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06. 16
지난 5월 17일 조선일보 1면에 실렸던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과 충북 제천시 신동의 ‘싹쓸이’ 벌목 현장 모습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지름 50㎝의 아름드리 잣나무들이 밑동까지 싹둑 잘려나가 버렸고, 울창했던 산은 흉측한 까까머리로 변해버렸다. 고작 40년을 자라 여전히 ‘젊은’ 잣나무에 대해 산림청은 “너무 ‘늙어서’ 탄소 흡수력이 떨어져버렸다”는 가혹한 판정을 내렸다. 마구잡이로 잘라낸 ‘목재’를 급경사면에 주섬주섬 모아놓은 모습은 난민촌 아이들의 앙상한 갈비뼈를 꼭 빼닮았다. 산등성이를 따라 20m 폭으로 흉하게 남겨진 어설픈 ‘친환경’ 벌목의 흔적도 괴기스러웠다. 그 옛날 시뻘건 민둥산의 기억을 더듬어도 찾아보기 어려운 참혹하고 절망적인 광경이었다.
3억그루 베어내고 30억그루 심겠다는 이유
문제는 싹쓸이 벌목 현장만이 아니었다. 산림청이 지난 1월에 발표했다는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도 역시 당혹스러운 것이었다. 234만㏊의 경제림 중 38%에 해당하는 90만㏊의 산에서 앞으로 30년 동안 아름드리 ‘늙은’ 잣나무를 몽땅 베어내겠다는 것이다.
그 자리에 탄소를 잘 흡수하는 ‘어린’ 나무 30억그루를 심으면 무려 3400만t의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산림청의 자연친화적 탄소중립 추진전략이다. 과거 민둥산에 심었던 속성수인 낙엽송(일본잎갈나무)이 잣나무를 대체할 유력한 후보인 모양이다.
산림청이 대통령의 ‘2050 탄소중립 선언’을 외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오히려 정부가 요란하게 밀어붙이는 탄소중립에 숟가락을 얹는 것을 반겼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산림청은 ‘탄소흡수’와 ‘산림바이오매스 이용’으로 요란하게 포장한 전형적인 ‘관료식 추진전략’을 성급하게 마련해 내놓았다. 그 과정에서 ‘30억그루’를 새로 심어 ‘3400만t의 기여’를 하겠다는 것은 반복적으로 강조하면서 늙은 나무 3억그루를 싹쓸이 벌목하겠다는 사실은 슬그머니 감춰놓았다.
환경단체와 언론이 거세게 반발하는 것은 당연하다. 산림청의 추진전략이 수종(樹種)과 생태환경의 다양성을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고, 주민들의 입장도 철저하게 무시해버렸다는 것이다. 지역과 나무에 따라 관리기법이 달라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더욱이 산에는 나무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가 뿌리를 내리는 토양의 생물다양성이 기여하는 것도 많고 탄소흡수 능력도 무시할 수 없다.
이제는 단순히 경제성만 따지는 ‘산림경영’이 아니라 역사적 사연과 토속적 신앙까지 충분히 고려한 ‘생태계 경영’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당연한 것이다.
괜한 우려가 아니었다. 실제로 지난 5년 동안 10만6000㏊의 숲이 사라져버렸다. 조명희 의원이 미국 민간연구소인 세계산림감시(GFW)의 위성 데이터와 통계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그렇다. 정부가 법과 제도를 무시하고 무차별적으로 밀어붙인 무분별한 탈원전·탈석탄 정책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 지난 5년간 태양광 설치를 위해 베어낸 나무가 무려 291만그루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림청은 탄소중립을 위해서 앞으로 산림의 훼손 속도를 17배나 가속시키겠다는 것이다.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결국 싹쓸이 벌목 현장의 흉한 모습이 알려지면서 불똥은 문재인 정부의 ‘산림뉴딜 정책’으로 튀고 말았다. 싹쓸이 벌목은 오래전부터 해왔던 산림경영 기법일 뿐이고, 탄소중립 추진전략은 아직 실행단계에도 이르지 못했다는 산림청의 변명은 옹색한 것이었다.
