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4년에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가베트는 그의 활동 장소를 넓혔다. 그는 포르토벨로 병영의 군종신부인 오루글린 신부의 평신도 보조자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물론 가베트는 프랭크를 함께 데려갔다. 병영에는 2천 명의 군인이 있었다. 가베트와 프랭크는 그들 속을 돌아다니면서 신앙을 충실히 지키도록 격려했다. 냉담한 가톨릭 신자들 가운데 그들에게 “사로잡힌 사람들”의 수는 엄청났다. 그들을 오루글린 신부가 매월 첫 금요일 전야에 병영을 방문해서 고백성사를 주도록 마련했다. 오루글린 신부는 또 그 다음날 아침에, 즉 매월 첫 금요일에 성체성사를 베풀기 위해 왔다. 그것은 사제와 평신도 보조자와 평신도 보조자를 보조하는 프랭크 사이의 놀라운 팀웍이었다!
어떤 때는 가베트가 가톨릭 신자인 병사들을 큰 막사에 모여놓고 그들을 위해 기도 모임을 가졌다. 성모상 주위에 모여 성가를 부르곤 했다. 그리고 로사리오 기도를 바치고 가베트가 그들의 영원한 구원과 성사의 중요성에 대해 설교를 했다. 그는 갈색 성의와 “기적의 패”를 착용하도록 권하곤 했다. 그리고 그와 프랭크는 메달을 나누어주곤 했다. 모두들 모든 것에 대해 상당히 호응을 했고 때로 그들은 놀라운 결과를 거두었다. 즉, 70명의 병사들이 모였고 가베트와 프랭크는 그들을 네 줄로 세워서 군대식으로 시내를 지나 밀톤 파크에 있는 예수회 건물까지 행진했다. 그 곳에는 많은 사제들이 그 “침입자들”을 처리하고 70명의 고백성사를 듣기 위해 동원되었다.
프랭크는 가베트에게 완전히 매료되었다. 그는 군대에 있던 군인으로서 이제 그리스도의 전사가 된 사람을 이전에는 결코 본 적이 없었다. 성 바울로처럼 강력한 이 사람은 “믿음과 사랑으로 가슴에 무장을 하고 구원과 희망의 투구”를 썼다. 그는 하느님과 복되신 어머니께 대한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다.
가베트는 고급 제화공이었는데 늦은 시간까지 일을 했다. 대부분 저녁 프랭크는 자신의 사도직 활동을 끝마친 후 그의 신 만드는 작업장으로 들어가 부츠와 구두들 사이에 앉았다. 그것은 종교적 대화를 위해 어울리지 않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가죽을 꿰매고 두들길 때도 가베트는 계속 하느님과 성모님에 대해 얘기하곤 했다.
프랭크는 스승의 발치에 앉아 그 모든 것을 전부 흥미 있게 받아들이는 진실한 제자였다.
그는 가베트가 개척자회 뱃지를 착용한 것을 보았다. 그래서 프랭크는 뱃지에 대해 “특별한 감정”을 가졌다. 그는 자신의 신앙을 공개적으로 드러내려는 생각을 싫어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어떤 종류의 종교적 상징물도 착용할 수 없었다.
절대 금주 개척자협회는 1898년에 예수회의 제임스 쿨렌 신부가 더블린에 세운 것이었다. 이 협회의 일차적 목표는 기도와 자기 희생을 통해 절대 금주를 장려함으로써 예수 성심을 흠숭하는 것이었다. 금주뿐만 아니라 회원들은 매일 특별한 기도를 바쳐야 하며 예수 성심을 나타내는 개척자회 뱃지를 착용해야 한다.
프랭크는 예수 성심을 매우 공경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징물을 공공연하게 착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그 회에 가입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 여기 위대한 영웅 가베트가 이 뱃지를 착용하고 있지 않은가. 그것은 그로 하여금 이 문제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러던 어느날 복음에서 그리스도의 말씀을 우연히 발견했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명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하겠다.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하겠다”(마태오 10, 32-33).
그렇다면 “그에 대해 두 번 다시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는 심판 날에 수줍음이나 도덕적 비겁함 때문에 단죄를 받는 일은 하지 않기로 했다. 그는 개척자협회에 가입을 하러 갔다.
