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흥마을에서
김선유
남평문씨 세거지인 인흥에는 책을 가까이하는 선비의 기품이 묵향처럼 배어나온다. 대소가가 모여 사는 한옥들이 짜임새 있게 조화를 이룬 마을이다. 방금 비질한 듯 정갈한 골목은 그 안에 사람이 기거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하다.
어느 댁 흙담에 어깨를 겯고 있는 능소화를 보며 느릿느릿 걷는다. 골목을 한 굽이 도는데 커다란 사진기를 세워놓고 이리저리 각도를 잡고 있는 사람들을 만난다. 조금이라도 더 환한 빛과 시간을 담기 위해 애써보지만, 그 어느 것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는 것을 그들도 모르지는 않으리라. 부잣집 맏며느리 닮은 품새로 인기를 독차지하는 것은 능소화다. 매일 찾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일상의 불편을 감수하면서도 기꺼이 손님을 맞는 자부심 강한 남평문씨네 사람들을 닮았다.
인흥 세거지는 충선공 문익점의 18세손인 인산재仁山齋 문경호 공이 19세기 중엽 달성군 화원 인흥마을에 초석을 놓은 뒤 대를 이어 전거하고 있는 곳이다. 마을 한쪽 끝 광거당의 당호堂號는 맹자의 ‘거천하지광거居天下之廣居’에서 연유한다. 1910년 인산재의 증손자인 수봉은 사방의 선비들이 회동하고 후손들이 학문을 연마할 수 있도록 옛 재실을 헐어 광거당을 새로 짓고 그 안에 선현들의 서책을 모아 만권당을 열었다. 인흥사지에서 나온 화강암 기단석과 초석으로 지은 광거당이 진리의 바탕인 인仁을 닦고 실천하는 곳이 되기를 수봉은 꿈꾸었을 것이다.
이곳에서 간행된 여러 종류의 소중한 문헌을 포함하여 만권당의 서책들이 인수문고로 옮겨지고 나서 광거당은 제 소임을 다한 듯 담담하다. 추사 김정희와 창강 김택영, 근세 중국의 명사 장건 등이 쓴 편액과 주련이 자부심을 품고 나그네를 바라본다. 마당의 나무들과 뒤뜰 담장 너머 노송이 펼치는 풍경화도 그에 못지않다. 인간의 솜씨에 자연의 조화가 더해져 오래된 집의 멋을 잘 말해주는 듯하다. 광거당에서는 지난봄, 부채 전시회가 열렸다. 박제된 공간이 아닌, 살아 숨 쉬는 건물은 얼마나 향기로운가.
골목을 걸어 나와 마을 초입의 수봉정사 대문을 들어서다 빗장둔테의 두 마리 거북과 눈이 마주친다. 빗장을 걸어 잠그고 마음이 통하는 이들에게만 문을 여는 나를 연민의 눈으로 보는 듯하다.
수봉정사는 1936년 수봉 문영박 선생을 추앙하기 위해 세운 정사로 수백당이라고도 불린다. 우당 유창환이 쓴 수백당 현판은 담백하고 고졸한 아름다움으로 나를 매료시킨다. 학행學行의 일치를 강조한 유학자였던 수봉이 상해임시정부를 남모르게 도왔다는 것은 돌아가신 뒤 임정에서 보내온 의전문서를 뒤늦게 전해 받고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수봉정사의 옆모습은 헌헌장부다. 잘생긴 가죽나무로 들보를 삼고 앞마루와 곁마루가 이어져 있어 수십 명의 사람쯤은 거뜬히 포용할 것처럼 널찍하다. 방과 마루의 경계는 언제라도 안과 밖을 허물 준비가 되어있다. 나라를 잃고 방황하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책을 읽고 더 큰 세상을 만나기 위해 이곳에 모였으리라.
작은 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인수문고가 있고 우측에 중곡서고가 있다. 좌측의 거경서사는 인수문고의 서책을 열람하기 위해 찾는 사람들을 위한 사랑채로 인산재의 5대손인 중곡 선생이 기거하고 있다. 친정엄마와 일가인 선생은 굳이 따지자면 내게 아저씨뻘이 된다. 벽에 걸린 액자도 가볍지 않은 인연으로 이 방에 걸렸을 게다. 글귀를 자상하게 설명해주시니 자꾸만 눈이 간다. 서울에서의 일을 정리하고 귀향한 이후 끓여낸 차가 몇만 잔은 넘었을 거라는 중곡은 조부인 수봉의 발자취를 담담하게 들려주신다.
수봉은 그의 후손들이 귀한 책을 통해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학문과 덕행을 쌓기를 바랐다. 광거당의 만권당 장서와 수백당에 있던 전적류를 합쳐 문중문고로 일원화하여 인수문고를 새로 지었다. 국내에서 보기 드문 서책도 많고 영남 지방의 학문을 연구하는 데 귀한 자료가 많아 문중문고로서는 몇 손가락 안에 꼽힌다. 중국에서 진귀본을 수집할 때는 배편으로 목포를 경유, 인흥까지는 소달구지로 운반했다고 하니 그 정성이 놀라울 따름이다. 2만여 권의 책뿐 아니라 많은 서간과 시문도 소장하고 있어 옛날 교통이 불편하던 시절에도 전국에서 책을 보기 위하여 오는 학자와 문인들이 끊이지 않았다.
‘개인이나 문중, 지역의 문화가 지켜질 때 나라의 문화가 되고 세계의 문화가 될 것이다.’
수봉이 인수문고를 만든 것처럼 중곡은 20세기의 책으로 중곡서고를 만들었다. 여든이 넘은 요즘도 신문의 서평을 빼놓지 않고 읽으며 서점 나들이를 하는 중곡은 역작 『인흥록』을 집필했다. 선비의 우직한 고집과 자존심이 이곳을 한결같이 지켜오고 있는 게 아닐까. 최근 읽은 책 중에서 한 권 추천해달라는 내게 클라우스의 『제4차 산업혁명』을 권하는 선생의 청년 같은 기개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골목길을 걸어 나오며 ‘사람이 책이다’라는 말이 문득 떠올랐다. 내 삶은 어떤 책이 될 것인가.
마을 입구의 풋풋한 연못에 첫 연꽃이 피면 인흥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마음이 쓸쓸한 날, 목화꽃이 필 무렵이면 그걸 핑계로 나는 또다시 인흥마을을 서성이고 있을지 모르겠다.
첫댓글 어제 봄 나들이 기념하여 예전에 썼던 인흥마을 이야기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