산림과학원과 산주(山主)들의 억지도 설득력이 없었다. 다행히 환경부가 산림청의 어쭙잖은 탄소중립 추진전략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 지난 5월 13일 강원도 홍천군 두촌면 일대 숲이 벌채로 인해 민둥산이 돼 있다. 40~50년생 잣나무가 자라던 이곳은 산림청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어린 나무를 심기로 하고 벌목을 진행했다. / ⓒphoto 고운호 조선일보 기자
합리적 산림경영과 사회적 소통
산림의 67%를 차지하는 사유림을 소유한 산주들이 경제적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산림경영’은 아무도 반대하지 않는다. 오히려 건강한 숲을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더욱 적극적인 산림경영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이 상식이다. 산림의 실질적인 수익성을 증진할 수 있는 제도적 기반도 필요하고 정책적 지원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흉측한 싹쓸이 벌목이 합리적 산림경영이라는 주장은 아무 설득력이 없는 궤변일 수밖에 없다.
아무도 나무가 늙어죽을 때까지 곱게 키우라고 요구하지 않는다. 나무도 적당히 키운 후에는 수확해서 유용하게 활용해야 한다. 그렇다고 논농사 짓듯이 나무를 한꺼번에 수확하는 싹쓸이 벌목이 수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산림경영 기법이라고 우겨서는 안 된다. 사유림의 소유권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환경과 공익을 무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과연 산주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제대로 행사하고 있는지에 대해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싹쓸이 벌목이 사실은 정부로부터 더 많은 지원금을 받아내기 위한 얄팍한 속임수라는 지적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왕 서방이 받아 챙기는 일을 더 이상 용납해서는 안 된다.
산림청·산림과학원이 개과천선(改過遷善)해야 한다. 싹쓸이 벌목과 탄소중립 전략에 대한 논란에서 보여준 모습은 부끄러운 것이었다. 산림경영과 탄소중립에 대해 일반인이 알고 있는 상식도 무시했고, 국민이 걱정하는 문제에 대한 관심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엄청난 규모의 산림 예산이 진정 국가와 국민 그리고 산주들을 위해 합리적으로 사용되고 있는지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나무를 잘라낸다고 모두 정상적인 ‘목재 수확’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평소에 숲을 가꾸는 일은 외면해놓고, 무작정 한꺼번에 잘라내서 화력발전소의 연료용 펠릿으로 활용하는 것은 정상적인 목재 수확이 아니다. 연료용 펠릿은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미이용 바이오매스’로 엄격하게 한정해야 한다.
이제는 나무를 심는 일도 중요하지만,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목재로 사용할 수 있도록 잘 키우는 일도 역시 중요하다는 사실이 더욱 강조되어야만 한다. 고작 지름 50㎝로 키운 나무는 진정한 의미의 목재로 활용이 불가능하다. 삼척동자도 알고 있는 상식이다. 목재 가공업자들이 국산 목재를 외면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파악해야 한다.
건강한 숲은 말로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 발도 들여놓을 수 없을 정도로 우거진 숲은 생각처럼 건강하지 않을 수도 있다.
형편이 어려웠던 시절에 성급하게 심어놓은 숲을 건강하게 살려내는 방법을 찾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바둑판처럼 줄을 맞춰 나무를 심는 관료주의적 나무 심기가 정말 바람직한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 숲의 과밀화도 해소해야 하고, 숲 생태계의 다양성도 강화해야 한다. 어쨌든 걸어 올라가기도 어려운 급경사면에서 벌어지는 싹쓸이 벌목은 어떤 명분으로도 용납할 수 없다.
이덕환 /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
출처 : 주간조선(http://weekly.chosun.com)
*炭素中立 : 환경 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그에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여 실질 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