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처음 올랐던 산은 치악산이다. 강원도 원주에 위히차고 있는 치악산은 1288m의 비로봉이 위용을 자랑한다. 치악산은 오르기 쉽지 않은 산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졸업기념으로 동네 친구들과 산을 가기로 약속했다. 그때까지 나는 산을 가본적이 없었다. 등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산이 얼마나 위험하고, 산을 오르는것이 얼마나 힘이 들고, 체력을 요하는지 알질 못했다. 12월 초 우리는 1박2일 동안 치악산에 가기로 했다. 그 당시 등산 장비도 하나도 없었다. 옷은 평상시 입던 잠바와 청바리였고, 신발은 등산화가 아닌 운동화였다. 우리는 1박을 비로봉 정상에서 텐트를 치고 보내려했다. 정말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다. 그때는 어렸고 무슨일이든 다 해낼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나마 한 친구가 등산이 취미여서 텐트, 배낭, 코펠, 버너 등을 준비하였고 필요한 것이 있으면 형들에게 빌려 그럭저럭 준비했다. 나는 원주를, 아니 지방 도시를 처음 가보았다. 모든것이 처음이었다. 치악산은 말그대로 치가떨리고 악이 바치는 산이었다. 산이름에 "악"이 들어간 산들은 험하고 등산하기가 어렵다. 관악산, 운악산, 설악산 등 가보면 암반이 많고 철로된 사다리가 설치되어 있는 곳이 많이 있다. 우리는 사다리병창이라는 곳으로 들머리를 잡고 비로봉에서 1박을 한뒤 구룡으로 하산하는 완주코스를 잡았다. "사다리병창" 지금은 계단도 많이 설치되있고 등산로도 정리되어 있는것 같다. 그러나 내가 갔던 1980년에는 말그대로 사다리, 쇠줄 밖엔 없었다. 사다리 주변은 깍아지른 절벽이었다. 한 10시쯤 도착해서 산을 올랐다. 겨울산이어서 눈이 쌓여있었다. 우리는 들뜬 마음에 "산은 겨울산이 제맛이야, 야 서울에선 눈을 볼 수 없는데 여기와서 보네"하며 씩씩하게 걸음을옮겼다. 그리고 사다리병창을 마주했을 때 뭔가 잘못되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라가는 경사도가 30도 정도, 아니 경사가 심한곳은 60,70도는 되어 보였다. 까마득한 절벽에 사다리만 두개 걸려있고 바닥은 얼어붙고 눈이 쌓여 있었다. 사다리를 붙잡고 낑낑거리며 몇시간을 올라도 정상은 보이지 않았다. 경치는 너무너무 아름다웠다. 눈에 쌓인 산맥들과 바위들은 서로의 위용을 자랑하며 꿋꿋이 뻣어 있었다. 어째든 비로봉 정산에 올랐다. 비로봉에 올랐을 떼 시간이 약 3시 30분 정도 였다. 정상에선 바람이 엄청 세게 불었다. 날도 무척 흐려 2,3미터 앞도 잘 보이지 않았다. 정상에 오른 다른 사람들은 보이지 않았다. 눈과 얼음이 썩여있는 바람이 온 몸을 휘감았다. 얼굴은 날까로운 칼로 조사대는듯 했다. 눈을 뜰 수 없었다. 이 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밤을 보낸다는 것이 엄두가 나질 않았다. 얼어죽을것 같았다. 너무 배가 고파 밥을 해먹을까 생각했지만 도저히 불을 피울수가 없었다. 우리는 가지고간 라면을 부셔먹고 왔던길로 바로 하산하기로 결정했다. 올라가는 길도 험하고 힘들었지만 눈이 쌓여있고 빙판으로 변한 사다리병창을 다시 내려간다는것은 너무 위험했다. 그래도 다른 방법은 없었다. 이 길을 내려가지 않으면 산에서 얼어죽는길 밖에 없었다. 빙판에 쓰러지고 엎어지며 하산했다. 넘어져서 구르다 사다리를 잡지 못하면 바로 절벽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엉덩이를 빙판에 대고 미끄럼을 타듯 내려오다 불쑥 돋아난 나무 뿌리나, 작은 바위에 꼬리뻬가 눌려 항문이 찢어지는 줄 알았다. 너무 아팠지만, 추위와 공포가 아픔을 상쇄했다. 어느정도 평지에 이르니 사위는 깜깜하고 분간을 할 수 없었다. 산을 잘 타는 친구는 숙박 할 곳을 알아본다고 먼저 내려가 처음 산에 가보는 4명이 서로를 격려하며 콧물과 눈물이 범범이 되어 평지로 내려올 수 있었다. 민박집이 보이고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전등불이 빛추자 우리는 누구라도 할 것 없이 한숨을 쉬었다. 먼저 내려온 친구가 방을 빌려 밥을하고 김치찌개를 끓여 놓았다. 우리는 사선을 넘어온 용사들처럼 등산을 하면서 겪었던 일을 너도나도 풀어내었다. 김치찌개를 안주로 나폴레옹 코냑과 소주를 들이 부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무모했고 위험을 몰랐다. 그러나 그때는 그 어려운 겨울 치악산을 올라갔다 오니 무서운것이 없었다. 나는 다른 사람을 만날때 마다 치악산에 올라본적이 있는지를 물었다. 너무너무 힘들었지만 풍경이 압도적으로 아름다웠다. 기회가 된다면 치악산을 다시 한번 오르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까지 가보지 못했다. 일단은 겁이 났다. 그래도 더 늙기전에 한번은 꼭 오르고 싶다. 내가 처음 가본 산이며, 무모한 젊음을 되새겨 볼 수 있는 산이기 때문이다. 그 때 치악산을 같이 올랐던 친구들 중에 지금은 연락을 하지 못하고 있는친구가 있다. 한 세월을 같이 산에 가고 웃고울고 호흡했던 친구다. 산은 항상 그자리에 있건만 사람들은 떠나고 나는 혼자 산을 오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