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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산교 사상사
20세기 초의 증산 사상이 세기말의 현대에도 여전히 의미가 있는 것은, 그 사상이 현대 세계가 안고 있는 문제들과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형성되었다는 것, 다시 말해서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현대적 주제들을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증산교파가 수 십 분파로 분열해 왔고, 단일한 종교이념으로 종합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증산교 이해를 어렵게 하고 있는 문제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증산교가 살아있는 현대 종교현상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반증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증산교가 지금도 고정화되지 않고 변화발전하고 있다는 것 자체에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1. 증산교의 기본 교의
1) 신앙의 대상 - 옥황상제, 미륵불로서의 증산
증산은 원래 하늘나라를 다스리던 옥황상제였는데, 三界의 혼란으로 天道와 人事가 都數를 어기자, 이마두(마테오 리치)를 대표로 한 불타와 보살들의 호소에 응해, 서천서역대도국천계탑으로 내려와 삼계를 둘러보고 천하를 大巡하다가 이 東土(한국)에 1871년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또한 스스로를 미륵불이라 칭한 증산의 면모는 금산사 미륵불과 흡사했고, 탄생시 佛表를 양 미간에 가지고 태어났다고 한다. 그는 도솔천에 있다가 신명들의 요구에 따라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하강했음을 시사했고, 그가 살았던 용화동을 龍華會上의 기지라고 했다.그러므로 증산교인들은 증산을 미륵불의 화신으로 신앙하는 것이다.
2) 증산교의 우주관 - 三界
증산 교설에 나오는 三界는 원래 불교 용어이며, 欲界, 色界, 無色界, 즉 시,공간적 우주 전체를 표현하는 개념이다. 그러나 증산은 이 삼계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다만 천상, 지하, 지상이 있음을 시사했다. 이에 대해 배용덕, 임영창 등은 삼계를 천계, 지계, 인계로 해석한다.
천계는 九天으로, 지상 가까운 곳으로부터 한층한층 올라가 아홉 단계의 하늘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전 우주공간을 통칭하는 것으로, 여기에 무형의 신들이 살고 있다.
지계는 인간을 비롯한 만물이 사는 지상세계이다. 여기에는 유형의 존재와 무형의 신이 공존하고 있고, 특히 증산의 천지공사의 결과에 따라 앞으로 이룩될 선경의 기지가 된다.
인계는 인간세상으로, 인간도 지계에 속하지만,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세계를 특별하게 생각하여 인계를 따로 구상한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人界와 神界의 관계이다. 증산은, 인계(이승)인 사람의 세계와, 이 인계에 살다 죽은 사람들의 영에 의해 건설된 세계인 신계(저승)이 상호관련성을 갖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生由於死 死由於生"(대 6:10)이라 하여, 인계의 일은 신계에 영향을 미치고, 신계의 일도 인계에 영향을 미치므로 신과 인간이 한데 어울려 존재한다고 묘사한다.
3) 증산교의 神觀
증산교에서 거론하는 신의 이름은 115종에 이르는데, 이들 대부분은 사람이 죽어서 된 신, 곧 인간 영체의 다른 이름들이다. 그러나, 증산 자신은 신관을 분석적으로 설하고 있지는 않았고, 다만, 후대 증산교 사상가들이 신관을 이론적으로 정리했다.
(1) 신명의 작용 - 寃力,願力,練力作用
이정립은 [대순철학]에서 신체로부터 분리된 영체의 작용을 寃力作用, 願力作用, 練力作用 세가지로 구분했다.
우선 寃力作用은 원한을 풀지 못하고 죽으면, 그 원한으로 인해 정신이 力的 응결 또는 결정된 채 신체에서 분리되어 일정 기간 존속한다는 것이다. 그 동안에는 곳곳에서 해악 작용을 일으키게 되는데, 이런 영체가 원귀(악귀)이다.
다음으로 願力作用은 大願大望을 달성치 못한 채 죽을 때, 그 원망의 열정으로 인해 정신이 力的凝結 또는 결정된 채 신체에서 분리하여, 일정 기간 존속하는 동안 그 원망을 향한 작용을 일으키게 된다고 한다. 이런 영체를 明神이라 한다.
