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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한국 선교 이야기』는 한국 기독교의 기원을 이루는 선교사들과 그들의 활동을 담은 책이다. 저자가 선교사이면서도 학자답게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고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선교 현장을 그려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저자
조지 톰슨 브라운
저자 : 조지 톰슨 브라운
저자 조지 톰슨 브라운(한국명 부명광) 선교사는 미국 남장로교 중국 선교사의 아들로 1921년 중국 지린(길림)에서 태어나 그곳의 외국인학교에서 공부했다. 그 후 미국으로 건너가 남장로교 계통의 데이비슨 대학과 리치몬드 유니온 신학대학원을 졸업하고, 1952년 내한하여 주로 광주와 목포에서 활동하였다.
그는 한국선교사로 일하면서 특히 신학교육과 선교정책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1950년대 광주성경학원 원장으로 선교사역을 시작한 브라운은 그 학교를 호남성경학원으로, 그리고 1960년에는 호남성경학원과 광주야간신학교, 순천 매산신학교를 통합해 호남신학원으로 발전시켰다. 호남신학원은 1963년 호남신학교로 승격하여 오늘의 호남신학대학교가 되었다. 브라운은 이 학교의 초대 원장과 교장, 이사장으로 봉직했다. 1967년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의 극동총무를 역임한 그는, 귀국 이후 1977년부터 미국 남장로교 해외선교부의 총무에 임명되어 남장로교의 해외선교 운영 전반에 깊이 관여하였다.
역자 : 천사무엘
역자 천사무엘은
연세대학교(신학사 및 신학석사)
장로회신학대학교(M.Div.)
미국 예일대학교(S.T.M.)
미국 Graduate Theological Union(Ph.D.)
현재 한남대학교 기독교학과 교수
역자 : 김균태
역자 김균태는
서울대학교(문학사, 문학석사 및 문학박사)
현재 한남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역자 : 오승재
역자 오승재는
한남대학교(이학사)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졸업(M.S.)
미국 북텍사스 주립대학교 졸업(Ph.D.)
미국 Howard Payne 대학교 조교수 역임
현재 한남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목차
옮긴이의 글
감사의 글
머리말
Ⅰ. 은자의 나라(1892년 이전)
고요한 아침의 나라 / 한국의 종교 / 로마 가톨릭의 순교자들 / 성경이 한국에 들어오다 /
외교적 협상 / 북장로교 선교의 시작 / 네비우스Nevius 원리
Ⅱ. 선교의 시작(1891~1895)
서울 선교부 / 전라도의 초기 탐험 / 청 ? 일 전쟁 / ‘독립협회’ / 남장로교의 서울 준비 기간
Ⅲ. 처음 세 선교부(1895~1903)
군산 선교부 / 목포 선교부 / 성경공부반 조직의 성장
Ⅳ. 위대한 전진(1904~1910)
러 ? 일 전쟁 / 부흥운동 / 광주 선교부의 개설 / 각 선교부의 발전 /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기독교 학교들 / 의료기관의 설립 / 자치自治, 자급自給, 자전自傳의 교회 /
‘희망과 교리로 하나 됨, 자선으로 하나 됨’ / 백만인 구령운동
Ⅴ. 대세를 거슬러(1910~1919)
나라의 합병 / 음모 재판 / ‘9년간의 불모기不毛期’ / ‘불신자의 주일학교’ / 순천 선교부의 개원 /
최초의 총회 / 교육 프로그램의 발전과 확장 / 총독부 교육 당국과의 갈등 / 고등교육 기관 /
현대식 의료시설의 건립 / 한센병 / 선교사의 삶 / 1919년의 독립운동
Ⅵ. 순조로운 대세(1920~1930)
여성들에 대한 전도사역 / ‘교육에 대한 열광’ / 치유사역 / 연합 사업 /
한국 교회와 선교회의 관계 / 사회의 변화에 직면한 교회
Ⅶ. 폭풍우 속에서의 전진(1931~1942)
만주사변 / ‘예산 삭감의 해’ / 폭풍우 속에서의 전진 / 복음전도의 새로운 일들 /
의료사역 / 국내 교회 / 미션학교와 신사참배 / 신사참배와 한국 교회 / 폭풍우가 멈춘 기간
Ⅷ. 해방(1945~1950)
교회의 회복 / 선교회의 귀환 / 재적응과 긴장 / 신학교 분쟁 / 소생하는 복음선교 / 교육사역의 재건 /
의료 프로그램의 정리 통합 / 여수 반란 사건
