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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 일시: 2018년 10월 20일 (토) [금요무박] o 날씨: 맑음 o 산행경로: 거림(접속) - 세석산장 - 영신봉 - 음양수 - 석문 - 삼신봉 - 외삼신봉 - 묵계재 - 고운동재 o 산행거리: 19.5km o 산행시간: 7시간 50분 o 지역: 경남 산청군 o 일행: 올빼미산악회 낙남정맥2기 o 트랙: 낙남정맥_거림_고운동재_20181020_033124(jbha3309-20181020_112545).gpx
▼ 코스지도
낙남정맥... 대간을 마치고 어쩌다 발을 들여놓은 정맥길... 9정맥 중에서 벌써 여덟번째 정맥길이다. 물론 땜방해야 할 구간들이 많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왔다. 신낙남정맥까지 포함하면 270km의 낙남정맥길은 어떤모습으로 다가올까? 오늘은 대장정의 첫날, 지리산 영신봉에서 고운동재까지지만 영신봉까지는 거림에서 접속을 해야 한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가 거림에 도착한 시간은 새벽3시 반, 쌀쌀한 바람이 산객들을 맞는다. 지리산 일출을 보러 온 사람들인지.. 새벽시간에도 거림 입구는 차량들로 붐비고 있다.
▼ 거림 (들머리)
거림에서 출정식을 가진 다음 영신봉으로 향해 출발... 거림에서 영신봉까지는 접속구간이긴 하지만 오늘 구간중에서는 최고의 오르막 길이다. 거리는 6km, 고도차는 대략 1000m가 넘는다...
시작부터 익숙한 느낌이다. 화계사에서 노고단, 중산리에서 천왕봉, 중봉에서 유평리로 이어지는 등로에서 발바닥에 불이 날 것 같았던 돌길이 이곳도 다를 바 없어 보인다.
등로는 점점 고개를 치켜들면서 천팔교와 북해도교를 지난다. 이런 다리는 계곡에 물이 불어날 때를 대비한 것이라고 한다. 열기를 내품고 있는 몸은 찬바람을 맞아 오히려 서늘함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지리의 가을도 가나보다...
오르막길에 익숙해진 것일까... 세석평전을 얼마 앞두고는 오르막길도 무뎌지는 느낌이다...
아직도 새벽시간인데 세석산장 아래 샘터에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마도 새벽산행을 준비하는 산객들인가 보다. 아니나 다를까 세석산장 취사장에는 이미 많은 코펠과 버너가 끓고 있다. 세석산장이 세워지기 전 세석평원에 텐트를 치고 야영을 했던 그 시절의 낭만과 추억이 아른하다...
▼ 세석산장
세석산장 뒷편 봉우리가 영신봉이다. 비탐지역이지만 낙남정맥의 시작을 위해 살짝...실례...
비탐지역이라 영신봉 정상에는 바위와 조망외에는 아무것도 없다. 어쩌면 그것이 최고의 가치겠지만... 촛대봉 뒷편으로 번지는 여명이 황홀하다. 멀리 진주시내의 네온사인도 눈앞처럼 가까워 보이고...
영신봉 이정표에서 금줄을 넘어 낙남정맥의 진정한 첫발을 내딛는다. 비탐지역이긴 하지만 낙남정맥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음양수로 가는길에는 자살바위로 알려진 위험한 암릉구간이 도사리고 있다. 자살바위는 6.25때 패퇴한 일부 여자빨치산들이 집단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서서히 여명이 밝아오면서 어둠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산그리메들도 하나둘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순간이 가장 가슴에 깊게 와닿는다...
