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8일
‘개콘 야구’
2019년 롯데 자이언츠를 떠올리면 웃음만 나는 사람들이 많다. 이 시기 원조(?)격인 KBS <개그콘서트>가 좀처럼 슬럼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오히려 ‘개콘 야구’라는 말은 롯데에 실례가 될 수 있는 수식어라고 할 수 있다. 혹자는 ‘2019년 롯데의 플레이를 보면 왜 개콘이 이듬해 폐지됐는지 알 것 같다’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대체 어떤 야구를 했길래 전국에서 야구 잘 한다는 선수만 모아둔 프로야구 구단이 코미디 프로그램과 비교된 것일까?
2019년 롯데는 ‘100-100 클럽’에 가입했다. 보통 야구계에서 100-100 클럽이라 함은 한 타자가 단일 시즌 100타점과 100득점을 동시에 달성한 것을 뜻한다. 롯데는 창단 후 1999년 마해영(119타점-111득점)과 2015년 짐 아두치(106타점-105득점) 두 선수만이 달성한 기록이므로 2019년 이야기는 아니다. 롯데가 2019년 가입한 100-100 클럽은 다름아닌 100실책-100폭투이다. 롯데는 2019시즌 114개의 실책과 103개의 폭투를 기록했다.
100개가 넘는 실책이야 조금 못하는 팀이라면 충분히 기록할 수 있는 수치다. 당장 한 해 전인 2018년만 해도 시즌 막판까지 5강 싸움을 펼쳤지만 실책 수는 117개로 오히려 더 많았다. 2016년에는 한 시즌 무려 세 팀이라 130개 이상의 실책을 저질렀다. 이쯤 되면 114실책은 오히려 평범한(?) 축에 속하는 듯하다. 그러나 103폭투는 다르다. 당시까지 KBO 리그 38년의 역사에서 100개 이상의 폭투를 기록한 팀은 아무도 없었다. 눈을 세계로 돌리고 보자. 라이브볼 시대가 시작된 1920년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 단일시즌 100개 이상의 폭투를 저지른 팀이 있는가? 없다. 롯데는 전 세계 어느 팀도 이뤄내지 못한 전인미답의 경지에 도달했다.
▲ 대전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9회말 2사 1,3루에서 롯데 안중열이 구승민의 공을 놓치고 있다. / 이대선 기자 sunday@osen.co.kr
한 이닝에 폭투 하나만 나와도 팬들은 뒷목을 잡는다. 한 이닝에 실책이 하나만 나와도 팬들은 나쁜 말을 쏟아낸다. 그런데 한 이닝에 아웃카운트 3개를 잡기도 전에 폭투 2개와 실책 1개가 쏟아져 나온다면? 그야말로 고혈압 종합선물세트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대체 그 팀은 얼마나 못 해야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 걸까.
5월 들어 두 차례 7연패를 기록한 끝에 10위로 추락했던 롯데는 6월 들어서도 (무승부가 중간에 낀) 7연패를 추가하며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다. 특히 11일부터 13일까지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LG 트윈스와의 3연전에서는 첫날 무승부를 기록하더니 이튿날은 역대 최초 끝내기 낫아웃 폭투로 경기를 내줬다. 시리즈 마지막 날에는 1루수 앞 강습 타구에 투수가 베이스 커버를 들어오지 않으면서 어이없이 끝내기를 허용하는 장면도 연출했다.
나락으로 향하는 듯했던 롯데는 다음 시리즈인 KIA 타이거즈와의 3연전을 2승(우천취소 포함)으로 마감하더니 18일부터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3연전에서도 먼저 2승을 따냈다. 4연승을 달린 롯데는 스윕승을 챙기기 위해 시리즈 마지막 날인 20일 경기에 임했다. 마침 이날 경기는 SK 와이번스에서 이적한 후 두 번째 등판을 맞이한 외국인 투수 브록 다익손의 등판일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기대를 걸어볼 만했다.
경기가 시작됐다. 다익손, 그리고 한화의 선발투수였던 장민재는 3회까지 무실점으로 호투했다. 그러나 롯데는 두 차례 실수를 저지르면서 0의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4회 말 2사 1, 3루에서 한화 1루 주자 장진혁은 2루 도루를 시도했다. 당연히 3루 주자의 홈인을 의식해야 했지만 2루수 김동한은 3루 주자를 포기하고 1루 주자만 바라봤다. 결국 3루에 있던 최재훈이 홈을 밟으며 한화는 먼저 한 점을 얻었다. 5회 말에도 1사 1루에서 제라드 호잉의 3루타가 나왔고, 3루 송구가 옆으로 흐르면서 호잉 본인도 홈을 밟는 어처구니없는 플레이가 나왔다.
그러나 이 정도는 이후에 나올 장면에 비하면 양반이었다.
▲ 홋데 투수 다익손 / 뉴시스
롯데는 다익손의 패전을 지워주기 위해 노력했다. 6회 들어 본격적으로 출루에 나선 롯데는 전준우의 내야안타로 첫 점수를 냈고, 이어 제이콥 윌슨과 대타 오윤석이 만루 찬스에서 연속 볼넷을 얻어내며 롯데는 곧바로 동점을 만들었다. 7회에도 손아섭의 적시타로 한 점을 달아났고, 상대 실책과 윌슨의 적시타가 연달아 나오며 2이닝 만에 6대 3 더블 스코어를 작성했다. 롯데는 9회 초 무사 1, 3루에서 윌슨이 병살타를 기록했지만 3루 주자를 불러들이며 확인 사살에 성공했다. 아니, 확인사살에 성공했다고 믿고 있었다. 독수리의 눈이 다시 반짝이는 것을 보기 전까지는.
