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의 변화, 그 변화를 만드는 여성 - 일본 네리마구 여성연락회 및 영국 마더센터 활동을 중심으로 / 마을앤(6)
이번 국제컨퍼런스에 참여한 서초구의 주제는 ‘마을의 변화, 그 변화를 만드는 사람’으로 마을만들기에 있어서의 여성들의 역할에 주목했다. 이에 일본의 네리마구 여성연락회 활동가인 야마자키 마사코(Yamazaki Masako) 씨와 영국 마더센터 & 다세대주택협의회 활동가인 힐데가로드 쇼쓰(Hildegard Schooß) 씨를 모시고, 마을 안에서의 여성들의 성장과 마을공동체의 지속성을 위한 논의를 진행했다.
이들은 일본 네리마구와 독일 마더센터의 사례를 공유하고, 양재2동 반딧불센터, 함께사랑채, 밸류가든 등 서초구 내의 다양한 마을공동체 활동을 함께 둘러보며 마을공동체 안에서의 고민과 해결방안, 그리고 마을활동가들의 성장을 위한 심층 토론을 이어나갔다.
▲ (좌) 양재 반딧불센터 투어중. 반딧불센터는 일종의 일반주택 관리사무소이다.
주택가 밀집지역에 위치한 반딧불센터는 자율방범대의 거점 역할은 물론 무인택배함, 공구은행 등의 다양한 생활편의를 제공한다.
(우) 서초 네이처힐 3단지의 작은 도서관을 둘러본 후 주민분들이 직접 차려준 맛있는 저녁밥상을 대접받았다.
네이처힐 3단지에는 작은 도서관을 중심으로 학부모와 어린이 독서지도,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 등을 진행하고 있다.
주민분과 일본 야마자키 씨는 한국과 일본의 그림책을 교환했다.
지난 11월 16일(월) 오전 서초보건소 지하 1층에서 열린 오픈 강연회에는 특히나 여성 마을활동가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서초구 마을호스트인 남영주 씨의 사회로 진행된 이번 오픈 강연회에서는 국가를 막론하고 여전히 강하고 위대한 여성과 엄마들의 마을만들기 열정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여성들의 연대와 공동체에 의한 마을만들기
: 일본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
▲ 야마자키 마사코 씨는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
다음 세대가 선배들의 활동을 이어 받아 지속적인 시민운동을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이다.
1985년 결혼 후 정착한 도쿄 네리마구에서 지금껏 살고 있다는 야마자키 씨는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를 중심으로 한 여성들의 주민 운동에 대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네리마가 지금과 같은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여성들의 움직임이 있었지만, 행정기관에서 만든 남성 위주의 역사책에는 여성들의 시민운동에 대해 남아있지 않다. 그래서 야마자키 씨는 ‘네리마 여성사를 개척하는 모임’의 일원이 되어 그간의 기록을 남기고 있다고 한다.
네리마구는 도쿄의 23개 구 중에 제일 마지막에 만들어졌다. 과거의 농촌지역으로서 아직도 논과 밭이 있고, 사람들은 네리마라고 하면 아직도 ‘무’를 떠올릴 정도로 농촌의 이미지가 강하다. 하지만 1950년대부터 주택 가격이 폭등하면서 비교적 가격이 싼 네리마구에 인구유입이 늘어났고, 이에 따른 다양한 사회문제가 발생했다. 네리마구는 도심으로 통근하는 사람들의 베드타운으로 변모했지만, 도로, 하수도, 학교, 공공시설 등 도시 설비는 인구의 증가를 따라가지 못했다. 이에 1960년대 후반부터 행정의 개선을 요구하며 스스로 마을을 만들려는 주민운동이 일어났고, 그 중심에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가 있었다.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는 1957년에 만들어졌다. ‘어머니’ 연락회이지만 사실은 여성들의 모임으로써 매월 1회 모여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며 정보를 교류하고, 크고 작은 문제의 해결방안을 논의하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하야시 히카루 씨가 흔쾌히 자신의 집을 모임 장소로 내놓았고, 사람들은 자유롭게 그 공간을 드나들며 마을에 대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었다.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는 임원도, 회칙도, 회비도 없는 자유로운 네트워크 허브로서 지역의 다양한 개인, 단체, 집단들을 이어주는 역할을 맡았다.
▲ 네리마 여성들의 기록을 모은 책자
활동을 기록한 3권의 책자와, 교육/보건·복지·의료/인권·평화·소비자운동 등으로 나눈 총론 3권이 발간되었다.