마지막으로 練力作用은 수련 정신에 의하여 정신이 통일되어 光的作用과 力的作用을 일으켜 응결 또는 결정을 가져오니, 이렇게 된 정신체는 신체로부터 분리와 他 에의 이식이 임의 자재하며, 괴력의 운용이 가능한 고급 영체가 된다. 이런 영체는 문명신으로 어느 교단에 종교력의 중심적 작용을 하기도 한다.
(2) 신명의 종류와 역할 - 문명신, 지방신, 조상신명, 원신과 역신, 기타신
문명신은 각 문명을 대표하는 신으로, 주로 종교 창시자의 신명이다. 이 신명은 이상과 연력의 결정체로서 힘을 지니는데, 여기에 추종자들의 願力이 가미되어 강력한 중추력을 형성한다. 이 문명신이 대대로 이어지고, 종교인들의 영체가 합쳐지고 원력이 연결되어 문명신단을 형성한다. 공자,노자,석가,예수 등이 문명신이다.
지방신은 각 씨족의 대표신이다. 최초의 씨족 집단은 원시 족장에 대한 숭앙심을 고취하고, 그것이 대대로 내려오면서 과장되어 결국 신격에까지 도달한다. 중국의 반고, 조선의 환인, 일본의 천조대신, 유태인들의 여호와 등이다. 그런데 문물이 전 지구적으로 교류되는 시대가 되자 경계를 넘어서게 된 지방신들로 인해 신명계가 혼란을 일으켰고, 이에 증산이 자기의 대 연력을 중심으로 지방신단을 결성한 것이다.
조상신명은 조상들이 죽어서 된 신명(선영신)이다. 선영신은 후손의 대를 잇기 위해 많은 공을 드리고 있고, 얻은 후손들을 계속 보호한다. 그러므로 인간 세상에서 사람들끼리 싸우면 천상의 선영신들도 싸우게 되고, 결국 천상 싸움이 끝나야 인간 싸움도 끝나게 된다고 했다. 원신은 원한에 사무쳐 죽은 사람의 신명이요, 역신은 정의를 위해 반역을 도모하다가 뜻을 이르지 못하고 죽은 신명이다. 그 시작은 唐堯의 아들 丹朱로부터 비롯하여, 그 원의 뿌리가 시대 변화에 따라 더욱 깊어져 천지에 가득하게 되었다고 한다.
기타신은, 이상의 신들 외에 자연신, 천신, 지신, 수신, 등 수많은 신들이다.
4) 증산교의 인간관 - 마음, 선과 악의 문제
증산교는 인간의 존재를 가장 의미있게 보고 있다. 증산교는 인간을 위대한 존재로 보는데, 이 인간이 스스로의 인격을 비하하면 금수와 같아지고, 반대로 그것을 발달시키면 天이나 신이 된다고 했다. 이것은 인간 각자가 지닌 '마음'에 의해 결정된다. 따라서 증산은 마음을 강조했다. 현무경에서 "천지의 중앙은 마음이다. 때문에 동서남북에 몸이 마음에 의지한다"고 하며, 또 "心靈神臺"라 하여 마음이 신임을 밝혔다. 그러므로 인간은 마음을 지켜서 깨끗이 하고 바로 해야 한다.
한편 인간의 선과 악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증산은 그 근본을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선후천의 도수 조정에서 용법의 법도를 달리해서 선과 악을 설명한다. 즉, "선천 영웅시대에는 죄로서 먹고 살았으나 후천 성인시대에는 선으로서 먹고 살것"이라고 했다. 따라서 권선징악은 후천선경이 오는 과도기에만 필요한 것이고, 후천선경이 오게 되면 모든 사람이 다 선인으로 변화되어 살기 좋은 낙원이 된다고 했다.
5) 天地公事
천지공사는 증산이 1901년부터 1909년까지 종도들에게 가르치고 행한 행적들에 대한 표현이다. 이를 이정립이 대순전경을 편집하면서 천지공사장을 두어 신정정리공사,세운공사,교운공사로 분류했다.
