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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유의 설명
① 선택 제약
비
점과 점이 방울방울 선긋기 공부하네
내려온 하늘 높이 깊이도 재보고
지구에 점을 찍어서 오목판을 만들고
통사 규칙을 위반한 문장들이다.
어떻게 해서 비가 선을 긋고 하늘 높이를 재볼 수 있겠는가.
비는 선을 긋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는 것이다. 내려오는 모습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또한 비는 점을 찍는 게 아니라 땅이 패이는 것이다. 물론 오목판도 만들 수 없다. 사실 빗방울을 점으로, 빗줄기를 선으로, 땅이 패인 것을 오목판으로 은유했다. 일상의 통사 규칙에서 어긋나 있다. 통사규칙을 위반함으로써 그 의미의 폭과 깊이가 달라진다. 촘스키는 이런 선택 제약을 어김으로써 은유가 성립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② 질의 격률
이 세상 모든 꽃이 다 그만한 아픔이란다
소망만큼 꽃잎이 다치고 절망만큼 마디가 굵은
노숙자 마른 기침소리 온 들녘이 꽃이구나
-고정국의 「구절초 피었구나」 3연
이 세상 모든 꽃이 어찌 아픔이고 소망만큼 꽃잎이 다치고 절망만큼 마디가 굵어지는가. 온 들녘 구절초가 노숙자의 마른 기침소리라니 작자는 분명하게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고 진실을 말하지도 않았다. 진실된 것을 말해야 하는 질의 격률을 어긴 것이다. 질의 격률은 축어와 비유를 구분, 진실된 것만을 말해야 하는데 꽃을 아픔이나 노숙자의 마른 기침으로 은유했다. 그래서 소망만큼 꽃잎이 다치고 절망만큼 마디가 굵어진다고 비유한 것이다.
너라고 어쩌겠느냐 이 가을 햇살 앞에선
푸른 하늘을 향해 짐승처럼 울던 산아
붉은 죄 고해성사를 온몸으로 쓸 수 밖에
-정광영의 「단풍」전문
단풍을 ‘붉은 죄 고해성사’라고 했다. 단풍은 축어적 의미로는 늦가을에 붉은 엽록소가 분해하여 붉거나 누른빛으로 변하는 나뭇잎을 말한다. 이런 사전적 의미는 적합성의 원칙에서 보면 최대의 효과를 얻었다고 볼 수 없다. 적어도 붉은 나뭇잎으로 표현하였다 한들 이는 의미 손실로 밖에 볼 수 없다. 문학에 있어서의 필요한 정보는 축어적 의미뿐만이 아니라 전달하고자는 문장의 맥락 효과를 높일 수 있어야한다. 필요한 정보가 ‘붉은 죄 고해성사’인 은유적 표현이 훨씬 의미의 파장이 크고 깊다. 이렇게 최소의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맥락 효과 면에서 보면 은유는 그만큼 경제성이 있다.
2) 은유의 이론
① 치환 이론
치환 은유는 한 사물의 다른 사물로의 전이를 말한다. 축어적 의미를 비유적 표현으로 바꾸어놓는 것이다.
우리가 새로운 사물을 경험했을 때 이것을 기술할 새로운 언어가 없어서 이와 유사한,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다른 사물의 이름을 여기에 부여하는 것이 은유이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은유는 ‘전이’이고 전이는 유추, 곧 유사성이다. 휠라이트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런 은유 개념을 치환 은유란 용어로 기술했다.
눈송이가 쏟아진다
하하하 웃음꽃도 다발다발
묶어놓은 수다쟁이 가시내야
까르르 입을 모으면 이야기가 쏟아진다
- 신명자의 「안개꽃」전문
은유의 원 개념 안개꽃이 생략되어 있다. 안개꽃을 눈송이라든지 웃음꽃이라든지 이야기 등으로 치환했다. 원 개념은 안개꽃 하나지만 매개념은 여러 개로 되어 있다. ‘안개꽃=눈송이, 웃음꽃, 이야기’이다. 원개념 안개꽃을 여러 형태의 매개념으로 형상화하여 밝은 이미지로 치환시켰다.