▼ 지리산 남부능선과 백운산 능선(우측 뒤)
음양수 조금 못미쳐 너럭바위에 좌선대가 자리잡고 있는데, 우천 허만수 선생의 기도터로 잘 알려진 곳이다. 이곳에서 우리일행들의 마음을 모아 무사완주를 바라는 안전기원제 지내고... 안산, 즐산을 지켜주소서~~
▼ 좌선대 (제3기도터)
음양수는 바위틈으로 스며나오는 석간수이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 산신령에게 기도를 하고 이 물을 마시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여인네가 아니라서 해당사항이 없고, 이미 아이가 둘이나 있으니 더더욱 나는 해당사항이 없다. 마실 방법도 뽀족하지 않고... 엎드려서 코를 박아야 하나...ㅎ
▼ 음양수
[음양수 전설] 음양수가 인기를 끈 것은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갈증을 풀어주는 시원함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식이 없는 사람들이 이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전설이 더 큰 영향을 주었다. 그래서 예로부터 음양수 샘 주위에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기도를 드리곤 했다고 한다. 아주 옛날 지리산 대성골에 호야라는 젊은이가 살았다. 사냥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호야는 늙은 부모를 봉양하기 위해 장가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느 날 사냥을 나갔던 호야는 곰 두 마리와 맞닥뜨렸다. 그런데 두 마리 곰 가운데 어린 곰이 늙은 곰을 막아서는 것이 아닌가. 얼핏 보기에도 어미 곰과 아들 곰으로 보였다. 본능적으로 활시위를 당기던 호야는 집에 계실 부모님 생각에 차마 시위를 놓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호야는 고라니 한 마리를 잡아 그나마 빈손은 면하게 되었다. 다음날 장터에 나가 고라니를 팔던 호야의 눈에 천상에서 내려온 선녀와도 같은 아리따운 처녀가 들어왔다. 우연히 마주보게 된 두 사람은 서로가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천생연분이라는 것이 그런 것인지 그렇게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처녀의 이름은 연진이었다. 장터에서 조그마한 장사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다소 억척스러운 구석이 없지 않았지만 호야에게 연진은 너무나도 소중한 존재가 되고 있었다. 장터 근처의 약아빠진 사내들만 보아왔던 연진에게도 과묵하면서도 듬직한 호야는 믿고 의지할 만한 사내였다. 그렇게 두 사람은 백년가약을 맺고 가정을 꾸리게 되었다. 시부모님께도 연진은 맞춤한 며느리였다. 장터에서 자라서 생활력도 강한데다가 시부모를 대하는 극진한 태도 역시 호야에게는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장가를 가지 않아 걱정이 태산 같았던 호야의 부모 역시 한 시름 놓게 되었다. 아무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던 호야 가정에도 한 가지 걱정이 있었다. 자식이 없다는 것이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와도, 또 다른 봄이 가고 다시 겨울이 다가오는데도 아이 소식이 없었다. 그러니 호야 부모도 부모지만 연진의 걱정이 더욱 깊어만 갔다. 연진의 걱정이 깊어가는 만큼 연진 친정 부모의 시름도 깊어갔다. 어느 날 연진의 어머니가 연진을 찾아와 지리산 산신령님께 백일기도를 드리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였다. 그러나 연로한 시부모 봉양하랴 연일 사냥에 바쁜 남편 뒷바라지 하랴 정신이 없던 연진은 백일기도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이었다. 잠을 청하지 못하고 엎치락뒤치락 하던 연진이 얼핏 잠이 들었는데 꿈에 곰이 나타나 신기하게도 말을 하였다. 곰은 연진에게 세석평전에 음양수 샘이 있다면서 그 물을 마시면 아이를 가질 수 있다고 일러 주었다. 