(1) 신정정리공사 - 해원, 신단통일, 氣靈拔收統一公事
해원공사는 천지공사의 출발로, 만고신명을 해원시키는 것이다. 이 해원은 맺힌 원한을 푸는 것으로, 단주로부터 시작한 인류의 원한의 역사를 푸는 것이다. 신단통일공사는 지방신들의 혼란으로 인한 인간세계의 혼란을 정리하기 위해, 세계지방신단을 집결하고, 여기에 문명신단과 원신, 역신으로 조성된 신단을 취합하고, 여기에 증산의 대연력으로 통일신단을 형성한 것이다. 氣靈拔收統一公事는, 대지에 존재하는 만물질에 포함되어 있는 기령을 통일신단과 연관지은 공사이다. 이 연관을 통해 세계를 하나로 소통시켜 분쟁의 원인을 제거한 것이다.
(2) 세운공사
세운공사는 인류의 미래에 다가올 변천 과정과 발전 양상을 미리 설계하여, 한국을 신세대운의 발상 기점이 되도록 짜 놓은 3단계 공사이다. 1단계는 유럽인의 유린으로부터 東亞, 특히 한국을 구출하는 공사이다. 유럽인의 세계 지배의도 앞에 당시 중국이나 조선은 방어를 위한 힘을 기르고 있지 않았으므로, 일본을 내세워 그 책임을 맡겼다. 2단계는 조선의 지방신을 서양으로 보내 열강의 내분과 대란을 일으키고, 그동안 약소민족이 갱생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서양 열강들의 전쟁인 1차 세계 대전이 그것이다. 3단계는 일본이 패망하고 조선을 구출하는 것으로, 일본의 패망과 한국의 분단, 그리고 6.25전쟁과 미군 철수까지 이어지는 한국의 운도를 밝혔다.
(3) 교운공사
증산의 사상과 가르침에 의한 신생 종단의 탄생 도수를 정한 것이 교운공사이다. 증산은 "먼저 亂法을 낸 뒤 眞法을 내리라" 하여 27년의 난법도수를 정했는데, 이것이 교운공사의 1단계이다. 난법의 도수란 1909년 4월에서 1936년 3월까지 27년간, 증산교 내부에서 일정한 교의 체계 없이 각 종파로 벌어지고, 일제의 강압 등이 있으리라는 것이다. 2단계는 진법이 나오기 위한 여러 가지 특이한 일이 진행되는 시기, 즉, 진법의 출현을 위한 작업을 진행하는 때이다. 3단계는 1936년에 난법도수를 거두고, 이어 10년간 병화가 일어남과 동시에 교단의 어려움이 더욱 심화되는 것을 말한다. 4단계는 최후의 의통으로서 세계 대겁액을 극복하고, 비로소 거기서 진법도수가 나오게 한 것이다. 이러한 교운공사의 의미는 후천선경에 작용할 신생 종단의 탄생은 여러 가지 어려움을 거친 후에야 가능할 것이다.
(4) 천지공사의 4대 이념 - 해원,보은,상생,조화
① 해원이념 : 해원이란, 맺힌 원한을 풀고, 또한 새로운 원한을 맺지 않는 것이다. 증산은 선천의 '相剋之理'로 인해 원한이 맺히고, 그것이 삼계에 살기로 넘쳐나 재앙을 일으킨다고 했다. 그러므로 神道를 바로잡아 '解寃相生'의 도로 仙境을 열고, 조화정부를 세워 세상을 고치는 공사를 하고자 했다. 원신들을 종장으로 등용하고, 그들의 주문들(김경흔의 태을주, 수운의 시천주) 등을 쓴 것 등이 그 실천이었다. 여기에서 해원 이념이 인간의 생활, 미물 곤충에게까지 확장한 것을 주목해야 한다. 증산은 인간생활에서 남에게 원을 지었거나 원한이 있으면 풀고, 착한 생활을 하여 척이나 원한을 짓지 않도록 했고, 미물 곤충이라도 원망이 붙으면 천지공사가 아니라고 했다.(대 4:49)
② 보은이념 : 증산은 한 그릇 밥이라도 감사한 마음으로 먹어야 하며, 그러한 마음으로 보면, 어느 것 하나 은혜롭지 않은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므로 만약 배은망덕을 하면 만 번이나 죽게 된다(背恩忘德萬死身)고 했다. 이 보은에 있어 조상들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 이유는 우리의 태어남은 선영신이 힘을 들인 결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장 큰 보은행은 수도를 잘 해서 도통하여 천지의 은혜를 갚는 것(道通天地報恩, 대 4-139)이었다.