② 상호작용 이론
쳐라, 가혹한 매여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나는 꼿꼿이 서서 너를 증언하리라
무수한 고통을 건너 피어나는 접시꽃 하나
-이우걸의 「팽이」 전문
원개념과 매개념을 ‘A=B’라 할 때 위 시조는 ‘팽이=접시꽃’이다. 팽이의 의미와 접시꽃의 의미인 두 개념의 상호작용에 의해 의미가 생성되고 있다. 팽이는 무수한 채찍이 가해져야 돈다. 이를 접시꽃에 비유했다. 접시꽃도 무수한 비바람을 견뎌야만 꽃을 피울 수 있는 것이다. 무지개가 보일 때까지 고통을 줌으로써 접시꽃이 피어난다는 이야기이다. 인내와 고통이 없이는 어떤 일도 이룰 수 없다. 두 개념의 상호작용의 기반은 고통과 인내이다. 이러한 기반으로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도는 팽이’이고 ‘피어나는 접시꽃’이다. 팽이의 특징과 접시꽃의 특징이 결합하여 새로운 의미를 창조해 내고 있다.
③ 개념 이론
몇겹을 내비쳐야 푸른 속살 내비칠까
온 땅을 과녘 삼아 쏘아 붓는 그 화살을
그 누가 항변할 것인가 도리없는 이 질책
-장정애의 「소나기」 첫 수
소나기를 화살이라고 했다. 개념이론에 따르면 의미의 기점은 소나기이다. 소나기가 목표인 화살로 의미가 이동하는 것이다. 소나기는 갑자기 세차게 쏟아졌다가 그치는 비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출발하여 과녘삼아 쏟아 붓는 화살로 의미가 이동하는 것이다. 소나기는 화살이지만 화살은 소나기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상호 작용 이론에는 쏟아내는 것이 쌍방으로 작용하여 새로운 의미가 형성되지만 개념 이론에서는 소나기는 화살처럼 쏟아지지만 화살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④ 맥락 이론
맑아서 슬퍼지는 물빛꽃 저 눈망울
별빛이 몇십 광년 미치게 달려와서
망울진 그 눈빛 속에 퐁당 빠져 있는 게야
-최경희의 「산꽃」 전문
위 시조를 하나는 소녀에게 하나는 여인에게 들려주었다고 한다면 소녀가 해석한 산꽃과 여인이 해석한 그 의미가 다를 것이다. 은유는 ‘물빛꽃 = 별빛 = 산꽃’의 등식이다. 소녀는 순수하고 깨끗한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고 여인은 그리움의 이미지를 떠올릴 것이다.
위 시조를 쓰게된 상황과 은유가 일어나는 맥락에 의해 은유가 좌우된다고 본다면 은유의 뜻을 명확히 말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접하는 상황이나 표현이 사용되는 맥락에서 의미를 해석할 수밖에 없다.
‘물빛꽃’은 ‘맑아서 슬퍼지는’ 맥락에서 찾아야할 것이고, ‘별빛’은 ‘몇 십 광년 미치게 달려온’ 맥락에서, 또한 ‘눈빛 속에 빠진’ 맥락에서 찾아야할 것이다. ‘눈빛’은 ‘망울진’ 맥락에서 그 의미를 유추해야할 것이다. 그러나 은유는 한 맥락에서만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맥락 전체에서도 처해있는 상황에서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렇게 여러 맥락에서 찾을 수 있어 한 맥락에서만 가능하다는 은유의 전제는 무색해질 수 밖에 없다.