약 82개 지역의 다양한 주체들과 주민들은 교육, 문화, 복지, 환경, 소비자, 사회교육 등 안건에 따라 네라마 어머니 연락회에 참석하기도 하고, 빠지기도 했다. 매월 1회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도 해결할 수 있는 것들이 많았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끊임없이 행정기관에 개선을 요구했다.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는 생활 전반에 걸친 여러 가지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그 과정에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이 시민으로서 성장하며, 그것이 자연스럽게 마을로 연결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고등학교를 증설하고, 도서관을 만들고, 공해반대운동을 하는 등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의 활동은 50년 전부터 계속 이어지고 있으며, 이 모든 시민운동의 중심에 바로 여성이 있다. 야마자키 씨는 K.S 씨의 사례를 들어 일단 혼자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K.S 씨는 병에 걸린 자신의 아이를 위해 당시 일본에는 수입되지 않던 소아마비 백신 수입을 위한 모금·서명운동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아이를 위한 소박한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활동중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활동 반경이 넓어지게 되었다. 학교 급식을 바꾸고, 도립 고등학교 증설을 요구하고, 공공 종합병원을 만들기 위한 활동들을 진행했다.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노인복지에 대한 관심이 생긴 K.S 씨는 68세에 영양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토시마구의 간병 상담원으로 활동을 이어나갔다. 야마자키 씨는 K.S 씨와 같이 나와 밀접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면서 나의 인생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며, 처음엔 혼자지만 시작하면 연계하게 되는 아름다움이 있다고 말했다.
▲ (좌)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의 네트워크. 가운데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가 네트워크 허브가 되어
교육, 문화, 복지, 환경, 소비자, 사회교육 등다양한 안건에 따라 지역의 주체들이 만나 논의하는 구조이다.
(우)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의 콩뉴스.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의 초기 멤버인 하야시 히카루 씨가 사무국 의원으로 활동하며
다양한 기록을 남겼다. 뉴스레터는 1976년부터 2000년까지 총 246회 발행되었다.
야마자키 씨는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의 활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을을 조성하고 이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네리마구에는 과거 4개이던 고등학교가 이제 아이들의 수가 줄어 2개밖에 남지 않았고, 시민들의 힘으로 만들어낸 시설이나 건물들은 이제 민간에 맡겨져서 사라지거나 제대로 운영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지금의 네리마는 고령화, 저출산으로 인한 새로운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고민 역시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하여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어려움도 있다. 현재는 대다수의 젊은 여성들이 일을 하거나 아이를 돌보느라 지역문제 해결에 힘쓸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야마자키 씨는 젊은 세대가 어떻게 지역 일에 참여할 수 있게 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건이라고 밝히며, 한 사람의 시민, 여성으로서 이 세계, 사회와 어떻게 연결할 수 있을지를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자신이 움직이지 않으면 세계는 바뀌지 않는다. 처음에는 힘들지만 서로 지지와 협력을 통해 불가능해 보이던 많은 것들이 가능해진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관객과의 질의응답]
Q. 자생적으로 하기 어려운 모임이었을 텐데, 시나 구에서 지원을 받고 진행한 건가?
A. 네리마 어머니 연락회는 네트워크 허브로 별도의 지원 없이 모임을 운영했다. 참여 그룹들이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는 역할이었다. 다만, 학교를 증설한다거나 도서관을 신설하는 등의 활동은 관과 연계·협력하여 진행했고, 행정에 지속적으로 개선을 요구했다. 네리마 여성사를 개척하는 모임도 전혀 별도의 지원 없이 운영되고 있다. 다른 지역에도 여성운동을 기록하는 모임들이 있고, 지원을 받아서 겉만 멋진 출판물을 만드는 곳도 있기는 하다. 힘들지만 자비로 마들기에 행정의 도움을 받지 않은, 진짜 시민운동의 기록을 남길 수 있다.
젊은층과 노년층을 위해 집을 여세요: 독일 마더센터
▲ 쇼쓰 씨는 공공영역으로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여럿이 모이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마더센터가 그러했듯이.
이어서 독일 마더센터의 창립멤버이자 현재 마더센터연방 명예대표인 쇼쓰 씨의 강연이 이어졌다. 독일에는 1980년 최초의 마더센터가 설립된 이후 현재 약 400여 개의 마더센터가 생겨났으며, 행정에서 이를 벤치마킹한 500여 개의 비슷한 센터 역시 운영되고 있다. 마더센터는 초기 출산센터로 시작하여, 1990년에는 노인 세대 사업까지 확장하면서 청년층과 노년층의 친밀감을 형성하고, 2002년 주와 연방정부의 협조, 그리고 다양한 주민들의 관심에 힘입어 마더센터의 기본 개념과 경험을 바탕으로 다세대주택으로 확장시킨 독일의 마을공동체 대표사례이다.
쇼쓰 씨의 강연은 Oh, Yes!로부터 시작되었다.
쇼쓰 씨는 독일 역시 고령화로 인한 다양한 문제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말한다. 가족형태가 달라지고 세대별로 생각을 공유하기 어려워지면서 노인층은 사회적으로 고립되고 있으며, 기존의 노인 돌봄시설 외에는 대안이 거의 없다. 많은 가족들은 직장을 다니며 집안일을 해야 하고, 동시에 어린아이들과 노부모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재 우리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마더센터와 다세대주택은 이러한 사회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시작되었다. 시내 중심가에 있는 이곳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전 세대를 어우르는 곳이 되었다. 젊은층과 노년층이 매일 만나며 서로 교류하기 시작했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전체 모토는 삶의 기류와 맞닿아 있다. 매일 문이 열려 있고 사람들은 정말 필요한 것들을 제공해준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문화가 있고, 상하가 없는 평등한 위치 속에서 서로 눈높이를 맞춘다.