거기서 그는 2년 동안 수련기간을 거쳐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것은 그가 15개월 동안 수련자 뱃지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왜냐하면 그가 마지막으로 “술을 마신 것”이 9개월 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분개해서 일어나 나와 버렸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기로 작정했고 이 실망이 주님을 따르는 또 다른 작을 십자가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 주일 뒤에 그는 수련자로 가입했다. 그는 남은 생애 동안 개척자회의 열성적인 장려자였고 그 협회의 목표와 이상을 높이 평가했다.
그가 이따금 사이다나 저장 맥주를 즐겨 마셨다 해도 음주를 포기하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뱃지로 말하자면 그것을 공개적으로 착용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착용했다.
이 작고 가벼운 뱃지가 프랭크에게는 무거운 십자가였지만, 그것을 공개적으로 착용함으로써 그의 마음속에 있는 체면을 깨뜨리고, 그리하여 영원히 목마르지 않게 할 그리스도의 샘물이 아닌 다른 것을 마시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총을 얻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근위병으로서, 성심을 나타내는 작은 상징물을 공개적으로 착용하는 것을 명예와 특권으로 여기게 되었다. 1914년에 그가 특별히 도금된 개척자회 뱃지를 마련한 것은 그런 의미가 있었다. 그는 죽는 날까지 그것을 자랑스럽게 착용했다.
치터스 랜에 있는 가베트의 조반 센터에서 눈에 띄는 곳에 걸린 것은 대형 예수 성심 그림이었다. 이 그림이 프랭크에게는 특별히 매혹적으로 느껴졌다. 75년에 걸친 긴 세월 동안 그는 그 그림을 자랑스럽게 응시했을 것이다. 그의 예수 성심께 대한 그의 신심은 강렬했고, 특히 1675년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 알라코크에게 주님이 발현하신 이야기에 깊이 감동했다.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가 성체 앞에 무릎을 꿇고 있을 때, 영안으로 그녀는 가시관에 둘러싸이고 그 위에 십자가가 있는 예수 성심을 보았다. 그녀는 그 일을 직접 기록하였다. “내 주님께서 당신의 놀라우신 부드러움과 성심의 비밀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내 가슴은 인간에 대한 사랑에 불타 올라 더 이상 그 사랑의 불길을 억제할 수 없다. 내가 담고 있는 보물로 인간들을 부요롭게 만들기 위해 인간에게 직접 알려야 한다.’” 또 다른 때에 예수께서는 다시 그녀에게 나타나시어 당신의 성심을 보여 주시며 말씀하셨다. “인간을 그토록 사랑했지만 인간들로부터 별로 사랑을 받지 못한 이 가슴을 보라.”
이 메시지는 프랭크에게는 잊혀지지 않았으며 매일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감실 안에 계신 주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드리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다. 아마도 그는 20년 동안은 자신의 기본적 의무를 훌륭하게 다했지만, 다소간에 종교를 이럭저럭 “갖추어야” 하는 일상적인 일로 보면서 주님의 제사에 무관심했던 것을 슬퍼했을는지도 모른다. 1916년에 그는 어떻게 느꼈는지를 보여주는 몇 가지 기도문을 썼다.
“하느님, 지나간 일들이 저의 마음을 덮쳐 옵니다. 그러나 지금부터는 저를 당신께 완전히 바칠 것입니다. 저에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러면 당신을 충실히 섬기겠다고 약속하겠습니다. 허송세월한 지난 날들을 저에게 다시 주십시오. 그러면 어느 날 완전하게 보상하여 당신께 돌려 드리겠습니다. 오 예수여, 저도 성인이 되고 싶습니다. 그것은 제가 위대해지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께서 큰 사랑을 받으시게 됨을 의미합니다.”
그는 더 많이 읽고 더 많이 공부하고 기도했다. 특히 그는 성인들의 전기를 읽음으로써 자극을 받았고 헌신과 열정에 대한 훌륭한 본보기들을 알게 되었다. 그는 "성인들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게 만들어진 성덕에 대한 산 가르침이고 실천입니다. 우리가 자주 성인들에 대한 책을 읽게 되면 곧 그분들의 자질을 본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썼다.