③ 상생이념 : 상극의 이치란 대립, 경쟁, 투쟁, 전쟁과 같은 선천의 적대관계인 반면, 상생의 이치는 그 대립과 갈등과 원망을 풀고, 협력, 화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天理와 人事가 합치되는 이상적인 人道 원리로서 '남 잘 되게 하는 것이 나 잘 되는 길'이라는 공존 공영의 법리이다.
④ 조화이념 : 증산은 삼계대권을 주재하여 조화로서 천지를 개벽하고 선경을 열어 중생을 구하고자 했다.(대 2-5) 이것은 신도로서 다스리는 것인데, 신도의 원리란 신이 사물을 주재하는 마음을 따라 신이 응하는 섭리, 靈肉竝進, 神人合發, 神判神決의 섭리를 말한다. 이러한 조화는 종도들도 가능한데, 수련을 잘 하면 모든 일이 마음대로 될 것(대 2-116)이라는 것이다.
6) 後天仙境 건설
대순전경에 나타난 후천선경은, 천하가 한 집안이 되고, 형벌이 없고, 분의에 넘치는 폐단이 없고, 백성의 원통, 한, 상극, 사나움, 탐심, 음탕, 노여움, 모든 번뇌가 그치고, 사람들은 부드러운 말과 미소에 화기가 무르녹고, 動靜語默이 도덕에 합하며, 불로불사하고, 빈부 차별이 철폐되고, 음식과 좋은 옷이 요구하는대로 나타나며, 모든 일은 자유 욕구에 의하여 신명이 수종을 들어 주고, 운차를 타고 공중을 날아 먼 데와 험한 데를 다니며, 하늘이 나직하여 오르내림을 뜻대로 하고, 지혜가 밝아서 과거, 현재, 미래의 시방세계의 모든 일을 통달하고, 水火風 삼재가 없어지고 청화명려한 낙원으로 화한다(대 5-16)는 것 등으로 묘사되고 있다. 그것은 지상낙원이다.
그러나 후천선경이 후천선경이 오기 전에 대시련을 겪게 된다. 증산은 자기의 힘으로도 막을 수 없이 말려드는 전대미문의 병겁을 예언했다. 이 질병은 전북 군산 지역에서 발생하여 삽시간에 천하에 퍼진다는 것이다. 이에 그 치료법을 비밀리에 전했는데, 그것이 醫統이다. 그는 교화 초기부터 구릿골에 만국의원을 설립, 수많은 사람들을 치료했다. 그는 병을 치료할 뿐만 아니라 병을 대신 앓아주기도 했다. 대순전경 치병장에는 60건에 달하는 치병 실적이 있는데, 증산이 치병을 중시했음을 증명한다. 이러한 병겁과 의통 이면의 정신은, 세상의 병든 모습을 도덕적 타락으로 진단하고, 그 치료법을 도덕성 회복으로 제시하는 것이다. 그가 "大仁大義無病"이라고 하여 치병에 있어 仁과 義를 중시해서, 작은 병은 약으로 되지만 큰 병은 安心安身으로 낫는다고 했다.(대 4-129)
이러한 후천선경의 예언은 현실의 암울함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민중의 종교적 기대를 반영하며, 현실의 무력감속에서 절대적 희망으로 작용하는 것이었다.
2. 증산사상의 특징
1) 후천개벽사상 - 선후천 교역과 천지인의 개조
증산은 음양조화 이법에 따라 필연적으로 예정되어 있는 것이 運度이며, 이 운도의 법칙에 따라 선후천이 교역된다고 했다. 그런데 증산은 상제의 권능으로 말세 운에 처한 한국의 운명을 뜯어 고치는 천지공사를 하여 천지개벽을 위한 도수를 보았다. 그것은 선천의 모든 불합리한 이념, 이법, 질서를 개혁, 수정하는 것이었다. 천지와 인간을 포괄하는 이 개벽은 지구나 생명의 '소멸'이 아니라 '갱생'(개조)의 의미였다. 이 개벽을 위한 공사는 선천 5만년의 老天을 明天으로 뜯어 고쳐 선천의 불의와 빈곤, 허례를 철폐한 천개조공사, 땅의 좋고 나쁨을 없애 한결같은 고른 땅이 되게 한 지개조 공사, 앞으로는 사람이 높아지는 세상이 되게 하는 인존공사였다. 全善無惡公事, 마음 밝히는 공사, 지혜 밝히는 공사, 中通人義公事, 도통공사, 음양공사, 인내천공사 등의 인개조 공사로 이루어져 있다.
