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1. 02
사람은 태어난다. 그러나 팀은 태어나지 않는다. 팀은 ‘만들어’진다. 세상일을 모두 혼자서 할 수는 없다. 그래서 어떻게 강한, 나아가 훌륭한 팀을 만드는가는 우리 사회의 영원한 숙제다. 프로야구처럼 거의 같은 조건에서 같은 규칙으로 경쟁을 벌이는 리그 스포츠에서는 더욱 그렇다.
‘대체선수 승리 기여도(WAR)’를 중심으로 2019 프로야구 10개 구단의 선수단 구성을 분석했다. 가장 크게 드러난 차이는 신인 드래프트(지명)를 통해 입단한 선수의 비중이었다. 한국시리즈에서 패권을 다툰 두산(24.46)과 키움(24.05)은 다른 팀에 비해 지명을 받고 입단한 선수들의 승리 기여도가 월등히 높았다.
잘 보고 잘 뽑아 잘 키운 뒤 잘 쓴다
▲ 김현수 / 뉴스1
드래프트는 구단이 선수를 영입하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과정이다. 선수단 구성에서도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두산과 키움은 ‘자신들이 잘 파악한 선수를, 잘 뽑아서, 잘 키운 뒤, 잘 쓰고 있는’ 구단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지난해 챔피언 SK는 드래프트로 입단했지만 일정 기간이 지나 FA로 분류된 김광현(6.41), 최정(4.82), 이재원(0.98)을 빼고 드래프트 선수 WAR 15.56을 기록했다. 스카우트-지명-육성의 시스템이 잘 갖춰진 증거다.
눈여겨볼 팀은 NC다. NC는 부상으로 시즌 중반 빠진 나성범(1.86)의 기여도가 크지 않음에도 드래프트 선수 WAR이 17.00으로 3위를 기록했다. 팀이 뽑은 젊은 주요 선수의 성장이 잘 진행되고 있는 팀이라고 할 수 있다. LG는 가을야구 진출 팀 가운데 유일하게 드래프트 출신 선수들의 WAR이 한 자릿수(9.28)에 그쳤다.
▲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올해 하위로 처진 롯데(1.07), 한화(1.98) 등은 드래프트를 통해 입단한 선수의 승리 기여도가 미미하다. 그때그때 외부에서 영입했거나 FA를 거친 선수들이 주축이라는 얘기다. 롯데는 전준우(4.70)만이 눈에 띄는 활약을 했을 뿐, 드래프트 출신으로 분류된 나머지 선수들이 마이너스(-) WAR을 기록해 팀의 주류를 이뤄야 할 선수들의 기여도가 가장 낮은 팀으로 평가됐다. 한화는 비록 1.98로 9위를 기록했지만 정은원(2.48), 장진혁(1.40) 등 세대교체의 주역으로 여겨지는 젊은 선수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외국인 선수는 KBO리그에서 팀 전력의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팀당 3명을 보유할 수 있는 외국인 선수는 10개 구단 대부분 1,2선발 투수와 장타력을 가진 중심타자로 구성한다. 팀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만큼 대부분의 팀 외국인 선수들의 합이 두 자릿수 이상의 WAR을 기록했다. 특히 1·2·3위를 기록한 SK(15.39), 키움(15.38), 두산(15.17)은 나란히 15점대를 기록했다. 페넌트레이스 성적 톱3의 비결이 외국인 선수 농사와 직결되어 있다는 의미다. 산체스(6.23)와 로맥(5.93)을 위주로 SK의 외국인 선수들이 가장 높은 WAR을 기록했고 두산(페르난데스-린드블럼-프랭코프), 키움(샌즈-요키시-브리검) 역시 외국인 선수 운용에 성공했다.
▲ 양의지. / 연합뉴스
이 밖에 돋보인 팀은 로하스(6.06), 쿠에바스(3.61), 알칸타라(3.50)가 고르게 활약한 KT(외국인 선수 WAR 4위)였다. LG는 켈리(3.20), 윌슨(3.11) 두 투수가 고르게 활약했지만 타자를 교체하는 어려움 속에 외국인 선수 공헌도는 6위에 머물렀다. NC는 5명의 외국인 선수가 활약하면서 8.38의 WAR로 10개 구단 가운데 8위에 그쳤고 KIA가 5.02를 기록해 외국인 선수가 가장 부진했던 구단이었다.
