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째, 기생은 창녀야, 예인이야?
대체로 요즘 연구자들이 관심사로 한정짓고 있는 기생은 일패 기생들로 소리와 춤의 기능을 보유한 예기들이다. 보통 매춘을 주업으로 하는 기생들은 삼패라고 하여 일패들과 엄격하게 분리되었으며, 조선시대 관기조차 ‘조’라는 것이 있어서, 아무리 상대방이 높은 관직에 있다고 하더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초야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한다.
다섯째, 기생은 게이샤와 차원이 다르다?
2002년 일본인 학자 가와무라 미나토의 <말하는 꽃, 기생>(소담출판사 펴냄)이 번역, 출판되면서 1927년 이능화의 <조선해어화사> 이후 기생에 대한 본격 연구서가 최초로 등장했다. 말하는 꽃은 ‘해어화’(解語花)의 풀이말로 기생을 뜻하는데, 가와무라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미국인 사회학자의 일본 <게이샤> 연구서를 미국 서점에서 발견했을 때를 술회하며 “본서를 손에 든 한국인 독자도, 역시 그때의 나와 같은 수치심과 가벼운 분노를 느낄지도 모른다”고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책은 한국에서 기생 연구에 불씨를 던진 격이 됐다. 근대 공간에서 기생의 인물사를 복원한 연구서 <꽃을 잡고>(2005년, 경덕출판사 펴냄)의 저자 신현규 교수는 이 책이 “기생에 대한 일본의 이미지, 그러니까 게이샤의 이미지를 근거로 씌어진 책”이라는 데 문제의 시작이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기생이 그런 의미가 아니에요. 기생은 일제강점기에 문화탄압정책으로 뿔뿔이 흩어지고 소멸될 뻔한 우리나라 전통 예악문화를 계승하는 유일한 집단이었죠. 요즘의 국악원, 국악고등학교, 대학의 국악과들이 모두 이 기생들로 인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신현규 교수가 가와무라의 관점에 반박하기 위해 시작한 기생 연구가 이제는 약 5천명에 이르는 근대 기생의 프로필의 데이터를 구축하는 정도까지 진전되었다. 하지만, 그의 연구는 쉽지 않다. 사회 구석 구석에서 기생이 기생이라는 사실을 떳떳이 밝힐 수 없는 묵계 때문에 그들이 보유한 예능과 전통 예악문화의 역사는 엇나간 요철처럼 아직 영 만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그래서, 한국에 기생은 더 이상 없다?
여섯째, 그래서, 한국에 기생은 더 이상 없다?
지난 10월9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는 한국 전통무용계 원로들의 무대인 <전무후무>가 있었다. 태평무, 양산학춤, 교방굿거리춤, 승무의 명인인 평균 연령 81살의 원로들이 부축을 받으며 걸어들어와도 하느작하느작 날다 가는 무대였다. 이중 기방춤 민살풀이의 원로인 장금도씨는 그간 어머니가 기생이라는 것을 부끄러워했던 아들이 공연을 보러오면서 50년 만에 극적인 화해를 했다. 기생이라는 것을 숨기며 살아왔기에 문화재가 될 수도 없었던 장금도씨의 얘기는 기생의 몸과 기방의 규율을 타고 전해져온 많은 전통문화가 수치심 아래 사라져가는 보편적인 형국의 한 예일 뿐이다. <신기생뎐>의 이현수 작가는 기생들의 이야기를 찾아 갖은 자료들을 조사하던 중 마포 근방에 기생할머니가 정부 보조의 생활보호대상자로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으나 그를 추적하는 데는 실패했다. 기생 춤, 기생 소리란, 다만 작부들의 젓가락 사위 정도의 품격이 아니다. 먼 옛날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통예악의 씨실과 날실이 자기보존을 위해 자리를 잡은 교차점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