2) 仙 우위적 종교합일 사상
증산은 서학에 대해서는 "취할 것이 없다"(대 3-11)고 했고, 유교에 대해서도 "腐儒"(대 4-12)라 비판했다. 불교에 대해서는 다소 호의적인데, 그보다는 仙을 더 우위에 두었다(대 5-3). "불로장생의 선경" (대 2-5), 많은 도교적 신장들의 언급, 자신을 불로장수하는 신선이라 자처한 점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나, 종합적으로 볼 때, 증산에게 유불선 삼교는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이미 낡은 선천의 종교요 별 역할을 못할 종교라 하여 부정했다.(삼교추방)
그러나 삼교 부정과 동시에 과거 종교들의 장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천지공사 중에 그는 각 종교의 대표자들을 불러 들여 통합 활용했는데, 이는 각 민족들 사이에 나타난 모든 종교들의 정수를 뽑아 통일종단을 만들고 자신의 사상을 발전시킨 것이다.
3) 민족주체사상 - 외국배척,국조숭배,선민의식
증산은 발달된 서구 물질문명의 위력을 뿌리치지 않으면 그들의 지배를 면치 못하리라고 경고했고, 중국에 대해서는 그들의 영향력이 상실되었다(대 6-132) 하고, 일본에 대해서도 근원적으로 부정했다. 다만 밀어닥치는 서세에 대해 일본을 일시적으로 용인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 이는 그의 민족주체사상이 서구 배척을 중심에 놓고 있었다는 맥락에서 이해해야 한다. 국조숭배도 민족주체성 확립을 위한 한 방편이다. 증산교파에서 단군을 처음으로 받든 이는 증산의 제자인 김병선인데, 조상 숭배와 전통을 중히 여겨야 된다는 증산의 교설을 단군숭배로 표명한 것이다. 한편 이정립은 "奉天命奉神敎"(대 4-140)은 고대 신교를 말한다고 했다. 나아가 증산은 금후 인류 사회를 영도하고 이끌어 나갈 정신적 종주국으로 한국을 선정했다. 그는 상제의 자격으로 天權을 펼 장소로 택한 조선을 세계 상등국으로 만들려 했고, 이는 한민족의 메시아적 구원의 사명 의식을 의미한다.
4) 인간중심사상
증산은 신명보다 인간을 더 높여 인간으로 하여금 신명을 통제, 지배하며, 신명이 인간에게 봉사하도록 하는 신명공사를 했다. "천존과 지존보다 인존이 크니 이제는 人尊시대"(대 6-26)라고 하여, 신명이 인간을 공대하고 받드는 인간 존엄의 절정을 제시하였다.
5) 사회개혁사상
증산교는 동학과는 달리 직접적 탄압의 대상이 되지 않았는데, 이는 사회, 정부에 대한 증산의 관망적 태도(동학혁명 시기 관망, 일제에 대한 잠정적 묵인)와 관련이 있다. 그 이유는 모든 것이 운도에 따른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망적 태도에도 불구하고, 증산의 사회개혁 방향은 민중들 속에서 행해졌다는 점은 무시될 수 없다. 증산이 대상으로 삼은 사람들은 빈천하고 병들고 무식하고 어리석은 민중이었으며, '반항조차 할 수 없을' 정도의 짓눌린 사람들이었다. 증산은 이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나타냈고, 그들을 해방시키기 위해 하강했다고 한다. 그것을 위한 증산의 구체적 사회개혁 방안은 만민평등이었다. 그는, 모든 계급과 반상, 직업의 차별을 종식하고자 했고, 특히 천민에 대한 차별을 없애고자 했다. 그는 천민을 우대할 것을 강조하기까지 했다. 또한 빈부 차별의 일소, 남녀평등을 주창했다.