드래프트와 외국인 선수 수혈은 기존 선수들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고 전력을 보강할 수 있는 ‘기본적인 선수 영입 방법’이다. 반면 트레이드나 외부 FA 영입은 기존 선수나 보상 선수가 다른 구단으로 옮겨 가는 것을 감수해야 하는 상대적 전략이다. 나보다 강한 팀에서 선수를 영입해 나를 강하게 만들 수 있다면 최선이고, 나보다 약한 팀에게 내가 여유 있는 전력을 어시스트함으로써 나보다 강하거나 경쟁적인 다른 상대를 상대적으로 약하게 만드는 전략 등을 함께 고려할 수 있다.
▲ 박병호. / 연합뉴스
트레이드로 영입한 선수의 WAR이 올 시즌에 가장 높은 구단은 키움(10.94)이었다. 키움은 KBO 최고타자로 자리매김한 박병호(2011년 LG에서 트레이드로 영입)가 타자 최고 WAR(6.86)을 기록했고 2009년 삼성에서 데려온 투수 김상수(1.29)가 불펜에서 맹활약했다. 키움은 외부 FA는 물론 내부 FA도 웬만하면 잡지 않는 선수단 운영을 하고 있다. 그래서 트레이드를 활발하게 하고, 상대 구단의 힘(영입 의지)을 잘 활용한다. 키움과 함께 외부 FA 영입에 소극적인 두산 역시 트레이드 안목에는 일가견이 있다.
그 대표적인 성공사례가 한국시리즈 MVP 오재일(33)이다. 두산은 2012년 당시 넥센 히어로즈로부터 오재일(33)을 영입했다. 비슷한 유형의 타자였던 이성렬(현 한화)과 트레이드했다. 그런데 그 오재일을 얻기 위해 내준 이성렬(WAR 3.01) 역시 원래 두산 선수가 아니었다. 두산은 2008년 당시 입단 2년차였던 김용의(WAR 0.04)를 LG에 주고 이성렬을 데려왔다. 김용의는 두산이 2008년 2차 4라운드에서 지명한 선수였다.
두산은 김용의를 트레이드해 이성렬을 얻고, 이성렬을 트레이드해 오재일을 얻었다. 오재일은 올해 WAR 6.27(타자 전체 4위, 국내 타자 2위)을 기록했다. 올해 WAR로 보면 무려 6.23을 남기는 장사를 한 셈이 된다. 이처럼 두산은 10개 구단 전체 선수를 보는 안목과 팀에 있는 선수들의 나이와 미래, 포지션 중복 등 여러 가지 역학을 치밀하게 읽는 안목에서 다른 구단에 비해 내공이 앞선다.
땜질 영입 의존한 한화·롯데 하위권
▲ 김광현. / 연합뉴스
FA는 트레이드에 못지않은 치밀한 영입 전략이 필요하다. 이 항목에서는 SK(14.38)와 NC(12.26)가 돋보였다. 두 팀의 다른 점은 SK는 내부 FA(김광현, 최정, 이재원)를 잘 붙들었고, NC는 외부 FA(양의지, 박석민)를 성공적으로 영입했다는 점이다.
작가 대니얼 코일은 2018년 자신의 책 『최고의 팀은 무엇이 다른가』(The secrets of highly successful group)에서 발전의 변화를 끌어내는 비결은 조직 그 자체가 아니라 ‘조직의 문화’라고 강조했다. 야구에서 그 ‘조직의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구단이 지향하는 가치를 가진 선수들을 뽑아 입단시키고(드래프트), 그 선수들을 성장시키며(육성), 그들을 주축으로 주전을 발탁하고 기용하는(운용) 시스템으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2019시즌 10개 구단의 선수단 구성을 분석해 보면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두산은 물론 상위팀들은 그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팀의 분명한 문화를 갖고 있다. 그 문화는 기록(숫자)만으로 해석되지 않는다. 사람의 유기적인 관계가 반영되는 ‘사람의 화학’에 가깝다. 그래서 야구는 그 분야를 케미스트리(chemistry)라고 부른다.
이태일 / 전 중앙일보 야구전문기자
자료출처 : 중앙SUN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