
스스로를 정화하기 위해 시를 쓰는 게 아닌가 할 정도로 맑고 깨끗함을 지향하는 신진경 시인의 시조를 읽었다. 시인의 많은 작품을 접한 적이 없이 몇 편만으로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절대자나 초월자에 대한 동경을 느낄 수 있었다. 초연한 자세로 세상을 바라보는 듯한 시정신에서 고요하고 아름다움을 보았다.
세 시인 모두 정형의 틀 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시정의 멋과 맛을 음미하는 동안 한량없이 즐거웠다.
약력
2011년 국제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조집 『젖꽃판』 『변산바람꽃』 『거울 속 남자』 현대시조100인선 『봄 탓이로다』. 올해의시조집상, 이호우·이영도시조문학상 신인상, 부산시조 작품상, 오늘의시조시인상 수상 등
- 《부산시조》 2022. 하반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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