3. 증산교 교파의 분열과 그 배경
1909년 증산이 사망하자, 종도들은 실망을 하고 뿔뿔이 흩어졌다가, 1911년, 고부인의 신비체험을 통한 태을교(선도교) 창시 이후, 많은 증산교파들이 출현한다. 그러나 증산교파는 이후 많은 분열을 겪어서, 보천교, 선도교, 무극도, 순천도, 미륵불교, 삼덕교, 인도교, 대법사, 보화교, 용화교 등 1930년대 초까지 10여개 큰 교파들이 연이어 창립된다. 지금도 새로운 증산교파들이 계속 생기고 있어, 현재 50여 교파가 활동하며 비교적 교단 체제를 갖추고 활동중인 교파는 20여개 파 정도이다.
이러한 교파 분열과정의 특징은, 첫째, 교파 창시자는 증산의 종도였거나 증산으로부터 계시를 받아 교단을 창설하고 있다. 둘째, 많은 교파 창시자들이 증산의 친인척을 연관시키거나 유물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가지므로서 증산의 신통력이 자기에게 내리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런데 증산교인들은 이런 교파 분열을 당연시하는데, 증산이 교운공사를 통해 난법도수를 정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수차에 걸친 교단적 분열이 일어나는 것이며, 외부로부터의 탄압마저도 의당 겪어야 할 시련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동시에 증산이 계획한대로 난법도수가 지나면 진법을 주관하는 대두목이 나와 증산교의 모든 교파는 물론 이 세상의 모든 종교가 하나로 통일되게 된다고 믿는다.
토론 주제
1. 증산의 사상과 실천은 암울한 시대 상황 극복을 위한 '종교적' 해결의 노력으로 보아야 한다.
왜 증산은 군대를 조직해 서구 열강들과 맞서지 않았을까? 왜 근대적 정치주체들을 세워 내적 힘을 축적하지 않았을까? 왜 동학군의 외로운 항쟁을 무가치한것처럼 만류했을까? 왜 일제를 잠정적으로나마 용인하였을까? 현상적으로 볼 때, 증산의 행적들은 자주적인 근대국가 수립의 프로젝트가 아닌 신비주의적인 종교운동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당시의 시대적 난맥상을 효과적으로 풀어내지도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시대적 파국에 대한 종교적 해결의 유의미성은 결과론적으로 다뤄져셔는 안된다. 중요한 것은 그 해결'만을' 희망으로 수용할 수밖에 없었던 민중이 있었다는 것이다.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 사이에 전개된 제국주의 열강의 세계지배 책동은 약소민족들에게는 불가항력적인 재난이었다. 그들은 제국주의 침략을 막아낼 강력한 군대도, 근대화를 추진해 내적 개혁을 주도할 정치주체도, 현실에 탄력있게 대응하며 정신적 일체성을 부여할 기성종교의 역할도 없었다. 민중은 사면초가의 위기속에 정신적 공황상태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19세기 신종교의 출현은 정치,사회,경제적 무력함에 대한 대안적 해결책으로 이해해야 한다. 19세기에 세계적으로 일었던 약소민족들의 신종교현상(Cargo cult, Ghost dance, 후천개벽운동 등)은, 제국주의의 침략을 그 무엇으로도 극복할 수 없었던 제 3세계 민중들의 자기 정체성 확립을 위한 종교적 저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증산의 교설은 절망하고 있던 민중에게 삶의 의미를 부여하고, 민족정체성을 세우도록 한 '종교적 해결'노력이라고 보아야 한다.
2. 역사에 대한 증산의 교설은 '참여적, 책임적 역사 해석'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
증산교파를 비롯, 신종교가 현실 역사에 대해 하는 동시진행적, 혹은 후일담적 내러티브는 허황되고 과장된 것처럼 들리기 쉽다. 그것은 정통 사학에 근거한 역사 서술이 되어 있고, 또한 상식적 기억에 의해 한국인의 역사경험이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근세 이후 겪어온 민족적 불행은, 내적,외적 모순의 이중적 격화로 파생한 결과라는 냉정한 원인규명에 대해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그 불행의 와중에 있던 민중이 내적 계급모순과 외적 민족모순의 부정적 시너지 효과를 인식할 수 있어야만 했다고 하는 것은 후세인들의 억지이다. 양 모순의 이론적 분석을 정교히 하고, 그 극복을 위한 실천적 운동론을 조직한 것은 80년대 이후였고, 그마저도 그리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하물며, 개인의 실존까지 뒤흔드는 20세기 초반의 위기상황에서 "왜?"라고 절규했던 민중 가까이에서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줄 수 있었던 이들은, 옷만 갈아입은 기득권 개혁사상가들도 아니었고, 기성종교인들도 아닌 증산 같은 신종교 운동가들뿐이었다.