은유 2
3) 은유의 원리
① 유사성의 원리
꽃잎이 타오르면 몸속의 불 켜 들고
나는 저 어두워지는 못 아래로 내려갔다
어둠에 더욱 빛나는 고요가 끊는 뻘 속
죽은 이들이 돌아와 물은 홀로 넘치고
화톳불 이글거리는 내 음각의 눈물들은
깨끗한 팔을 들어 해를 건져 올렸다
-박권숙의 「수련 」전문
수련을 해로 은유했다. ‘내 마음은 호수’보다 ‘수련은 해’가 더 참신하다. 유사성이 덜해야 의미가 확장된다. 독자들에게 신선한 이미지를 주게 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참신하다는 의미는 두 사물 간의 유사성의 약화를 의미한다. 이는 두 기표 간의 의미의 저항을 가져와 이 때문에 의미의 증가를 가져오게 된다. 이럴 때 ‘두 기표 사이가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수련과 해를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생각이 필요하다. 위 시조는 ‘깨끗한 팔을 들어 해를 건져 올렸다’고 했다. 수련은 못이나 늪 같은 진흙이 있는 물에서 자라나는 식물이다. 탁한 물에서 자라나는 것이기는 하나 꽃은 깨끗하고 아름답다. 이러한 밝은 이미지를 해와 연결시켰다. 둥근 모양이나 눈부신 것 등에서 수련과 해가 유사하다.
수련 깨끗하다 접시같다 아름답다
해 밝다 둥글다 눈부시다
두 기표 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은유의 의미를 읽어낸다. 기표간의 의미의 유사성을 찾기 어려우면 독자들은 읽기를 포기한다. 은유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기표 간의 적당한 거리 유지가 필요하다. 적당한 거리는 두 사물의 축어적 의미가 멀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너무 멀면 두 의미 사이를 읽어 낼 수가 없다.
② 차이성의 원리
지금, 떠나는 자 흔들리는 어깨 위에
가칠한 놀 빛이 와 입술을 깨물고 있다.
잦아든 목숨의 심지 끝내 놓친 매듭 하나.
-이승은의 「피아니시모」 전문
피아니시모는 ‘아주 여리게’의 음세기의 음악 기호이다. 이 피아니시모를 ‘끝내 놓친 매듭 하나’라고 했다. 상징적인 의미는 있겠지만 ‘피아니시모’하고 ‘놓친 매듭’ 사이에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매듭은 끈, 노, 실 따위를 잡아매어 마디를 이룬 것을 말한다. 이러한 마디가 피아니시모와 매치된 것이다. 음의 세기와 마디에는 어떠한 공통점도 찾아보기 어렵다. 긴장된 두기호들이 서로 충돌,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피아니시모는 추상적이고 여리고 음악 기호이며 불가시적이고 과정을 뜻한다. 매듭은 물질적이고 적당하고 일상의 물건이고 가시적이며 끝을 뜻한다.
Ⅵ. 은유의 유형
1. 명사 은유
피면 지리라 지면 잊으리라
눈감고 길어 올리는 그대 만장 그리움의 강
져서는 잊혀 지지 않는 내 영혼의 자줏빛 상처
-이우걸의 ‘모란’ 전문
위 시조는 A=B의 형태와 C의 B 형태를 다 갖추고 있다.
A=B의 형태인 ‘모란은 상처’는 모란을 상처로 본 것이다. 모란은 5월에 피는 붉은 꽃이다. 이를 자줏빛 상처에 비유한 것이다. 자줏빛 상처라면 잊을 수 없는 사랑의 상처쯤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자줏빛 상처가 모란이라는 것이다. 제목에는 원개념 모란이 제시되어 있으나 텍스트에는 생략되어 있다.
C의 B의 형태는 ‘영혼의 상처’이다. 영혼과 상처가 두 명사를 결합, 하나의 은유를 만들었다. 영혼은 정신적인 것, 상처는 물질적인 것이다. 영혼과 상처가 대등한 관계로서 상처는 피부에만 나는 것이 아니라 영혼에도 상처처럼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영혼과 상처, 정신적인 것과 물질적인 두 명사를 결합, 동격의 은유로 만들었다. 이 경우에는 모란이 상처라는 말이 아니라 영혼이 상처라는 것이다.
