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박한 도심을 쾌적한 철마와 함께
法田 이정근
도심 속 높은 빌딩숲 사이로 달리는 하늘열차! 대구 3호선을 타면 속이 뻥 뚫린 듯 무슨 좋은 일이 있을 것만 같다. 시야가 열리고 힐링이 되는 듯 삶의 여유로움을 함께한다. 평소 지하철은 이제 나의 애마처럼 발품을 같이한다. 승용차는 주말에 아내와 드라이브용으로 활용하고, 모임이나 시내 볼일 등 나들이 할 때면 쾌적하고 편리한 도시철도를 이용하곤 한다. 두류공원의 83타워,앞산케이블카 전망대가 한눈에 들어온다. 푸르고 아늑하게 조성된 도심 속 공원들과 빌딩숲, 맑은 신천과 시원한 금호강을 굽어보며 활기차게 달린다.
요즘의 대구도시철도는 고객만족 우수기업답게 쾌적한 공간에 손님들도 꽤나 많아 서서갈 때가 다반사다. 선 사람이나 앉은 사람, 어른이나 학생 모두가 손에 문명의 이기 핸드폰에 빠져 현시대의 문화를 실감하지만, 한편 생각하면 각박한 세상살이에 그들 나름대로 WiFi가 제공되고 쾌적한 환경 속에 심신의 피로를 풀어주는 삶의 여유가 묻어나는 듯하다.
몇 해 전만해도 한여름 가마솥더위가 기승을 부릴 때면 쉴 공간이 없어 은행이나 쇼핑가 등을 찾아 땀을 식히며 부채를 끼고 살았는데, 올해처럼 무더운 찜통더위에는 지하철 역사공간이 대세다. 식수대와 혈압기며 TV모니터, 각종 편의시설 등 철도공사의 배려 속에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다. 나이 드신 어른들이 오순도순 이야기꽃을 피우며, 어린 학생들도 와이파이 잘 터지는 곳을 찾아 핸드폰에 매달려 희희낙락 여유롭게 보이고, 가끔씩 봉사단 문예활동 등으로 고객들 모두가 행복한 삶을 느끼는 듯하다.
앞좌석에 짧은치마를 입은 두 여고생이 약속이나 한 듯 다리를 꼬고는 연신 발을 사시나무 떨 듯 흔들면서 폰에 빠져있다. 퇴직 후 학습지도 봉사를 하는 입장에서 보니 너무 꼴사납고 가관이다. 눈을 마주치기를 기다려 떨지 말라는 손짓과 함께 눈빛으로 훈육지도를 한다. 학생들도 알았는지 계면쩍은 듯 웃으면서 자세를 바로 앉았지만 그 습관 얼마가지 않는다. 그래도 고치려는 자세가 고맙고 착한 학생들이란 생각에 위안이 된다.
정기진료 차 동산의료원에 들려 검진을 마치고 약 처방을 받아 서문시장역에 올랐다. 때마침 서양의 젊은 두 연인이 리포트촬영을 하는 듯 대구 도심 속 하늘 길의 빌딩숲과 명소 등을 이리저리 찍으며 진지하게 카메라에 담고 있었는데 모습이 너무 보기 좋다. 그 자체만으로도 마음이 뿌듯함에 어깨가 으쓱해진다. 미소와 함께 엄지척 사인을 보내니 곧바로 하트사인이 돌아온다.
명덕 환승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탔는데 몇 정거장 지나보니 4개월분 처방받은 약 봉투가 안 보인다. 아마도 승강장에서 의자에 두고 그냥 탔나보다. 이것도 나이 먹는 탓인가 걱정스러움에 현기증이 난다. 혹시나 해서 명덕역을 검색해 직원에게 자초지종 전화를 하고 되돌아가는 중에 폰이 울렸다. 얼른 받아보니 명덕역무원인데 지하철 승강장 벤치에 약봉지를 발견했단다. 약국 봉투에서 연락처를 알아내 전화를 했다면서 약은 사무실에 보관중이란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자칫하면 다시 처방을 받아와야 했는데 말이다. 기쁜 나머지 직원에게 감사의 말과 함께 사례 좀 하려니 극구 사양한다. 약봉투를 찾아 나오는데 더위가 싹 가시고 부자가 된 듯 행복감에 젖는다. 아무리 각박해도 좋은 사람이 더 많고 살맛나는 세상임에 틀림없다.
목요일이면 만사 제쳐놓고 시내 바둑모임에 참석해 선배동료들과 팀을 구성하여 인생의 반려자로 행복한 삶을 누린다. 오전엔 학생지도 봉사를 끝내고 오후에 화원역에 들어서니 건강, 세무, 부동산 등 찾아가는 민원실을 운영하고 있다. 손님도 많고 모두가 활기찬 모습들! 제공되는 음료수와 손부채를 하나 들고 피아노 계단을 내려선다.
명덕역에서 하늘열차로 갈아타고 가는데 너덧 살 아이가 엄마 손을 붙들고 안쓰럽게 서있다. 내가 자리를 양보하자마자 어린이는 의자에 거꾸로 무릎을 꿇어앉고서는 정신없이 차창 밖 풍경에 혼연일체가 되어 신이 났다. 푸르른 하늘과 아파트 숲 사이로 신천을 끼고 펼쳐지는 물놀이장과 분수, 자전거길이 시원스럽게 보인다. 승용차도 꼬리를 물고 가다서다를 반복하며 도심을 느릿느릿 달리고, 마치 옛적 은하철도를 타고 신세계를 달리는 주인공처럼 흐뭇한 마음에 어린이처럼 대리만족을 한다. 힘차게 달려라 하늘열차 파이팅!
대봉교역을 지날 때쯤 출입문 손잡이를 잡고 앉았다 섰다를 반복하는 할머니 모습에 처음은 운동하시나 했는데 예사롭지가 않다. 조금 후 손잡이에서 미끄러져 주저앉았으나 아무도 돌봐주지 않는다. 잘못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듯 내가 좌석에서 벌떡 일어나 부추기며 역무원을 불러달라고 외쳤다. 할머니는 초점을 잃고 축 늘어져 있고, 손님들의 시선은 차갑게 외면하고 있다. 다음 역에서 신고를 받고 도착한 역무원들에게 인계되었지만 정말 아찔했던 순간이다. 모임 끝나고 걱정되어 수성구민운동장역의 직원에게 할머니 소식을 물으니 빨리 연락해줘 고맙다며 간질을 갖고 있는 분이었는데 다행히 치료가 잘되어 귀가하셨단다.
작지만 당연히 할 일을 한 것 같아 자존감마저 든다. 무엇보다도 신속히 처리해준 역무원들이 고맙다. 지병이 있는 환자가 보호자 없이 다니는 것도 문제이나 소극적인 시민의식도 바꿔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본다. 아울러 각박한 생활 속에 편리하고 쾌적한 공중생활을 통해서 모두가 배려하고 더불어 사는 행복한 사회가 되길 기대하면서, 시민의 발인 쾌적한 도시철도의 건승(외곽 순환철도의 신설 등)을 기원하며 파이팅을 외쳐 본다. 힘차게 달려라 도시철도 파이팅!!
첫댓글 행정동우회지13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