9회 말, 4점 차로 앞선 롯데의 마운드에는 8회부터 마운드에 올라온 손승락이 있었다. 앞선 2시즌의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못하던 손승락은 양상문 감독의 지시에 따라 마무리 투수 보직을 내려놓은 상황이었다. 그렇지만 세이브 상황이었기 때문에 손승락은 9회에도 등판했다. 이미 8회에 두 타자를 상대한 여파였을까? 손승락은 선두타자 지성준(개명 후 지시완)과 다음 타자 장진혁에게 연속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 2루 위기를 자초했다.
그러자 양상문 감독은 손승락을 대신해 사실상 마무리 투수로 낙점한 구승민으로 투수를 교체했다. 하지만 투고타저 시즌에서 6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 중이던 구승민은 불을 끄기는커녕 아예 옥탄가 높은 고급휘발유를 부어버렸다. 첫 타자 변우혁에게 볼넷을 내주며 무사 만루를 만든 구승민은 노시환의 희생플라이로 손승락의 주자 한 명을 불러들였다. 이어 다음 타자 정은원은 1루 라인 쪽으로 향하는 느린 땅볼을 쳤고, 구승민은 재빨리 뛰어와 1루로 송구했다. 그러나 1루수 미트로 들어갔어야 했던 공은 엉뚱하게 정은원의 뒤통수를 때리면서 옆으로 흘렀고, 3루 주자가 홈을 밟았다.
어느덧 경기는 두 점 차가 됐다. 구승민은 2번 강경학을 3구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경기 종료까지 아웃카운트 한 개만을 남겨두게 됐다. 하지만 다음 타자 호잉 타석에서 초구부터 바운드 되는 공을 던졌다. 포수 안중열이 이를 제대로 막아내지 못하며 또 점수를 허용했다. 우여곡절 끝에 볼카운트 2-2를 만든 구승민은 호잉에게 헛스윙 삼진을 유도했다. 하지만 야구에는 ‘스트라이크 낫아웃’이라는 규칙이 있고, 구승민은 이를 제대로 보여줬다. 안중열이 또 한 번 포구 실수를 저지르면서 호잉은 ‘죽었지만 죽은 게 아닌’ 상황이 됐다. 다시 상황은 2사 1, 3루가 됐다.
결국 롯데는 또 한 번 투수교체를 단행, 박진형을 마운드에 올렸다. 타석에는 앞서 4타수 1안타를 기록했던 김태균이 들어섰다. 1루 주자 호잉이 2루를 훔치며 주자는 2, 3루가 됐다. 볼카운트가 3볼 1스트라이크가 되자 더그아웃에 있던 양상문 감독은 손가락 네 개를 펼쳐 보였다. ‘자동 고의4구’라는 뜻이었다. 주자는 만루가 됐고, 이제 박진형은 이성열을 상대하게 됐다.
/ 사진=중계화면 캡처
그리고 롯데는 멸망했다.
박진형은 이성열에게 초구를 스트라이크로 잡기 위해 패스트볼을 던졌다. 그러나 이 공은 다소 실투성으로 들어왔고, 힘 하나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이성열이 이를 놓칠 리가 없었다. 타구는 좌익수 전준우의 머리 위로 날아갔고, 이내 왼쪽 펜스마저도 넘겨버렸다. 역전 끝내기 만루홈런. 9회 말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예상할 수 없었던 엔딩이었다. 한화는 10대 7 역전승을 거뒀고, 롯데는 7대 10 충격의 역전패를 떠안아야 했다.
▲ 2019년 6월 20일 롯데-한화전 박스스코어(사진=KBO 연감)
이날 경기는 처참했던 롯데의 2019시즌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던 경기였다. 그나마 선발진은 잘 버텨줬지만 승리와는 거리가 멀었고, 야수진은 실책을 남발했다. 결정적인 상황에서 폭투가 나오며 내주지 않아도 될 베이스 하나를 허용했고, 결국 뒷심 부족에 시달리며 경기를 너무나 손쉽게 내주는 그런 상황을 단 한 경기에 요약했다. 양상문 감독의 자동 고의4구 사인은 ‘4점 줘’라는 조롱 섞인 밈(meme)이 돼 롯데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겼다.
결국 롯데는 반등 없이 추락만을 거듭하며 시즌을 마감했다. 14년 만에 롯데 사령탑으로 돌아왔던 양상문 감독은 쏟아지는 비난 여론 속에 전반기가 끝나자마자 사퇴를 선언했고, 선수단 구성의 책임자였던 이윤원 단장도 함께 자리에서 물러났다. 역시 오랜만에 롯데로 돌아온 공필성 감독대행(과 최기문 감독대행대행)은 혼란한 분위기를 전혀 수습하지 못하며 롯데는 맨틀을 뚫고 내핵까지 파고 들어갔다. 결국 롯데는 8연패로 시즌을 마감하며 48승 3무 93패를 기록, 압도적인 최하위를 기록했다. 15년 만에 ‘꼴데’라는 별명값을 제대로 한 것이다.
양철종 / 칼럼니스트
자료출처 : 야구공작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