Ⅸ. 공산주의자와의 전쟁(1950~1953)
적의 치하에서 / 2차 공습 / 생존과 회복 / 피난민과 구제 / 전쟁 포로 이야기 / 대가를 계산하며
Ⅹ. 새로운 개척자들(1954~1962)
복음사역에 열린 문들 / 대전 선교부 대학 / 중 ? 고등학교 교육 / 교회 지도자 양성 / 의료 기관 /
‘분파주의로 산산이 흩어져’ / 한국 교회와 선교회의 관계 / 정치적 격변 / 전도前途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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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
출판사서평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그려낸 초기 호남지역 선교사들의 이야기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 조지 톰슨 브라운(한국명 부명광)이 쓴 한국 선교 이야기(원서 명: Mission to Korea). 이 책은 한국 기독교의 기원을 이루는 선교사들과 그들의 활동을 이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필수적인 자료다. 브라운이 선교사이면서도 학자답게 객관적인 시선을 잃지 않고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 선교 현장을 그려낸 책이다. 하지만 최근까지 한국어로 번역되지 않아 일반인들이 접근하는 데 어려움이 컸다. ‘미국 북장로교 한국 선교 역사’나 ‘감리교 한국 선교 역사’ 등은 책으로 이미 나왔으나 호남지역을 중심으로 선교를 펼쳤던 ‘미국 남장로교’의 한국 선교 역사를 다룬 책으로는 첫 책이다. 그동안 미국 남장로교 선교 역사를 정리해 온 한남대학교 인돈학술원은 이러한 사정을 고려하여 책을 번역, 출간했다. 선교사의 시각으로 정리한 이야기이지만 한국 사람들의 생활상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 사료적으로도 가치 있다.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첫사랑을 잊어버리고 있는 한국 교회에 초기 선교사들의 목숨을 내건 눈물겨운 노력은 그리스도에 대한 열정을 새롭게 다지는 데 기여할 것이다.
생생하게 그려낸 초기 한국 선교 현장
이 책은 1892년 이전의 한국 상황에 대한 개괄에서 시작한다. 최초의 개신교 선교사였던 로버트 토마스 목사가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장면을 그린다. 갯벌에 묻혀 더는 나아가지 못하던 그 배에서 내려 강변에 도착하자마자 무릎을 꿇고 기도하면서 맞아 죽었다는 장면이다. 그 뒤 북장로교의 선교가 시작되고, 네비우스 원리(자급, 자치, 자전)에 따라 한국 선교의 틀이 잡혀 가는 초기의 모습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스코틀랜드의 선교사인 존 로스 목사가 서상륜의 도움을 받으며 처음 한글 성경을 인쇄하던 때의 이야기, 그 성경 때문에 감옥에 갇힌 서상륜이 자신이 뺏겼던 성경을 목숨처럼 여겼던 그 시절의 이야기는 지금 한국 교회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을 느끼게 한다.
동학운동이 벌어지던 때의 한국 상황, 청일전쟁이 일어났을 때의 상황, 독립협회에 대한 이야기 등은 그시절 한국에 대한 객관적인 역사 자료로도 손색이 없다.
110여 년 전 선교사들의 삶과 헌신
초기 선교사들은 1892년 10월 서울을 밧줄을 타고 담을 넘어 입성한다. 그리고 ‘제중원’의 나오는 알렌 박사의 도움을 받으며 서울 생활을 시작한다. 전혀 생소한 문화와 사람들이 사는 곳, 먼 이역에서 겪는 선교사들이 겪는 고통은 짐작하고도 남는다. 남장로교의 첫 선교사 중 한 명인 레이놀즈가 서울에서 받은 첫 번째 밥상에 대한 표현도 그 시절 선교사들의 생활이 눈에 환히 잡힌다.
“첫 번째 받은 저녁상에 총알 같은 비스킷만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레이놀즈는 마펫 씨를 초대했는데 신부는 훌륭한 남부 음식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 메뉴는 ‘샐리 런(Sally Lund: 바로 구워 먹을 수 있는 과자)’이라 불렀는데, 아뿔싸, 이 과자가 전혀 부풀지 않은 것이었다.”
그들이 겪었을 어려움은 “목이 곧고 머리가 아홉 개인 괴물”이라고 한글에 대해 표현한 말에서도 확연하다.