우러르면 내 어머님 눈물 고이신 눈매
얼굴로 묻고 아 우주이던 가슴
그 자락 학같이 여시고 이 밤 너울너울 아지랑이
-이영도의 ‘달무리’
‘우주이던 가슴’은 ‘B의 A’의 형태, ‘우주이던 가슴’의 등식이다. 어머니의 가슴을 넓은 우주에 매치시켰다. 어머니의 가슴은 우주같이 넓다는 말이다.
‘우주이던 가슴’을 ‘가슴은 우주이다’로 바꾸면 서술격 조사 ‘이던’에 의해 앞 뒤 의 어순만 달라진 ‘A=B’의 형태가 된다.
2. 형용사 은유
형용사 은유는 명사와 그 명사를 꾸며주는 형용사가 결합하여 만들어내는 은유를 말한다.
고개들지 못하는 예쁜 죄 하나 저질러
없는 듯 들풀 같이 흔들리며 가려는 길에
허물만 손톱이 길어 찬 하늘을 긁는다
-박재두의 ‘들풀같이’ 셋째 수
‘예쁜 죄’는 형용사 은유이다. ‘예쁘다’는 뜻은 생긴 모양이나 하는 짓이 아름다워서 보기에 귀엽다는 뜻이다. 죄는 양심이나 도의에 벗어난 짓을 뜻한다. 도의에 벗어난 짓을 아름다운 모양이나 짓에 비유했다. 죄가 예쁠 리가 없다. 역설일 수는 있겠지만 나쁜 짓을 예쁜 모양으로 은유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죄를 정당화시키고 있다.
‘B의 A’의 형태인 ‘예쁜 죄’이다.
나의 그리움은 오직 푸르고 깊은 것
귀먹고 눈 먼 너는 있는 줄도 모르는가
파도는 뜯고 깎아도 한 번 놓인 그대로
-이영도의 ‘바위’ 전문
깊고 푸른 것은 바다 같은 것들일 것이다. 바다는 눈으로 볼 수 있고 깊이를 측정할 수 있는 물질적인 것이다. 그리움은 눈으로 볼 수도 없고 깊이를 측정할 수가 없다. 그리움은 마음으로만 느낄 수 있는 것인데 그리움을 바다와 같은 푸르고 깊은 구체적인 것으로 은유했다. 명사인 그리움의 비물질적인 것을 형용사인 푸르고 깊은 구체적인 바다와 같은 물질적인 것으로 치환시켰다.
‘B의 A’의 형태인 ‘푸르고 깊은 그리움’이다.
3. 부사 은유
부사 은유는 부사가 동사나 형용사를 꾸며주는 데에서 생기는 은유를 말한다. 이 때 모순 어법이 구사되어 역설을 불러일으키게 되는 경우가 많다.
저물 듯 오시는 이 늘 섧은 눈빛이네.
엉컹퀴 풀어놓고 시름으로 지새는 밤은
봄벼랑 무너지는 소리 가슴 하나 깔리네.
-한분순 ‘저물도록 오시는 이’ 전문
‘저물다’는 말은 해가 져서 어두워지는 것을 말한다. 일상적인 말에서 사람이 저물듯이 올 수는 없다. 날이 저물거나 해가 저무는 것은 이해가 가지만 사람이 저물게 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한 저물 듯 가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저물 듯 오는 것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정서를 환기시키는 데 이러한 역설적인 시적 표현은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화자는 사랑하는 님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온다는 표현을 ‘저물듯이’라는 부사어를 통하여 더욱 가슴 아프게 만들고 있다. 온다는 사람은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이다. ‘저물듯이’라는 부사어로 ‘온다’는 말을 은유한 것이다. 하도 오지 않기에 그 답답한 마음을 해가 저물다 라는 말로 은유했다.
‘B듯이 A이다’의 부사의 은유 형태이다.