증산은 끊임없이 자신의 시대 현실에 대해서 해석하고 개혁하는 역사 내적 종교성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 사람이다. 증산은 일본이 쳐들어오는 것은 서구의 침략을 막아내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하고, 그러나 운도를 조정해서 결국 조선을 상등국으로 세울테니 희망을 가지라고 '고무'했다. 그 설명과 고무의 장소는 '역사'였다는 것이, 증산을 현실이탈적 신비주의자가 아니라, 민중 종교운동가로 보게 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설명과 고무가 '역사'라는 맥락을 떠나지 않고 참여,책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이 예언이었거나 혹은 회고였다 해도, 원인도 미래도 알 수 없었던 아노미상태의 민중들에게 사태의 실상을 '합리적'(시대제약적)으로 깨닫게 한 것이다.
3. 일제하 증산교파의 교세 확장의 배경은 '새로운 나라'에 대한 민중의 기대에 근거한다.
일제하 활동한 증산교파 중 가히 '폭발적' 성장을 한 교파는 차경석의 보화교(보천교)였다. 증산교파들은 초기에도 민중 사이에서 상당한 성장을 했지만, 6백만 신도를 호칭할 정도로 급성장하게 된 계기는, 차경석이 주도한 1921년 9월의 고천의식이었다. 그 내용은 일본 군대의 포위망을 뚫고 황석산 정상에서 1천여명의 신도와 간부신도들이 모여 제단과 촛불을 밝힌 가운데, 국호를 '時國'으로, 교명을 '普化'라 선언한 것이었다. 이 사건 직후 보화교의 신자수는 6백만, 간부의 수효만도 557,700명에 이르렀다고 한다.(노길명, [한국의 신흥종교], p.286)
이것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증산의 정치적 관망태도에도 불구하고, 민중은 후천선경이 현실에서 정치적으로 실현되기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고천의식이 일제 치하에서 가졌던 상징성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폭발적 힘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민중이 증산을 통해서, 혹은 신종교를 통해서 기대했던 것은 단순한 내면적 위로 차원이 아니라, 여전히 현실의 개벽이라고 하는 변혁적 차원의 기대였지는 않았을까?
4. 증산 사상의 현대적 함의를 다각도로 조명하는 작업의 가능성 - 예 : 생태학적 함의
증산의 사상은 이처럼, 현대적 주제들인 반전, 남녀평등, 생태, 종교간 협력, 가난 등의 주제들에 대한 상상력의 토양으로 살아있다. 이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증산의 상상력에 영감을 받고, 보다 인간화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달려있다. 한 예로, 생태학적 전망을 들 수 있다. 김지하는 최근 마당극 '세개의 사랑 이야기'에서 증산의 '지적 높이는 공사'를 예술로 형상화했다. 마당극의 클라이막스에서 땅을 상징하는 황색천을 하늘로 올리는데, 그것이 하늘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균형을 이루는 것으로 형상화되었다. 이는 그동안 지배 대상 혹은 이용 대상으로 인식했던 땅(자연)에 대한 패러다임 전환을 의미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의 유기체적 전체를 형성한다는 것은, 자연을 '환경'이라는 인간중심적 개념에서 '생태계'라고 하는 공존 개념으로 전화하게 하는 뜻을 담고 있다. 그것은, 증산에게는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생생한 세계 인식으로 구성되었던 요소이다.
[참고문헌]
김홍철, 증산교사상사, 연세대학교 출판부, 한국종교사상사 3,
노길명, 한국의신흥종교, 카톨릭신문사,
한국민족종교연구(1999.11.23), 지도교수 : 김성례, 발표 : 정경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