선교사들이 첫 지방 순회 여행으로 호남지역을 향해 초기 탐험을 했던 때의 묘사는 다음과 같다.
“나는 조랑말 위에 침구와 짐들을 산더미처럼 싣고 그 위 높은 곳에 앉았는데 내 발은 말 귀 주변에서 대롱거렸다. 그래서 나는 내 자세를 꼬리 쪽으로 옮겼는데 균형을 잃고 뒤로 거꾸로 넘어졌다. 그러나 다행히도 그래함 리(Graham Lee) 씨가 내 말 뒤에 있어서 팔로 나를 붙들어 주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살아서 이 이야기를 못 할 뻔했다.”
그들이 한국 문화를 어색해 하며 느꼈던 소감도 생생하고 재미있다.
“[한국의 가마]는 작은 네 기둥으로 된 닫집으로 가로 세로 3자에 높이 4자 정도로 되어 있으며 메고 가는 두 장대가 있다. 타고 가는 사람은 가마 안의 상자 같은 의자 위에 앉는데 커튼이 있어 밖을 바라볼 수도 있고 찬바람을 막기도 한다. 네 사람의 가마꾼은 어깨에 멜빵을 메고 그 끈에 있는 구멍에 장대 끝을 통하게 한다. 만일 터키 사람처럼 다리를 꼬고 앉으면 신선한 공기를 공급받을 수 있다. 그리고 가마꾼들이 매 3마일마다 길 한복판에 가마를 내려놓는데, 그렇게 못하게 하면 안 된다. 그들이 술을 한 잔 하거나 담배를 피우기 위해 그러는 것이다. 여행하는 데 아주 불편한 방식은 아니다. 이렇게 하루에 35마일쯤 갈 수 있다.”
또한 지금은 잃어버린 그 시절 호남지역을 묘사한 대목도 눈에 들어온다. “비옥하고 웃고 있는 계곡의 들머리에 아름답게 자리 잡은 도시”는 순천에 대한 묘사이고, “바위가 많은 큰 강변 둑에 찰싹 달라붙어 있는 그림 같은 마을”은 목포에 대한 묘사이다. 초기 선교사들의 순회 여행은 뱃길을 따라 땅길을 따라 가는 고생의 연속이었다. 나룻배 선장이 술에 취해 배가 어찌 될지 모르는 상황에 배를 거스르는 바람, 빈대가 우글거리는 여관방. 화폐개혁이 없던 시절 그런 순회 여행은 큰 궤짝에 여행 경비를 넣고 나귀를 따로 부려야 할 정도였으니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다. 벽안의 외국인이 겪었을 고초가 눈에 선하다. 여행 중 심하게 물집이 잡혔던 한 선교사의 표현은 이렇다. “구두 밑창에 쪽 복음을 깔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신을 신었다.”
조랑말을 타고 가다, 다리에서 떨어져 갈비뼈가 부러지고, 풍토병에 걸려 어린 자식 셋을 나란히 묻어야 했고, 어느 추운 겨울밤 찾아든 숙소에서 강도를 만나 온몸에 수십 군데나 자상을 입어야 했던 그네들의 삶. 낯선 이역의 시골집에서 싸늘하게 죽어갔던 선교사들은 자신의 믿음과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이었던 개척자들이었으며 순교자들이었다.
국립 한센병원/광주제중병원/수피아여학교 등을 연 선교부
개신교 선교회 역사는 한국 근현대사와 맞물려 돌아간다. 선교사들은 선교가 목적이었으나 한국의 근세 문화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특히나 중점을 둔 사업으로 교육사역과 의료사역을 들 수 있다. 선교회들의 교육사역은 한국 근대 교육의 효시가 되었으며, 의료사역 또한 현대 의학을 도입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미국 남장로교 선교회는 미국 장로교회의 선교지 분할 정책에 따라 호남지역 선교를 담당한다. 그곳은 어떤 곳인가? 동학농민운동이 거셌던 곳이다. 외세에 대한, 외국인에 대한 배척이 그만큼 심했던 곳에서 벌였던 선교사역이었던 만큼 그들의 열정과 헌신은 가히 예수의 모습을 방불케 한다. 한센병으로 버림 받은 여인을 병원에 데려오던 포사이드 박사의 일화는 그들이 성자로, 진정한 예수의 제자로 한국에 빛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선교 역사상 가장 극적인, 그리고 그리스도 같은 예화 중 하나는 1909년 한센병 환자 사역이 시작될 때 일어났다. 오웬 박사가 크게 아팠을 때, 윌슨 박사가 목포에서 상담을 위해 포사아드 박사를 불렀다. 포사이드 박사는 말을 타고 출발했다. 광주에서 13마일쯤 되는 곳에 무서운 한센병 말기의 여인이 길가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가 지나칠 때 동양 거지들이 하는 식으로 그녀는 ‘살려 주시오Give me life!’라고 했다. 포사이드 박사는 주님이었으면 그렇게 했으리라고 생각하면서 멈춰 서서 그 여인을 말 위에
태우고 남은 길을 인도하여 광주로 갔다. 포사이드 박사는 그 여인을 의무실로 데려가 방을 내주었다.
