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터널을 뚫고
“3급 지체 장애로 판명되었습니다.”
“동사무소에 가서 신청하세요. 서류는 이미 준비돼 있습니다.”
설마 했는데! 내가 3급 장애인이란다!
그날 2003년 8월의 어느 날!
내 인생이 어둠의 터널로 한 발짝 내디딘 날이다.
그동안 아프고 힘든 나날을 보내며 병원 치료에 희망을 걸었다.
이미 오른쪽 수족은 내 몸에서 불협화음을 낸 지 오래다.
너무 고통스러워 의사 선생님께 여쭤봤다.
“선생님! 이러다 장애인 되는 거 아니어요?”
“가능성이 있어요. 검사실에 가서 사진 찍고 정밀 검사 한번 해 보세요.”
많은 기계가 위압적으로 노려보고 있다. 내 몸의 상태를 판단하는 판사가 된 기계 앞으로 주춤거리며 다가간다.
기계속으로 들어가 팔과 다리를 자반뒤집기하며 여러 장의 사진을 찍어 냈다. 터널 같은 기계속으로 들어갈 때는 ‘저승길이 이런 것인가?’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판정 날을 예약해 놓고 기다리는 시간은 판사의 최종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이 된다.
어느 날 우연히 내 몸에 침입한 뉴마티스라는 불청객은 수시로 나를 고통의 수렁으로 밀어 넣었다.
그간 병원에서 그 불청객을 쫓아보겠다고 애썼던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끈질기게 내 곁을 맴돌던 그것이 나에게 끼친 해악을 판단해 보는 날이 다가왔다.
의사 선생님께 판정받기 위해 떨리는 가슴을 겨우 누르고 판사의 입만 쳐다본다. 드디어 입이 열리며 “지체 장애 3급입니다.”라는 말이 떨어진다.
아! 내가 지체 장애 3급이라니!
오늘부터 나는 장애인이란 이름을 달고 어둠의 터널로 들어가게 된다.
죽고 싶은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한다.
‘어떤 방법으로? 5층에서 뛰어내릴까? 그러다 죽지 않고 팔다리만 다치게 된다면 장애인 급수만 올라가겠지?’
“약을 먹을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밤잠을 설치며 유서 한 장을 써 놨다.
그러나 죽는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뉴마티스와 싸우는 것보다 더 힘들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이었다. 번쩍! 번갯불처럼 빠르게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그사이 죽는다는 생각만 하고 그 방법만 찾다가, 실로 번연개오(幡然開悟)의 순간이었다.
‘죽을 용기로 한 번 살아보자!’
‘생각은 사람을 지혜롭게 만들고, 지혜는 세상을 살만하게 만든다.’라는 어느 강사의 말이 떠오른다.
그래! 내가 얼마나 지혜로운 사람이냐!
잘살아보려고 삶의 현장에서 부지런히 뛰었지. 거기다 어린 시절 하지 못했던 공부까지 했잖냐?
주경야독으로 중 고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마쳤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나 자신이 소중하고 장하기까지 하다는 생각이다.
연이어 생각은 꼬리를 문다.
‘나에겐 아직 학생인 아들과 딸이 있다. 하마터면 그들에게 죄를 지을 뻔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건강을 회복해야 한다.’
주문처럼 외며 아픈 다리를 끌고 운동부터 시작했다.
눈물을 머금고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뒤틀려 돌아가는 오른발을 바로 세우기 위해 힘든 운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매일 아침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연다.
뉴마티스라는 병은 아프다고 움직이지 않으면 몸이 굳어버린다.
굳어버린 팔을 돌리며 눈물을 삼켜야 했고, 다리운동을 위해 이를 악물었다.
노력을 헛되지 않았다. 굳은 팔과 다리의 근육이 조금씩 풀어지기 시작했다.
이제는 통증이 오면 낫기 위한 신호라 생각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게 됐다.
어느 날, 팔돌리기를 하는데 통증 없이 팔이 두 바퀴나 돌았다!
오른팔로 엄두도 못 냈던 수저질도 거뜬히 해냈다.
맞춤형 스트레칭으로 몸이 어느 정도 풀렸지만, 나의 노력은 쉴 줄 모른다. 벌써 20년이라는 경력을 쌓았다.
이제 3급 장애인의 자격증을 반납해야 할 것 같다.
규칙적인 생활과 운동, 긍정의 힘은 오늘의 나를 만든 원동력이다.
지금도 불편한 몸으로 하루를 힘겹게 보내는 장애우 여러분께 말하고 싶다.
‘작은 땡벌이 날 수 있는 것은 자신감 때문이라고.”
고통을 극복하고 긍정의 힘으로 마음껏 날 수 있는 희망을 가져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