꿈에서 깬 연진은 너무나도 생생한지라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연진의 꿈에 나타난 곰의 생김새를 자세히 들어보니 예전에 호야가 살려주었던 곰이었다. 그래서 연진은 그 길로 곰이 알려준 음양수 샘으로 달려가 샘물을 배가 터져라 실컷 마셨다. 그런데 이 광경을 몰래 지켜보던 호랑이가 산신령에게 밀고를 하고 말았다. 호랑이는 오래 전에 호야에게 화살을 맞아 크게 다친 바 있어 어떻게 해서든지 호야를 해치려던 참이었는데 마침 곰이 연진에게 음양수 샘의 비밀을 알려준 것을 눈치 챘던 것이다. 백일기도를 드려야만 음양수 샘의 비밀을 알려주던 산신령이 크게 노하여 비밀을 누설한 곰을 토굴에 가두고 말았다. 그리고 연진에게는 세석평전을 벗어나지 못하도록 술법을 부려 돌밭에서 평생 철쭉을 가꾸도록 하는 가혹한 형벌을 내리게 되었다. 연진은 철쭉을 가꾸는 한편으로 촛대봉 정상에서 촛불을 켜놓고 천왕봉 산신령을 향하여 속죄를 빌다가 마침내 돌로 변해버렸다. 지금 촛대봉에 있는 바위가 바로 연진이 돌로 변한 모습이라고 한다. 연진이 죽은 후 세석평전에는 해마다 철쭉이 흐드러지게 피는데, 연진의 애처로운 모습처럼 핏빛 꽃을 피운다. 한편, 아내를 찾아 지리산 일대를 헤매던 호야는 마침내 칠선봉에서 세석평전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평소에는 거침없이 드나들던 세석평전에 어찌된 일인지 한 발짝도 들어갈 수가 없었다. 연진이 세석평전에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느낀 호야는 가파른 절벽 위 바위에서 아내를 목놓아 부르다 결국 구름 속으로 몸을 던지고 말았다. 지금도 세석평전에서는 해마다 철쭉꽃이 필 무렵이면 연진을 부르는 호야의 목소리가 바람에 실려 메아리친다고 한다. (펌)
이곳에 지리산에 방사한 반달곰들이 많이 출현하나 보다...
등로는 이제 고도를 낮추며 삼신봉을 향한다. 10월 중순, 지리산은 이미 가을이 지나고 있다...
▼ 뒤돌아본 영신봉 방향
좌선대에서 바라볼 때는 삼신봉까지의 능선이 부드러워 보였는데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 생각보다 등로가 거칠다. 덤불숲도 많고 울퉁불퉁 암릉도 제법이고...
이곳이 석문인가 보다. 등로를 가로막고 있는 커다란 바위사이로 비밀의 출입문이 열려있다. 보통 통천문이라는 이름이 많이 붙는데 이곳은 석문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산중턱에 있어서 그런가? 규모가 생김새로 봐서는 천왕봉 아래에 있는 통천문이나 월출산 통천문 보다 더 멋있어 보이는데...
▼ 석문
벌써 올 한해도 가고 있다. 이글거리던 태양도 그 빛이 훨씬 온순해졌고, 끝이 없을 것 같던 폭염은 어느듯 찬기운으로 바뀌었다. 산도 나무도 붉은 옷으로 갈아입고 그 절정을 뽐내고 있다. 이 절정의 '엑스터시'는 곧 떠나야 할 때를 예견하고 있는 것이다...
슬슬 산죽길이 시작된다. 낙남정맥 초반은 산죽에서 시작해서 산죽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하는데...
... 1237, 1213, 1278봉을 거치면서 삼신봉으로 접근한다. 삼신봉 주변에는 작은 고사목들이 많이 보인다...
▼ 진행방향으로 보이는 내삼신봉
▼ 뒤돌아본 천왕봉 방향
▼ 반야봉 방향 (중간 좌측 가장 높은 곳)
삼신봉은 남쪽 골짜기에 삼신동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며, 삼신동은 신흥사, 의신사, 영신사 세절로 들어가는 길이 모두 이 골짜기를 거치기 때문에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삼신봉은 지리산 주능선의 전망대라고 할 수 있다. 노고단에서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지리산 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눈을 돌리면 시계방향으로 노고단에서 백운산 그리고 남해를 거쳐 황매산까지 360도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천왕봉에서 영신봉을 거쳐 뻗어내려온 능선은 삼신봉에서 다시 좌우로 팔을 벌려 외삼신봉과 내삼신봉으로 나누어진다...