“벽돌 굽는 가마에 모였던 한 떼의 사람들은, 포사이드 박사의 사랑스럽고 주저함이 없는 부추김을 받으며 어려운 지역들을 넘어 길을 따라오는 그녀를 보았다. 각자의 마음에 닿는 생각은 “얼마나 그의 주님과 같은지How like his Master”라는 것이었다. …… 온전한 신사요 그렇게 차려 입은 포사이드 박사는 지금 이 순간 병으로 역겹고, 더럽고, 오랫동안 버려진 그 여인의 팔을 붙잡고 있다. …… 그녀의 머리는 어쩌면 몇 달 동안 혹은 몇 년 동안 빗질을 하지 않았고, 옷은 헐고 더러웠으며, 그녀의 발과 손은 붓고 종기로 덮여 있었다. …… 한 발은 짚신을 신었고 다른 한 발은 두꺼운 종이로 싸매고 있었다.”
근대 한국 역사와 교회사의 살아 있는 증거
<한국 선교 이야기>에서 풀어내는 이야기에는 근대 한국 교회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토 히로부미의 총살과 함께 일제의 공안 통치가 강화되던 시절의 이야기, 3.1운동 당시 급박했던 이야기, 그에 따른 음모 재판, ‘백만인 구령운동’. 여순 반란사건, 6.25 전쟁으로 나라가 폐허가 되었을 때, 남과 북이 서로 총칼을 마주 댔을 때에도 선교 사명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남아서 선교 지역을 지켰던 선교사들의 이야기, 포로수용소에서의 선교, 신사참배를 반대하는 파와 비판적인 참여를 원하는 파가 나뉘어 한국 교회가 분파로 산산이 갈라지던 때의 총회 현장 등등은 근현대사를 한눈에 보여준다. 그들의 이야기는 단지 한국 선교 이야기로 교회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한국 근현대사의 살아 있는 증인들의 이야기라고까지 말할 수 있으리라.
기독교 선교 역사 편찬 작업에 대해
19세기 말 한국 선교를 시작한 서구 개신교의 6개 주한선교회들은 모두 자신들의 역사를 정리한 바 있다. 북장로교선교회는 1934년과 1964년 두 차례에 걸쳐 『미국 북장로교 한국선교회의 역사(History of the Korea Mission Presbyterian Church in the U.S.A.)』를 정리했다. 이 책의 저자는 북장로교의 현장 선교사들이
었던 로즈(Harry A. Rhodes; 노해리)와 캠벨(Archibald Campbell; 감부열)이었다. 함경도에서 활동했던 캐나다선교회의 역사는 스코트(William Scott; 서고도) 선교사가 1975년에 쓴 『한국의 캐나다인들(Canadians in Korea)』에서 정리되었다. 부산과 경남에서 선교했던 호주선교회의 역사는 1970년에 한국선교사 출신인 에디스 커(Edith Kerr; 거이득) 양과 앤더슨(George Anderson; 안대손)이 편집한 『호주장로교선교회와 한국 선교(The Australian Presbyterian Mission in Korea)』(1889~1941)에 의해 정리되었다. 감리교 역시 한국선교사였던 찰스 스톡스
(Charles D. Stokes; 도익서)가 1947년 예일대에서 출간한 『감리교 한국선교회들의 역사(History of Methodist Missions in Korea)』(1885~1930)를 통해 정리되었는데, 북감리교와 남감리교 선교회의 한국 선교 역사를 포괄하고 있다. 그리고 브라운에 의해 남장로교의 역사가 집필되었다.
출처 : 인터넷 교보문고