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박씨 정헌공 금은 선생 춘향제 봉행... 명곡서원 경덕사
정헌공 금은 박성양(定憲公 琴隱 朴成陽)선생의 춘향제가 지난 3월 7일(음2월23일 丁亥) 경북 의성군 가음면 양지리 명곡서원의 경덕사(景德祠)에서 엄숙 봉행되었다.
금은 박성양 선생은 고려말의 인물이며 고려 무덕장군 판삼사사(判三司事) 之亮(지량)의 5대손이고 중조(中祖 一世祖) 상서공(尙書公) 선(善 )의 10대손으로 의성 봉양에서 태어났다. 포은 정몽주(圃隱鄭夢周) 선생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으며 성리학에 조예가 매우 깊었다. 스승 포은(圃隱) 정 선생께서 불행히 참화(慘禍)를 당하심에 공명에 대한 무상함과 왕위찬탈에 분개하여 시골 고향인 경북 의성 봉양 분토리 봉두산 선영하 엄자현(俺紫峴)에 돌아와 은거 하여 금서(琴書))를 벗 삼으며 가난하나 편안하게 사시며 자호(自號)를 금은(琴隱)이라 하고 오로지 성리학에만 정수(精修), 세칭 고려말 28은(二十八隱) 중의 한분이다
이태조가 등극한 후에 금은선생이 특출한 인재라는 점을 알고 누차 소명(召命)을 내려 조정에 출사하도록 하였으나 선생은 사양을 하고 오로지 학문에만 정진하였다
태조6년(1397년) 5월에 왜구가 남해안에 침입하여 백성이 어육을 당하고 있으니 조야(朝野)에서 공론이 <박성양은 文武를 겸전(兼全)한 용감한 인재로서 왜적을 격퇴시키는 데는 가장 적절한인물이오니 등용 하시옵소서>하고 천거하자 태조는 왜구정벌원수로 삼았다 선생은 일신의 영달을 위한 소명은 거절하였으나 나라와 백성을 구휼(救恤)하는 일이기에 흔쾌히 왕명을 수락 왜구토벌에 큰 공훈을 세웠다.
이에 태조 이성계는 「삼척검두 영사직 일조편말 정건곤(三尺劍頭 寧社稷 一條便末 定乾坤 3자의 큰 칼로 사직을 안정시키고 한줄기 채찍 끝으로 천하를 평정 하였네)」라하며 어사시(御賜詩)를 내려 칭찬하였으며, 회재 이선생(晦齋 李先生:李彦迪)은 묘지명(墓誌銘)에 찬(撰)하기를 “학문은 천인을 관통하고 공을 세워 사직(社稷)을 보존 했네 금서로써 만년(晩年)을 지내셨으니 거룩하도다 수립(樹立)하신 공이시여”하며 칭송 하셨을 정도로 금은 선생은 문무를 겸한 당대의 최고의 지략가이기도하다.
가선대부이조참판겸 도총부부총관(嘉善大夫吏曹參判兼 都摠府副摠官)을 역임하였으며 고종(高宗)5년에 이르러 자헌대부이조판서 겸 의금부사(資憲大夫吏曹判書 兼 義禁府事) 성균관제주(成均館祭酒)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의 증직(贈職)과 시호(諡號)를 정헌공(定憲公)이라고 함께 내리셨다.
◀ 박재우 전임회장
이날 제례에는 집례관 재출(在出, 대구) 종친의 창홀에 따라 초헌관 문환(文煥, 대구), 아헌관 연택(淵澤, 청송) 종헌관 채진(採鎭, 의성)이 각각 헌작하고 연회(淵會, 의성) 대축관이 독축하였다.
한편 명곡서원 관리위원회는 이날 제례봉행후 총회를 개최하고 신임회장에 재경(在慶, 경북 영천시 야사동) 종친과 진호(震鎬, 대구) 남석(南錫, 대구) 종친을 감사에 각각 선임하였으며 해율(海聿, 대구경북종친회 총무) 총무는 유임시켰다. 전임 재우(在禹, 대구)회장은 명곡서원 성역화사업을 훌륭히 마무리하는 등 많은 업적을 남기기도 하였다.
명곡서원은 순조 18년 무인(1818년) 창건하고, 고종5년 무진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폐철되었다가 고종 42년 광무9년 을사(乙巳 1905년) 명곡서당으로 설당 복향(設堂復享)하여 유림주관으로 향례봉사 하여 오다가 광복 후 을묘년 1975년 음력3월 중정일(中丁日)에 도내외 각 유림의 공론으로 명곡서당을 명곡서원(明谷書院)으로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묘우(廟宇)인 경덕사(景德詞)와 전사청(典祀廳)이 있으며 서원 본당인 명교당(明敎堂)과 동재(東齋)는 향도재(向道齎),서재(西齋)는 강의재(講義齎)와 문은 유정문(由正門) 이다. 또 경내에 선생의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사진 왼쪽부터 집례 박재출 초헌관 박문환, 아헌관 박연택, 종헌관 박채진
○신임 박재경 회장 프로필
1935년 경북 군위 生
부산동아대학교 중퇴/ 육군 경리학교 수료/ 자연보호동부동 협의회장 역임/ 은해사 불교 교양대학 수료/ 자연환경 영천시협의회장(현)/ 영천시 청소년선도위원(현)/ 경북도지사 및 환경부장관 표창/ 김옥화 여사와 2남2녀
/ 한빛신문 편집국장 박상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