예수 성심에 대한 프랭크의 사랑이 강렬해진 것처럼, 이 신심을 장려하는 그의 열정도 커졌다. 그의 소책자 '우리도 성인이 될 수 있는가?' 에서 그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볼 수 있는 보물을 다른 사람들도 맛보게 하려고 애썼다. "우리는 먼저 주님을 마음속에 생생하게 모시기 위해서는 그분의 신적인 모범을 곰곰히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의 엄하면서도 사랑이 넘치는 얼굴, 모습, 말, 행동을 하나하나 우리 머리 속에 떠올리면 애정을 가지고 그분에 대해 가장 잘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것과 비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빛나고 있을 것입니다. 부드러움, 지혜, 순수함, 인내, 온화함, 그리고 온갖 변덕스러움과 불충 가운데서도 우리에게 베푸시는 진실한 사랑이 바로 그것입니다. 우러러보고 공경하십시오. 또 자애로운 숨결이 우리 자신을 감싸도록 하십시오.
그분 안에 있는 완덕의 보물은 보석함이나 박물관안에 있는 세상의 보물들과는 다르며, 존중되어야 하는 것이지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 안에서 빛나고 있는 각각의 완덕은 우리에게 전해질 수 있습니다. 그분은 그것들을 진심으로 우리에게 주고 싶어하십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존중하고 갖기를 갈망하면 그것들은 여러분의 것이 될 것입니다...우리 주님과 그분의 품격은 거룩할 뿐만 아니라 우리를 성화시키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단지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것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우리의 마음에 새겨지고 우리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성모 마리아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응시합시다. 이 관상에서 그분의 도움을 청하십시오. 새로 태어난 갓난아기 예수님의 얼굴을 처음 본 그날 밤부터 관상은 성모님의 주된 일이었습니다."
프랭크는 주님께서 성녀 마르가리타 마리아에게 하신 참으로 놀라운 약속이 마음에 들었다. 아홉번째 약속이 특히 그의 흥미를 끌었다. "내 성심을 나타내는 그림이나 성상을 모시고 있거나 공경하는 모든 가정을 축복하리라."
그는 가정에서 성심을 공경하도록 열심히 권장했다. 냉담한 가정에 대한 사도직과 관련하여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집을 예수 성심께 봉헌하도록 만든다면 승리의 날을 이미 받아 놓은 것입니다."
후에 그가 레지오 마리애를 창설했을 때 그는 단원들에게 심지어 "희망이 없는" 경우에 처했을 때라도 그들이 가진 강력한 무기는 무엇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심 봉헌을 위한 가정 방문은 가장 풍부한 열매를 맺는 길잡이이다. 마리아의 사명은 예수님의 나라를 이룩하는 것이므로 성심 봉헌을 전파하는 활동은 레지오 마리애의 특별히 알맞은 활동임에 틀림없다."
프랭크는 예수님의 열번째 약속을 호소하였다. "나는 지극히 완강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은총을 사제들에게 주겠다."
"사제를 대신해서 방문하는 단원들에게도 얼마만큼은 이 말씀이 해당된다." 더욱이 더블린의 많은 "제 멋대로인" 가정에 대한 자신의 사도직의 놀라운 결실은 그의 주장을 확실하게 입증했다.
프랭크 더르는 경험에서 말하고 있었다.
프랭크는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처럼 예수 성심께 대한 봉헌이 많은 영혼들을 위한 활동에 실제로 보다 큰 효과를 보장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한편,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영광을 드리는 효과적인 수단이 봉헌이라고 보았다. 성심께 대한 그의 사랑은 순수하고 사심이 없었다. "우리 마음은 가장 크고 순수한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만들어졌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만드셨습니다. 건전한 사랑의 그릇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그 안에 담긴 사랑이 순수한 사랑이 아니라 상이나 벌에 동기를 둔 사랑이라면 그 그릇은 아름다운 그릇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그 그릇을 더럽히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따라서 착한 목자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이기심을 초월하여 갖도록 합시다.
우리가 하늘나라를 지배하기 위함이 아니라... 영원한 고통을 피하기 위함이 아니라... 이들을 바라서가 아니라 오직 그분을 위해 사랑합시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의 사랑을 간절히 바라시는 그분의 크신 사랑에 순수하게 응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순수한 사랑이 우리 가슴속에서 강해졌을 때, 그 사랑은 독수리처럼 높이높이 올라가고 실어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동경하는 바를 소화 데레사와 함께 다음과 같이 간절히 원하며 외칠 것입니다.
"예수여.. 예수여!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당신께서 결코 받지 못한 그러한 열렬한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