▲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1. 마더센터의 전경. 집들은 항상 열려 있으며, 밖에서 들여다볼 수 있도록 전면에 투명한 창을
배치했다. 별도의 울타리를 설치하지 않은 것도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 2. 마더센터에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세대를 뛰어넘어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작은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3. 아이들은 마더센터 안에서 언제든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작은 강좌가 되기도 하고, 신나는 케이크 파티가 되기도 한다
4. 마더센터에서는 다양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세탁과 다림질도 그 중 하나!
배치했다. 별도의 울타리를 설치하지 않은 것도 열린 공간이라는 의미. 2. 마더센터에는 다양한 세대가 함께 어울리는 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세대를 뛰어넘어 소통하고, 관계를 맺으며 작은 사회를 만들어 나간다. 3. 아이들은 마더센터 안에서 언제든
돌봄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 그것은 때로 작은 강좌가 되기도 하고, 신나는 케이크 파티가 되기도 한다
4. 마더센터에서는 다양한 생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세탁과 다림질도 그 중 하나!
마더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들은 모두 주민들의 필요에 근거하여 진행된다. 다양한 활동, 배움, 어린이 돌봄, 정보 조언, 수업, 공동작업, 고용, 가족을 위한 서비스, 노년층을 위한 돌봄 등등 누구나 본인이 필요한 것을 요구하고 직접 기획하여 실행할 수 있다. 쇼쓰 씨는 ‘사랑은 위를 통해 전달된다’는 독일 속담을 인용하며, 마더센터의 성공비결 중 하나로 바로 매일 음식이 제공된다는 점을 꼽았다. “사람들은 무언가를 함께 먹을 때에 더욱 소통할 수 있으며 친밀해진다”는 쇼쓰 씨의 말에 청중들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마더센터에는 사람들에게 항상 필요한 무언가를 제공해주기 위한 호스트들이 존재한다. 매일 600여 명 정도의 주민들이 방문하는데, 이들은 항상 환대받는다. 마더센터의 활동목표는 다음과 같다.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고,
-이웃들을 형성하고,
-외로움을 느끼지 않게 하고,
-나를 위해, 그리고 다른 이를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서로를 통해 배우는,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웰커밍(환영)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쇼쓰 씨는 마더센터의 활동목표에 맞게 누구든지 마더센터에 오면 ‘환영’하겠다는 말로 강연을 마쳤다.
[관객과의 질의응답]
Q. 마더센터 안에서 일상에 필요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는데, 지역사회에서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해관계 기관과의 충돌은 없는가? 다른 점은 무엇인가?
A. 항상 특별한 것을 하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따른다. 충돌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리는 사전에 관련법이나 규칙을 잘 찾아보고 실행하며, 꼬박꼬박 세금도 내고 있다. 그리고 다른 기관과 서로 도움을 주고받기도 한다. 마더센터가 다른 기관과 다른 점은 우리는 후원이 없어도, 그리고 돈을 내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기본 제공 서비스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Q. 큰 공간을 많은 돈을 들여 지었는데, 그 예산은 어떻게 마련했는가? 현재의 운영비는 어떻게 충당하는가?
A. 처음에는 돈이 없이 시작했으나, 이후에 돈을 찾게 되었다. 연방 정부나 독일 대표 등에게 요구하여 예산을 조금 지원 받았으나 쉽지 않았다. 대부분은 후원금으로 충당하였다. 건축하는 데에 많은 비용이 들었는데, 그래서 오랜 기간이 걸렸다. 처음은 어려웠지만, 점점 더 활동영역을 넓히며 후원들이 늘어났고 그 후에는 정부에서 지원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이 지원금은 1년 전체 예산의 약 10% 정도이며, 그 외에는 후원금과 별도 프로젝트를 위한 예산으로 활용하고 있다. 절대로, 자금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래도 많은 돈을 후원 받는 것도 중요하긴 하다(웃음).
Q. 마더센터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한 인력은 어떻게 구성되어 있나? 환영문화를 위해서는 그만큼의 감정 서비스를 해주는 인력 또한 필요하지 않은가?
A.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직원이 전체 매니지먼트를 하고 있으며, 별도 호스트(운영진)들은 15명 정도가 프로그램에 따라 근무하고 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연령대의 자원봉사자들을 많이 활용하고 있으며, 약 120명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
▲ 네리마구 사례를 발표해준 야마자키 마사코(왼쪽에서 6번째)와 마더센터 사례를 발표해준 힐데가르드 쇼쓰(왼쪽에서 7번째).
그리고 이번 컨퍼런스를 준비한 서초구 마을호스트와 통역, 서초구청 관계자 등이 함께 기념사진을 남겼다.
정리_유은옥(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사진제공_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
사진제공_서울시마을공동체종합지원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