4. 동사 은유
닳아, 닳아진다면 천만 번 티끌 되었거니
쌓아, 쌓여진다면 억만 번 태산 되었거니
이 자리 천년을 서서 강이 되고 바다가 되고
-서숙희의 ‘생각’ 전문
화자는 생각이 티끌이 되고 태산이 되고 강과 바다가 된다고 했다. 생각은 추상어이고 티끌, 태산, 강, 바다는 구체어들이다. 생각은 마음 속으로 판단하거나 인식하는 일을 말한다. 이러한 추상어가 티끌 태산이 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생각이라는 추상적인 기호를 구체적인 기호 티끌 태산 등으로 변형시켜 은유한 것이다. 비물질적이고 비가시적인 기호를 물질적이고 가시적인 기호로 대체했다.
‘생각은 티끌, 태산, 강, 바다가 되다’의 ‘A=B, C, D가 되다’의 은유 형태이다.
서술 동사의 은유는 A라는 기호를 B라는 기호의 동사로 서술, 묘사하여 은유한 것을 말한다.
멀리 보낸 그리움, 그대 맘에 닿지 못하고
그 언저리 맴돌다 와도 마냥 행복했는데
그리움 그도 늙었나 저만치 가다 돌아서네
- 김원각의 「첫사랑 그리움」
‘늙었나’, ‘돌아서네’ 등은 동사 은유이다. 사람이 늙는 것이고 사람이 돌아서는 것이지 그리움이 늙거나 돌아서는 것은 아니다. A라는 그리움을 B라는 사람으로 빗대어 은유했다. 그리움을 사람처럼 묘사한 동사 은유 때문에 첫사랑이 실감나게 그려져 있다.
우리차(車)가 왜 이리 힘들어하죠, 아빠
뒤에서 밀어야 할까봐요 어영차 차랏 차 차 차
따르던 별들이 송송송 오선지를 달려요.
-김주석의 ‘다영이’ 전문
별들이 달린다고 했다. 별들은 반짝이는 것이지 사람처럼 달리는 것은 아니다. 무생물을 의인화시켰다. 움직이지 않던 차가 갑자기 달리니까 하늘에서 반짝이던 별들이 오선지 위를 달리는 것으로 그 행동을 묘사했다. 별들을 음표로 은유하고 별들이 따르는 모습을 오선지에서 달리는 모습으로 은유했다.
‘사람=별, 음표’의 등식이 성립한다. ‘송송송’은 구멍 같은 것이 또렷또렷 많이 뚫린 모습을 말한다. 오선지에 송송송 음표 자국들이 선명하게 구멍 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음표의 머리 부분을 연상시킨다. 그렇다면 노래를 부르는 것을 은유했다고 볼 수 있다. ‘별=노래(음표)’의 등식이다. 오선지를 달리는 모습을 별들이 노래하는 모습으로 빗대어 은유했다. 달리는 모습을 노래하는 모습으로 은유했다.
Ⅶ. 은유의 종류
출렁이는 장미밭은 대낮 같은 불빛의 궁전
한창 어여쁜 음모 거미줄을 치고 있다.
수상한 기침 소리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누가 겹겹으로 도화선을 깔았는가
구석마다 부챗살 그리며 그림자 걷혀 가자
일제히 솟는 불기둥 뒤집히는 색채의 폭발.
-박재두의 ‘꽃밭의 모반’ 전문
원개념과 매개념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경우이다. 위 시조에서 원개념은 ‘장미밭’이고 매개념은 ‘궁전’이다. 갖가지 장미들이 요란하게 피어 있는 장미밭을 대낮 같은 불빛 궁전으로 비유했다. 색채들이 폭발하고 있는 장미밭을 화려한 불빛 궁전으로 비유했다. 원개념과 매개념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어 비유의 뜻을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오동나무 숨은 소리 님이라 부르노라
열세 줄 오리오리 젖 먹은 핏줄인가
가락은 내 모르건만 넋이 불러 님이라네
-한설야의 ‘가야금’ 첫 수
가야금의 열세줄을 젖먹은 핏줄로 은유했다. 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명시적으로 드러난 비유는 이렇게 작가의 의도하는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날도 하루 종일 괜한 눈만 내렸었다
무성영화 속으로 무너지는 종소리
지금껏 건네지 못한 눈에 갇힌 목소리…
-전병희 ‘그 소녀’ 전문
위 시조는 원개념과 매개념이 둘 다 암시적으로 드러난 경우이다.