▼ 삼신봉
▼ 삼신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 웅석봉과 황매산(중간 맨뒤) 방향
▼ 청학동(아래) 방향
▼ 백운산 능선
정맥길에서 서쪽으로 약 1.4km 떨어져 있는 내삼신봉을 다녀올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적어도 40분이상은 걸릴 것 같은데... 나는 2년전에 이곳을 한바퀴 한 적이 있어 그저 속으로 웃기만...결국 아무도 안갔나 못갔나...ㅎㅎ
▼ 내삼신봉 방향
▼ 외삼신봉 방향
삼신봉 갈림길에서 정맥길은 청학동 방향이며, 그 아래 갈림길(갓걸이재)에서 금줄을 넘어 외삼신봉으로 가야한다...
▼ 갓걸이재에서 외삼신봉 방향
외삼신봉도 사방팔방의 조망이 끝내준다. 날씨도 좋고... 건너편으로는 내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내삼신봉에서 성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자물통처럼 생긴 쇠통바위가 있다. 그 아래에 있는 청학동 사람들은 이 쇠통바위를 열면 천지개벽과 함께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 외삼신봉
▼ 내삼신봉(우)과 쇠통바위(중간)
▼ 천왕봉
갑자기 잼이 생긴다. 좁고 가파른 직벽구간... 밧줄을 움켜잡고 팔힘에 의존해야 하는 곳이다...
그리고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산죽구간... 날머리 고운동재까지 약 4km는 빼박캔트 산죽길이다...
중간중간 붉은 단풍도 구경하고... 산죽의 초록색만 쳐다보다가 보색인 붉은 색이 얼마나 화려하게 보이던지...
가도 가도 끝이 없는 산죽길... 어떤 곳은 허리춤까지 어떤 곳은 키높이까지 어떤 곳은 키를 훌쩍 넘겨 앞을 가로막는다. 허리춤을 넘는 산죽길은 아래가 보이지 않으니 헛발을 짚지 않기 위해 걸음걸이가 조심스러워지고, 키를 훌쩍 넘는 산죽길에서는 산짐승처럼 네발로 뽈뽈 기면 되는데, 무엇보다 환장하겠는 것은 딱 키높이의 산죽길... 아래도 안보이고 앞도 안보이니 그야말로 오리무중이더라. 게다가 부러진 나무들이 곳곳에 숨어있기 때문에 여차하면 넘어질 염려가 있다. 실제 현장은 아래 사진의 10배보다 더 심하다고 보면 된다...
이런 곳은 혼자오면 미로같은 산죽길에서 십중팔구 미아가 되기 십상이다. 아래가 보이질 않으니 허공에 붕 뜬 느낌으로 묵계재까지 급락했다고 991봉으로 솟구친다. 한손으로는 눈을 찌르는 산죽을 막으면서 남은 한손으로는 스틱을 잡고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한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얼마나 불편한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이때는 눈 보다는 오감에 의존해야 한다. 몸에 느껴지는 촉감, 들리는 소리 그리고 동물적인 감각...
쑥~ 하고 산죽길을 벗어났다. 그렇게 무성하던 산죽이 어느 경계에서 거짓말처럼 구분이 되어 있다...
▼ 산죽구간 경계지역
예정시간에 맞추어 고운동재에 도착했다. 고운동재는 지리산에 많은 유적과 전설을 남긴 최치원 선생의 호인 '고운'에서 연유한 이름이다. 그늘보다는 이제는 따뜻한 햇살이 더 좋은 계절이다. 그 햇살을 쬐며 서부경남 이야기로 수다를 떨고...
덕산으로 이동하여 세신을 하고 뒷풀이는 두부요리로...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요!! 벌써 반을 마쳤으니 나머지 절반도 금방일까??? 지나고 나면 추억이겠지만 그 과정은 언제나 고통과 인내를 수반하기 때문에 쉽게 그 결과를 예단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될 것이다. 오늘 1구간에 이어 다음번 2구간도 산죽길이라고 한다. 오늘은 그래도 낮시간에 산죽구간을 통과했지만 다음번은 새벽 어둠속에서 산죽구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러잖아도 보이지 않는 길을 헤드렌턴 한뼘 불빛에 의존해야 하는데... 차라리 안보이기 때문에 더 나으려나...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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