확연히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텍스트를 꼼꼼히 읽어보지 않으면 의미를 짐작하기 어렵다.
원개념이 생략되어 있는 것도 그렇고 매개념 조차도 확연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 그 소녀를 설명하려고 하고 있지만 분명하게 드러나있지 않다. 제목이 없으면 무엇을 은유했는지 알 수가 없다. 제목과 연결시켜보면 ‘그 소녀’는 ‘종소리’, ‘목소리’ 쯤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 또한 소녀와도 유사성을 갖고 있지 않다. 그 소녀라는 사람을 종소리나 목소리라는 추상적인 기호로 매치시켰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 소녀’가 반드시 원개념이라고 볼 수도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 그녀의 그 무엇을 은유했는지도 모르겠다. 오히려 이런 모호성 때문에 은유의 진가를 발휘할 수도 있다.
소녀를 ‘무성영화 속으로’,‘무너지는 종소리’ 쯤으로 은유했다. 화자의 상상력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눈에 갇힌 목소리로 또 은유했다. 그 소녀는 무너지는 목소리요 눈에 갇힌 목소리이다. 독자들에게 은유의 의미를 맡길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원개념은 암시되어 있고 매개념만 드러난 경우이다.
그대는 총애받는 어느 왕조 여인처럼
색조도 짙은 미소 농염어린 눈길하며
담 너머 소문난 자색 뉘 가슴인들 성했으랴.
타고난 운명대로 끝 모를 유혹의 체질
더운 피 짙은 향기로 제 몸살 제 앓으며
한 왕조 사로잡고도 붉게 타는 저 입술
-이차남의 ‘장미’ 전문
입술을 어느 왕조의 여인을 빌어 장미를 은유했다. 원개념이 제목에는 나타나 있으나 텍스트 내에는 나타나 있지 않다. 제목을 보지 않으면 무슨 꽃인지 알 수가 없다. 모란같은 화려한 어떤 꽃일 수도 있다. 원개념은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고 매개념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다.
‘저 입술’에서 ‘저’는 대상을 보고하는 말이다. 장미가 텍스트 밖에 있어 원개념이 반드시 장미라고 생각할 수는 없다. 여인이 텍스트 내에 직유로 처리되어 있어 장미가 여인으로 여인이 입술로 은유 이동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 같다.
네 번째는 원개념은 명시적으로 매개념은 암시적으로 드러나는 경우이다.
언제부터 울었을까 백두의 햇살 눈뜨는 곳
차마 잠들 수 없는 저 천년의 피리 소리
별 하나 어둠을 사루며 단념 밖으로 나서고.
더께더께 쌓인 세월 뼈 시린 결빙의 땅
우직한 소 한 마리 휴전선을 넘고 있다
아득히 감겼다 펴는 천만년의 춤사위.
한 번도 주목받지 못한 하찮은 쑥부쟁이
때론 슬픔이고 기쁨인 저 들판에 서서
긴 세월 어두운 세상 등불 밝히고 있다.
-이승태의 ‘새천년’ 전문
피리 소리가 ‘아름답다’라든지 ‘구슬프다’라든지 등은 쓸 수는 있어도 ‘잠들다’, ‘잠들지 않다’라고는 쓸 수 없다. 원개념 ‘피리 소리’를 매개념 ‘살아있는 사람’으로 은유했다.
셋째수의 쑥부쟁이는 산이나 들에 피어나는 식물이다. 이것이 들판에 서 있거나 어두운 세상에 등불을 밝힐 수는 없다. 들판에 핀 쑥부쟁이를 들판에 서 있거나 등불을 밝히는 사람으로 은유했다. ‘피리소리’, ‘쑥부쟁이’ 같이 원개념이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만 ‘잠들 수 없는’, ‘들판에 서서’, ‘등불 밝히고’와 같이 의인화되어 있어 매개념이 암시적으로 드러나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